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그리고 화해의 원리.
참된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쌍방간에 올바른
절차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범한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기를 요구한다.
가해자는 이 요구 앞에서
진심으로 통회하고 잘 못에 대해
진지하게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피해자는 가해자를
진심으로 용서해 주게 되는 것이다.
참된 화해의 반대는 거짓 화해이다.
거짓 화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을
객관화 시키지 않으면서 최소화시키거나
덮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도 상처받은 관계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거짓 화해를 했던 체험이 있을 것이다.
“지나간 일인데 없었던 걸로 해요”
또는 “그냥 이제부터 잘 지냅시다.”
또는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이런 식으로 잘못을 최소화시키면서
화해를 했다고 생각하면!
석연치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마음 한군데 남아 있어 괴로운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러한 거짓 화해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형들의 죄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덮어버리지 않는다.
요셉은 “형님들이 나를 이집트로
팔아 넘겼지요”하고,
그들의 범죄를 객관화시킨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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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화해와 우리처지.
요셉과 형들의 화해장면을 대하면서
기쁘기 보다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요셉을 본 받고 싶어서 지금까지
그의 생애를 공부해 왔는데 실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요셉처럼 화해의 삶을 살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첫째, 요셉은 깨어진 형제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창조적으로 이용했는데,
그러한 권력과 지위도 없는 나 같은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화해를 주도해 갈 수 있단 말인가?
둘째,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도 않고 있는데다가, 알고 있다 해도 용서를 청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데, 나같이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어떻게 요셉처럼 화해를 주도해 간단 말인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한 마디 하자면,
화해는 무엇보다 관계회복이 주 목적이다.
그러나 용서는
화해와 다르기 때문에 관계회복이 아니다.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화해할 수는 없다.
화해는 쌍방향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이다.
언제까지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원망하면서
온갖 독소를 가슴에 품고 살 수는 없다.
상호간의 관계회복이 어려울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용서이다.
내 편에서 상대를 용서하고
내적 평화를 찾는 것이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용서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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