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살아있는 천사, 헬레나 자매님 - 5월 11일

김레지나 2008. 8. 31. 17:05

5월 11일 금요일

 

살아있는 천사 유승선 헬레나님에게

 

  승선님, 산샘 카페에서 저에게 채팅 신청하셨을 때 제가 어찌 하는지 몰라서 헤매다가 그날은 그냥 못했었지요. 그 다음에 산샘 방문했다가 채팅했구요. 그날 승선님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지요. 나랑 동갑이라는 것, 남편이 시인이라는 것, 천주교 신자라는 것, 저보다 많이 아프다는 것, 아기가 없다는 것, 직장생활을 계속한다는 것, 가끔은 많이 힘들다는 것, 안수 받고 말기암 나은 사람을 봤는데 정말 부러웠다는 것,,,,,,,,,,

  그 뒤로 제가 메일을 보냈고, 며칠 전에 답장을 받았지요. 그동안 남편 시집 내느라 바빴다고, 제가 보내준 글이 고맙다고, 또 텔레비전에 승선님이 나오니 보라구요. 그 멜이 ‘찬미예수’라고 시작되어서 조금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어요. 저는 아직도 쑥스러워서 그런 표현이 쉽게 되지 않더라구요. 저는 남들 앞에서 성호 긋고 식사 전 기도도 잘 못하지요.

  오늘 텔레비전으로 승선님 보고 나서는 더욱 더 승선님의 ‘찬미 예수’라는 인사말이 놀랍게만 여겨져요. 제가 승선님의 상황이었다면 ‘찬미 예수’는커녕 ‘원수같은 예수님’이라고 해도 성이 차지 않았을 것 같아요. 텔레비전 보는 내내 많이 울었어요, 제 부족함을 많이 돌아봤구요. 제가 얼마나 가족들과 하느님께 응석받이인가를 절감했어요. 승선님의 모습은 제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희생적이고 아름다워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훌륭한 삶을 살고 계셔요. 존경스러워요. 하늘만큼 땅만큼.

  승선님과 남편분을 위해서 9일기도 할게요. 지금 하고 있는 9일기도가 얼마 후면 끝나니까 그 다음에 이어서 바로 할게요. 저 오늘도 기도의 힘을 실감했어요. 내용이 정리되면 산샘에도 올릴 작정이에요. 비록 기도 중에 엉뚱한 생각만 하다가 시간만 때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간절하게 해볼게요. 많이 많이 힘드시면 하느님께 따지세요. 김진아가 해 준 기도는 언제 써먹을 거냐구요. 그리고 승선님을 위해서 미사도 신청하고 모든 기도 중에 항상 생각할게요. 힘내세요.

 

  지금 승선님은 항암주사 맞고 있겠지요. 방송시간이 되어서 텔레비전 앞에서 기다렸는데 지방방송이 나오더라구요. 7시 40분이 되어서 이를 어째하고 쩔쩔 매다가 KBS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겨우 승선님과 남편 황원교님 이야기를 볼 수 있었어요. 내용을 간단히 메모했는데 방송 못 보신 환우님들을 위해서 대략 소개할께요.

(울다가 많이 못 적었어요. 환우님들, 시간 내셔서 KBS에서 다시보기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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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선님이 남편 발가락에 약을 발라준다.)

황원교님,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되어 모기가 물어서 피가 나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누워있는 지 올해로 18년째.

(자원봉사자 한 분과 황원교씨 아버님이 황원교씨 목욕을 도와준다.)

황원교님, 나이 48세, 키 180, 몸무게 80, 지금은 자원 봉사자가 와서 돕지만 그러기 전에는 목욕과 관장이 아내와 아버지의 일이었다.

황원교님: “....사람들에게 저 부족한 모습 보이는 게 자존심이 상해요, 사실은...”

황원교님은 29세 때 교통사고로 목 아래 부분을 못 쓰게 되었다. 그 후로 약혼녀에게 파혼 당하고 많이 힘들었다.

(황원교님 키타치는 사진, ROTC장교복 입은 사진)

황원교님: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저 잠잘 때 총으로 쏴 달라고 했어요, 목을 조르던지...”

 

유승선님이 황원교님을 만난 것은 성당 자원봉사자 모임에서였다.

(유승선님이 김치를 담고 있다.)

유승선님: “제가 결혼해서 잘 해낼 수 있을까, 7년간 준비하고 고민했어요. . ,,,,,,”

정작 유승선님이 황원교님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말린 사람은 황원교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내 자식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남의 자식 인생을 못 쓰게 할 수는 없었다. (유승선님)아버지 허락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부분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고, 상견례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식 사진-)

(유승선님이 유방암 3기로 많이 힘들다는 소개와 함께 묵주 잡고 잠을 청하는 모습)

황원교님:“아내 힘들 때 남편으로서 위로해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죠.”

(군인들이 황원교씨를 컴 앞에 앉힌다.)

황원교씨가 시집을 탈고하느라 근처 예비군 부대에 연락해서 도움을 청했다. 예비군들이 매일 아침에 황원교씨를 컴퓨터 앞에 앉혀 놓고 간다. 오래 누워있다가 앉으면 기립성 저혈압으로 어지럽다. 마우스 스틱을 물고 키보드를 쳐야한다. 세상과 단절된 그를 위해 아내가 컴퓨터를 가르쳐 주었다. 글을 쓰는 일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고 그가 살아있음의 증거다.

황원교씨:“ 글을 쓰는 것이 제게는 큰 위안이고 살아가야 할 이유지요...현실적인 괴로움을 잊을 수도 있고”

황원교씨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이다. 이번이 그의 두 번째 시집이다.

황원교씨: 나의 외로움, 괴로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통, 잊고 살았던 것들을 보여 주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들을 생각할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이 제가 살아가는 보람이죠.“

그는 시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한다.

(유승선님 병원 찾아가서 의사에게 빨갛게 부은 어깨 보인다.)

유승선님: “방사선 한 뒤로 어깨가 이렇게 됐어요. 항암을 이미 8번이나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앞으로 남은 3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 중이예요. ....제 수술한 모습이 너무 싫어서 목욕할 때 거울이 안 보이게 김이 잔뜩 서리게 해 놓은 후에 하기도 했어요...힘들다가도 집에 가서 남편을 보면 '아,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해요.”

유승선님은 힘들어도 쉴 형편이 못 된다. 남편을 수발해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한다.

(유승선님이 요리하고 상을 차려내서 남편을 먼저 먹이고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

유승선님:“이거 먹어봐, 뭐가 더 들어가야 하는 지 말해.......여기 000.. 들어갔어. 암에 좋다는 거 다 넣었지...”

(유승선님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떨어뜨린다.)

수술한 쪽 팔에 힘이 없어져서 힘들다.

(황원교님 아버지가 아들이 교통사고 당하기 전에 녹음한 노래 들어보라고 유승선님에게 테이프를 준다. 테잎을 잠깐 들었는데 테잎이 씹힌다.)

잘려진 테잎이 마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건강했던 젊은 날들인 것만 같다.

(아버지가 늦은 밤까지 테잎을 고친다.)

유승선님이 아프기 전에는 같이 잤는데 아프고 난 후부터는 각방을 쓴다.

(새벽 두 시, 황원교님의 손에 경련이 일어나서 유승선님을 부른다.)

유승선님은 하룻밤에도 몇 번씩 남편의 몸을 뒤집어 주어야하고 몸을 풀어주고 자세를 바꾸어 주느라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하룻밤만이라도 푹 자보는 것이 유승선님의 소원이다.

(황원교님이 컴퓨터로 시집을 탈고하여 메일로 보낸다.)

유승선님: “고생했다. 한 달 동안.”

유승선님은 남편이 힘든 작업 무사히 끝낸 것이 자랑스럽기만하다.

황원교님:“,.. 수험생이 된 기분입니다. 채점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구요,,, 좀 허탈하기도 하구요.....”

(승선님과 남편 외출 준비하고 미장원으로 간다. 남편도 머리를 자르고, 유승선님도 방사선 하는 중에 조금 자라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니 머리를 다시 밀려고,,)

(유채밭 나들이- 네 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긴장했을 아내를 위해 원교씨가 가자고 했다.)

황원교님: “항암치료 다 받고 나으면 이런 나들이도 자주 할 수 있겠지?”

유승선님: “의사선생님이 이제부터 마라톤의 시작이라고 했어.”

 

둘은 아름다운 부부라는 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