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목숨을 건 효도 관광 - 5월 8일

김레지나 2008. 8. 31. 17:17

목숨을 건 효도관광

 

 

5월 8일 화요일 맑음

 

엄마가 요 몇 년 간 무등산 산장의 철쭉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가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날씨도 좋으니 가보자고 하셨다. 나는 밀린 일기를 쓰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가 워낙 산을 좋아하셔서 같이 가기로 했다.

아빠 차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서 원효사까지 갔다. 어떤 차가 앞지르기를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아빠 운전은 영 불안해서 목숨을 걸고 타야 된다. 하지만 암수술로 간이 커진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앞으로는 버스 타고 다니시고 아빠 운전 그만 두게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원효사에 주차를 하고 엄마랑 나는 크게 난 산길로 바람재를 향해 갔다. 아빠가 한참 후에야 따라 오시더니 차가 열쇠를 빼도 시동이 걸려 있고 엑셀을 밟아야 시동이 꺼졌다고 하셨다.

‘참 듣도 보도 못 한 증상이군. 정말로 내가 엄마 아빠랑 나들이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까’

나는 아빠 차를 타고 내려가면 안 되겠다고 걱정이 되었지만 나중에 산을 내려 갈 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 전에 가끔 왔던 곳이라 추억에 젖어서 산을 올랐다. 엄마는 여기도 좋다, 저기도 좋다고 하시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여기나 저기나 다 비슷 비슷한데, 엄마는 다 다르게 느끼셨나 보다.

“레지나야, 저기 색깔 봐라. 얼마나 예쁘냐? 다 다르지?”

(‘내 눈에는 연초록 나뭇잎과 빨간 철쭉, 두 가지 색만 보이는데 색을 느끼는 능력도 감수성에 따라 다른가?’나는 그저 멋진 경치를 보면 ‘멋지다’ 예쁜 꽃을 보면‘예쁘다’라는 표현 말고는 어떤 문학적인 상상도 떠오르지 않는다.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들과 나는 아마 ‘종’이 다른 것 같다.)

 

 

엄마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 나는 핸드폰으로 찍힌 사진을 보면서 경치보다는 금방 파마해서 딱 달라붙은 흉한 엄마 머리모습만 신경이 쓰였다. 엄마는 그런 건 관심이 없으신가 보다. 연신 “와, 멋있다. 이 배경 좀 봐라”라고 하셨다. 엄마랑 나도 ‘종’이 다른 것 같다.

 

 

‘걸어다니는 식물학 사전‘이신 아빠는 이 꽃은 자금화이고, 저건 토토리 열매고, ....설명을 해 주셨다.

“레지나야, 저기만큼 가면 정말 예쁜 꽃이 있다. 고추나무 꽃인데 꽃잎이 고추잎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그러시더니 꽃이 가까워지자 잰 걸음으로 꽃 가까이에 가서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셨다.

“이것 봐라, 예쁘지? 나는 이 꽃이 정말 예쁘더라. 방울 모양이라 정말 예뻐.”

(엥? 그냥 하얀 꽃이구만, 뭐가 그리 예쁘다고)

나는 웃기만 하고 아무 대꾸도 안 했다. 아빠가 식물을 가르쳐 주실 때는 “어머, 진짜.”하면서 반갑게 대꾸하면 큰 일 난다. 꼼짝 없이 그 식물 앞에 서서 식물사전 한 페이지 분량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바람재를 지나서 토끼봉, 너덜겅 약수터까지 갔다. 나무에서 한참 쐐기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쐐기들을 피해서 걸었지만 내 모자에도 붙고, 엄마 목 뒤에도 들어갔다.

“왜 하필 쐐기가 내려 올 때 산에 왔지?”

내가 투덜거리자 엄마는 “이렇게 좋은데 쐐기가 문제냐?”고 하셨다.

“(하여간 엄마 아빠랑 나는 ‘종’이 달라) 그럼, 쐐기가 문제지. 내 수술한 팔이라도 쏘이면 큰일나지.”

나는 쐐기 때문에 몇 번 비명을 질렀고, 엄마가 내 뒤에 따라 오시면서 쐐기를 감독하셨다.

 

산을 내려오면서 엄마는 나에게 심호흡을 시켰다.

“어떠냐? 좋지? 공기도 좋지? 너 오늘 보약 한 재 먹은 거다. 보약 한 재 뿐이냐? 여러 재 먹은 거나 같다. 근데, 웬 일이냐? 산에 가자고 하면 잘 안 따라나서더니?”

“몰라서 물으세요? 어버이날 기념 효도여행이지요. 에이구 정말 다리가 아파 죽겠구만. 여러 가지로 목숨도 걸어야 하고.”

아빠가 어이가 없으신지 크게 웃으셨다.

“야, 우리가 너 좋으라고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니가 우리한테 효도하려고 따라 나섰구나?”

(오랜만에 아빠가 크게 웃으시니 기분이 좋았다. 웃으시는 걸 보니 효도여행 맞네. 뭘.)

“당연하지.. 효도 여행이지 그럼 뭐겠어요?”

 

 

엄마가 노래를 부르셨다. 엄마는 음치에 가까우신지라 음이 틀릴까봐 불안불안 했는데 이번에는 신통하게도 정확히 부르셨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 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내 놀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려.”

나도‘무등산아, 오랜만이다. 언제 다시 오겠니?’생각하며 따라 불렀다.

 

산을 내려오려고 아빠가 자동차 시동을 거셨다. 급발진이라도 하나 싶어서 걱정을 했다. 이상하게도 시동을 끄고 열쇠를 뺐는데도 엔진이 돌아갔다. 그렇다고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은 것을 아니었다. 브레이크도 잘 들었다. 나는 혹시 모르는 사고를 불안해하며 목숨을 걸고 아빠차를 탔다. 엄마는 차에 대해서 모르시니 '무식이 용감하다'고 걱정도 안 하시는 것 같았다. 안전벨트를 꽉 메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아빠는 담양댐으로 돌아서 드라이브하자고 하셨다. (고장난 차로? 아무튼 무모하시다니까.)

 

 

저녁을 사 먹기로 했다. 나는 촌닭이나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창평 장터의 국밥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촌닭하는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아빠가 닭 드시고 식중독이 걸리신 뒤로는 닭을 안 좋아하신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 양보를 하기로 했다.

 

 

창평에서 국밥을 먹었다. 수육도 한 접시 시켰는데 그 맛이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그래도 맛있는 척하고 많이 먹었다.

“어때요?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오늘 하루 풀코스 관광이네요. 효도관광이 되려면 식사 값도 제가 내야 되지만. 저 오늘 돈 없어요. 아빠가 내세요. 저는 따라 나온 것만 해도 효도라구요.”

“맞다. 오늘 일기에다 니가 효도관광 시켜 줬다고 쓸란다.”

아빠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나도 친구들한테 효도관광 다녀왔다고 자랑해야지”엄마가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와서 어찌나 피곤한지 바로 잤다. 밤에 가요무대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엄마는 가요무대 팬이시다. 덕분에 나도 옛날 노래를 거의 다 안다.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른 박재란씨가 나와서 귀에 익숙한 노래들을 불렀다. 박재란씨의 딸 박성신이라는 가수도 나왔다. 박재란씨가 “얘가 내가 한참 바쁠 때 달을 못 채우고 여덟 달 반 만에 나왔어요. 그래서 지금도 아무리 좋은 걸 먹여도 살이 안 쪄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딸이 키 크고, 예쁘고, 날씬하고 딱 보기 좋구만 눈물까지 보이신다냐? 엄마의 마음은 다 저런 건가 보다. 잘 키워 놓고도 더 못해 준 것이 마음이 아픈가 보다. )

 

 

자리에 들어서 부모의 마음을 생각했다. 눈물이 났다.

 

기 도

 

하느님,

저 학교 다닐 때 엄마가 잔소리 엄청 하셔서 많이 힘들 때

제가 하느님께 기도했잖아요.

엄마가 한 번만이라도 저 힘들게 하신 거 뉘우치게 해 달라고요.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저도 나이를 제법 먹으니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엄마, 아빠가 저에게 상처 준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 기억들이 하나도 괴롭지 않아요.

저는 더 많은 상처 드렸지요.

그러니, 하느님,

제가 옛날에 했던 기도 다 취소할게요.

부모는 자식한테 최선을 다 했어도 늘 미안해한다는데

잘못했던 기억을 돌이키면 얼마나 괴로우시겠어요.

행여, 하느님이 부모님께 회개하는 은총을 주실 때에는

자식들한테 잘못한 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게 해주세요.

기억 못해도 그냥 용서해 주세요.

옛날에 했던 기도 취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