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지혜의 샘/김양진 선생님의 성경교실

19. 왕국의 분열과 예언자 시대의 도래

김레지나 2008. 8. 28. 19:00

성경교실(구약) : 자료 - 19


왕국의 분열과 예언자 시대의 도래


* 이스라엘의 정치적 분열

 솔로몬이 죽은 다음 그의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를 계승한다. 그는 솔로몬 치하에서의 강제노역과 과중한 세금을 완화시켜 달라는 북부 지파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북부 지파들은 예로보암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움으로써 다윗이 세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80년을 넘기지 못하고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져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 이스라엘의 종교적 분열

 예로보암은 북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장소를 제공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안치되어 있는 계약의 궤에 대응하기 위해 단과 베텔의 두 성소에 금송아지 상을 배치했다. 이렇게 하여 북 이스라엘 백성의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차단함으로써 남 ․ 북 왕국은 종교적으로도 분열되었다.


* 남 유다 왕국

 남 왕국인 ‘유다 왕국’은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로 구성되었으며, 다윗 왕가의 혈통을 잇는 왕들이 대를 이었고,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들 역시 우상숭배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 북 이스라엘 왕국

 북 왕국인 ‘이스라엘 왕국’은 열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로 구성되었으며, 부족동맹 체제 아래에서 한정된 기간만 판관의 지위를 인정했던 전통이 강해 왕가의 세습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왕권 다툼이 치열하여 암살이나 반란, 피의 복수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예루살렘 성전과 발길을 끊었던 탓에 왕이나 백성이나 우상숭배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 이스라엘의 군주제

 일찍이 사무엘은 군주제의 위험성을 경고했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에 군주제가 도입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역대 이스라엘의 왕들은 백성을 폭정으로 다스리고 우상숭배로 이끄는 부당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 예언자 시대의 도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백성이 하느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준엄한 질타와 함께 절망에 빠진 백성에게 구원의 희망을 선포함으로써 용기를 심어준 인물들이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어느 때를 막론하고 예언자들이 늘 존재해 왔지만, 예언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엘리야의 등장부터이다.



* 엘리야 예언자

 엘리야라는 이름은 “나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라는 뜻으로, 이 예언자의 인생 계획 전체를 나타내고 있다. 엘리야는 하느님의 징벌을 선포하면서 등장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이웃 전제군주 국가들의 왕처럼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우상숭배에 빠진 아합 왕에게 하느님의 재앙을 예고함으로써 후대의 예언자들이 펼쳤던 사회정의 활동의 효시 역할을 했다.



* 예언자적 소명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계약 공동체로 만드셨다. 만약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누려야 할 정의가 권력자에 의해 짓밟힌다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옹호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연대성을 회복시켜 주신다. 예언자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사명으로 확신하고 권력자나 부자들이 백성에게 저지르는 불의에 두려움 없이 항거했던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러한 예언자적 소명을 받고 있으며, 거기에 투신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 다음 주 주제 :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

* 읽어야 할 성경 : 열왕기 하권

* 성경 구절 쓰기 : 2열왕 1, 16 : 2, 9 -11 ; 9, 6-10 ; 13,20-21 ; 17, 5-8 ;                      24, 13 -15 ; 25, 8 -11

이하 김양진 선생님의 강의 정리입니다.


잔치를 벌여놓고 초대를 하는데, 다 바쁘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이방인들, 핑계를 대면서 잔치에 아주 정중하게 거절을 합니다. 눈치를 보면서, 아주 가고 싶은데, 주인의 눈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사양을 합니다. 근데, 조심스럽게 사양한 사람들에게, 개신교 식으로 말하면 안 오면 불신지옥이라고 할 텐데, 하느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심.“초대에 안 온 사람은 하느님 나라 잔치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게다. ”dl이 괘씸한 놈들, 안 오니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잔치상 이렇게 받아논고 있는데,, 잔치 맛을 본 사람은 참 축복이고, 맛을 못 보는 사람한테 맛을 전해줄 뿐이지, 안 오니까 나쁘다 라고 말 못합니다. 오늘도 맛있는 하느님 나라 음식 맛보면 합니다.


<솔로몬의 죽음 - 르하브암 왕위계승>

이 시점에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르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통일되었지만 남과 북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다윗 때도 남과 북 문제가 있었지만 다윗은 그래도 현명하게 잘 대처했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 이어 왕위에 올라 나라가 부강했지만 남과 북 감정의 대립이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 이후의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과 북이 화합을 할 것인가 갈라질 것인가 결정될 일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를 읽으면서 이해하고 앞으로 이야기를 합다.이해가 빠를 것이다.

솔로몬 사후 르하브암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북쪽지파들이 반기를 들다.>

“르하브암은 스켐으로 갔다. 온 이스라엘이 스켐에 오며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기 때문이다.”(1열왕 12,1)

여기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북부 이스라엘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때는 북부 이스라엘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앞뒤 문맥을 잘 보고 이해해야합니다.

북부지파는 10개 지파였습니다. 12개 지파 중에 10개 지파라면 온 이스라엘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 용어들 중의 하나가 ‘시온’ 이 있다. 다윗의 고을 예루살렘을 지칭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온 이스라엘을 다 말하기도 합니다. 용어의 폭을 잘 알면 됩니다.

온 이스라엘 : (여기서는) 북부지파들을 지칭

시온 : 좁은 범위 - 예루살렘, 큰 범위 - 온 이스라엘

스켐 : 부족동맹이 이루어진 곳, 성소

왜 북부지파들이 르하브암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고 하느냐?  이스라엘의 왕은 실질적으로 하느님이 하십니다. 그럼 남부에는 이미 유다지파들이 자기 지파 출신이니까 인중을 했습�. 북부지파에도 왕이 르하브암이 왕이되려면 인준절차가 필요했습니다. 르하브암은 지지를 받기 위해 스켐으로 갑니다. 스켐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여호수아 때, 12 부족이 부족동맹을 맺은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융합되지 않았으면 한 민족으로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북부지파 사람들을 스켐으로 르하브암을 부르는 이유는 “여기는 동맹 맺은 곳이다. 네가 편파적이지 말고 더불어 살 길은 그리고  북부지파만 10개 지파이니, 우리도 권리가 있지 않느냐? 독립적인 발언을 하기에 좋은 장소를 고른 것입니다.” 그래서 북부지파 사람들은 예로보암을 대표로 보내서 르하브암에게 요구조건을 제시합니다.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멍에를 힘겹게 하셨습니다. 이제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지우신 힘겨운 일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1열왕 12,4)

북부지파는 예로보암을 대표로 보내서 르하브암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임금님의 아버지는 솔로몬을 지칭합니다. 멍에를 많이 졌다는 말은 솔로몬 때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겠지요?

강제노역과 과중한 세금의 고통

강제노역과 과중한 세금의 고통을 감면해주라. 유다지파만 우대하지 마라. 골고루 잘 지낼 수 있도록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르하브암은 요청받고 즉답하지 않고 신하들과 상의하겠다고 합니다. 솔로몬 때 솔로몬과 같이 정치를 했던 원로신하들이 르하브암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오늘 임금님께서 저 배성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고자 하시면, 그들에게 좋은 말씀으로 대답해 주십시오. 저 백성이 언제나 임금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1 열왕 12, 7) 임금이 백성의 종이 된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주님의 종, 하느님의 종,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하느님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립낟. 이스라엘 왕이 하느님을 섬긴다는 말은 백성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다른 왕조시대 전제군주들처럼왕들처럼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듯이 백성을 검겨야 하는 존재입니다. 왕이 스스로 겸손하게 백성의 종이 될 때, 그 왕이 온전한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북부지파들이 르하브암에게 요구한 것은 부당한 요구가 아닙니다. 예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 때 백성들의 목마르다 배고프다 떼 쓸 때도 정당한 요구는 하느님이 다 들어즈셨습니다. 더구나 지금 상황은 국민이.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든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북부지파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고.. 그것이 백성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왕이 백성을 섬기는데, 그렇다면 백성이 왕을 등 돌릴 수 없습니다. 내 출신 지파가 틀릴망정 다른 왕에게 충성을 다한다. 원로신하들이 지혜로운 충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의 정당한 요구, 통일왕국의 안정

백성을 어루만져 주고 함께 살아가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면 백성이 왕에게 충성을 다할텐데

르하브암은 예전을 모르는 젊은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그대들의 멍에를 무겁게 하셨는데, 나는 그대들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소. 내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을 가죽 채찍으로 징벌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할 것이오.” (1열왕 12, 14)

달래야할 입장에 있는 왕이 오히려 더 가혹하게 대하겠다고 합니다. 멍청한 이야기, 어루만져 주어야 할 북부지파를 오히려 힘으로 강압적으로 다루겠다고 합니다.

독재권력의 어리석음 : 권력자의 아집과 오만

독재권력자들은 하나를 들어주면 두 개, 다섯 개 들어주어야 하고, 계속 밀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명색이 대통령인데,,밀릴 수는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면 힘을 가지고 있으니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이렇게 아집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권력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승만이 자기 임기만 했으면 물러났으면 하와이로 망명을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박정의가 삼선개헌을 하지 않았더라면 종신집권 획책 안했으면 총 맞아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5.18 피묻은 손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노태우도 부정한 돈 거두고 공포정치로 몰아넣지 않았다면 백담사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게 다 예전부터 있어온.. 여러분이 권력을 잡아도 이렇게 됩니다.

르하브암은 예전부터 있어온 권력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남과 북이 갈라지다.>

이러한. 르하브암은 부글 부글 끓고 있는 북부지파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예로보암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집회에 불러서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유다 지파 말고는 아무도 다윗 집안을 따르지 않았다.‘ (1 열왕 12, 20)

북부지파가 폭발합니다. 이것이 비극의 출발입니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납니다. 남 유다 왕국은 유다지파가 주축이 되고, 벤야민 지파의 일부가 합세합니다.

남유다 왕국 : 유다지파, 벤야민 지파

              수도 - 예루살렘

북이스라엘 왕국 : 12지파 가운데 10 지파

              수도 : 스켐

                    ‘에프라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이름이 이미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북부 10지파들이 당당하게 자기들이 이스라엘 왕국의 이름을 차지합니다.

성서를 읽을 때 가끔 “에프라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로보암의 출신지가 에프라임지파입니다. 에프라임은 국경선, 경계가, 에프라임 지파가 차지하는 땅입니다. 가끔 북 이스라엘 왕국을 ‘에프라임’이라고 칭할 때가 있습니다. 에프라임아.. 북부이스라엘 지파를 가리키는 구나.

이제 완전히 남과 북이 정치적으로 갈라집니다.



<예로보암의 죄>

이스라엘의 종교적 분열

북 이스라엘이 예로보암이 보니까.. 이스라엘이 단순히 정치적인 민족이 아니라 계약공동체의 종교적인 민족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구심점 뿐 아니라 종교적인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종교적 구심점 필요

성전은 예루살렘(남유다왕국에 속해있었음) 예로보암이 보니, 북부에 있는 백성들이 자꾸 예루살렘에 들어가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드나들다 보면 정통성이 지금 다윗왕가에 있고,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으니 자꾸 북부백성들이 예루살렘 드나들다 보면 나중에 북부왕국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고 고심합니다. 우리도 예루살렘 같은 하느님께 예배할 곳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단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리고 나서금송아지 하나는 단에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1 열왕 12, 30)

예로보암이 자기가 어떤 생각으로 베텔과 단에 성소를 세우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나를 먼저 이해해야합니다. 베텔은 국경지대 바로 위에 있었습니다. 단은 북쪽 경계 끝에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북부 이스라엘 국민이 예루살렘 가는 길을 차단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지금까지 종교적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은 성전에 모셔둔  계약의 궤였습니다. 그러면 북쪽에도 성소에 계약의 궤에 버금가는 상징적인 게 있어야 됩다. 그래서 세운 것이 금송아지 였습니다. 그런데 이 금송아지가 문제가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 : 계약의 궤

베텔, 단 성소 : 금송아지

그 금송아지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1열왕 12,30) 예로보암은 좋은 뜻으로 했는데, 그것이 죄가 되었다. 한번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모세시절에도 만들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사이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니다. 그 때도 똑같은 금송아지신을 만들었지만. 하느님을 표기하는 단어가 El,입니다. 성서문헌에 엘로이스트 문헌? 이란 말이 있지요? 엘은 황소르 뜻합니다.

하느님 = El (황소) = 만신전 (萬神殿)의 우두머리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느님을 만들 수 없으니 하느님은 ‘황소 뒤에 계시는 분’이라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개념상. 인간은 뭘 봐야 되잖아요.

El 도 가나안 근동 전체의 모든 우상들을 모신 곳을 만신전이라고 합니다. 신이 많아서 만신전이라고 합니다. 그 곳의 최고 우두머리 신이 El 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이 금송아지를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게 하느님이다”라고 했어도 백성들은 우상인 금송아지랑 혼돈을 합니다. 예로보암의 처사는 혼돈을 야기합니다. 여기서 다시 예로보암이 베텔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은 것은 하느님께 예배보러 간다고 하면서 한쪽으로는 바알신에게도 절하는 셈이 됩니다. 양수?

하느님 = 금송아지 = 바알신

하느님 신앙와 바알 신앙의 혼합

일반백성들에게 하느님 신앙와 바알 신앙르 뒤섰어버린 혼합종교의 형태를 만들어버립니다.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만을 믿도록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계약을 저버리는 일이 도비니다.

하느님 신앙와 바알 신앙의 혼합종교 형태로 만든

계약을 저버리는 일이 됩니다.

칠성단은 원래 불교가 아닙니다. 토속신앙입니다. 그렇지만 불교 신자들은 칠성단에 절을 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오는 이유는

기복신앙 하에서 어떤 존재가 나에게 복을 줄지 몰라서 다 모셔놓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로보암이 백성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끌고가지 못하고 우상숭배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이런 벌을 받게 됩니다.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1 열왕 13, 34)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나라를 세우고 강국이 되고, 이웃나라에 짓밟히지 않고 살아온 이유는 하느님 때문이다. 그런데 예로보암은 자기가 북왕국 만들고, 지키는 것도 자기 역량과 능력으로 지켜내려고 하니까., 베텔과 단에 성소를 두고 이게 하느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남북으로 분열된 왕을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하면 예전에는 하느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왕이나 백성이나 다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짓고, 벌을 받고, 회개하고, 다시 죄 짓고, 벌 받고, 회개하고, 열왕기도 똑같습니다. 판고나기는 백성전체를 두고 이야기했지만. 열왕기는 왕

이스라엘 = 하느님의 가호

예로보암 = 자신의 능력


<분열된 나라의 왕들>

하느님의 정의 : 계약 충실 - 축복

                계약 불충실 - 징벌

판관기 - 백성전체

열왕기 - 역대 왕들

죄 - 징벌 - 회개-  판관기는 백성전체가 그 과정을 반복하고, 열왕기에서는 왕들이 그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습니다.

남북왕국은 : 불신, 적대감, 전쟁, 멸망

남북왕궁은 갈라졌습니다. 살기 좋을 리가 없습니다. 서로 불신하고, 적대감을 갖고, 마지막에는 다 망합니다. 우리나라가 이스라엘 역사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에 갈라졌던 것과 비슷합니다. 갈라진 후에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루었고, 서로 불신하게 되니다. 옛날 북한 사람들은 공산당은 손톱나고 뿔난 줄 알았습니다. 갈라선 나라가 잘 되는 나라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잘 사는 것 같아도 남한이 세월이 가면 나중에 국제경제에서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에는 망합니다. 남북문제를 통일 문제를 지금 어쩌고 토 다는 사람들은 심하게 이야기하면 민족 반역자입니다. 내 이익, 내 정파를 위해서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뜻입니다.

어쨋뜬 분열된 왕국의 왕들을 어떻게 이어가는지 많습니다. 왕들의 역사,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 남유다 왕국 왕들의 역사를 다 알 필요없습니다. 그래도 남유다왕국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남유다 왕국 : 다윗 왕조의 세습제

              예루살렘 성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지만 워낙 가나안 땅의 풍산신, 바알신을 저버리지 못합니다. 항상 위기와 유혹에 약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왕국 : 왕권다툼 치열,

                         바텔과 단의 성소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다윗왕가의 왕통이 없으니까 지파들의 독립성이 강하니 왕이 2,3 대 가다가 혁명 암살, 왕권다툼이 치열합니다. 베텔과 단에서 예배를 하다보니종교혼합주의, 우상숭배가 극심해집니다.이 바뀌고 피비린내 나는 왕권다툼이 있었습니다.



<아합의 이스라엘 왕국 통치>

예로보암 이후로 점점 더 우상숭배에 깊에 빠져듭니다. 대표적인 존재가 아합왕입니다.

“아합은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죄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던지, 시돈인들의 임금 엣바알의 딸 이제벨을 아내로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바알에게 가서 그것을 섬기고 예배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신전에 바알을 위해서 제단을 세웠다.”(1열왕 16, 31 - 32)

우상숭배 극심한 대표적인 인물이 아합입니다. 여기서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사마리아 : 북왕국의 수도

(수도를 스켐에서 북부로 조금 옮겼다가 다시 사마리아로 옮깁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가리키거나,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리킵니다.

아합이 이제벨(시돈 (페니키아)의 공주)와 결혼합니다. 일종의 정략결혼입니다.페니키아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가나안 땅에 살던 가나안 족이 밀려서 지중해쪽으로 올라가서, 페니키아들은 외국에서 들어와서 정권을 세웠지만 가나안 사람들이 거기서 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모든 우상들을 가장 잘 숭배하고 끝까지 잘 지킨 곳이 페니키아입니다.

가나안 바알신앙의 총 집산지가 시돈이었습니다.

가나안 바알신앙을 잘 지킨 곳이 페니키아 그 곳 공주를 데려와 정략결혼을 합니다. 이제벨이 대단한 여자였습니다. 자기 신앙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아합에게 신전을 짓도록 하고 아합이 예배를 바치도록 만듭니다. 페니키아에서 바알 예언자들을 수백명 데려다가 궁중에서 먹입니다. 그리고 야훼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거나 가두었습니다. 야훼신앙을 말살시키려고 덤벼든 여자가 이제벨이었습니다. 이미 사무엘은

사무엘 : 군주제 위험성 경고

사무엘이 판관시대 말기에 군주제의 위험성을 경고했습�. 그렇지만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졸랐습니다.

군주제 도입 : 백성의 요구

이스라엘의 왕들 : 폭정, 우상숭배

군주제를 해보니까. 왕들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금 걷고 노역 시키고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거기다 우상숭배를 앞장서서 하는 외국여자를 데려다 놓고..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어렵고 힘들 때 하느님게 청원하기 위해 누구를 동원할 수 있을까요? 왕이 저모양인데,,그렇죠? 왕을 대신해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우리가 잘못했을 때, 우리를 하느님 신앙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왕을 두었는데,, 이끌어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왕이 임무수행 못하니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필요헤서 예언자를 선출한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제도는 하느님의 방식이다.


<예언자 시대 도래>

예언자 제도 : 하느님의 방식

예언자 :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

예언자 역할 : 준엄한 질타, 구원의 희망

현재 이스라엘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회개 구원에 대한 희망

예언자는 미래의 점치는 점쟁이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크게 두 가지, 너희들의 죄가 너무 커서 하느님게 징벌할 것이다. 회개하라, 잘못을 강하게 질책합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힘들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래도 너희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면 하느님께서 너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라고 희망을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떡주고 메주고, 약주고 병주고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는 회개요, 하나는 구원에 대한 희망입니다. 예언시대에 등장하는 첫 번째 에언자가 엘리야.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하다.>

‘엘리야’의 뜻 : “나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이름만 들어오 이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알겠지요? 하는 일마다 다 하느님의 안에서..? 어느 시대,, 모세부터 예언자니까.. 그렇지만 엘리야 의 등장으로 본격적으로 예언자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가서 저돌적으로 하느님의 징벌을 선고합니다. 예언합니다.

“내가 섬기는,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1열왕 17,1)

이슬, 비 : 하느님 권능의 징표

가뭄 : 아합에게 내린 징벌

아합 때문에 하느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다 라고 예언합니다. 이슬과 비는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이 이슬과 비를 내려줄 수도 있고, 안 내려줄 수도 있습니다. 이슬과 비가 있으면 농작물이 자랍니다.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딱 끊으면 가뭄이 듭니다. 그것은 아합 때문에 내린 하느님의 징벌입니다.

이렇게 예언을 하고 나서 이제벨, 때문에 두려워서 피합니다.


<엘리야와 까마귀>

두려우니 엘리야가 숨어서 지냅니다. 먹고 살 게 있어야합니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1열왕 17,6)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얻는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먹고 살 걱정이 없습니다. 더 잘먹고 더 잘입으려면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까마귀들을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골방도 곳간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가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하지 않느냐? ”(루카 12,24)

미사 강론 중에 못이 박히게 들어본 소리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걱정거리가 너무 많습니다. 내일이 문제가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죽어서 땅속에 묻힌 후, 3대, 4대 후까지 걱정합니다. 하느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걱정거리가 끊일 수 없습니다.

걱정거리 : 내일에 대한 불안, 욕심, 욕망

대부분은 더 잘 먹고,더 잘 입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걱정거리를 만들어냅니다. 가뭄을 예언하고 삼년쯤 지난 후에 하느님이 엘리야에게 아합을 만나라고 하십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다.>

아합이 너가 주둥이 놀려서 이렇게 되었다. 때문에 가뭄이 있으니 네 탓이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과 임금님 조상의 집안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계명을 저버렸고, 임금님은 바알을 따랐습니다.” ( 1열왕 17,19)

하느님의 권능, 바알의 무능

하느님의 권능, 바알의 무능을 경고합니다. 지금 엘리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면, 비를 이슬을 내릴 능력이 없습니다. 하느님한테 있습니다. 너는 하느님을 안 믿고, 바알을 믿었으니, 바알한테 비를 청하면 될 것 아니냐? 결국 하느님의 권능과 바알의 무능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제 사람을 보내어 온 이스라엘을 카르멜 산으로 모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제벨에게서 얻어먹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도 함께 모아 주십시오.”(1열왕 18,19)

예언자 : 우상의 실체 폭로, 백성의 회개 촉구

예언자는 우상의 실체를 폭로하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해서 백성들을 다시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이끌어야합니다.

새 번역 카르멜 갈멜 산,- 페니키아 바로 옆에 있는 산,  그 아래 이스라엘 평원이 있고, 지금 엘리야 동사이 서 있습니다.

카르멜 산은 바알 신앙의 성지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계룡산“쯤 됩니다. 온갖 우상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럴 정도로 바알 신앙의 본산지,,너희들 신들의 본산지로 가서 바알의 어머니신 아세라,, 850명과 엘리야 혼자 대결하겠다.

그 자리에서 백성들이 모이자 백성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

양다리 걸쳤다고, 확실히 해야지,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을 믿고, 바알을 믿으려면 바알을 믿지.. 예언자가 이제 결단을 내려라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옳은 건 옳은 건데, 눈 앞에 당장에 올해 농사 잘 지으려면 바알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런 신앙, 성당에서 하느님 말을 잘 들어야 되는데, 세상에서는 뒷돈도 찔러줘야 되고, 하느님 뜻대로만 살래? 즉답을 못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기 제안합니다.

이쪽이 유리할 때는 이쪽으로 붙고, 저쪽이 유리할 때는 저쪽으로 붙고

예언자 - 백성의 결단 요구

백성 - 침묵으로 일관

일단 바알한테 비벼 놓아야 농사 잘 되니 뒷돈 사바사바도 해야합니다.

하느님 뜻대로만 살라? 즉답을 못합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과 너희가 믿는 하느님게 번제를 드리자고 제안합니다. 번제, 짐승을 태워서 제사를 지내는 것. 해서,,받아들이는지  바알신은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의 대결>

바알 :폭풍우와 번개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바알에게 제사를 지내면 최고로 유리하겠지요? 그래서 먼저 바알 예언자들이 기도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1열왕 18,26)

3년 가뭄에도 비를 못 내린 바알이 이미 무능이 드러났습니다. 황소 잡아놓고 빈다고 되겠어요?

이제는 엘리야 차례입니다.

제단을 쌓는데 돌을 12개를 가지고 쌓습니다.

12지파를 뜻합니다. 나라는 갈라졌지만 뭉쳐야 산다. 12개의 돌멩이로 제단을 쌓고 그 위헤 번제물을 올려 놓고 그 위에

물을 뿌립니다. 물을 많이 뿌려서 도랑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1열왕 18,38)

핥아버렸다. 재밌는 표현입니다.

바알은 3년 동안 비도 못 내렸고, 번제물을 받지도 못하지만 하느님께선 번제물을 받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합왕이 그렇게 목매달았던 바알은 생명을 주관하지 못합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실증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백성들이 그때서야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1열왕 19,4)

사람 참 얄팍합니다. 그 때도 안 늦습니다. 이렇게 번제를 지내고 나서 엘리야는 거기 있는 바알 예언자를 다 잡아 죽입니다. 백성들은 보통 그리고 나서 비가 오고 가뭄이 그칩니다. 그런데 그 꼴을 이제벨이 못 봅니다.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하니 피신을 합니다.


<엘리야의 광야 피신>

번제를 지내고 바알 에언자들을 다 죽입니다.

비가 오고 가뭄이 그칩니다.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니 피신을 합니다. 엘리야가 하느님께 하소연합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1열왕 19,4)

예언자 신세가 그렇습니다. 기껏 하느님 일을 해 봤자 떡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잘해야 감옥, 목숨을 위협받기 십상입니다. 신세가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광야에 갔는데 먹을 게 없으니 천사가 보살핍니다.

천사의 보살핌, 하느님의 가호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1열왕 19,8)

호렙산 = 시나이산

40일동안 광야에서 생활 :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과 장소

예수님 : 40일간의 광야 유혹을 받으심

호렙산은 시나이산과 같은 말입니다. 40일 동안 광야게서 생활, 하느님이 아니면 생명을 지탱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과 장소.

40일 광야의 의미.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다.>

호렙산 = 시나이산 (전승에 따라 명칭이 달라짐)

모세의 소명받은 산, 십계명 받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장소

그 장소에서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난 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아야,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열왕 19,9)

광야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너 뭐하러 왔느냐? 기가 막히겠지요? 고생했다, 쉬었다 가러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왜 여기 있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씀이냐? 예언자가  있어야할 곳은 한적한 곳에서 면벽수도하는 곳이 아니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장소, 세상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가 있어야할 것이 예언자의 자리입니다. 너 지금 여기서 무엇하고 있느냐?

예언자의 자리 : 역사가 이루어지는 장소

               세상 사람들의 삶의 현장

예언자가 현예언자가 현실에 부�치고실 삶 안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세가지 명령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명령

        - 시리아의 새로운 왕

        -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

        - 엘리사의 예언자 계승

남의 나라 왕들을 세우고 내 나라 왕도 세우라는 말은 예언자가 정치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 말씀은 엘리야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시리아든, 바빌로니아든 어느 나라든 온 나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 모든 일들이 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 재밌는 말이 있지요? 손오공이 날아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인류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끌어가시는 하느님

인류역사가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

엘리야갸 호렙산에서 내려와 엘리사를 만납니다.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 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1열왕 19,19)

겉옷 : 주인의 인격과 능력을 말함

예언자 직분을 승계시키겠다. 도제훈련을 시키겠다.는 말입니다. 아합은 욕심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궁궐 땅도 많은데, 궁궐 옆에 있는 포도밭도 뺏고 싶음 더 넓은 정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다.>

더 넓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서 왕이 팔아라고 합니다. 거져 주든지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1열왕 19.19)

나봇이 용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합이 부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나안 땅은 돈 주고 산 땅이 아니라 하느님과 상속재산으로 선물받은 땅입니다. 그러니 그 땅은 사고 팔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상속재산이라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땅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을 거저 주셨다. 너도 이 땅을 받아라, 하면서 신앙도 물려주게 됩니다. 신앙의 유산입니다. 땅을 판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돈 받고 팔아먹는 셈이 됩니다.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 임금이 팔으라고 하는데도 뻣대는 게 아닙니다. 나봇으로 봐서는 팔 수가 없는 땅이었습니다.

상속재산 : 하느님의 땅, 신앙의 유산

상속재산, 하느님의 땅, 신앙의 유산을 못 팔겠다는 나봇의 정당한 말에 정당하니 아합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정당함을 알지만 괘씸합니다.

옆에서 그 일을 지켜보는 이제벨이 보니 한심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시합니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 자리에 앉히시오.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 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1열왕 21,9-10)

이제벨이 더 악독합니다. 아합은 그래도 뿌리는 이스라엘인입니다. 차마 정당한 나봇을 자기 손으로 못 죽입니다. 근데 이제벨은 전제군주 정치에서 자란 왕국의 공주,, 왕들은 법 위에 있습니다. 백성 목숨 하나 쯤은 파리 목숨, 그것에 익숙해있는 이제벨이었습니다.

이제벨의 행위 : 백성 위에 군림하는 전제군주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

그래서 이제벨이 원로들에게 명령해서 나봇을 죽이고 땅을 빼앗습니다.

이런 악독한 죄를 지은 아합과 이제벨을 두고 하느님께서 가만히 계시면 하느님의 정의가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징벌을 내리십니다.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주님께서는 이제벨을 두고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1열왕 21,21 -23)

소름끼치는 징벌이지만 이제벨이 한 짓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그 사람이 지은 댓가일 뿐이다.

지옥은 우리 스스로가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미카야의 예언과 아합의 전사>


아합이 남부 유다와 좀 사이가 좋을 때입니다., 서로 교류도 하고, 아합 선대 임금때 시리아 옆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유다임금과 둘이 상, 이스라엘과 상의해서 시리아를 치고 이 땅을 차지합시다. 유다 왕이 예언자를 불러 뜻을 물어봅시다. 라고 합니다. 아합이 모은 예언자들은 아합이 불러들인 예언자들은 궁중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왕의 의중부터 먼저 살핍니다. 임금이 싸우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틀림없이 이긴다고 합니다. 유다인들이 좀 찝찝하거든 또 한 사람 불러서 들어보자고 합니다.

유다인인 또 들어보자

미카서의 미카와는 다른 인물입�. 미카야가 이렇게 예언합니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이 산 저 산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주인이 없으니, 저마다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열왕 22,17)

양들이 흩어졌다는 말은 주인이 없다는 말은 왕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전쟁을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엉터리 예언자들이 미카야를 가두고, 전쟁에 나가서,, 멋지게 죽지도 못하고, 우연히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그 사람이 임금을 비위를 맞추는 예언자가 아닙니다.나옵니다.꿈에 환시를 양들이 흩어져 있으며 주인이 없어진 것

왕이 패배한다. 엉터리 예언자들, 미카야를 죽이려고

아합의 죽음, 아하즈야의 죽음

아하즈야가 임금에 오르면서 열왕기 상권이 끝납니다.

하권에서 엘리사가 바통 터치, 남부왕국 멸망하는 이야기


<엘리야 예언자의 역할>

엘리야 : 후대 예언자들의 사회정의 활동 효시

예언자 : 권력자의 불의에 두려움 없는 항거

왕에게 부당한 것을 항거할 수 있는 역할, 예언자 역할을 한 효시가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이 이 세상에서 주고자 하는 나라, 예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였지만 크게 말하면 온 인류의 하느님의 나라, 부자도 가난한 자도 권력자도 없는 고르고 평등한 나라입니다. 힘 있다고 힘 없다고 짓밟으면 하느님이 그것을 못하게 하십니다. 그 역할을 예언자들이 합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들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두려워할 힘없는 사람 짓밟으면 못하게 하는 역할을 예언자가 합니다.

그리스도인 : 오늘의 예언자 소명

예언직, 사제직, 왕직을 세례성사 받을 때에 받았다고 합니다.

예언직 그 누가? ‘내가’ 해야합니다.

나보다 힘없고 어려운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면 권력이나 힘있는 사람그 사람 입장을 대변해주고 꾸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그 뜻을 바로 우리 자신들이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열왕기 하권을 보면 가슴 아픈 일도 많고 신기한 일도 많습니다. 한 번 읽고 오시면.. 그 다음부터는 예언서 이야기 들어갑니다. 첫 시간에 나누어드린 이스라엘 역사와 성서,,,


예수님이 엘리야가 환생한 것이 아니냐?

이 말은 시돈과 띠로에서 했더라면.. 오늘 시돈 이야기 들으니까 이제벨 공주의 이야기지죠/ 구약으로 넘어가니 신약의 복음을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초석이 됩니다.

신약을 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초석이 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읽으면

구약 공부하니 신양이 쫄깃쫄깃 재미있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 성경의 역사를 쭉 �고 있는데, 이 과정이 조금은 힘겹게 느껴지더라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신양이 은혜로운 복음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