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화요일
새벽부터 서둘러서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하고, 내과진료를 보기 위해 몸무게를 쟀다. 웃옷을 하나 벗고 쟀는데도 몸이 또 불어 있었다. 기록하는 분한테 웃으면서 사정했다. 주사약 양이 몸무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 몸무게 조금만 빼 주시면 안 되나요?"
"500그램 뺐는데요. 더요?"
"몸무게 늘면 주사 양이 많아지잖아요"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느님이 나 살찌는 것도 책임져야 돼. 글 쓰다가 운동을 많이 못했으니까. 큰 일이네 정말.'
임선생님은 오늘도 근엄한 얼굴로 자상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이번에는 토하는 것 외에 다른 심한 증상은 없었다고 말씀 드렸다.
주사 맞은 후에 토할까봐 미리 밥을 간단히 사 먹었다. 두 시간 기다렸다가 주사실로 갔다. 간호사 한 분이 내 팔에서 혈관을 못 찾아서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주사약이 새면 살이 썩기 때문에 제대로 찔러야 한다. 다행히 팔에서 혈관을 찾아서 주사를 맞았다. 주사 맞는 동안 잤다.
기차역에서 밥을 한 번 더 사 먹었다. 다행히 울렁거리지 않았다. 친구인 내 담당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전에 하루 입원했던 신장암 말기 환자 강00씨 방에 입원하겠다고 했다. 내가 간호하는 딸을 조금이라도 쉬게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기도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남들이 아무도 원하지 않아 늘 비어 있는 특등실을 친구가 그냥 쓰게 해주었었다.
"아무도 그 환자 옆에는 안 있으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응, 그 방에 입원할래"
"알았어, 니 배려해 준다고 원무과 눈치도 보이고 하니 그 방에 입원해라, 그럼"
엄마 집에 짐을 풀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그 병실에 시골에서 근무할 때 행정실 직원이었던 강00주사님이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강00씨가 친언니라고 했다. 환자의 상태는 저번보다 더 안 좋았다. 온 몸이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 있었고 더 말라 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뭐하러 여기 입원하느냐고 짜증을 내셨다. "지금은 더 안 좋아져서 토하기도 하고 설사도 하는데, 여기 있어봐야 힘들기만 하지"
나는 멋적어져서 별 말을 못하고 있다가 "그래도 잠깐씩은 제가 봐 드릴 수도 있잖아요."라고 겨우 말했다. "거의 병실에 안 있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000주사님과 병실을 나와서 언니의 병와 내 병에 대해 한참 얘기했다. 000주사님과는 꽤 친하게 지냈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 학교에서 친했던 선생님들과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다.
5월 3일 수요일
강00씨는 감기가 들어서 가끔씩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분의 손을 잡고 소리 내지 않고 기도를 해 주었다. 7년간이나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싶어서 눈물이 났다.
"하느님, 긴 세월을 병과 싸우느라 지쳤을 것입니다. 입원하기 바로 전에 대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아직은 신앙심이 부족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하느님, 하느님께서 먼저 이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낫게하셔서 쓰시던지, 아니면 편안한 임종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분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나한테 치유의 은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성령세미나를 다시 받게 되면 뭘 받고 싶다고 할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적의 은사를 통해 하느님을 알게 하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나 몸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싶기도 하고, 심령기도를 해석하는 은사도 받고 싶고, 말씀의 은사를 받아서 하느님을 잘 알리고도 싶고,, 그러다가 문득 '어머, 내 정신 좀 봐. 내가 치유를 받아야 되는 환자라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네. 제일 급한 것은 내가 재발하지 않고 낫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처지도 잊을 만큼 마음이 편한가 보다. 그래, 다시 성령세미나를 받는다면 내 병이 치유되도록 기도한 후에 한두 가지 더 원해야겠다.' 나는 계획을 욕심껏 세웠다.
환자가 얼마 전에 영세한 본당인 00동 성당으로 전화를 했다. 사무장님께 강00씨를 위해서 병자성사를 신청했다.
저녁에 여수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늘 애들 운동회 갔다 왔어? 저녁 7시 반에 예비자 교리 시작하는 줄 알지? 형주, 정훈이 다 데리고 가서 얘기 듣고 와. 당신이 안 가면 나 내일부터 토할지도 몰라."
남편은 내 협박에 그러겠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어제 오늘 토하지도 않고 울렁거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려고 이빨을 닦다가 갑자기 토할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꿀꺽 삼키면서 여차하면 들어가서 토할 준비를 하고 화장실 문 앞에 선 채로 화살기도를 했다.
기 도
어허, 하느님
이러시기 없기.
금방 울렁거리지도 않는다고
9일 기도 덕일 거라고 광고했는데
별 것도 아닌 거 안 들어주기 없기.
당겨서 한 턱 쓰시라고 했더니
쫀쫀하게 굴지 않기.
토하지도 않고
울렁거리지도 않게
꼭 도와주시기.
그냥 이대로 잘 거니까
내일 아침에도
알아서 하시기.
이미 광고는 끝났으니.
번복하게 하지 마시기.
곧 울렁거리는 게 멎어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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