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는’ 바보는 ‘바보인 척’하면서 자신이 의도한 바를 관철해내는, 계산된 바보라고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가 ‘의도적인 바보’를 그리면서 본래 상상했던 이미지에 가까운 이 바보는 속과 겉이 다르다는 점에서 ‘처세술적 바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반면에 ‘자발적 바보’는 ‘바보인 척’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바보의 삶을 최고의 덕으로 알고서 자발적으로 바보가 된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경지의 바보는 이제 더 이상 바보가 아니라, 현자이며 성자라 불러 마땅하다.
- 차동엽 신부님의 책, 「바보 Zone」중에서 -
하느님께 멱살 잡힌 바보
차동엽 신부님의 책,「바보 Zone」에 소개된 바보유형 중에는 처세술적 바보와 자발적 바보가 있습니다. ‘처세술적 바보’는 ‘바보인 척'하면서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루어 내는 사람이고, 자발적 바보는 바보의 삶을 최고의 덕으로 알고서 자발적으로 바보가 된 사람이며 성자라 불러 마땅하다고 합니다.
저는 두 바보 유형에 덧붙여, ‘하느님께 멱살 잡힌 바보’ 유형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느님께 멱살 잡힌 바보’는 바보의 삶을 최고의 덕으로 삼아 자발적으로 ‘선택’ 했다기보다, ‘덕’이고 ‘선택’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바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수없이 도망치려고 했는데, 하느님께 멱살 잡혀서 하는 수 없이 사제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
몇 년 전 S 신부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S 신부님과 저는 중고등부 레지오 활동을 같이했었습니다. S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으신 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가 어찌 연락이 닿아서 이십여 년 만에 S 신부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그때 항암치료 중이었고, 하느님 사랑에 취해서 행복에 겨워 지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세상의 고통에 대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강 마리아 씨라고, 말기 암으로 입원하신 후에 대세 받으신 분이 계신 데요. 저랑 같은 병실을 쓰는데,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어린애들처럼 뼈만 남으셨거든요. 그분이 자꾸 ”하느님, 너무 아파요. 저 좀 그만 벌주세요.“하고 소리 지르신단 말이에요. 그럼 제가 ”하느님은 벌주시는 분이 아니에요.“라고 말씀해 드려요. 그분 좀 덜 아프게 해달라는 기도는 왜 하느님이 안 들어주실까요? 대세 받으신 분이 그만하면 잘 지내시는데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교리를 전혀 모르시니 고통을 봉헌하라는 둥 그런 말도 이해 못 하실 텐데요. 뭐라고 위로해 드리면 될까요?”
“하느님도 어쩔 수가 없으신 거지. 아이가 아프면 지켜보는 엄마도 아프잖아. 하느님의 심정이 그와 같다고 말해주는 수밖에 없지......”
저는 속이 상해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하느님이 어쩔 수가 없으시기는. 하느님이 못하시는 게 어디 있다고, 그럴 리가 없어. 그런 위로도 안 되는 말을 해줘서 뭐하라고?’
저는 명랑한 기분을 내보려 애쓰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제 아들들도 신부님 되면 좋겠어요.”
“됐다. 됐어.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신부님들은 당연히 하느님 생각하는 기쁨에 살고 계실 거라고 믿고 있었던 때라서, 전혀 예상치 못한 신부님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A 신부님은 그렇게 험한 모욕을 당하셨어도 하느님 전하는 기쁨으로 사신다는데, S 신부님은 아직 하느님을 못 만나신 게 아닐까?’
하고 속으로 투덜거렸습니다.
S 신부님은 어떤 기관을 맡으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직원들과 신자들과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S 신부님처럼 억울하게 고통을 겪으신 분은 교구에 없을 거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000회가 미워.... 내가 수습하려고 한마디 하면 다음날 신문에 하지도 않은 말들을 올리고, 신부가 거짓말했다네, 하고 데모하고,....... 너 우울증 걸려 봤냐?...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구.... 사제생활 내가 계속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야. 하느님께 멱살 잡혀서 하는 수 없이 하는 거야. 도망가면 도로 데려다 놓으시고, 도망가면 도로 데려다 놓으시고..... 아마 몇 년쯤 더 지나야 이 상처가 덤덤해질 것 같다.”
제가 받은 은총과 제가 존경하는 분들에 대해 여쭤도 S 신부님께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실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면박을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S 신부님의 반응에 풀이 죽었고, 슬그머니 S 신부님이 걱정되었습니다.
계속 엇나가는 대화를 주고받은 후에 저는 뾰로통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S 신부님의 사무실을 막 나오려는 순간에 돌연 하느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제다.”
저는 몸을 다시 돌려 신부님을 쳐다보면서 하느님께 되물었습니다.
‘누가요? 이 분이요? 참 마음에 안 드는 소리만 골라서 하시는구만. 하느님 일이 괴롭다고 하시잖아요?’
몇 주 후에 S 신부님과 J 신부님, 성당 친구들 네 명이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S 신부님께서 맛있는 병어조림을 사주셨는데, 식사도 제대로 안하시고 저를 빤히 쳐다보시면서 30분이 넘게 훈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옛날에는 어떤 신부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투덜거릴 때가 있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나도 물론 부족하고 말이야. 사람들의 부족함을 볼수록 오히려 하느님의 훌륭하심을 알게 되더라고. 그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부족한 대로 쓰시는 하느님이 얼마나 대단하시냐?.... 그러니까 니 기준으로 이 신부님은 뭐가 부족하고 저 신부님은 뭐가 잘못됐고 하며 재단하지 말라고... ”
저는 먹다가 체할 것 같았습니다. 그즈음 어떤 신부님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기쁨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다고 속상해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요. 신부님. 그 이야기를 왜 저만 쳐다보면서 하세요?”
“니가 나한테 물어 봤잖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 마음속의 불평에 대해 말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었거든요. 성령께서 어리석은 제게 따끔한 충고를 하고 싶으셔서 제 속마음을 S신부님께 알려주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후로 여러 일을 겪으면서 고통의 가치에 대해 많이 묵상해보게 되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때로는 관계 때문에 억울하고 지치고 화가 날 때마다, 저는 S 신부님과의 기억을 곰곰이 되새기며 ‘하느님의 뜻’을 묻곤 합니다.
살다 보면 얄팍한 고통의 경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큰 시련을 잇달아 겪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명예가 심각할 정도로 손상되거나 마땅히 사랑해야 할 가까운 이들의 엄청난 불의를 보게 될 때면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기게 되고, 그 미움 때문에 하느님과 영영 멀어졌다는 느낌까지 들어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괴로움을 주는 원인을 따져 보고 바라보고 있으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화와 미움과 억울함만 더해갈 뿐입니다. 대신 우리의 멱살을 잡고 계신 ‘하느님의 팔’을 신뢰하고, 우리를 그런 처지에 있게 두시는 ‘하느님의 뜻’을 묵상해 보아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통은 ‘나와 그 사람’, ‘나와 그 일’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느님과의 문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대체로 그런 경우의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비참함을 확인하게 하고, 다른 이의 비참함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려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S 신부님은 사제다운 명쾌함으로 당신의 고통을 포장하지도 못하시고 마음 속 깊이 비명을 지르고 계셨지만, 멱살 잡고 있는 하느님의 팔을 늘 의식하며 견디셨기에 하느님의 인정과 큰사랑을 받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보 같은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억울해하고 아파하면서 하는 수 없이 바보 꼴을 하고 사는 ‘하느님께 멱살 잡힌 바보’들에게 성경은 말합니다.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 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1베드 2,19)
그러니 ‘하느님께 멱살 잡힌 바보’들은 하느님께 인정받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 멱살 잡힌 이’들이 하느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고통 속에서도 평온하게 기도하고 진심으로 모든 일에 감사하는 '진짜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2010년 12월 5일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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