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스크랩] 시편 23의 주석학적. 인간학적 이해 - 나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김레지나 2011. 1. 12. 23:29

시편 23의 주석학적. 인간학적 이해

 

나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1)

 

지금까지 시편 저자는 주님과의 관계를 삼인칭으로 고백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일인칭을 사용해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주어는 '야훼'였지만 이제부터는 '나'이다.

낮시간 동안은 야훼께서 푸른 풀밭과 시원한 물가로 나를 이끌어 쉬게 하시었으니,

야훼의 수고에 대한 응답으로 지금 밤시간 '나'는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지만 야훼를 신뢰하겠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주님과 양, 상호간 인식과 응답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게 한다.

 

"어두운 골짜기"에서 "어두움, 캄캄함"은 음산함의 이미지이고,

다시 음산함은 죽음의 이미지로 발전된다.

그래서 우리말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로

번역하고 있다.

실상 죽음과 어두움은 연결되어 있으니 "나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는

"나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걸어가며 그 어두움 속에서 죽음을 체험한다 하더라도"가 된다.

 

어둔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양떼는 마실수도, 먹을 수도 없다.

밤시간은 양들에게는 죽음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양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인내롭게 묵묵히 걸어가는 일뿐이다.

양들이 목자에게 "어서 이 어두움을 제거해 주세요. 빛을 비춰주세요."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어두움은 시간이 흘러 빛이 비치기 전까지는 물러가지 않는다.

그러니 양들은 목자에게 어두운 골짜기 대신 밝고 평탄한 길을 요구하기보다

목자가 자기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서 힘을 내야 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말은 "비록"이다.

"비록"이라는 신앙고백이 우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비록"은 시련 앞에서 그 시련을 적극적으로 대면하려는 우리의 태도를 드러낸다.

"나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노라."

신앙으로 어두움의 시간을 이겨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앤 질리언이라는 할리우드의 영화배우가 있다.

그녀는 어느날 헬스 클럽에서 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가슴에 딱딱한 혹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암이 아닌가 싶어 즉시 운동을 중다나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서둘러 약속을 했다.

그리고 정밀검사를 받는 날, 질리언은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너무나도 두려워 방향을 바꾸어 성당으로 갔다.

진찰을 받기 전에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질리언은 성당에 들어가기 전 우연히 성당문 옆에 새겨진 글을 읽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오랫동안 그 성당을 다녔기에 성당문 옆에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 글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녀가 그때 처음으로 읽은 팻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언제나 같은 하느님이 오늘 너를 돌보듯이 내일 그리고 매일 너를 돌보아 주리라.

그분은 너를 고통에서 보호해 주시고, 또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주시리라.

그러니 평안하거라. 모든 염려와 근심을 버리거라.

 

성체 앞에 꿇어앉은 앤 질리언은 조금 전 읽었던 글귀가

자기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얼마 후 그녀의 마음은 내적인 평화로, 주님께 의탁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정밀조사 결과는 암이었다.

곧 수술과 화학치료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내적 평화가 얼마나 깊었던지

그녀를 치료했던 의료진까지도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

 

앤 질리언이 읽었던 말은 어두운 시간에 주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먼저, 하느님은 사랑의 아버지시라는 것이다.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인 우리를 고통에서 보호하시고,

또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말은 하느님께서는

그 고통을 없애기보다는 잘 견딜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 편에서는 아무리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영적 가르침을 읽어보자.

 

언제나 같은 아버지 하느님이 오늘 너를 돌보듯이 내일 그리고 매일 너를 돌보아주리라.

그는 너를 고통에서 보호해 주시고, 또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주시리라.

그러니 평안하거라. 모든 염려와 근심을 버리거라.

 

마지막 구절 "모든 염려와 근심을 버리거라."는 주님께서

우리 나약한 인간에게 주시는 큰 위로의 말씀이다.

이 위로의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 앞길에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을 제거하고

"우리의 길을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길이 험난할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 갈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에" 모든 염려와 근심을 버리라는 말이다.

시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야훼, 사람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니 그 발걸음이 안정되고 주님 뜻에 맞는다."

(시편 37,23)

이 구절에서 주의할 것은 야훼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언제나 발걸음이 안정되어서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 다음 구절인

"야훼께서 그의 손을 붙잡아 주시니 넘어져도 거꾸러지지는 아니하리라." (시편 37,24)

에서 "넘어져도"란 구절이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우리 발걸음을 안정되게 인도해 주시지만 우리는 넘어지기 일쑤다.

요컨대 넘어진다 하더라도 쓰러진 채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편 37의 정신은 바오로 사도의 다음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 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겨는 것입니다.(2고린 4,8-11)

 

앤 질리언이 읽은 영적 가르침이나,

시편 37장이나, 고린토 후서 4장이나 다 같은 가르침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은 우리 인생길에서 어두운 밤을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두운 밤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걸어가는 도중에 넘어졌다면 즉시 일어나 다시 걷고록 용기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어두움을 치워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두움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걸을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청해야 한다.

 

 

 

 

 

 

출처 : 퍼렁별나라공쥬님의 블로그
글쓴이 : 찬미예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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