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교실(구약) : 자료 - 15
위기의 이스라엘과 판관들의 활약
* 판관기(判官記)
가나안 정착 이후 왕정이 수립되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외적과 맞서 싸운 판관들에 관한 기록으로, 히브리어 명칭은 ‘판관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사사기(士師記)라고 했으나 1970년대 「공동번역성경」에서부터 ’판관기‘로 고쳐 불렀다. 판관기는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서론 :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1,1-2,5)
- 본문 : 열두 판관들의 활약(2,6-16,31)
- 부록 : 레위인과 얽힌 이야기들(17-21장)
* 판관들
판관들은 뛰어난 전사(戰士), 위기의 구조자(救助者), 부족의 중재자(仲裁者)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판관직은 비세습적이었고, ‘하느님의 영’이 내린 사람은 누구나 판관으로 나섰다. 따라서 판관의 권위는 자기 출신 부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동맹 전체에 미쳤다.
판관 중에서 외적의 공격이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하는 일을 해낸 오트니엘 ․ 에훗 ․ 삼가르 ․ 드보라 ․ 기드온 ․ 입타 ․ 삼손 등을 대판관이라 하고, 자기 지파 안에서만 임무를 수행했던 톨라 ․ 야이르 ․ 입찬 ․ 엘론 ․ 압돈 등을 소판관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몫을 맡아 했던지 그 일을 하신 분은 판관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이시다.
* 판관기의 주제
판관기 2,11 - 3, 6절은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에 제시된 이스라엘의 역사, 곧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를 준다. 특히 2,11-19절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운명을 결정짓는 과정, 즉 이스라엘의 배반, 하느님의 징벌, 이스라엘의 회개와 하느님의 구원, 되풀이되는 배반의 과정을 신학적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은 3,7-16,31절에 나오는 판관들의 이야기에서 거의 도식적인 형태로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이스라엘의 역사는 배반과 징벌이 반복되는 역사이지만,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끝없고 변함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 바알과 아스타롯
‘바알’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널리 믿던 여러 신들의 우두머리 신을 말한다. 또한 바알은 지역신(地域神)으로서 역할도 했는데, 땅의 ‘주인’ 또는 ‘소유주’인 남성신(男性神)을 가리켰다. ‘아스타롯’(바알랏, 안주인)은 바알의 배우자로서 풍요와 다산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다.
* 가나안의 종교의식
가나안인들은 땅의 풍요로운 소출을 바알과 그의 배우자 아스타롯 사이의 성적(性的) 관계에 달렸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녀가 신전에서 성적행위를 함으로써 두 신을 결합시켜 풍요로운 소출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가나안 종교의식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 이스라엘과 바알 숭배
그 당시 사람들은 신들마다 활동영역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두 종교가 모순적이거나 배타적일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옮겨 새롭게 농경문화를 시작하게 된 이스라엘은 가나안인들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군사적 위기가 있을 때에는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농사를 지을 때에는 바알에게 의지하는, 즉 하느님과 바알을 번갈아 가며 섬기려 했을 것이다.
*판관기의 교훈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불충했을 때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신앙에 불충할 때 우리를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구원해 주셨듯이, 우리 역시 진심으로 회개하면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 도구로 쓰였던 판관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했거나 흠이 없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격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그들의 힘이었다.
* 다음 주 주제 : 최후의 판관 사무엘과 최초의 왕 사울
* 읽어야 할 성경 : 사무엘기 상권
* 성경 구절 쓰기 : 1사무 3,19-20 ; 8,4-5 ; 8,7 ; 10,1 ; 12,24-25 ;
15,10-11 ; 16,13 ; 17,48-49 ; 19,9 ; 24,7-8 ; 31,4
김양진 선생님의 강의 정리 시작합니다.
<위기의 이스라엘과 판관들의 활약>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인들의 첫 번째 역사 이야기가 판관기입니다. BC 1200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부터 왕정이 시작되는 BC 1020년 전까지, 200여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외적과 맞서 싸운 판관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판관기 : BC 1200년 - BC 1020년까지
그 시대에 이스라엘을 이끌어온 사람들이 판관들입니다. 그래서 판관시대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 :판관들
우리말 성경 : 사사기(士師記) - 판관기(判官記)
히브리어 성경에는 ‘판관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예전 우리말 성경에는 ‘사사기’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개신교인들은 사사기라고 부릅니다. 1970년대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성서를 공동으로 번역했고, 공동번역 성경에는 ‘판관기’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판관기의 내용
서론 :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 (1,1 -2,5)
본문 : 열두 판관들의 활약 (2,6 - 16,31)
부록 : 레위인과 얽힌 이야기들(17-21장)
<가나안정착 이후 부족동맹체제>
출애굽에서 가나안 정복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을 모세와 여호수아가 영도했습니다.
12지파가 부족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때는 왕이 없으니 지방자치제로 나라가 운영되었습니다. 열두지파는 각자 나누어 가진 땅에서 자율적으로 지냈습니다.
부족 내부의 문제 : 각 부족 지도자가 대처
민족 전체의 문제 : 열 두 지파가 공동 대처
판관들이 등장해서 부족내부와 부족동맹 전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한 지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지파, 또는 부족동맹 전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부족동맹 전체가 힘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열 두 지파의 판관들이 공동으로 부족 전체의 문제를 해결해나갔습니다.
<판관들>
흔히 판사를 연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판사와는 다릅니다. 물론 판관들이 재판을 하는 모습을 그려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열두판관 중 유일한 여자 “드보라‘가 있었습니다. 드보라는 야자나무 아래서 백성들의 송사를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판관은 재판하는 것이 주임무가 아니었습니다. 판관들은 전쟁이 나면 지휘했고,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습니다. 위기를 해결해주는 구원자이고 부족내부의 분쟁이 있으면 조정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판관들 : -뛰어난 전사(戰士), -위기의 구조자(救助者), -부족의 중재자(仲裁者)
판관직 : 비세습제(非世襲制), 하느님의영이 내린 사람
판관들은 다양한 역할을 맡아 수행했습니다. 판관들은 세습제가 아니라 비세습제였습니다. 판관의 아들이 다음 판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내린 사람이 판관이 되었습니다.
판관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
판관의 권위 : 자기 부족, 부족 동맹 전체
대판관 : 오트니엘, 에훗, 삼가르, 드보라, 기드온, 입타
소판관: 톨라, 야이르, 입찬, 엘론, 압돈
판관들은 하느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그 권위와 영향력이 다른 지파에도 미쳤습니다. 판관 중에서 외적의 공격이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하는 일을 해낸 오트니엘 ․ 에훗 ․ 삼가르 ․ 드보라 ․ 기드온 ․ 입타 ․ 삼손 등을 대판관이라 하고, 자기 지파 안에서만 임무를 수행했던 톨라 ․ 야이르 ․ 입찬 ․ 엘론 ․ 압돈 등을 소판관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몫을 맡아 했던지 그 일을 하신 분은 판관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역사, 하느님이 섭리하시는 역사입니다. 판관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끌어가시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아가다.>
여호수아기에서는 가나안 땅을 다 정복했다고 쓰여져 있는데, 판관기 시작부분에서부터 딴소리를 합니다.
“저희 가운데 누가 먼저 가나안족과 싸우러 올라가야 합니까?”(판관 1,1)
이 말은 아직 정복할 땅이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기에서는 큰 틀에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약속을 다 지켜주셨기 때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한 것처럼 적었습니다. 여호수아기는 하느님의 약속의 실현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판관기 : 현실적인 문제 해결
그러나 열 두 지파들이 땅은 분배 받아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보니 부딪치는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판관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하느님이 어떻게 이끌어주셨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지파들이 땅을 분배받았지만 땅 모두를 다 장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땅 안에 있는 여러 성읍들을 다 차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성읍을 차지했다고 해도 그 성읍 주변에는 여전히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민족들과 공존하거나 완전정복을 해서 물리쳐야했습니다. 그 과정의 이야기가 판관기 1장 내용입니다.
한 지파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지파의 힘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민족이 여러 지파의 나라를 뒤흔들어 놓으면, 지파들이 연합해서 싸워야했습니다. 한 지파의 판관이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한 지파의 판관이 다른 지파들에까지 지도력을 갖고 일을 해결해주었습니다. 판관은 왕이 아니라 각 지파에서 나온 지도자이지만, 대여섯개 지파의 판관들이 연합해서 활동하기도 하고, 12지파의 판관들 전체가 연합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재앙을 선포하다.>
가장 큰 문제는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다 몰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성을 다 점령하지도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고대인들은 전쟁이 신들끼리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믿는 신이 강하면 이기고, 적의 신이 강하면 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까지 올 때는 승승장구해왔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우리 하느님은 막강하신 분이신데 점령하지 못한 성들이 얼마 안 남았는데 왜 마저 다 이기지 못할까?”하는 의문을 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나는 너희와 맺은 계약을 영원히 깨뜨리지 않겠다. 그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들과 계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허물어 버려야 한다.”(판관 2, 2)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느님께서는 완전 봉헌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중요한 일은 우상 섬기는 제단이나 신전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가장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 그들은 너희의 적대자가 되고 그 신들은 너희에게 올가미가 될 것이다.”(판관 2,1 - 3)
하느님이 우상숭배에 물들지 말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스라엘인들은 이민족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신당도 그대로 두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근묵자흑 이라고 했습니다. 우상들과 같이 지내면 우상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원로 세대들이 죽다>
출애굽을 겪은 세대들은 이미 죽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까지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세대들은 하느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세대들도 죽었습니다. 새 세대들이 어땠는가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뒤로 주님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업적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나왔다.”(판관 2,10)
(탈출기에서도 “ 요셉의 행적을 모르는 파라오가 새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요셉의 행적을 아는 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후대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행적을 모르는 새 왕은 이스라엘사람들을 적으로 보았습니다. )
새로운 세대 : 굳은 신앙에 바탕을 둔 확고한 역사의식의 결여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은 실질적인 체험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빴습니다. 물론 선조들한테 하느님의 업적에 대해 듣기는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 삶 안에서 실제로 체험되지 않았습니다. 새 세대에게는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정말 어려웠을 때 세례를 받고. 하느님께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은혜 받았다는 생각이 깊을 때는 매사가 하느님의 덕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바뀝니다. 내가 열심히 성당에 나가니까 하느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하느님한테 뭘 해드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후손, 새 세대들도 과월절도 지키고 파스카도 지켰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기들 덕에 젯밥이라도 얻어 드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런 생각과 삶의 방식이 이스라엘 앞날의 역사를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불충과 징벌>
판관기 2,11-3장 6절은 이스라엘의 역사,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서, 열왕기의 모든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그래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판관 2장 11절에서 19절 까지는 이스라엘 역사가 어떤 역사를 거치고 반복되는가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그 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판관기 2장과 같은 과정이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운명을 결정짓는 과정 :
(배반 - 징벌 - 회개 - 구원 - 되풀이 되는 배반)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배반하면 하느님이 벌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인들이 못 살겠으면 회개하고, 그럼 하느님께서 다시 구원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인들이 또 살만하면 또 배반하고, 하느님이 벌 주시고,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살만하면 다시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똑똑하고 잘나서 문제들을 해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판관기 3,7 - 16, 31에서는 이 과정이 도식적으로 반복됩니다.
그 과정들을 일일이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그 과정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배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이집트 시나이 계약을 맺으면서 이렇게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하느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다. 너희들이 내 말을 믿고 따르면 너희를 돌봐주겠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집 세고 변덕이 심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다시 바알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알들을 섬겨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판관 2,11)
“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판관 2,13)
바알 : 근동지방에서 믿던 신들의 우두머리
근동지방에서 여러 민족들이 다양한 신을 섬겼는데, 그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신이 바알입니다. 바알이 고대근동지방신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고차원적이 이야기이고, 일반 사람들은 바알을 지역신으로 여겼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 지역 땅을 소유한 신이 바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알 : ‘주인’, ‘소유주’, 라고 하는데 땅의 소유주인 남성신(男性神)
바알의 부인 아스타롯 : “바알랏” -안주인이고, 풍요와 다신의 여성신(女性神)
고대인들은 땅의 주인이 있고 안주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신들 덕에 먹고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사람들은 농사짓는 과정들을 과학적인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과 비료를 주고 땅을 거름지게 하면 풍작이 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농부들은 수확하고 나면 놀라워합니다. 신비롭게 여깁니다.
고대사람들은 그런 과학적인 것을 몰랐습니다. 농사가 잘 되려면 신에게 잘 보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이 농사를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땅을 가만히 놓아두면 땅에서 아무 것도 안 납니다. 비가 와야 싹이 납니다. 그러니 고대인들은 땅의 소출은 땅과 물이 결합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야 아기가 생기듯이, 남신과 여신이 결합해야 풍부한 소출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땅의 풍요로운 소출 :땅의 소유주인 바알과 그의 배우자인 아스타롯이 성적(性的) 결합의 결과
신들이 사이가 안 좋아지면 농사를 망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인들은 신들을 자극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알신전에서 신전창녀와 사제들이 성적결합을 하면서 바알과 아스타롯을 자극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알신앙의 특징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유목생활을 하다가 가나안에 와서 처음으로 농경생활을 합니다. 가나안 현지인들로부터 농사짓는 방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소출을 내기 위해 때가 되면 바알신전에서 성적 결합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농경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을 저버리고 바알신을 섬겼다고는 하지만,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신앙, 출애굽의 하느님을 아예 모르는 척 하지는 않았습니다. 파스카 축제도 지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당장 급한 것이 농사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사람들은 일종의 다신론적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들은 저마다 주특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의 주특기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농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은 농사를 짓게 해주시는 데는 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알신을 섬기다가도 군사적 위기 때에는 야훼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군사적 위기 때 : 하느님께 의지
농사를 지을 때 : 바알에게 의지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과 바알에게 양다리 걸치게 됩니다. 눈 앞의 이익을 쫓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자기들의 신원의식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신에 대한 기본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점이 두려워서 여호수가아 열두지파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여호 24, 15)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바알’을 비롯한 우상 : 물질의 신
이스라엘인들만 바알을 섬기는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도 바알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바알신은 돈, 명예, 권력, 미모 등입니다. 물질의 신은 내 생존과 풍요로운 삶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유혹은 끈질기고 떼어내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먹고 살기 위해서, 남들보다 잘살기 위해서, 돈, 권력, 명예, 미모 등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학력을 속이고 뇌물도 주기도 합니다. 우리도 바알과 하느님에게 양다리 걸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바알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판관기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의 징벌>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겨 버리시고 약탈당하게 하셨다. ....그들이 싸우러 나갈 때마다 주님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 (판관 2, 14 - 15)
하느님 : 해방과 자유를 선물
우리는 조금밖에 잘못 안 했는데, 하느님이 심한 벌을 주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인간들을 대표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지금 우리에게도 해방과 자유를 선물로 주십니다.
우상숭배 : 죄와 죽음의 노예로 전락
그런데 인간들은 바알을 섬기다가 다시 노예의 신세가 됩니다. 이집트의 노예가 되고, 죄와 재물의 노예가 됩니다.
가나안 땅의 이민족 :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해 사용하신 회초리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란 인간들이 죄와 죽음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못 보시는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잘못 되면 매를 때려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하느님의 징벌은 부모의 회초리와 같습니다. 다윗왕 때에야 가나안 땅의 완전한 정복이 이루어지고, 그 전에는 이민족들을 회초리로 사용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느님과 바알사이에서 하느님을 선택해서 살지 않으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유혹이 올 것이고, 그 유혹에서 지면 결국 죄나 죽음의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개와 하느님의 구원>
하느님의 징벌 : 회개를 촉구하는 방편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판관 2,16)
이스라엘이 죽을 지경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징벌하여 버리기 위해서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회초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두 번 다시 쳐다보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이스라엘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징벌은 회개를 촉구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판관들 :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해서 판관을 보내주십니다.
“억압하는 자들과 학대하는 자들 앞에서 터져 나오는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가엾이 여기셨기 때문이다.”(판관 2,18)
이스라엘이 “이제 죽겠습니다.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빌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에 애걸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그러한 백성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판관들을 보내십니다. 신앙적으로 이야기하면 판관들은 하느님 사랑의 전달자입니다.
<되풀이되는 이스라엘의 범죄>
배반과 징벌, 회개와 구원이 되풀이 되는 역사
하느님의 구원 역사 : 끝없고 변함없는 자비와 사랑의 역사
부모는 자식이 잘했건 잘못했건 다 감싸 안고 올바르게 인도합니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판관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문제들을 해결해주면 몇 년이나 몇십년은 잘 살다가 그 판관이 죽으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조상들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경배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완악한 행실과 길을 버리지 않았다.”(판관 2, 19)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조그만 부족들에게 억압당하고 지배당하다가, 나중에는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런 과정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판관기의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회개와 배반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면 한심합니다. 성서가 전하는 구원의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시는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입니다.
<판관 기드온>
판관들 중 이상적인 판관으로서 대표적인 이가 기드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족에게 시달려서 수확도 못하고 가축도 못 키우고 먹고 살 양식까지 없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께 하소연합니다.
그러니 기드온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판관 6,12)
기드온이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묻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판관 6,12-13)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저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 동안에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느라 바빴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떠나 있으니 벌도 자초하고 이민족의 지배도 자초한 것입니다.
(우리도 양다리 걸치고 살다가 힘들어지면 “아이고, 하느님, 저를 돌봐주지 않으시고 어디 계셨습니까?”라고 하소연합니다.)
기드온의 소명
하느님이 기드온에게 함께 계신다는 표징을 보여주시고 기드온이 소명을 합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판관 6,34)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으니 기드온은 그 순간부터 판관이 됩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쫓아내다.>
기드온이 소명을 받고 나팔을 불어서, 주변 부족들의 군사들까지 불러 모읍니다.
“네가 거느린 군사들이 너무 많아, 내가 미디안을 너희 손에 넘겨줄 수가 없다. 이스라엘이 나를 제쳐 놓고, ‘내 손으로 승리하셨다.’하고 자랑할까 염려된다.”(판관 7,2)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애걸할 때는 하느님 없으면 안된다고 해놓고, 일이 해결된 뒤에는 “하느님이 한 거 뭐 있어? 우리가 다 했지” 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소집에 응한 백성 3만 2천명 가운데 3백명만 선택했습니다.
구원의 능력과 권능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
‘300’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스파르타군대 300명이 페르시아 대군 100만을 대적해서 이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300에서는 스파르타의 군인들이 얼마나 용감한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판관기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은 얼마나 용맹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해 준 것은 기드온도 아니고 300명의 군대도 아니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기드온이 왕권을 거부하다>
기드온이 승승장구해서 이스라엘에 평화가 옵니다. 백성들이 기드온을 믿고 왕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판관 8,22)
판관은 세습제가 아닙니다. 왕은 세습제입니다.
기드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니고 내 아들이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판관 8,23)
기드온의 힘과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기드온에게 힘과 능력을 주셨기에 승리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은 하느님 한분 뿐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민족들에게 시달리니, 중앙집권체제를 가진 다른 나라들처럼 강한 나라를 갖자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도 이스라엘은 우리를 다스릴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왕정을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내부에서는 왕정에 대한 욕구가 충만해있었습니다. 사무엘기에서 왕정이 시작됩니다.
<판관 삼손>
삼손은 힘이 세서 신전기둥을 뽑고, 맨손으로 사자를 잡습니다. 영웅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삼손은 영웅이 아닙니다. 삼손은 열 두 판관 중 대단히 특이한 존재입니다. 사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삼손에 대한 설화를 판관기에서 길게 싣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삼손을 낳았습니다.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기의 머리칼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판관 13, 5)
‘나지르인’이란 하느님께 성별(聖別)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특정한 서원(誓願)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입니다. ‘성별’이란, ‘거룩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성별된 사람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소명을 실현하게 위해서 따로 선별된 사람이기에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서원함으로서 개인적으로 성별된 사람이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다른 민족과 다를 바가 없는데,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하느님 백성이 됨으로서 하느님의 특별한 소명을 띤 민족이 되었기에 거룩한 민족으로 성별된 것입니다.
삼손의 서원 : 개인적 성별
백성의 계약 : 민족적 성별
서원한 삼손이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합니다.
“팀나에서 필리스티아 여자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 여자를 제 아내로 맞아들여 주십시오.”(판관 14,2)
‘필리스티아’는 ‘블레셋’, ‘골리앗’이라는 나라입니다.
삼손이 이방인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이방인의 문화와 종교까지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봉헌한 나지르인이 이방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우상도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용인을 해주겠다는 것을 뜻입니다. 삼손이 했던 서원을 파기하는 행위이고, 하느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삼손의 서원파기는 개인적인 배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신, 아스타롯을 섬기는 것은 민족적인 배반입니다.
삼손의 서원 파기 : 개인적 배반
백성의 계약 파기 : 민족적 배반
결혼이 무산되자 삼손이 화가 나서 필리스티아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릅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삼손을 잡으려고 수천명이 몰려듭니다. 삼손이 멋대로 한 행위 때문에 이스라엘이 위험해집니다. 삼손 개인의 잘못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의 위험에 처합니다.
“그때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들이닥쳤다... ...삼손은 싱싱한 당나귀 턱뼈 하나를 발견하고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그 턱뼈로 천 명을 쳐 죽였다.”(판관 15,15)
삼손이 잘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나지르인이라고 서원해놓고 이방인과 결혼했고, 개인적인 복수로 사람을 죽이고 방화했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스라엘인들과 숙적인지라 이스라엘이 생존위기에 처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구해주십니다. 삼손이 붙잡히려는 순간에 주님의 영이 내렸습니다. 이제 개인의 위기가 아닌 백성 전체의 위기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삼손에게 내렸기 때문에 삼손은 판관이 됩니다.
삼손은 판관이 된 후에도 방탕하게 지내다가 들릴라 라는 여자에게 빠집니다. 필리스티아 제후들이 드릴라에게 거액을 주고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냅니다.
“내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본 적이 없소. 나는 모태에서부터 나지르인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아 버리면 내 힘이 빠져나가 버릴 것이오. 그러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처럼 된다오.”(판관 16,17)
어리석은 삼손입니다. 예전부터 머리카락은 생명력, 힘이라고 했습니다.
삼손이 힘을 잃은 것은 하느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힘을 잃은 것은 머리카락을 잘라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을 자른 것은 상징일 뿐입니다. 서원을 저버린 나지르인이라서 하느님의 영이 떠났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후벼 낸 다음, 가자로 끌고 내려가서 청동 사슬로 묶어, 감옥에서 연자매를 둘리게 하였다.”(판관 16,21)
삼손이 처한 이민족 감옥 : 개인적 징벌
백성이 처한 이민족 지배 : 민족적 정벌
하느님을 배반한 댓가로 삼손은 이민족의 감옥에서 옥살이를 합니다. 그것은 삼손에게 내려진 개인적 징벌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민족의 지배와 억압을 받은 것은 민족적 징벌입니다.
삼손의 옥살이 기간 : 회개와 보속의 기간
“그런데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판관 16,22)
감옥살이하는 기간 동안 삼손이 연자맷돌을 돌리며 신세한탄만 하고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삼손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섭니다.
필리스티아 제후들이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물을 바치면서 말합니다.
“우리의 원수 삼손을 우리의 신께서 우리 손에 넘겨주셨네.”(판관 16,23)
고대인들은 전쟁을 신들끼리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곤 : 바다의 신이자 풍요의 신
반인반어(半人半魚)의 형상
가자 지구는 지중해 연안이라서 농사를 짓고 해상생활도 해야합니다. 그래서 신으로 반신반어가 등장합니다. 그리이스 인들은 이 ‘다곤’을 ‘포세이돈’으로 종종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삼손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하느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저에게 다시 힘을 주십시오. ”(판관 16, 28)
이스라엘도 죽을 지경이 되면 하느님께 하소연합니다. 그 하소연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회개에서 나옵니다.
삼손의 호소 : 개인적 회개의 표현
백성의 호소 : 민족적 회개의 표현
하느님의 영이 삼손에게 다시 왔습니다.
“그리하여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사람이, 그가 사는 동안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판관 16,30)
삼손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역사이건 민족의 역사이건 삼손의 이야기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판관기의 교훈>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숱한 고난들 :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저버린 때문 진심으로 회개할 때 :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운 역경에 처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충실했느냐, 안 했느냐를 생각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의 숱한 고난은 자신의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을 저버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늘 사랑으로 다시 구원해주십니다.
우리 인간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악에 물들었을 때, 하느님은 판관 대신 당신 아드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판관의 선택기준 : 자격이 아니라 임무를 위한 부르심
하느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실 때는 그 사람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임무를 위해서 그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기드온도 가장 세력이 약한 지파 출신이었고, 드보라도 여자였고, 유타는 살인자, 강도였고, 삼손은 방탕하고 하느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느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는 그 사람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 백성을 구원할 임무를 위해서 그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판관의 임무수행 : 자기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승리와 구원을 쟁취
하느님께로부터 임무를 받은 판관들이 그 임무를 수행한 것은 그들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우리가 오늘 신앙생활하면서 진정 내 신앙과 삶을 결부시키려면 하느님께 순종하고 하느님의 뜻에 올바로 따라야합니다. 내가 이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다면 하느님 앞에 떳떳해집니다. 내가 오늘의 삼손이라면... 판관이라면....?
판관기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따를 것인지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불충했을 때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신앙에 불충할 때 우리를 징벌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구원해 주셨듯이, 우리 역시 진심으로 회개하면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도구로 쓰였던 판관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했거나 흠이 없는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격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그들의 힘이었습니다.
===김양진 선생님 훌륭한 강의해주시고, 멋진 사진자료들 애써 준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너무 고마워서 우째야 쓰까요이~~ 머 드시고 싶으신 것이라도??? 말씀하세용. 택배로 휭 배달해드릴라고요..======
김양진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신부님이 짠~ 제단에 올라가셨습니다. 창세기부터 판관기에서 배운 도식(배반 - 응징 - 회개 - 용서)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셨고,성서 전반적인 내용의 정형화된 구조를 판관기에서 아주 집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정리해주셨습니다. ( 맞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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