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지혜의 샘/김양진 선생님의 성경교실

25. 그 때에 나는 새 계약을 맺겠다.

김레지나 2008. 8. 28. 19:10

성경교실(구약) : 자료 - 25



그 때에 나는 새 계약을 맺겠다.



* 예레미야와 바룩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바룩을 시켜 자신이 지금까지 한 예언들을 두루마리에 받아 적게 했다. 이 두루마리를 여호아킴 왕이 불태워 버리자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자신이 했던 예언을 다시 받아쓰도록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예레미야 예언서이다.



* 유다의 제 1차 바빌론 유배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는 여호야킨과 그의 어머니, 유다의 지도급 인물들(귀족, 사제, 장인(匠人), 군사 지도자)을 비롯하여 수천 명의 유다 백성들 포로로 끌고 갔다. 이것이 제 1차 바빌론 유배이다.



* 예레미야의 항복 권고

 예레미야는 바빌론이 하느님의 심판과 유다 백성의 쇄신을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승복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모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생각이었다.



* 목에 멘 멍에

 목에 멍에를 멘 것은 자유를 잃은 사람을 상징한다. 당시 이집트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각국에 특사를 보내 반(反) 바빌론 연합세력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이 연합세력에 동조하여 바빌론에 대항하면 멸망을 면치 못하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 노예에 관한 율법 규정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동족인 히브리인을 노예로 삼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유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호의를 얻을 방안으로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이 율법 규정을 다시 실행했지만, 위기를 벗어났다고 여기는 순간 이를 다시 깨뜨렸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행위가 계약을 위반한 결정적인 증거로서, 하느님의 심판을 불러들인 결과가 되었다고 보았다.


* 새 계약

 시나이 계약은 백성의 죄악 때문에 깨졌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다시 맺으시겠다고 하셨다. 그 계약은, 옛 계약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는 것이다. 이 ‘새 계약’은 곧 ‘신약성경’의 이름이 되었다. 이러한 희망의 주제를 담은 예레미야서 30-33장을 ‘위로의 소책자’,‘구원의 신탁’이라고 부른다.


* 예레미야가 밭을 사다

 예레미야가 왕궁 경비대 울안에 갇혀 있을 때, 더구나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고향에 있는 밭을 산 것은 이스라엘이 유배가 끝난 후 고국으로 귀향하리라는 약속을 강조하는 상징이다.


* 영원한 계약

 하느님께서 맺으시는 새 계약은 인간의 죄로 깨진 옛 계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인데,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인간 자신이 변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그 변화를 제 힘으로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 백성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기 위해 하느님은 그들에게 힘을 부여해주신다. 이 영원한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피로 새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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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주제 :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 읽어야 할 성경 : 예레미야서 39장 - 52장 : 애가

* 성경 구절 쓰기 : 예레 39,1-2 : 39,6-7 : 39, 11-12 : 40. 5 ; 42,10 ; 42,19                   43,4-7 ; 44,8 ; 52,30 ; 애가 5,1-3 ; 5,19-21


(이하 김양진 선생님의 강의 정리입니다.

제 컴퓨터가 몇 번 고장 나서 파일을 다시 정리해두려다가 성경강의 음성파일을 잃어버렸습니다. 노트만 보고 옮겨 적었는데,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을 제대로 옮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말투로 정리된 부분도 있을 테고, 빠뜨린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내부 고발자가 당하는 사회적 불이익>


 오늘 이야기가 좀 딱딱합니다. 집안이 망하는 이야기라서 재미가 없습니다.

(참기름과 라면이 친하게 지내다가 둘이 싸웠는데, 라면만 잡혀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참기름이 고소해서...., 1주일 후에 라면도 잡혀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라면이 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소, 고발 많이 합니다. 자기 이익과 관계될 때 고소, 고발합니다. 하지만 내부 고발에 대해서는 고발한 사람을 욕합니다. 누군가 옳은 소리로 고발을 해서 부패한 사람을 처벌해도,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한 사람이 13%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내부고발을 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16,7%라고 합니다. 그러니 누가 자기 이익을 떠나 사회를 깨끗이 하려고 나서겠습니까?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이 그렇게 욕먹는 삶이었습니다. 자기 조국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은 누구라도 쉽게 못합니다. 국민이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는 고발을 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을 훑어보았습니다. 오늘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생활을 훑어볼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이스라엘인들은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예언자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하느님께서 멸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사제와 지도자들이 화가 났습니다.

“너는 반드시 죽어야한다.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리라고 예언하느냐?”(예레 26,9)

 사제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예레미야가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율법으로 하느님 모독죄는 사형에 처해질 중죄였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는 예수님을 하느님 모독죄로 고발하고, 로마 총독은 예수님이 국가반란을 도모했다고 해서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사제들과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성전을 허물면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하셨으니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마르 13,2)

예수님이 예레미야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단죄하였다.”(마르 14,62))


예언자 :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선포해야 할 사명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예레 26,12)

예언자들의 삶이 결코 쉬울 수 없습니다.


유다의 살 길 :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한 삶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예레 26,12)

예레미야가 자기 민족이 밉고 조국이 싫어서 멸망을 예언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예언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마음을 돌려 회개한다면 하느님께서 재앙을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유배 이전의 예레미야 예언 요약>


기원전 605년바빌론 제국이 아시리아를 정복, 이집트와의 전투 승리, 팔레스티나 지역을 자기 세력권으로 편입

여호야킴왕 : 친(親)이집트 정책

여호아킴왕 : 이집트로 피신한 우리야 예언자를 붙잡아 살해한 폭군

“유다임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 제 사년, 곧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원년에 온 유다 백성을 두고 예레미야에게 내린 말씀.”(예레 25,1)

예레미야서가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 않아서 뒤죽박죽입니다.

유다 역사에서 예언자를 죽인 왕은 여호야킴이 유일합니다.

바빌론의 힘이 세져서 아시리아를 정복합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이집트에서 여호야킴 왕을 세웠으니, 여호야킴 왕은 친이집트 정책을 씁니다. 여호야킴은 친이집트 정책을 쓰면서 바빌론에 대항하려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친이집트 정책을 말리십니다.

“이 땅은 온통 황무지와 폐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민족들은 일흔 해 동안 바빌론 임금을 섬길 것이다.”(예레 25,11)

70년 - “오랜 기간”,“하느님이 징벌하기에 충분한 기간”을 뜻합니다.

예레미야는 “너희들이 친이집트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바빌론에 대항했다가는 오랜 기간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것이다”라고 예언합니다.




<바룩에게 받아쓰게 하다.>


예레미야 은둔생활

바룩 : 예레미야서 집필자

예레미야는 박해를 피해서 은둔생활을 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러 예언을 받아적게 합니다.

“두루마리를 가져와 내가 너에게 이른 말을 모두 적어라. 그것은 그날부터 곧 요시야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민족들을 거슬러 내가 너에게 이른 말이다.”(예레36,2)

“그래서 예레미야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불렀고, 바룩은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두루마리에 받아 적었다.”(예레 36,4)

예레미야가 기원전 627년부터 605년까지 예언한 것을 바룩이 기록했습니다.


바룩, 성전에서 두루마리 낭독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는 긴박한 호소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예언 두루마리를 가지고 성전에 가서 단식일에 백성들에게 읽어주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긴급한 사명을 띠고 있는데, 박해로 인해 피해있을 수밖에 없으니, 바룩을 시켜서라도 읽어주게 한 것입니다.

“행여 유다 집안이 내가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리기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나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겠다.”(예레 36,3)

“행여 그들의 간청이 주님 앞에 올라가고, 그들이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예레 36,7)




<여호야킴이 두루마리를 태우다.>


여호야킴왕 : 동맹군 이집트의 군사력을 과신

“임금은 여후디를 보내어 그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였다.”(예레 36,21)

“그런데 여후디가 서너 단을 읽을 때마다, 임금은 서기관의 칼로 그것을 베어 화롯불에 던졌다.”(예레 36,23)

예언자의 말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야킴은 하느님의 말씀이 듣기 싫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담을 쌓고 살겠다는 뜻입니다. 여호야킴은 오직 이집트를 믿었습니다.


현존하는 예레미야서는 : 여호야킴이 두루마리를 불태워버리자, 바룩이 다시 예레미야의 예언을 받아 적은 것입니다. 36장에 그 과정이 나옵니다. 그 후로 여러 사람들에 의해 가필이 되고, 여러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견해가 첨가되었지만 예레미야 예언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제 1차 바빌론 유배>


기원전 601년 : 바빌론과 이집트 전쟁, 바빌론 군대 철수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 피해는 양쪽 다 봅니다. 바빌론과 이집트, 두 나라가 다 기운을 잃을 정도로 약해졌습니다.


유다와 이집트 동맹, 바빌론에 반기

바빌론의 유다공격, 예루살렘을 포위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을 때에 여호야킴이 사망합니다.

그 후 여호야킴의 아들, 여호야킨이 18세의 나이로 즉위합니다.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중에 즉위합니다.


기원전 597년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예루살렘 점령

여호야킨, 그의 어머니, 지도급 인물들, 백성 등, 수천 명이 포로로 끌려감

그 때 끌려간 백성의 수가 7000명에서 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 1차 바빌론 유배”입니다.




<행복과 재앙 사이의 선택>


치드키야 왕 즉위, 바빌론 군대 철수


치드키야 왕이 즉위할 무렵 하느님이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끈과 나무로 멍에를 만들어 그것을 목에 메어라.”(예레 27,2)

목에 멘 멍에 : 자유를 잃은 사람 을 뜻합니다.

예레미야가 멍에를 쓴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멍에 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들을 에돔 임금과 모압 임금과 암몬 자손들의 임금과 티로 임금과 시돈 임금에게, 유다 임금 치드키야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와 있는 사절단들의 손에 들려 보내라.‘(예레 36,23)

반(反)바빌론 연합세력 구축 위한 이집트 특사

반 바빌론 연합 세력을 만들려고 각국에 특사를 보내 연맹해서 바빌론에 저항하자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특사들에게 멍에를 보내라고 하십니다. 모두 노예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 반(反)바빌론 동맹 반대

“여러분은 바빌론 임금의 멍에 밑에 여러분의 목을 내밀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 어찌하여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은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으로 죽으려 합니까?”(예레 27,12-13)

바빌론에 항복하자고 하니 예레미야는 매국노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사자입니다. 독립투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바빌론 : 하느님의 심판과 백성의 쇄신을 위한 도구

         하느님의 뜻에 승복해야

바빌론을 이스라엘을 징벌하는 회초리로 삼겠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매를 때리지 않으면 개과천선할 수 없을 때는 매도 필요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하난야의 대립>


제 1차 유배자들의 조속한 귀환과 독립 약속

왕실 예언자 하난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 다시 돌려놓겠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유다의 모든 유배자를 이 자리에서 다시 데려다 놓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정녕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겠다.“(예레 28,3-4)

왕실의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당시에 왕실 소속 예언자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권력자의 뜻을 대변합니다. 1차 바빌론 유배 때에 쓸 모 있는 사람들이 다 끌려가고, 예루살렘에는 쓸 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눈치만 봐야 합니다.  하난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2년이면 되면 1차 유배자들을 돌려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제 1차 유배자들의 조속한 귀환과 독립을 약속하면서 왕과 국민을 현혹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멍에를 벗겨 부순 하난야

(공약(公約)? 공약(空約)?   대통령이 되면 일자리 몇 백만 개? 헛된 공약으로 민심을 어지르는.............)

하난야의 예언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듣기에 희망적인 소리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올바른 이야기를 해도 듣기 싫습니다. 하난야는 백성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소리를 합니다. 우리라도 하난야 편을 들고 싶습니다. 이게 백성들입니다. 잘 판단하지 않으면 공약, 빌 공자 공약이 됩니다.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난야는 예레미야의 멍에를 벗겨 부숴버립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도전, 백성의 고통만 가중

하느님이 하난야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오히려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예레 28,13)

유다는 이미 하느님이 징벌하실 수 밖에 없을 만큼 죄가 깊어집니다.

지도자 하나 잘못 뽑으면 국민이 고생합니다.




<치드키야의 운명>


제 1차 유배 이후 등장한 신흥 귀족들

껍데기들만 유다에 남아 있습니다. 점점 새 지배계급, 귀족들이 부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위기를 헤쳐 나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근시안적인 민족주의,

거짓 예언자들의 선동,

이집트와 동맹하고 바빌론과의 단교 압력

치드키야 왕은 성격이 온순하고 모질지 못했습니다. 지도자가 우유부단한 것은 단점이 됩니다. 치드키야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립니다.


치드키야,, 이집트와 함께 바빌론에 반기

기원전 588년 바빌론의 유다 공격

유다가 바빌론에게 반기를 드니 바빌론이 괘씸하게 여겨 다시 공격해옵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의 모든 성읍들을 다 불태워버립니다.

“내가 이제 이 도성을 바빌론 임금의 손에 넘기면 그가 그곳을 불태우리라. 너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의 손에 사로잡혀, 바빌론 임금의 얼굴을 마주 보고 그와 직접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바빌론으로 끌려갈 것이다.”(예레 34,2-3)


절망적 상황에 처한 치드키야 왕

치드키야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호의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싶은데, 예레미야는 계속 매정한 이야기만 합니다.




<히브리 종들에 대한 약속 위반>


이스라엘 율법에 자기 동족을 노예로 삼는 것은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이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돈 몇 푼에 동족을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유다가 위기에 처하자 백성들은 하느님께 잘 보이면 하느님이 구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예제도를 제대로 지키기로 하여 동족 노예들을 풀어주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남종과 여종을 풀어주어 다시는 그들을 종으로 삼지 않겠다고 예약을 맺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은 그 계약을 따르기로 하였다.”(예레 34ㅡ10)


노예해방은 경제적 이유

그렇지만 정작 유다인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노예를 풀어준 것은 경제적인 이유때문입니다. 약삭빠른 사람들입니다. 전쟁이 계속 되어서 수입을 못 올리니 노예를 부리기가 버거웠습니다. 노예들이 밥만 축내니 풀어주자고 한 것입니다.


이집트 군대 막기 위한 바빌론 군대의 일시 퇴각

계약 위반의 결정적인 증거

“이집트가 군대를 파견합니다. 한시름 놓으니 유다인들의 마음이 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뒤 마음이 변하여, 자신들이 풀어 준 남종과 여종들을 오로 데려와 종으로 마구 부렸다.“(예레 34,11)

유다인들은 하느님과 율법을 지키겠다고 계약을 맺어 놓고, 살만하다 싶으니 금세 계약을 깨버립니다. 이 한 사건만으로도 계약 위반의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계약을 어김으로써 멸망을 자초한 유다

“나는 내 계약을 어긴 사람들을, 곧 내 앞에서 송아지를 두 토막으로 가르고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맺은 계약의 규정들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그 송아지처럼 만들어 버리겠다.”(예레 34,18)

족장사 기억나십니까? 계약을 할 때 짐승을 쪼개 놓고 하느님이 그 사이를 지나가셨다고 했습니다. 조인식을 그런 식으로 한 것입니다. 그 계약을 깨는 쪽에서는 쪼개진 짐승처럼 두 쪽 신세가 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인들이 먼저 계약을 깨뜨린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들의 멸망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유다가 자초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갇히다.>


구원병 이집트의 패배

“너희를 도우러 출동한 파라오의 군대는 제 나라 이집트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칼데아 인들은 다시 돌아와 이 도성을 공격하며 점령하고 불태울 것이다.”(예레 37,7-8)

예레미야가 이런 말을 하니 예쁘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치드키야의 호의로 궁궐 경비대 울 안에 갇힘

바빌론이 다시 힘을 얻어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왕이나 백성들이 알아들어야 하는데, 예레미야를 민족반역자라고만 생각합니다.

“대신들은 예레미야에게 화를 내며 그를 때리고, 요나탄 서기관 집에 있는 구덩이에 가두었다. 사람들이 그곳을 감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예레 37,15)

치드키야는 예레미야의 말이 맞아떨어져 가니 예레미야를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덩이는 지하감옥입니다. 치드키야는 예레미야를 경비대에 연금시킵니다. 호의적으로 봐준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치드키야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위를 맞춰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만 있기만 하면 좋겠는데 계속 회개하라고 싫은 소리를 합니다.


민족 반역자로 몰린 예레미야 예언자

“이런 자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예레 38,4)

신흥대신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조국이 풍전등화이니 나아가 싸우자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예레미야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배계급이 예레미야를 죽이자고 합니다. 치드키야가 할 수 없이 예레미야를 신흥대신들에게 내어줍니다.

( 빌라도가 처음에는 유다인들에게 고발당해 끌려오신 예수님에게서 죄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가, 결국 사형시키라고 내어 주었듯이.....치드키야도 예레미야를 내어줍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경비대 울 안에 있는 말키야 왕자의 저수 동굴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밧줄로 묶어 저수 동굴에 내려 보냈는데, 그곳에는 물은 없고 진흙만 있어서 그는 진흙 속에 빠졌다.”(예레 38,6)

저수동굴을 물을 채워 넣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비가 오면 그 안의 사람은 익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곳에 있다가는 틀림없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왕궁 내시의 간언으로 다시 경비대 울 안에 갇힘

“과연 대신들이 모두 예레미야를 찾아와 그에게 물었으나, 예레미야는 임금이 분부한 말마디 그대로만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대신들은 이야기 내용은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레미야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점령당하는 날까지 경비대 울 안에서 지냈다.”(예레 38,27-28)

예레미야는 갇혀서 멸망을 맞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안 지켜서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새 계약 : 옛 계약의 개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맺는 계약

옛 계약 - 구약 (舊約)

새 계약 - 신약(新約)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 31,33)


하느님의 법

  옛 계약 - 돌판에 새겨

  새 계약 - 마음에 새겨

  마음 - 생각과 의지의 자리


하느님의 백성

한 민족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예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새 계약은 “하느님의 법을 가슴에 새기고 생각과 의지로 행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인들은 새 계약을 인정하지 않고 구약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밭을 사다.>


유배 이후 반드시 귀향하리라는 약속의 상징

“그가 치드키야를 바빌론으로 데려가면, 치드키야는 내가 찾을 때까지 그곳에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칼데아인들에게 맞서 싸워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내렸습니다.  ‘너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므엘이 너에게 와서, ′구원자 권한이 너에게 있으니 아나톳에 있는 나의 밭을 사 다오.′ 하고 말할 것이다.’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내 사촌 하나므엘이 경비대 울안으로 저를 찾아와 말하였습니다. ‘벤야민 지방 아나톳에 있는 내 밭을 사게. 그 밭의 소유권은 자네 것이고 구원자 권한도 자네에게 있으니, 그것을 자네가 사게.’ 그때 저는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나톳에 있는 제 사촌 하나므엘에게서 밭을 사기로 하고, 은 열일곱 세켈을 달아 그에게 주었습니다 (예레 32,8)

유다가 언제 망할지 모르니 있는 밭도 팔아야 할 판인데, 예레미야는 밭을 삽니다.

유배 이후 반드시 귀향하리라는 약속의 상징을 스스로 증거하려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알아들지 못합니다. 그만큼 하느님을 믿는 마음이 없습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습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계약>


‘한마음’,‘한길’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져야할 근본적인 자세

“내가 그들에게 한마음과 한길을 주어, 그들이 언제나 나를 경외하고,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 뒤를 잇는 자손들까지도 잘되게 하겠다. 그때에 내가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니, 나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잘되게 하겠다.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나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어, 그들이 나에게서 돌아서는 일이 없게 하겠다. 나는 그들을 잘되게 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 땅에 그들을 성실하게 심을 것이다.” 

“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백성에게 온갖 무서운 재앙을 내렸듯이,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온갖 좋은 것을 내려 주겠다. 너희는 지금 이 땅을 두고 사람과 짐승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 칼데아인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하지만,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게 될 것이다. “(예레 32,37 -40)

우리들은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바알에게 양다리 걸치고 싶어합니다. 돈, 권력, 명예만을 좇는 마음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영원한 계약

스스로 변화될 수 없는 인간, 하느님께서 힘을 부여해주심으로써 가능

인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하느님이 이 세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십니다. 그 힘을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직접 보여 주시기 위해 당신 아들을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목숨을 바쳐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미사 때마다 신부님께서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예비하고 신약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호소>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의 족적이 예수님과 비슷합니다.

예레미야를 고난의 예언자, 수난의 예언자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배신자, 매국노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여론에 따르는 것이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백성의 뜻이 항상 하느님의 뜻인가 잘 읽어야 합니다. 역사 안에 올바르게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면 소수의 사람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소수자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옳았습니다.


(우리 시대, 우리 삶 안에서 상황을 잘 파악하고 분석하고 이웃에게 전해주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배되는 이야기를 배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