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내 작은 고통이 뭐라고, 이런 후한 값을 쳐주십니까? - 5월 17일

김레지나 2008. 8. 31. 18:27

내 작은 고통이 뭐라고 이런 후한 값을 쳐주십니까?

 

5월 17일 수요일

 

 

강마리아님의 동생인 강주사님한테 전화를 했다.

내가 물었다.

“언니는 어때요?”

“선생님 덕분에 많이 좋아지셨어. 의사 선생님이 임종 준비를 하라고 해서, 소영이는 전화도 안 받고 울기만 하고, 언니는 만나는 형제들 보고 죽는 게 두렵다고 하셔. 죽는 게 너무 두렵대. 언니 그러는 거 보니까 나도 성당에 다녀야겠어. 성당 다니면 죽을 때 안 무서울까?”

(나는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다. 죽기까지의 육체적인 고통이 두려울 뿐이다. 나에게 죽음이 주는 가장 큰 두려움은 어린 아들들과 헤어지는 것이었다. 또 행여 내 잘못을 다 뉘우치지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글쎄요. 그 상황이 안 되어 봐서 모르겠어요. 죽기 전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요?”

“언니가 선생님 참 좋은 사람이라고 그러대. 우연히 자기 병실에 들어와서 좋은 말 많이 해주고 갔다고. 자기가 복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래. 정말 고마워. 마음 써줘서 고마워.”

“언니는 지금 전화 못 받으셔요?”

“응, 힘이 없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와.”

“제가 좋은 게 아니라 하느님이 좋으신 거예요. 오늘 저녁에 병원에 가서 꼭 얘기해 드리세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을 꼭 믿으라고요. 제가 준 기도문 꼭 읽어 드리구요. 기도해 드린다고 전해주세요.”

 

5월 18일 목요일

강주사님이 전화했다.

“선생님. 어제 신부님이 오셔서 병자성사를 주고 가셨는데 그 후로 언니가 너무 좋아졌어. 성당 사람들이 와서 기도해 주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었나 봐. 성사를 받고 나서 언니가 마음이 너무 편한지 웃기도 하고 유행가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거야. 그동안 언니가 죽는 게 너무 무섭다고 울어서, 우리들이 마음 아파서 찾아가기도 힘들었거든. 근데 어제는 밤 12시까지 웃고 얘기하다가 다들 웃으면서 헤어졌어. 언니 때문에 마음이 아파 잠도 못 잤었는데, 어제는 오랜만에 푹 잤어. 언니한테 죽은 후에 화장을 원하는지도 물어보고 의논했어. 언니가 자기 영정사진 쓸 것 미리 확대해서 보여 달라고 해. 자기 뒷일을 다 알고 가고 싶다고. 일곡 장례식장에서 장례 치르기로 했어. 내일은 우리 형제들 빠짐없이 다 모여서 계모임 하듯이 얘기하자고 했어. 선생님. 너무 고마워. 언니가 그러대. 김선생님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가 기침하고 가래 뱉고 하면 싫어할까봐 처음에 짜증을 냈었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기쁜 소식이네요. 임종하기 전에 가족들 다 모여서 그동안 잘 못해준 것들 사과하고, 용서하고, 그리고 나서 가족들 사랑 속에서 죽는 게 가장 좋은 거래요. 가장 좋은 은총을 받은 거예요. 다행이에요.”

 

“선생님, 고마워.”

“저 크게 한 일은 없는데요.”

“언니 그러는 거 보고 형제들이 다 성당 다니기로 했어. 어제.”

“와. 좋아라. 형제가 몇 명인데요?”

“우리 8남매야.”

“그럼 부부가 다 다니게 되면 열 여섯 명이네. (야호)”

“어제 형제들 모여서 언니한테 그랬어. 언니 죽으면서 우리한테 좋은 일 하고 가는 거라고. 남은 형제들이 늦기 전에 신앙을 갖게 되었으니까. 언니한테 일어나는 일을 보니까 너무 신기한 거야. 사람들은 들어도 잘 모를 거야. 그런 걸 가까이서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럼요. 자기들 살기 바빠서 신앙 가질 맘을 못 먹지요. 또 내가 암환자가 아니었다면 좋은 말을 해 드렸어도 언니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고통을 받아 본 사람이 고통을 위로할 수 있어요. 강주사님도 언니 돌아가시는 거 지켜본 후에는 그런 고통 겪는 사람들 보면 가만히 못 있고 도와주고 싶지 않겠어요?.”

“언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다고. 동생들이 돈 필요하다면 그냥 주고, 남들한테 항상 베풀고 살았어.”

“그러니까 좋은 데 가실 거예요.”

“다들 그렇게 얘기해 줬고, 언니도 그렇게 믿고 있어. 동생들이 그러대. 나 영세 받을 때 선생님한테 대모 서 달라고 하라고. 선생님도 건강해. 몸관리 잘 하고.”

“저 대녀들을 위해서 기도 잘 안하는데요. 호호. 대모 노릇 잘하려면 오래 살아야겠네요. 호호.”

 

 

완전한 치유는 죽음이라고 했다.

인생은 완전한 치유를 위한 여정이다.

이 세상에서 받는 고통에 대한 완전한 위로도 죽은 후에 얻을 수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전화를 끊고 나서 성모상을 보았다.

“아. 성모님! 그분을 위해서 빌어주셨군요. 예수님, 제 작은 고통이 뭐라고 이렇게 후한 값을 쳐 주십니까? 제 작은 수고가 뭐라고 제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십니까? 기도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증거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은 영광과 찬미를 받으세요. 예수님께 꿈이 있다면 인류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라지요. 제가 그 꿈을 위해 아주 작은 노력을 했다고 해서 이런 기쁨을 주십니까? 제 고통이 뭐라구요."

 

 

나는 엄청난 기쁨과 감사를 이기지 못해 침대에 엎드려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20분쯤 울고 난 후에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강주사님의 전화를 받기 전에 틀어 놓았던 음악소리에 맞추어 덩실 덩실 막춤을 추었다.

 

 

전임 학교에 놀러 가기 위해 변장?을 하려고 거울을 보았다. 처음으로 내 대머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 고통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면 대머리인 채로 오래 지낸다 해도 참 좋겠다고. 이 고통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얘기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오래 아파도 좋겠다고. 나는 정말로 행복한 암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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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더 일찍 준비하면 더 일찍 행복해진다.

 

 

00 카페 환우님들께. 그리고 사랑하는 회장님께

 

 

오늘 하루 저는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강마리아님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엄청난 일을 해 내는 데 제가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 기쁜 소식을 환우님들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카페에 들어 와서 회장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말기암이나 죽음을 기다리는 이야기는 게시판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올렸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글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가슴 아프고 우울한 이야기로 마음 상하고 싶지 않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회장님, 제 이야기는 우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록 늦었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승리한 사람에 대한 보고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글을 보는 누구나 ‘마지막 순간이 아닌 바로 지금부터'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저는 그 승리의 기쁨으로 인해 애초에 정해진 제 수명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환우들이 제일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고통과 죽음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고통을 본다고 해서 자신의 고통이 더해지지는 않습니다. 죽음을 외면한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보거든 오히려 위로를 받으십시오.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생 동안 복된 임종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등한시하다가 정작 필요한 준비를 못하고 일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제가 아프게 된 것이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임종을 지켜보게 된 것도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우 여러분!

강마리아님 가족들이 웃으면서 그랬답니다.

 

“언니는 좋은 일을 하고 가는 거야. 우리가 일찍부터 임종을 준비하고 하느님을 찾게 해 주었으니까”라구요.

강마리아님도 웃으셨다 합니다.

환우님들은 임종을 앞둔 가족과의 그런 평안한 대화가 인간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강마리아님의 이야기를 해서 환우님들께 죽음에 대한 불안을 드리고 싶은 게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은 반드시 있음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평생 동안 하느님을 찾지 않고 살았던 그분에게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평안을 주신 하느님께서 ‘지금’하느님께 의지하고 사랑을 구하는 우리에게는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두려움을 극복하면 지금의 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매이면 병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죽음을 바로 보는 일, 죽음을 더 일찍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음이 낫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지혜입니다.

 

마음이 나으면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주셨던 은총보다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분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제가 더 기쁘고 힘차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제가 기쁘게 살아야 할 의미를 찾았듯이 환우님들도 더욱 기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저는 이 이야기를 올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말기암의 고통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죽음에 대한 바로보기’가 없으면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제 고통을 통해 위로 받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제게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겁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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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니 참 좋다.

 

철학자 칸트가 죽으면서 한 말이에요.

“죽음에 이르니 참 좋다.“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모습이래요.

 

내 인생 최고의 목표는

주님이 주신 바톤 놓치지 않고

주님께 기쁨으로 달려가는 것이지요.

 

주님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부르는 날

기쁨으로 오라하시면

기쁨으로 달려가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