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김레지나 2008. 8. 31. 16:44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4월 28일 금요일

00대병원에서 애들 검사를 받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루카 3시간, 유지니오 3시간 검사받는 동안 기다리고 엄청난 양의 부모용 검사지를 작성하느라고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율리아 집으로 돌아와서 한 숨 잤다.

 

율리아가 성령세미나 교육 간다고 일찍 집에 돌아와서 같이 가자고 했다. 동생 본당에서는 마침 성령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내가 성령세미나를 받은 지 15년이 넘었으니 요즘에는 어떤 분위기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많이 피곤했는데도 유미를 따라나섰다.

 

봉사자들 모두가 하느님을 가슴으로 느끼고 만난 사람들일 것이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오늘 강사는 남자분이셨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말이 가슴으로 느껴지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방에서 춤을 추고 다녔다고 한다. 너무 좋아서 똘아이처럼 밖으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저요. 성당에 다니거든요. 하느님 아들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아주 행복하거든요"라고.

물론 사람들 반응은 제각각이었단다. 별 사람 다보겠다는 듯이 피하는 사람, 정말로 성당 다니면 행복해지느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 등등.

나는 안다. 그 기분은 맛 본 사람이 아니고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세상에 외치고 싶은 충동이 얼마나 큰지를.

나는 오래 웃었다.

'나하고 똑같네. 나도 완전 똘아이 짓을 하고 있는데. 미친 척하고 글 올리고.'

 

그 분이 계속 말씀하셨다.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엄청난 분량의 신학대전 12권을 쓰신 분입니다. 그분이 죽기 전에 꼭 하느님을 만나고 싶었답니다. 간절하게 기도를 했더니 어느날 하느님이 만나주셨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내가 쓴 신학대전은 모두 쓸모없다. 하느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구하고 하느님을 느낀다면 신학대전 안의 지식들이 모두 필요없게 된다. 하느님을 느끼는 체험으로 족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간절하게 하느님을 체험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스스로의 삶에 대체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간절하게 원하기가 쉽지 않다. 병자들이나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의 부족함 때문에 더욱 뜨겁게 하느님을 찾고 쉽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의가 끝나고 성령봉사자들이 성가를 불러주었다. 몇몇 사람들이 감동되었는지 흐느끼는 것이 보였다. 나도 많이 울었다.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주의 놀라운 사랑'이라는 가사가 들렸다.

울음이 격해져서 진정이 되지 않았다.

 

4월 29일 토요일

유지니오가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자주 가서 지겹다면서 가기 싫어하는 루카를 설득해서 같이 집을 나섰다. 유지니오는 물고기와 공룡을 너무 좋아해서 서울만 오면 아쿠아리움이나 공룡 탐험전에 가자고 한다. 촌에서 올라왔으니 서울 구경은 해야 할 것이고, 놀이동산보다는 덜 피곤할 것 같아서 열 번도 넘게 가 본 코엑스 아쿠아리움이지만 다시 가기로 했다. 코엑스에서 하는 밀랍인형 전시회에서 애들 사진을 찍어 주고 아쿠아리움에서 신나게 놀게 했다. 두 아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귀여운 놈들.

남편이 공기 좋지 않은 곳이라고 내 걱정을 했지만 간단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4월 30일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남편이 애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러 갔다. 내일 아빠가 집에 가시면 교대하고 다시 올라 올 것이다.

율리아가 미국에 있었을 때 치유의 성령세미나 받았던 얘기를 해 주었다. 안수를 받고서 아주 따뜻하고 편안하고 기쁜 느낌이었단다. 그래서 신부님께 너무 좋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지도 않고서 "제가 한 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만약 그 신부님이 나한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했다면 그 한 번의 기분만으로 영원히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감정이 들었었다고 한다. 

 

 

동생은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 하느라고 결혼을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했단다. 동생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잘난 것 다 필요 없고 그저 자기를 끝까지 사랑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우리나라로 돌아온 후에 정말로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건 없으나 자기만을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사람을 만났고, 하느님이 주신 짝이라 굳게 믿고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감사하게 산다고 했다.

 

 

동생이 친구 얘기도 해 주었다. 친구는 욕심이 많아서 신랑감 조건으로 80 가지의 항목을 수첩에 적어 놓고 그런 사람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단다. 결국은 그 조건들을 다 충족하는 짝을 만났다고 한다. 살다 보니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어서 결혼 전에 적어 두었던 수첩을 다시 보니 딱 그 점이 기도항목에서 빠져있었다고 한다.

 

 

율리아랑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맞아. 맞아. 하느님은 콕 집어서 부탁한 것만 들어주셔. 엉터리야. 엉터리. 그러니까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해야한다고, 니도 신랑감 조건으로 좀 더 많이 부탁해보지 그랬냐?"

"글쎄 말이야. 가끔은 더 바래볼 껄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일요일만 되면 밀린 잠만 자려고 하는 율리아를 달래서 아울렛에 갔다. 어버이날 선물로 엄마 티셔츠와 잠바를 사고 남동생 남방도 하나 샀다.

 

미사 갈 시간이 되어서 쇼핑을 다 못하고 성당에 갔다.

오늘 강론은 환경운동하시는 신부님께서 해 주셨다. 환경의 중요성을 아주 재밌게 말씀해주셨다.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일이다.

미사가 끝나고 율리아는 후원회원 신청서를 내고, 나는 아빠가 우리 집에 십자고상 하나도 없다고 나무라셨던 것이 생각나서 십자고상을 사기로 했다. 환경강론 해주신 신부님께서 사무실로 오셔서 몇 가지 물건들에 축성을 해 주시면서 "아니, 본당신부님 만나기가 어려운가? 왜 나한테 하루 종일 축성해 달라고 하지?"라고 하셨다.

'그럼, 본당 신부님이 저녁미사 뿐만 아니라 아침에도 미사 끝나고도 안 나와 계셨단 말인가? 진짜 어디 아프신가?'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또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했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부모님을 위해서 미사를 신청하기로 했다. 일흔이 되어서도 두 분은 가끔 다투신다.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전에 대전 동생이 왔을 때 우연히 친정집 책장에서 편지 한 묶음을 발견했었다. 내가 여섯 살이고 아빠가 일본에 계실 때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들이었다. 모윤숙의 '렌의 애가'가 무색할 만큼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문학적 향기가 물씬 나게 잘 쓰여 있었다. 동생과 올케와 나는 그 편지들을 읽고 훌륭한 문체에 감탄하고, 지금의 부모님 모습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내용이라 많이 놀랐다. 어쩌다가 그 후로 아웅다웅하시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미사신청 봉투에 두 분의 이름을 쓰고 지향란에 뭐라고 쓸까 유미와 한참을 의논했다. 화목? 화해? 몇 가지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율리아가 말했다.

"안 돼, 아주 구체적으로 써야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그러더니 '싸우시지 말게'라고 써 넣었다. 사무원 아가씨가 신청봉투를 받아서 읽어 보았다. 내가 율리아 옆구리를 툭툭치면서 말했다 "야, 지금 읽는다. 웃겠다. 웃어."

다행히 사무원 아가씨는 웃음을 잘 감추었다.

 

 

 

5월 1일 월요일

 

며칠 전에 대학 친구 태0가 보낸 메일내용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당신의 은총을 믿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

당신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확실한 것이 있어야만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하고 믿음이 약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나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당신을 믿었고

신앙의 시련 속에서도

당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으셨는데

저는

당신을 믿을 만한 깜짝 놀랄 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따를 수 있노라고

굳게 고백할 수 있는 확실한 징표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매일 제 곁에서 끊임없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제가 지금까지 억지를 부리고

장님 행세를 해왔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소리 없이 언제나 기적을 일으키고 계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표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임을

이제야 겨우 알아듣습니다.“

 

"월요일에 가는 성서 못자리에서 신부님이 시작 기도 대신 읽어주시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수업도 못 들을 뻔 했다. 그리고 네 생각도 하고, 요즈음 유난히 내 주위에서 삶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중략) 00에선 이 친구 저 친구 만나며 밥도 먹고 하느님을 증거해 주면서 왜 서울에 오면 날 안 만나 주는 거니? 치료 받으면 물론 힘들어서 그렇겠지만 치료 받기 전날 만나 맛있는 것 먹고 내가 병원에 따라 갈 수도 있는데. 매일 밤 9시에 묵주기도를 통해 너와 많은 이들의 고통에 대해 묵상하고 있단다. 힘을 내렴!!! "

 

 

재와 현이가 분당으로 오기로 했다. 재가 해로운 버터 대신 올리브유 넣고 우리밀로 구운 케이크를 만들어 가져왔다. 재가 인터넷으로 조사해 온 분당의 맛있는 식당들 중에 한 곳을 골라서 밥을 먹었다. 둘 다 내 표정이 너무 밝다고 기뻐해 주었다.

 

 

재가 "너 글 쓰는 거 시간 보내는 좋은 방법 아니냐?"라고 했다.

나는 속이 상해서 대답했다.

"야, 그런 거 아니야. 글 쓰는 거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아. 운동도 해야지, 운동을 못하니 살만 찌잖아. 애들도 봐야지, 영어공부도 해야지, 대학원 논문 준비도 해야지. 할 일이 태산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하느님을 전할 수 있을까 싶어서 서둘러 글 쓰는 거야. 분명히 목적이 있는 글인데 목적이 읽혀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신앙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신앙을 갖는 동기가 되고, 신앙이 있는 사람들도 더 믿음이 굳어지고, 성령의 은사를 받는 데 대한 갈망이 생기게 되기를 바라고, 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많단 말이야. 근데 아직까지 열심히 글을 써서 올려도 내 글을 읽고서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안 나타났단 말이야."

"다들 남의 이야기로만 느끼는 거지."

"맞아. 그러니까 환자들한테나 공감을 조금 줄 수 있을 뿐일 거야.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이지. 실감을 못하겠지. "

"얼마 전에 친구가 15기도라는 책을 주어서 해 보려고 했는데 예수님의 고통을 자세히 묘사해 놓은 기도문을 읽어도 그 고통이 정말로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구. 그저 예수님이니까 참을 수 있으셨겠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서 기도를 그만 두었어. 예수님 고통도 남의 일이라니까."

"재야, 여기 성당에서 성령세미나를 하는데 강의라도 들어보지 그러냐?"

"나는 아직 성령세미나라면 무서워서."

"그래? 하긴 성령의 은사 받는다고 해서 더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지. 그것이 신앙의 목적이 될 수도 없고.”

 

 

재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한 번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언제나 한결 같고 언제나 반듯하고 착한 친구다.

재가 성령세미나로 변화된 한 자매 얘기를 해 주었다.

"내가 아는 한 언니는 성격이 엄청 세서 남편한테도 잔소리를 심하게 하고 아들한테도 나무라기 시작하면 심하게 나무래. 그런데 성령안수를 받을 때 몸이 휘청하더래. 그러면서 자기가 막 잔소리를 심하게 퍼부어댈 때 고통스러워하는 남편과 아들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르더래. 그래서 남편한테도 자기가 그동안 잘못했다고 빌고 아들한테도 무릎 꿇고 "내가 너를 너무 힘들고 아프게 했다. 미안하다"라고 했대. 지금 그 언니는 얼마나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지 몰라."

 

 

현이는 대학교 다닐 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병원에 있을 때도 재랑 두 번이나 찾아 왔고 오늘도 바쁜 중에 나를 만나러 왔다. 엄청 큰 학원의 원장인데 큰 학원을 경영하게 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가난한 동네에서 천막치고 학생들 가르쳤던 일, 무료로 학생들 점심 해 먹인 일, 손수 전단지 돌린 일 등등. 인간시대나 성공시대에나 나올 만한 이야기였다.

"너는 불쌍한 애들 가르치고 먹인 공 때문에 지금 잘된 거야.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냐? 다 계산에 바쁘지. "

나는 친구들과 오래 수다를 떤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현아 다음에 니 성공시대 2탄 해 줘야 돼. 재야 내가 보낸 스팸 메일 읽느라고 고생한다. 운전 조심해."

 

 

제자 몇 명이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희 오늘 시험 끝났어요. 근데 왜 선생님 아직 학교 안 나오세요? "

"야, 선생님 1년 휴직했어. 니들 졸업할 때가지 못 가."

나는 애들 가르치던 때가 너무 그리워졌다. 애들이 보고 싶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야 할 텐데.

 

 

성체조배를 하러 갔다. 오랫동안 감실 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기도도 했다.

"아, 하느님, 제가 뭐라고 저를 사랑한다 하십니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부족하고 약하기만 한데 하느님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시다니,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성체조배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건들건들 거의 춤을 추다시피 걸었다. 기분이 엄청 좋았다.

 

 

 

5월 2일 화요일

새벽부터 서둘러서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하고, 내과진료를 보기 위해 몸무게를 쟀다. 웃옷을 하나 벗고 쟀는데도 몸이 또 불어 있었다. 기록하는 분한테 웃으면서 사정했다. 주사약 양이 몸무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 몸무게 조금만 빼 주시면 안 되나요?"

"500그램 뺐는데요. 더요?"

"몸무게 늘면 주사 양이 많아지잖아요"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느님이 나 살찌는 것도 책임져야 돼. 글 쓰다가 운동을 많이 못했으니까. 큰 일이네 정말.'  

 

 

임선생님은 오늘도 근엄한 얼굴로 자상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이번에는 토하는 것 외에 다른 심한 증상은 없었다고 말씀 드렸다.

주사 맞은 후에 토할까봐 미리 밥을 간단히 사 먹었다. 두 시간 기다렸다가 주사실로 갔다. 간호사 한 분이 내 팔에서 혈관을 못 찾아서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주사약이 새면 살이 썩기 때문에 제대로 찔러야 한다. 다행히 팔에서 혈관을 찾아서 주사를 맞았다. 주사 맞는 동안 잤다.

 

 

기차역에서 밥을 한 번 더 사 먹었다. 다행히 울렁거리지 않았다. 친구인 내 담당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전에 하루 입원했던 신장암 말기 환자 강마리아씨 방에 입원하겠다고 했다. 내가 간호하는 딸을 조금이라도 쉬게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기도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남들이 아무도 원하지 않아 늘 비어 있는 특등실을 친구가 그냥 쓰게 해주었었다.

"아무도 그 환자 옆에는 안 있으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응, 그 방에 입원할래"

"알았어, 니 배려해 준다고 원무과 눈치도 보이고 하니 그 방에 입원해라, 그럼." 

 

 

엄마 집에 짐을 풀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그 병실에 시골에서 근무할 때 행정실 직원이었던 강 주사님이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강마리아씨가 친언니라고 했다. 환자의 상태는 저번보다 더 안 좋았다. 온 몸이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 있었고 더 말라 있었다. 나를 보시더니 뭐하러 여기 입원하느냐고 짜증을 내셨다. "지금은 더 안 좋아져서 토하기도 하고 설사도 하는데, 여기 있어봐야 힘들기만 하지"

나는 멋쩍어져서 별 말을 못하고 있다가 "그래도 잠깐씩은 제가 봐 드릴 수도 있잖아요."라고 겨우 말했다. "거의 병실에 안 있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강 주사님과 병실을 나와서 언니의 병와 내 병에 대해 한참 얘기했다. 강 주사님과는 꽤 친하게 지냈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 학교에서 친했던 선생님들과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다.

 

 

5월 3일 수요일 

 

 

강마리아 씨는 감기가 들어서 가끔씩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분의 손을 잡고 소리 내지 않고 기도를 해 주었다. 7년간이나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싶어서 눈물이 났다.

"하느님, 긴 세월을 병과 싸우느라 지쳤을 것입니다. 입원하기 바로 전에 대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아직은 신앙심이 부족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하느님, 하느님께서 먼저 이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낫게 하셔서 쓰시던지, 아니면 편안한 임종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분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시오."

나한테 치유의 은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성령세미나를 다시 받게 되면 뭘 받고 싶다고 할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적의 은사를 통해 하느님을 알게 하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나 몸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싶기도 하고, 심령기도를 해석하는 은사도 받고 싶고, 말씀의 은사를 받아서 하느님을 잘 알리고도 싶고, 그러다가 문득 '어머, 내 정신 좀 봐. 내가 치유를 받아야 되는 환자라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네. 제일 급한 것은 내가 재발하지 않고 낫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처지도 잊을 만큼 마음이 편한가 보다. 그래, 다시 성령세미나를 받는다면 내 병이 치유되도록 기도한 후에 한두 가지 더 원해야겠다.' 나는 계획을 욕심껏 세웠다. 

 

 

환자가 얼마 전에 영세한 성당으로 전화를 했다. 사무장님께 강마리아씨를 위해서 병자성사를 신청했다. 

 

 

저녁에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늘 애들 운동회 갔다 왔어? 저녁 7시 반에 예비자 교리 시작하는 줄 알지? 루카랑 유지니오 다 데리고 가서 얘기 듣고 와. 당신이 안 가면 나 내일부터 토할지도 몰라."

남편은 내 협박에 그러겠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어제 오늘 토하지도 않고 울렁거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려고 이빨을 닦다가 갑자기 토할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꿀꺽 삼키면서 여차하면 들어가서 토할 준비를 하고 화장실 문 앞에 선 채로 화살기도를 했다.

 

 

기 도

 

어허, 하느님

이러시기 없기.

금방 울렁거리지도 않는다고

9일 기도 덕일 거라고 광고했는데

별 것도 아닌 거 안 들어주기 없기.

당겨서 한 턱 쓰시라고 했더니

쫀쫀하게 굴지 않기.

토하지도 않고

울렁거리지도 않게

꼭 도와주시기.

그냥 이대로 잘 거니까

내일 아침에도

알아서 하시기.

이미 광고는 끝났으니.

번복하게 하지 마시기.

 

 

 

곧 울렁거리는 게 멎어서 잤다.

 

 

 

 

2006년 5월 4일

 

아침에 진토제를 안 먹었는데도 멀쩡했다.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점심 때 병원 근처 성당 레지오 단원들이 강마리아씨를 위해서 기도해 주러 병실로 왔다. 덕분에 나까지 덤으로 기도를 받았다. 그분들이 이인복 교수님 강의가 00동 성당에서 있다면서 간다고 했다. 내가 "이인복 교수님이 누구예요?"라고 물었더니 한 분이 책을 가져다주겠다고 하셨다.

 

 

오후가 되니 조금 울렁거렸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강 주사님이 연가를 내서 언니를 간호하러 왔다. 옛날에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점심모임에 다녀오시더니 00동 성당에서 치유미사가 있는데 늦었지만 갈 거냐고 물으셨다. 몸 상태가 좋은 편이어서 쾌히 따라 나섰다. 성당 입구에 '00동 성령기도회 10주년 피정'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완덕에 이르는 길, 미사를 통한 치유라는 주제로 이인복 마리아 교수님이 강의하셨다는데, 내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여서 마지막 한 시간의 강의만 들었다.

 

이인복 교수님은 숙명여대 교수직에서 퇴직한 뒤, 사재를 모두 털어 나자렛성가원을 설립하셨다. 평생을 미혼모 및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해 헌신하셨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5회 유관순賞을 수상하셨다. 그분이 성령의 은사를 받고 하느님을 체험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게 된 이야기들은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인 내용이어서 감히 몇 줄로 요약해서 적을 수가 없다. ( 그분이 쓰신 책들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직 나도 안 읽어 봤지만...) 그분의 열정적인 선교 활동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분을 흉내내보려는 마음도 먹지 못할 만큼 부족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미사시간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속박하면서까지 임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세례를 받은 후에도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보류상태로 있게 됩니다..... 늘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어미 닭이 먼저 알을 쪼고 병아리도 안에서 껍질을 쪼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성령께, 스스로가 응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은사에만 집착하면 정작 은사를 주신 분을 잊고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한사람씩 나가서 안수를 받았다. 엄마 친구이신 조0숙 선생님이 "내 몫까지 다 네게 주세요."라고 할 테니 원하는 것을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안수 받으러 나가라고 말씀하셨다. 너무나 많은 소원들이 떠올라서 정리할 수가 없었다.

 

 

"하느님, 저는 욕심꾸러기인가 봐요. 원하는 게 너무 많아서 정작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놓치고 있지 않나 걱정이 돼요. 저는 치유의 은사를 받고 싶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생겼으면 좋겠고, 하느님을 전하는 데 좀 더 용감해졌으면 좋겠고, 제 병도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요. 아직도 제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미움이나 좋지 못한 생각들, 교만한 마음도 다 치유 받고 싶어요. 저는 아직도 고통을 피하고만 싶지 자발적으로 견디며 봉헌하는 마음은 없어요. 하느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들을 잘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삶을 통째로 하느님을 위해서 쓰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어떤 것이 제게 제일 필요하고 하느님 뜻에 합당한 건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제 맘속에 남아 있는 미움과 교만한 생각들을 깨닫게 해 주세요."

 

내 차례가 되어서 안수를 받기는 했는데 별 느낌이 없었다. 바보같이 특별한 느낌을 바랬던 나는 잠시 실망했다. 자리에 돌아와서 기도를 하면서 또 눈물이 났다. "하느님, 사랑합니다."고백하면서.

 

미사 끝나고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뒤에서 나를 툭툭 찔렀다. 돌아보았더니 어떤 여자분이었다. "힘내세요. 저도 항암치료 했어요"라고 내게 말했다. 모자 쓴 내 모습을 보고 알아 보았나 보다. 일부러 말을 걸어 준 것이 고마워서 울먹이는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고마워요"

 

 

조0숙선생님이 당신의 글이 담긴 '참 소중한 당신'이라는 책을 나에게 주셨다.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책도 주시고 좋은 구절들을 몇 개 복사해서 코팅까지 해주셨다. 조0숙 선생님도 14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하신 분이시다. 투병이 남의 일 같지 않으신지 몇 번이고 손잡아 주시고, 안아 주시고, 기도해주마고 하셨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 사람들이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분들을 위해서 나도 기도를 해 드려야하는데 그 많은 도움과 사랑을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싶다.

 

 

이인복 교수님이 쓰신 책 중에서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을'이라는 책을 사고 싶었는데 다 팔려서 사지 못했다. 그래서 그 책을 성바오로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했다.

 

 

주위에서 선물 받거나 구입한 책들이 미처 다 읽지도 못한 채로 쌓여 간다.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내 부족함이 쌓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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