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차동엽 신부님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 박경리 선생님의 세례

김레지나 2011. 1. 3. 08:20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차동엽 신부님

 

"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17,10)

 

얼마 전 저는 정의채 몬시뇰과 함께 대담집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건으로 <동아일보> 공동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습니다.

 

이 대담집은 각 본당의 사목위원들 및 봉사자들에게 본당 사목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창간된 잡지 월간<사목정보>에 연재된 정 몬시뇰과의 대담을 엮은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 은사였던 정 몬시뇰이 1960년대 한국정치 . 문화계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 오늘의 한국천주교회를 있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확신했기에 그 이야기를 제가 주간으로 있는 <사목정보>에 싣고자 햇습니다. 그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대담집 발행과 인터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2010년 8월20일자 인터뷰 기사의 여러 내용 가운데 한국 문학계의 여걸이며 거목인 고 박경리 선생에게 세례를 준 일이 의미 있게 강조되었기에 소개합니다. 

 

대담집에는 두 신부의 8차례에 걸친 대담, 정 몬시뇰의 사목 인생과 교회사에 얽힌 사연 등을 담았다.

정 몬시뇰은 2008년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

 

 " 자청해 6개월간 박 선생에게 교리를 가르쳤지만 영세를 받기 2주 전,죽음의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 며 포기하더군요, 그 후 박 선생은 영세를 받았고, 40여 년 뒤 임종 직전 병자성사(죽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예식)를 해 하느님 섭리가 참 오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압축하여 기록한 이 기사를 보충하는 것으로서 대담집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둘째 예는 박경리 씨입니다 그분은 우리 문단 사상(史上)최고의 분임을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젊었을 때 어떤 우연한 경우에 자신의 글 문제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의 고민은 죽음의 문제였습니다. 결국 인간은 죽는 존재이기에 죽음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데 죽음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자기는 그 문제와 부딫치면 우회하거나 외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소설가라면 서구 작가들과 같이 죽음의 문제와 사투를 벌여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해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와 드릴 테니  6개월간 저와 같이 공부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그 6개월이란, 영세 준비를 위한 교리 공부가 6개월이었기 때문이고 어차피 죽음의 문제 해결은 종교로의 귀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문제라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해결한다는 말에 두 말 없이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외동딸이 있으니 같이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환영이었습니다. 꼭 6개월을 채워야 한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성인 교리반을 시작할 때 이런 다짐을 꼭 받아 두었습니다. [........]

 

그런데 영세 받기 2주 전, 영세를 받지 않겟다고 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교리와 죽음이 이해되나 특히 죽음에 대한 교리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분이 위대한 소설가이며 풍부한 시적 감성을 갖고 있기에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방향에서 한 번 더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그 노력이란 마침 제가 교리반을 운영하던 곳이 전 . 진 . 상 건물이었는데 기기는 여러 나라 여성들이 일생 동안 독신 생활을 하며 봉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곳의 프랑스인 여성 봉사자에게 교리반이 끝난 후, 귀한 손님을 모시고 갈 터이니 직접 커피와 케익을 대접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박경리 선생과 저는 그 프랑스 여성 봉사자와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녀는 좋은 가정 출신이고 학벌도 좋았으며 20대 미모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일생을 바쳐 한국의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 당시 가난과 후진에 시달리는  이 땅에서 자신을 다 바쳐 봉사한다는 데 박경리 선생은 깊은 감명을 받은 듯 했습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죽음을 넘어서의 다른 삶이 그런 삶의 기본이 된다는 데 감명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 후 그분은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얼마 후부터 그분은 저 유명한 작품 [토지]를 구상하는 등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다 2008년 임종 시, 영세를 베푼 저의 손에 의해 병자성사(일명 종부성사; 가톨릭의 죽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예식)를 받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것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

 

그분을 여러 해 동안 모시고 끝까지 수발을 든 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

벅경리 선생님은 인생 마지막 길에서 병자성사를 받고 나서 그렇게도 행복해하며 고마워했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또 죽음에 대해, 죽은 후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교리의 위대성과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복할 따름이었습니다

                 (정의채 . 차동엽 대담, <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참조).

 

 대하소설 <토지>에는 한국 혼과 얼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니 그 작가인경리에게 세례를 준 것은 한국에 세례를 준 것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니다.

이 위대한 사건에 도구로 쓰임받은 정 몬시뇰은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의 이 고백을 통해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10)를 고백한 셈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부족한 저희를 주님의 위대한 구원섭리에 도구로 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희를 통해 이루신 모든 결실에 대해서 저희도 주님의 분부대로 기도드릴 따름입니다.

 

"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아멘!

 

 

2010년 10월3일 연중제27주일 '신나는 복음묵상' 중에서...


('무지개 다리'에 이은숙님이 소개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