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따질 거예요.
5월 7일 월요일
강마리아님 병실에 갔다. 나는 아주 명랑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태도를 우울, 심각 모드에서 명랑모드로 바꾸기로 마음먹으니 힘이 났다.
‘맞아, 맞아. 원래 내 스따-일로 돌아가는 거야.’
소영씨는 장 보러 간다고 나갔다.
“제가 몸 좀 닦아 드릴까요?”하고 묻자, 강마리아님이 대답했다.
“아니요. 힘드신데 됐어요. 목욕을 못한 지가 벌써 두 달이 넘어가네요. 날마다 목욕 다니다가 이렇게 누워있으니 껍껍하고 죽겠어요.”
“목욕을 오래 안 하면 때도 안 생긴대요. 냄새도 하나도 안 나시는데요, 뭘”
“여기 수건에 물 좀 적셔다 주세요. 정신 나게 얼굴이라도 닦아야겠어요. 아픈 사람 시켜서 미안해요.”
“에구, 뭘요.”
나는 아프리카에서 굶주린 아이들처럼 뼈만 남은 강마리아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다.
침대 머리맡에 노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소영씨가 어버이 날이라고 써서 붙여 놓은 모양이었다.
“.....엄마, 엄마가 없으면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없어져. 나 하나도 힘 안 드니까, 엄마가 엄마를 놓지 않았으면 해. 사랑해......“
마리아님은 눈물을 흘리며 힘없는 소리로 겨우겨우 말씀하셨다.
“나 고생하는 것은 괜찮은데, 우리 딸이 너무 고생해요. 친구들하고 놀러 다닐 나이에 학교도 못 다니고 여기 갇혀서,,, 그래도 화 한번 안 내고 해주라는 대로 다 해줘요. 나 같으면 진작에 못한다고 나가 버렸을 텐데.. 항암치료하러 서울 다닐 때도 늘 같이 가주고, 내가 우리 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앞에서는 울지도 못하고, 이렇게 없을 때만 울어요. 어젯밤에는 자다가 침대 옆에 뭐가 붙었길래 봤더니 글쎄, 이 메모지를 붙여 놨어요. 이것 좀 보세요. 이것만 보면 눈물이 나서."
나도 같이 울다가 힘을 내어 말했다.
“어휴, 환자가 제일 힘들지, 간호하는 사람이 뭐가 힘들어요. 사람들이 안 아파봐서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옆에 사람이 더 고생이라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냉장고에 콩물이 있는데 좀 빼 주실래요?”
나는 냉장고에서 콩물을 꺼내서 떠 넣어 드리려고 했다.
“됐어요. 내가 떠먹을게요. 제 얼굴 밑에 딱 붙여서 놓아주세요.”
강00씨는 누운 채고 고개만 돌리고 몇 숟가락 떠먹다가 말했다.
“콩물 맛이 이상한데,,, 저 뭐 잘 못 먹으면 죽어요..큰 일 나요.”
“저 주사 때문에 예민해져서 맛이 분간이 안 되는데... 있다가 소0씨 오면 맛보라고 하지요. 냉장고에 다시 넣어놓을게요. 그만 드세요.”
내 친구인 강마리아님 주치의가 강마리아님에게는 더 이상 해 줄 처치가 없다고 했었다. 그리고 간호사와 강 주사님의 말도 생각났다. 언제 갑자기 위급해져서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했다. 강마리아님은 허벅지가 내 팔뚝보다도 가늘어졌을 정도로 눈에 띄게 말라가고 있었다.
‘모두들 곧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소영씨와 강마리아님는 아직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인가 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울면서 기도하면 안 되겠다. 즐겁게 해 드려야지.’
소영씨가 슈퍼에서 돌아 왔다. 마리아님이 말했다.
“수박 사 왔냐? 그 물이라도 시원하게 좀 마셔야겠다.”
나는 그래 봐야 수박물 몇 숟가락 못 드신다는 걸 알고 있다. 마음이 아팠다. 강마리아님이 나에게 수박 먹고 가라고 했다.
“아유, 소영씨가 그거 들고 오느라고 고생했는데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가 두고두고 드세요. 저는 엄마 집에 가서 먹을게요.”
5월 9일 화요일
강마리아님의 병실에 갔다. 강마리아님과 소영씨가 자고 있었다. 어젯밤도 제대로 못 잤는가 보다. 모처럼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냥 나왔다.
선이가 전화를 했다.
“어제까지 많이 아파서 그동안 전화를 못했다. 오늘은 내가 너랑 놀아주려고. 있다가 S신부님 만나기로 했다”
반가운 소리였다. S신부님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레지오 단원으로 만났다. 내가 학생회 활동 하느라고 거의 모든 주말을 성당에서 보낼 때 신학생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문학의 밤 연극 연출도 해 주시고 청년회 활동도 열심히 하셨다.
신부님이 점심 약속이 있으셔서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옛날 성당 친구 식이에게 전화해서 같이 밥 먹자고 했다. 식이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걔가 학생회 회장이었고, 나는 부회장이었다. 그 당시 본당 신부님이 어찌나 학생회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교리 선생님들 회의까지 우리들을 참석하게 하셨다. 지원도 팍팍 해주셨지만 할 일도 많았다. 식이랑은 대학도 같은 대학을 다녔고 결혼 전까지 간간이 만났었는데 십년 넘게 못 봤으니 어찌 변했나 궁금했다.
식이를 만나자 마자 망가진 내 모습은 생각지도 않고 식이에게 말했다.
“야, 니 무슨 살이 이렇게 쪘냐?”
“어젯밤에 술을 많이 먹었다. ”
“어이구, 그러냐? 평소에는 날씬한데 오늘만 술 땜에 부은 거냐 그럼?”
식이가 나한테 말했다.
“니도 좀 쪘다.”
“이건 다 아파서 찐 거야. 수술 전부터 하도 먹어대서. (그 전에는 괜찮았다고, 칫)
”.......... 야. 니 만난 김에 부탁 좀 하자. 어째 요즘 메일이 안 오드라. 오랫동안 메일 안 오면 진짜 불안하다. 얼마나 모아서 보내려나 싶어서. 제발 좀 나누어서 보내라. 읽기 힘들다.”
선이도 열을 내서 말했다.
“ 메일 좀 그 때 그때 보내. 모아서 보내지 말고. 글 좀 간단히 쓰고, 니 메일 받으면 용량부터 확인한다. 무서워서 못 열어 봐.”
나는 소리내서 웃었다.
“자주 보내면 미안하니까 그러지. 길면 두고두고 시간날 때 읽어보면 되잖아. 알았어. 지금까지 쓴 것들만 우선 보내줄게. 답장도 제대로 안 해 주면서.”
나는 어제의 효도관광 때문에 피곤해서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지만 옛 친구를 만나니 기분은 좋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다.
“식이 너, 나 위해서 기도 하냐, 안하냐.”
“말 안해 줘”
“머여? 니 하겠다고 할 때까지 차에서 못 내릴 줄 알아.”
식이를 직장으로 돌려보내고 신부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욕심이 많은가 보다. 기도를 해 달라고 갖가지 압력을 행사하니, 도대체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셀 수 없이 많다. 제대로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도해 주겠다고 한 사람이 수십 명은 되는 것 같다. 나를 위한 기도가 차고 넘치겠다. 그 덕에 내가 아주 기쁘게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 내가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나? ’
식이한테 기도 부탁한 것이 좀 미안해졌다.
기 도
하느님,
저를 위한 기도 많이 받으시지요?
아마도 이미 차고 넘치게 많을 걸요.
앞으로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모두 기도해주는 사람들에게 돌려주세요.
몇 갑절로 갚아주시면 더욱 좋구요.
저를 위해서 기도했다는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해서 답례 기도할 자신이 없어서
꾀를 부리는 거예요.
그것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충분히 잘 지내고 있으니까
저를 위한 기도는 기도해 준 사람들에게
몇 갑절로 갚아 주세요.
제가 앞으로는 따로 기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좀 덜했다. (히히) 앞으로도 친구들한테 나를 위한 기도를 맘 놓고 졸라야겠다. (설마 하느님이 나를 위한 기도를 다시 되돌아가게 부탁했다고 해서 내 일이 급한데도 돌려보내실 리가 없지. 나는 참 인심도 좋지. 실속도 잘 챙기지.^^*)
s신부님은 내가 기억하는 개구쟁이 모습 그대로였다. 옛날에 대하던 그대로 편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나를 위해서 두 시간도 넘게 좋은 얘기를 해주셨다.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말씀들인지 모른다.
s신부님이 고생한다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나는 강마리아님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저는요, 하늘나라에 가서 따질 거예요. 고통의 편차가 너무 크다고요. 너무 심하지 않냐고요.”
“고통을 주실 때는 이겨나갈 힘도 주시지. 고통 중에 있을 때 힘든 것이 뭘까? 누가 안 알아준다는 거 아닐까?.............. ”
(치, 알아준다고 해도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겨나갈 힘이 있어서 버티나? 싫어도 할 수 없으니까 견디는 거지.)
“좋아요. 좋아요. 그렇다고 해요.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알아주시겠지 하는 맘으로 버티잖아요? 근데 저랑 같은 병실에 신부님은 만나 본 적도 없고, 곧 죽을 것 같으니까 일반 신자한테 대세 받은 환자가 있단 말이에요. 그 사람은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게 없잖아요. 그 사람의 고통은 누가 알아주나요? 어떤 말을 해줘야 되지요? 그 환자가 자꾸“아이구, 하느님, 저 좀 그만 벌주세요.”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하느님이 벌주시는 게 아니에요”하고 말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 말을 못했거든요. 제가 무슨 일을 해 드릴 수 있을까요?”
“그 환자는 지금까지 종교가 없었을 뿐이지 신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 하느님을 믿는 마음이야 있겠지. 그럴 때는 그냥 ‘지켜보시는 예수님은 더 힘드실 거예요’라고 말해 줄 수밖에. 하느님 마음은 부모 마음하고 같다잖냐. 자식이 아프면 마음이 아파도 지켜볼 수밖에 없잖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지.”
“어머, 왜요? 왜 하느님이 아무 것도 못 해 줘요? 하느님이 왜 능력이 없어요? 그 환자도 기도하고, 저도 기도하고, 레지오 단원들도 기도하는데 이제껏 종교생활도 안 한 환자가 그 정도면 됐지. 얼마나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해요? 얼마나 더 해야 그 불쌍한 환자를 도와주신대요? (시간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환자를. 왜 하느님이 아무 것도 못 해 줘요?)”
나는 집에 돌아 와서 속이 상해서 울었다. 신부님이라고 하느님의 사랑이 구체적이고, 기도가 은총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왜 모르시겠는가? 환자가 임종과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
‘그럴 리가 없어. 하느님이 그럴 리가 없어. 부탁하면 웬만한 건 다 들어 주신다고. 고마운 하느님을 아무 것도 안 해 주시는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긴 싫어. 고마운 하느님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아무 것도 안 해주실 분이 아니야. 강마리아님은 시간이 없는데... 아무리 신앙생활을 안 했다고 하더라도, 이제라도 하느님을 찾고 있잖아. 뭔가를 보여 주셔야 한다고. 하느님이 얼마나 고마우신데. 나한테는 정말 잘 해 주셨는데. 평생을 신앙생활 안 했다고 해서 그 오랜 고통을 견딘 사람한테 아무 것도 안 해주실 리가 없어.’
5월 10일 수요일
선이랑 가톨릭 대학교에 계시는 조신부님을 만나러 갔다. 남평 드들강 풍경이 참으로 한가했다.
조신부님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신부님들은 늙지도 않으신가 보다.
조 신부님이 아주 맛있는 한방게장을 사 주셨다. 멋진 영성강의를 들었다.
“예수님이 언제 제일 힘드셨을 것 같니?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니까 그까짓 고통쯤은 예수님한테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하겠지. 예수님도 당신 때문에 구원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속으로는 웃으셨을 거야. 하지만 인간이셨기 때문에 고통도 인간처럼 온전히 느끼셨지. 예수님이 제일 힘들었을 때는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을 때와,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외치실 때래. 하느님과의 단절 상태까지 체험하신 거지. 예수님한테는 고통보다 하느님과 단절된 느낌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는 거지. 죄의 결과가 하느님과의 단절이야. 우리들이야 하느님과 멀어져도 그 단절된 상태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지만 하느님과 가까울수록 단절된 상태가 힘들겠지. 그러니 예수님이 하느님과의 단절을 겪는 것은 우리 인간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드셨을 거야. 우리들 죄의 결과까지 체험하고 돌아가신 거야.”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죽는 순간에 만약 하느님과 단절되어 있다면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사랑의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 미워하는 맘 때문에 얼마나 힘들겠는가? 강마리아님도 하느님이 자신을 내버려 둔다는 원망이 없어져야 할 텐데.)
신부님의 여러 말씀들 중에 하느님께 대한 고마움에 눈물나게 하는 말씀이 있었다.
“고통을 겪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그 고통을 몰라주는 것이 더 힘들지.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예수님은 다 아시지. 하지만 그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거야..... 그러면 더욱 고마워지지. '하느님, 제 작은 고통이 뭐라고 그 값을 이리 후하게 매겨주십니까'하고.........”
나는 신부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을 겨우 참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께 따질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마다 갖는 고통의 편차가 너무 크지 않냐고. 저보다 고통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예요? ”
나는 또 강00씨를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그만큼 연옥단련을 덜 받는대”
“엥? 진짜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연옥은 천국 대기발령 상태라면서요? 하느님이 웬만하면 다 천국 보내 주실 것 같은데 다 똑같이 들어간다면 고통 많이 받은 사람들이 억울하잖아요.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나는 신부님이 그냥 하시는 말씀인지 공인된 설이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죽어보기 전에 누가 장담하겠는가? 어쨌든 억울한 마음이 달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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