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짱!
5월 11일 목요일
병자성사를 신청했던 00동 성당에 전화를 했다. 연락해 준다더니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데 병원에 오겠다는 전화가 없었다. (환자 돌아가신 다음에 올 거여? 급해 죽겠구만.) 나는 사무장님에게 전화해서 왜 연락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바빠서 깜박 잊었단다. 기가 막혀서.
강마리아님에게 말했다.
“어? 여기 녹음기가 있었네요. 테이프 들으면 좋으세요?”
“예, 저녁에 틀어 놓고 자면 좋아요. 성당 다니는 동생이 사다 줬어요.”
“애걔. 로사리오기도, 환희의 신비하고 빛의 신비.. 이거 잠 오지 않아요? 똑같은 기도 말 나올 텐데..재미없어서 어떻게 들어요?”
묵주기도 하는 의미와 방법을 모르는 분이 즐겨 듣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평화방송에서 수녀님들 묵주기도 하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를 봤다. 꼼짝도 하지 않고 염경을 하신다. (나는 가장 편한 자세로 기도한다. 누워서 하거나 엎드려서 한다. 내 맘이다.키키) 나는 그런 방송을 보면 걱정이 된다. 누가 바쁜 시간에 그 재미없는 장면을 보겠는가. 차라리 기도방법을 반복해서 가르쳐 주든가 아니면 화면을 보면서 무엇을 묵상해야 하는지 자막처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신자들이 보면 성당 다니려면 재미없는 것?을 꾹 참아야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거 아닌가?
“좋은 성가도 있고 재밌는 테잎이 많은데 이걸 왜 들어요? (나보다 나으시네). 제가 다른 강의 테이프 사서 보내드릴게요. 그거 들어 보세요. 저도 아직 안 들어봤지만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동생한테 좀 재밌는 테이프 좀 사달라고 하세요.”
내가 집에 내려가더라도 병자성사도 받고 테잎도 들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 어제 한 신부님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세상에서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은 연옥단련을 덜 받는데요. 그 말 듣고 나니까 좀 덜 억울한 거 있죠? 저도 아직 애들이 어린데 지금 무슨 고생이냐고요. 그죠? 좀 덜 억울하시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강마리아님이 웃으며 대답하셨다.
“아니요. 나는 억울한 건 없는데. 지금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엥? 오랫동안 신앙생활한 나보다 나은 생각을.)
“저 오늘 내려가요. 저 내려가서 기도 많이 할게요. 강마리아님 앞에서는 눈물이 나와서 안 되겠어요. 안 보시는 데서 할게요.”
그랬더니 갑자기 강마리아님이 우시는 거다.
“(처음 몇 마디는 뭐라 하셨는데 잘 못 알아들었다.) 선생님이 기도를 해 주시고,, 내가 뭐라고, 오셔서 고생하시고. 고마운데 말도 못하고.......”
(나는 기도해 준 기억이 몇 번 없는데 누가 또 자주 오나? 의사선생님인가?)
“선생님이요? 누구요? ...저요?”
강마리아님이 끄덕끄덕하셨다. 한 번도 그분이 나를 불러 본 적이 없어서 '선생님'이 나를 말하는 건지 몰랐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에구, 뭘요. 괜히 분위기 심각하게 만들었나 싶어서 미안했는데요.”
강마리아님은 힘도 없으실 텐데 더욱 흐느껴 우셨다.
“아니에요. 저번에 용서의 기도 읽어 주실 때요. 제가 너무 반성을 많이 했어요. 그 때 일을 말도 못하고,,,,,, 그동안 하느님 원망하고 미워하고 했는데. 아 내가 잘못했구나. 주위 사람들도 다 미워했는데. 내가 그동안 잘못했구나. 어찌나 반성이 되던지. 내가 그동안 하느님한테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내가 진작에 하느님 찾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너무 늦었어요. 내 발로 성당에 가서 기도 한 번도 못 해보고, 제 소원이 기도 한번 성당 가서 해 보는 건데. 기도하는 방법도 모르고. 내가 하느님한테 너무 잘못했어요.”
나는 뜻밖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분이 하느님에게 잘못했다고 느끼다니, 정말 놀라웠다. 나도 제대로 못하는 용서를. 나도 아직 버리지 못하는 원망을.
( 아, 성모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분을 위해서 하느님께 간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용서의 기도 처음에 “주님을 용서합니다”부분부터 이분의 마음에 새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분이 마음으로 새겨듣는 줄 몰랐습니다. 기도문 한 번 읽어준다고 해서 이분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나을 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이분의 마음을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 역시 하느님은 아무 일도 못해 주는 분이 아닙다.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기도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르는 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그럴 분이 아니지요. 하느님이 그러실 리가 없지요. 아, 좋아라. 하느님. 짱! )
나는 하느님과 강마리아님에게 감격했지만 심술난 척하고 말했다.
“하느님이 왜 안 미워요? 저는 밉던데요."
(사실은 나도 안 미워한다. 금방 하느님 짱!이라고 기도했잖은가? 하지만 나는 그 분이 이 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과 화해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당 못 가시니까 기도해 줄 사람들이 오잖아요. 누운 채로 기도해도 성당 간 것과 같아요. 기도하는 방법은 따로 없어요. 그냥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은 후에는 사람한테 얘기하듯이 말씀하시면 돼요. 사람한테 말하는 것과 같아요. 욕을 해도 기도고(이건 내 맘대로 생각이다.), 칭찬을 해도 기도지요. 그냥 하느님한테 얘기하시면 그게 다 기도예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내 발로 성당 한 번 가 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런 마음이 들어서 참 다행이에요. 하느님을 아는 데 늦은 때는 없어요. 어제 엄마한테 들은 얘기인데, 아는 사람 한 분이 죽을 때까지 주위사람들 미워하다가 죽었대요. 어릴 때 결혼해서 고생고생해서 남편이 교수가 되도록 뒷바라지를 했고, 독서실 운영한다고 잠도 못 자고 고생했는데, 살만 하니 죽게 됐다고요. 나 죽으면 어떤 년이 호강할지, 나 억울해서 못 죽어, 나 억울해서 못 죽어,하면서 남편이 들어오면 꼬집어 뜯고 행패를 부렸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죽음 앞에 장사 있나요? 주위 사람들이 그만 하고 하느님을 알고 죽으라고 권했는데도 끝까지 못 죽는다고 억울해했대요. 억울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몸 아픈 것보다 더 괴로웠을 걸요. 그 사람 바보지요?”
강마리아님이 희미하게 웃으셨다.
“어제 왜 안 오셨어요? 선생님이 안 오셔서 기다렸어요. 안 오시길래 어디 아프신가 걱정했어요.”
“저 어제 00에 알고 지내던 신부님 만나러 갔었어요. 너무 피곤해서요.”
나는 피곤해도 참고 들릴 걸 하고 후회했다. 마음이 아팠다.
“오늘이나 내일 중에 신부님 오셔서 병자성사 주신다고 했으니까 그 때 꼭 한 가지 빌어 보세요. 저는요, 병자성사 받을 때 하느님한테 절대 제 곁을 떠나지 마시라고 빌었어요. 수술도 고통도 피할 수 없으면 다 받을 테니까 대신 절대로 떠나지나 마시라고요. 그랬더니 정말로 그 기도를 들어 주시데요. 마음이 좀 더 편하게 해 주라고 비시던가, 아니면 조금 덜 아프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아마 들어 주실 거예요.”
나는 수술 전 병자성사를 주신 신부님이 인간적인 위로 한마디 없이 울고 있는 나를 떠났던 것이 생각나서 덧붙였다.
“혹시 신부님이 바쁘셔서 성의 없이 휙 주고 가시더라도 섭섭해 하지 마세요. 저도 조금 섭섭하더라구요. 그래도 성사의 효력은 똑같아요. 오랜 신자였던 사람들도 병자성사 못 받는 사람 많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많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어떤 위로도 충분치 않다. 어떤 위로도 섭섭함이 남는다. 큰 고통을 안 겪어 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섭섭함이다.
“저 어제 '15기도'라는 책이 아빠 집에 많이 있어서 가져왔어요. 저도 옛날에 일 년 이상 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을 잊어버렸다가 어제 다시 읽어 봤죠. 소영씨한테 읽어달라고 하세요. 음, 이 기도는요. ‘예수님, 예수님이 당했던 그 고통을 잊지 말고 기억하셔서 저한테는 그 고통 덜어주세요.’하는 기도예요. 예수님이 우리보다 더 힘든 고통을 견디셨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고통 다 아시니까 우리를 좀 가엾게 생각해 달라는 거지요.” ( 맞는 말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내 맘대로 지어서 둘러대는 말이다. 하지만 그 기도의 은혜가 임종 시에 필요한 은혜라서 권했다.)
늘 선하게 웃는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왔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강마리아님이 말했다.
“선생님, 여기 소독 좀 제대로 해 주세요. 저 언제까지 살 것 같아요? 괜찮으니까 얘기해 주세요.”
의사선생님이 한참 대답을 못하다가
“제가 신인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렇지요. 너무 아프고 힘들고..... 선생님, 이 링겔 안 맞으면 더 빨리 죽을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도 않을 걸요. 그래도 가족들은 하루라도 더 사시기를 원할 걸요.”
“아니에요.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서.”
소영씨도 울고, 나도 울었다.
의사선생님이 한 동안 머뭇거리다가
“어디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병실을 나갔다.
나는 한참을 더 얘기하다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저 이제 갈게요. 소영씨도 밥 잘 챙겨 먹어서 엄마 걱정시키지 마세요. 테이프 들어보시구요.”
강마리아님이 고개를 벽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나가는 모습 안 볼게요. 잘 가세요.”
(울고 계신가 보다. 내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저렇게 고마워하실까. 나를 귀찮게 생각하지 않은 것만도 고마운데.)
강마리아님에 대한 연민과,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 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과, 더 잘 해 주지 못한 후회가 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누가 그랬던가. 완전한 치유는 죽음이라고.
사랑하면 알리라.
언제나 나는 물었다.
언제나 주께 물었다.
세상은 사랑 찾는데
왜 고통이 있냐고
오직 한 마디 내게 주었네.
마치 물음에 답하듯이
사랑하라. 알고 싶거든
빛이 솟음을 너 보리라.
사랑하라 말해주네
사랑을 하면 알리라
사랑하라. 슬픔 가고
기쁨을 찾으리.
Liebe! und du verstehst das Leid.
Liebe! dann findest du die Freud.
Liebe! Und du bist endlich frei
und dein Leben wird neu.
사랑하세요. 그러면 당신은 고통을 이해할 거예요.
사랑하세요. 그때 당신은 기쁨을 알게 될 거예요.
사랑하세요. 당신은 마침내 자유로워질 거예요.
당신의 삶이 새로워질 거예요. ( 젠 성가 )
'신앙 고백 > 투병일기-2006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작은 고통이 뭐라고, 이런 후한 값을 쳐주십니까? - 5월 17일 (0) | 2008.08.31 |
---|---|
기도하는 자세 - 2006년 5월 (0) | 2008.08.31 |
하느님께 따질 거예요. - 5월 9일~10일 (0) | 2008.08.31 |
목숨을 건 효도 관광 - 5월 8일 (0) | 2008.08.31 |
사랑스런 아들들아. - 5월 7일 (0) | 2008.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