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차동엽 신부님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김레지나 2011. 1. 4. 12:45

[2010년 10월 5주차]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10월 31일 연중 제31주일 |루카 19, 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루카 19, 9).

 여름 끝 무렵, 필자는 문학동네 출판사로부터 추천 글 의뢰를 하나 받았습니다. 극히 희귀한 장애를 한 몸에 안고 태어났지만 트럼펫 주자이자 피아니스트로 우뚝 선 패트릭 헨리 휴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지요. 쏟아지는 추천 글 의뢰에 일일이 응할 수도 없는 처지지만 책의 주인공을 이미 TV로 만나본 적이 있던 터, 자연스레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감사의 뜻으로 추천 글을 써준 책과 기타 출판된 여러 책을 아주 넉넉히 보내왔습니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제 졸저들을 보내 주었지요.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달 전 제게 또 소포 꾸러미 하나가 왔습니다. 신간이 나왔는데 읽어 보고 어떤지 느낌을 이야기해 주었으면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 한 책의 저자는 미국 시인이자 소설가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인 마야 안젤루였습니다. 그녀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어떻게 불우한 과거를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는지 이렇게 진솔하게 밝힙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살 때 나는 닳고 닳은 회의론자로 지낸 적이 있었다.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주로 다니는 동네에는 하느님이 살지 않는 것처럼 느끼던 때였다. 그러다 성악 선생님에게 『진실 안에서 배우는 교훈』이라는 책을 소개받았다. 내게 성악을 가르쳐 주었던 프레더릭 윌커슨 선생님은 … 한 달에 한 번씩 제자들을 모두 초대해 『진실 안에서 배우는 교훈』의 일부분을 읽어 주었다.
한 번은 모두 백인인 학생들과 나 그리고 선생님이 동그랗게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로 끝나는 대목을 읽게 했다. 나는 그 구절을 읽고 책을 덮었다. 선생님이 “다시 읽어라”라고 말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펴고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고 읽었다. 선생님은 “다시”라고 했다. 전문가이고 나이도 많고 백인인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건가 싶었다. 일곱 번쯤 다시 읽었을 때 나는 초조해지면서 그 구절 안에 일말의 진실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정말로 나, 마야 안젤루를 사랑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장중함과 위대함에 눈물이 흘렀다. 만약 하느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고,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고, 무엇이든 배우고 성취할 수 있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내가 곧 절대 다수인데 어느 누가 나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나는 겸손해지고, 뼈가 녹고, 귀가 닫히고, 이가 흔들린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으론 홀가분해진다. 나는 높은 하늘을 넘고 조용한 계곡 밑으로 날아가는 커다란 새다. 나는 은빛 바다 위의 잔물결이다. 나는 완전히 자랄 생각에 몸을 떠는 봄 잎사귀다.

 성악 선생님의 애정 어린 지혜를 통해 얻게 된 마야 안젤루의 깨달음은 아주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녀의 명오가 열리자, 그녀는 곧장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고,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고, 무엇이든 배우고 성취할 수 있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내가 곧 절대 다수인데 어느 누가 나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자신을 긍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훼손된 자존감을 치유하는 최고의 명약도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루카 19, 9).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하느님 사랑에 관통당하는 기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키가 작은 콤플렉스에, ‘매국노’ 소리 듣기를 면할 수 없는 세관장이었기에 직업 콤플렉스에 짓눌려 있던 자캐오, 그에게 예수님 말씀은 필경 치유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뭐, 우리 집에 구원이 내렸다고? 나 같은 죄인의 집에?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저주의 후예가 아니라 축복의 자손? 할렐루야, 아멘!”
“이봐요 동네 사람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구요. 아세요?”

 참으로 고마운 것은 자캐오 속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자캐오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차동엽(노르베르또)
신부님,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월간「참 소중한 당신」 2010년 10월호 <송이꿀보다 단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