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승천 대축일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반딧불처럼 행동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나서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셨다가 그 후 승천하셨다. 40일이라면 그렇게 긴 날이 아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종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도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과 그들 사이의 만남은 항상 아주 짧게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알아보면 그들에게 위로와 평화 그리고 사명을 부여하신 다음 즉시 사라지셨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예수회 정일우 신부님은 반딧불을 갖고 설명한다. 반딧불이 잠시 반짝이다 꺼지고 또다시 반짝이다 꺼지듯이, 예수님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제들에게 안 보이는가 하면 어느새 나타나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금방 사라지신다.
왜 예수님은 40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반딧불처럼 행동하셨을까? 당신이 눈에 보일 때나 안 보일 때나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하심을 그들 안에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승천하여 하늘나라에 가신 다음에도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다. 이 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자식이 어느 정도 자라 성년식을 치를 나이가 되면, 아버지는 자식을 훈련시키기 위해 달과 별이 뜨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골라 밀림 깊숙이 아들을 데리고 간다. 밀림 한가운데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칼 한 자루만 주고는 동네로 돌아온다. 아들은 밀림 속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한다.
맹수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게 된다.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두려움에 떨면서 뜬눈으로 긴긴 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한밤을 보내다가 새벽녘 주위가 분간되는 시간이 오면,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 그의 아버지가 완전무장을 하고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아이는 스스로 다음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하! 나는 혼자서 밀림의 무서운 밤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나의 아버지가 내 옆에 함께 계셔주셨구나. 밤새 나를 돌보아 주었구나.’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아이는 이후 어디를 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록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자기를 지켜봐 주었던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사도들 앞에 반딧불처럼 잠시 나타나셨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잠시 나타나셨다가 사라진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을 통해서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제자들의 눈에 예수님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보아 준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사도 1,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만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내리신 다음 승천하신다. 흔히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는데 구름이 그분을 감쌌을 뿐이다. 여기서 구름은 운송수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과 영광을 드러낸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갔을 때 산 정상이 구름에 감싸였듯이 구름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감쌌던 것이다. 곧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이 예수님을 감쌌다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는가? 다른 말로 하면, 왜 예수님은 공적 차원에서 승천하셨는가? 승천은 예수님의 위대한 공생활을 마무리하는 장엄한 순간이면서 교회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다. 이렇게 중요한 전환점은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고 나면 그때부터는 제자들이 교회 시대를 이끌어 가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가끔씩 나타나다가 점점 그 발현 횟수가 줄어들더니 언젠가부터 전혀 나타나지 않는 식으로 끝나는 것은 매끄럽지 못한다. 특정한 시간은 서서히 사라져갈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끝나야 한다. 만일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퇴장하지 않으면 제자들은 모든 촉각과 관심을 기울여 이제나저제나 주님이 다시 나타나실지 두리번거릴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공식적인 떠남의 예식을 가지면서 재림 전까지는 오지 않으실 것임을 확실히 해준 것이다.
예수님이 공적으로 승천하신 또 다른 이유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장 11절을 보면 천사들이 하늘을 바라다보는 사도들 앞에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저 예수”다. 예수님 앞에 ‘저’라는 단어 붙어 있다. 지금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에 씨여 하늘로 올라가시고, 그래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분이 저 예수님이시다. ‘저 예수’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연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은 지금 하늘을 보고 있다.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지금 그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점점 그 모습이 작아지더니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제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지금은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고 믿는다. 여기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3년을 동고동락하시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역사적 예수이시다. 한편 더 이상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은 신앙의 그리스도이시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승천 사건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이다.
이제 승천 사건이 주는 중요한 의미 두 가지를 보자.
첫째, 예수님은 이제는 승천할 때가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여러 번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면서 당신이 확실히 살아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셨다. 그 결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주님이 부활에 대한 사도들의 확신은 매우 중요하다.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선포가 복음 선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의 시대가 끝나고 교회 시대가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야 비로소 교회 시대가 시작될 수 있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야 비로소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수 있다. 교회 시대에 제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만방에 나아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구원계획이다.
흰옷을 입은 두 천사의 메시지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사도들을 향한 천사의 말은 부드럽지만 책망을 담고 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셔야만 하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떠남을 안타까워하고 있기에 이를 책망하는 것이요, 그들은 이제부터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세상에 나아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이를 책망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갖고 있던 위기 상황,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지연과 관련되어 생겨난 위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예수님은 생전에 당신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마르 9,1)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초대교회 사도들은 자기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볼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살아서 재림을 보리라 기대했던 사도들은 하나둘 죽어갔다. 그리고 루카가 사도행전을 쓸 당시 6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60년 동안 주님께서 재림하지 않았기에 사도들은 재림과 관련해 두 가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하나는 정말로 조금만 있으면 주님께서 재림할 것이라고 믿는 태도였고, 다른 하나는 주님이 더 이상 재림하지 않을 것이란 태도였다. 정말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고, 더 이상 주님은 재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천사들은 이 두 가지 태도를 다 꾸짖고 있다.
우선 하늘만 바라보는 사도들을 향해서는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며 꾸짖는다. 사도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장소는 하늘이 아니라 땅이다. 지금은 교회 시대이다. 그러니 제자들은 두 다리를 땅 위에 버티고 땀 흘려 수고하는 증인들이 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천사들은 주님의 재림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땅만 쳐다보는 사도들을 향해서 꾸짖는다. 그들을 향해서는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주님의 재림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나 그날은 분명코 올 것이니 깨어 기다려야 하나다는 점을 상기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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