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낫기를 원하느냐?

김레지나 2008. 8. 31. 17:02

 

낫기를 원하느냐?

 

 

1차 항암을 기다리며,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율리아 집에서 묵었다. 동생이 나를 위해서 샀다면서 책을 한 권 주었다. 제목이 '낫기를 원하느냐?'였다.

"야, 그럼 낫기를 원하지, 안 원하는 사람도 있다냐? 진작에 사 줄 일이지. 수술 다 받고, 피하고 싶었던 항암주사까지 여덟 번이나 받아야 한다고 결정된 판국에 이제 와서 무슨 '낫기를 원하느냐'야. 예수님은 다 아시면서 왜 물어 보신다냐? 나 읽어야 할 책 많아. 됐다 됐어. 너나 봐라."

 

나는 앞으로 받아야 할 항암치료가 너무 무서워서 마음이 불편했던지라 퉁명스럽게 말했다. 심술이 풀리지 않아서 계속 삐죽거리며 생각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지 걱정마라 하셨으면서, 하느님께서는 뭐가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신다면서, 장난이여 머시여? 우리가 대답을 해야 아시는 거여? 웃기셔.'

동생이 내 반응에 섭섭했는지 "그래도 읽어볼만 한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그래? 제목이 왜 '낫기를 원하느냐'인데?"

"응,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때는 꼭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대. 사람들이 먼저 자기의 의지로 낫기를 원했을 때에야 예수님께서 낫게 해 주셨다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긴 하지. 하느님이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획을 부탁하실 때도 늘 "내 뜻에 따를지 안 따를지는 당신 자유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 뜻에 따라주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신다지. "너 이거 안하면 안 돼"라고 협박하지는 못하시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으니.'

동생에게 항암주사 맞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읽어보겠다고 약속했다.

 

생각해 보니 나아야 할 것들이 내겐 많이 있었다. 항암주사 부작용도 덜했으면 좋겠고, 팔도 좀 더 잘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고, 애들이 너무 보고 싶어 괴로운 마음도 덜해지기를 바랐고, 하느님께 심술 난 마음도 빨리 낫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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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질병을 안고 산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들여다보면 환자 아닌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부족한 글을 써대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얘기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느꼈다고 쓰면서도 늘 큰 걱정이 있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적인 나약함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 못하고, 용서 못하고, 사랑 못하고, 희생할 마음도 없는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지금은 하느님의 사랑을 얘기하지만 앞으로 또 잊어버리고 게을러지지 않으리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버릇없는 자식이고, 잔소리 좋아하는 아내이고, 세속적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이고, 이기심 많은 이웃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의 형편없음을 보고 내가 믿고 사랑하는 하느님을 얕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오히려 내 부족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욱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저렇게 부족한 인간에게도 사랑을 일러 주시는 하느님이시구나. 내가 더 부족한 점도 덜 부족한 점도 있지만 나도 사랑 받을 자격이 있겠구나. 나도 언제든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불러 주기만 하면 도와주시려고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겠구나.'하고.

 

 

( 환우님들! 매 순간 낫기를 원하십시오. 하느님을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빠 하느님'이라고 부르십시오. 그리고 '낫고 싶어요. 내 이기심과, 자만과, 미움과, 육체적 고통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 낫고 싶어요. 거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하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알게 모르게 성령께서는 늘 함께 계십니다. 속삭여도 들을 만큼 가까이에 계십니다. '낫고 싶어요"라고 고백하는 마음이 바로 희망입니다.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라고 여기게 하는 희망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의지'로 '매 순간' '낫기를 원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을 애타게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