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19세기 성서학자인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빵 증식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기보다는 영적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라 보았습니다. 초대교회가 신자들에게 사랑의 기적을 알려 주기 위해서 창작한 것이라 보았던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음식을 갖고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음식을 갖고 온 이들은 기회가 오면 무리에서 벗어나 자기 혼자 먹으려는 심산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진한 한 소년이 자기의 도시락으로 갖고 온 보리빵 다섯 개와 조그만 생선 두 마리를 예수님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무리들 앞에 들어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음식은 모두 이것뿐이니 이것을 가지고 나누어 먹읍시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보면서 군중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움직였고, 자기가 갖고 온 음식을 풀어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누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이가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금세기 놀란(Albert Nolan) 같은 학자는 슈트라우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 빵 다섯 개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인 기적에서 정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기적이던 무리가 이타적인 존재로 바뀌면서 사랑과 연대감을 갖게 된 기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가능한 한 이성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빵 다섯 개를 갖고서 수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였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됩니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기에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기적 사건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학자들의 가설은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의 반응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 능력을 목격하고는 예수께 달려들어 강제로라도 왕으로 삼으려했습니다(요한 6,15 참조). 만일 이들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실제적인 빵 증식의 기적이 없었다면, 곧 군중이 자기들이 갖고 온 음식을 서로 나눠먹는 사랑의 기적만 있었다면, 군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겠다고 달려드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빵 다섯 개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인 기적은 창작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있었던 사건입니다. 모든 복음서가 이 기적을 보도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성을 중시하는 이들 중에는 예수님의 기적이나 놀라운 사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성서를 공부한다면 성서는 단 두 가지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의 앞과 뒤 곧 표지만 남을 것입니다.
●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