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그리고 체험!
우리가 요셉의 생애를 읽을 때
하느님이 단 한 번도 요셉 앞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꿈에서
하느님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씨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셉은 전혀 그러한 체험이 없었다.
아버지 야곱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위기의 순간에 늘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했지만,
요셉은 낯선 타지에서 노예 살이 할 때도,
강간미수 혐의로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죄수가 되었을 때에도, 하느님의 계시는 없었다.
하지만 요셉은 하느님이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열일곱에 꾸었던 두 번의 꿈과 그 꿈을
보여주신 하느님의 돌보심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자신의 힘든 인생을
비참하게만 보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다.
요셉이 자신의 위대한 꿈이 어떤 식으로
실현될지 전혀 몰랐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완성될지 전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우리도 요셉처럼
하느님이 늘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비참한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믿으면서
어떤 역경과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의 꿈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 모 신부.
============================
야곱이 왜 더 힘들게 살았을까?
야곱이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요셉만큼 힘겹게 산 것은 아니다.
비록 야곱이 유랑 생활을 했지만
요셉처럼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지는 않았다.
비록 야곱이 14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이용당했지만 자유인의 신분이었고 옆에는 사랑하는
여인 라헬이 있었다.
반면 요셉은 종의 신분인데다가
줄기차게 괴롭히는 주인 마님이 있었다.
나아가 요셉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야곱은 요셉보다 더 힘든 삶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야곱이 더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야곱의 집념과
요셉의 순종 때문이다.
야곱은 집념이 컸던 만큼
하느님께 항복하기가 어려웠다.
야곱은 하느님 섭리에 의탁하기보다는
자기 힘으로 축복을 움켜쥐려고 애쓰느라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매사 자기편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늘 계획과 계략으로 채워졌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모 신부.
=========================
요셉의 신앙심.
요셉은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는 이야기나, 행위를 할 때에도
반드시 ‘하느님’이 중심이었다.
첫째, 감옥에 갇혔던 파라오의 두 시종장의
꿈을 해몽할 때,
요셉은 “꿈을 푸는 것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했다.
둘째, 파라오가 요셉에게 해몽을 부탁하자
“저에게 무슨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폐하께 복된 말씀을 일러주실 이는
하느님뿐 이십니다.”(41,16)
셋째, 형들에게 자기정체를 밝히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고
나를 형님보다 앞서 이곳 이집트로
보낸 것입니다.”(45,5)
넷째, 파라오가 그를 총리로 임명했을 때도
요셉은 “하느님께서 나를......이집트 전국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45,9)
라고 말하였다.
다섯째,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가리키면서
“얘들이 누구냐?”고 묻자,
요셉은 “얘들은 하느님께서 이곳에서
저에게 주신 제 아들들입니다.”
라고 대답한다.(48,8-9)
여섯째, 죽음의 자리에서 유언을 하면서도
요셉은 오직 하느님뿐이었다.
“나는 이제 죽을 터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어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에게 주시마고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세 하실 것이다.”(50,24)
그는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신앙인답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가 이집트 재상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신앙의 인간 요셉-
송 봉모 신부.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송봉모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기 어려운 말도 해야 - 송봉모신부님 (0) | 2009.06.21 |
---|---|
하느님의 침묵 - 송봉모신부님 (0) | 2009.06.20 |
언제나 그리움을 쫓아서! - 송봉모신부님 (0) | 2009.06.12 |
영적 즐거움은 - 송봉모 신부님 (0) | 2009.06.09 |
오병이어 - 송봉모 신부님 (0) | 2009.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