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교실(구약) : 자료- 10
모세와 이집트 탈출 소명
* 탈출기(脫出記)
히브리어 이름 - 브엘레 쉐모트(“이름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어 이름 - 엑소더스(Exodus, 탈출), 중국어 이름 - 출애굽기(出埃及記)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자신들을 구원하여 계약을 맺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사건을 체험하면서 그분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 탈출기의 구성
- 제 1부 : 1장-11장 - 모세와 이집트 탈출 소명
- 제 2부 : 12장-18장 - 이집트 탈출과 광야 유랑
- 제 3부 : 19장-24장 - 시나이 계약과 율법 수여
- 제 4부 : 25장-40장 - 결약의 궤와 거룩한 장막
* 이스라엘인들의 종살이
- 거대한 건축 공사를 위한 값싼 노동력의 필요.
- 외적의 침략 대비와 내부의 동조 세력 근절의 필요
* 모세의 탄생
- 이집트 이름 - 모세(Moshes) : '...의 아들‘. 혹은 ’...에게서 태어난‘이라는 뜻인데, 파라오의 이름인 ’라메세스‘(Rameses = Ra-moshes : '신의 태생’)와 같은 낱말에서 나온 것이다.
- 히브리 이름 - 모세(Mosheh) : 마샤(Mashah)와 비슷한 발음으로 ‘건져내다’는 뜻이다. 이 이름은 ‘물 속에서 건져낸 자’ 이지만 , 모세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낸 자’가 된다.
* 모세의 소명
- 불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표상한다.
-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분부하신 것은 “믿음에의 출발”을 시키신 것이라면, 모세에게 분부하신 것은 “사명에의 출발”을 시키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하느님의 이름
- 엘로힘( Elohim) : 하느님을 가리키는 보통명사
- 야훼(YHWH) : "나는 있는 나다“, 하느님의 고유명사
- 아도나이(Anonai) : '나의 주님‘(My Lord)
- 여호아, 예호바(YEHOWAH) : WHWH 에 Adonai의 모음인 A_O_A를 삽입하였는데, 나중에 E-OA 로 변형하여 삽입한 인위적인 이름
* 열 가지 재앙
-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집트 왕 파라오와의 투쟁으로 전개된다.
- 재앙은 거의 동일한 순서로 반복된다(탈출 8장-11장).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명령하시고 재앙을 예고하신다. 파라오는 이를 거부하고, 그 결과 재앙이 내려진다. 파라오가 굴복하여 수그러들면 이 재앙은 걷힌다. 그러면 마음이 변한 파라오가 다시 완고하게 고집을 피운다.
- 재앙은 피․ 개구리․ 모기 등 고통을 유발하는 정도에서, 등에 ․ 가축병 ․ 피부병 ․ 우박․ 메뚜기 등 피해를 유발하는 재앙으로, 나중에는 어둠 ․ 맏배 죽음 등 공포를 유발하는 재앙으로 점점 커져간다.
- 하느님이 내리신 재앙은 그 대부분이 자연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성경은 하느님께서 직접 내리시는 징벌로 여겼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모세를 사용하시듯이 자연 현상도 이용하신다고 보았으며, 열 번째 결정적인 재앙을 통해 앞에서 일어났던 아홉 가지 재앙들의 뜻을 밝여주시기 때문이다.
-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도록 하셨지만 파라오는 계속 모른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한다. 완고한 파라오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재앙을 자초한 것이다.
-------------------------------------
* 다음 주 주제 : 이집트 탈출과 광야 유랑
* 읽어야 할 성경 : 탈출 12장 - 18장
* 성경 구절 쓰기 : 탈출 12,708 : 12,31-32 : 13,20-22 : 14,21-22 :
14,27-28 : 15,23-25 : 16.13-15
창세기에서 두 가지 역사, 태고사와 성조사를 배웠습니다. 이제 민족사를 배울 차례입니다.
새 성경에서는 ‘출애굽기’라고 하지 않고 ‘탈출기’라고 말합니다.
히브리 성서에서는 그 성서의 첫 단어를 갖고 이름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탈출기의 “첫 구절을 따서 ”브엘레 쉐모트“라고 불렀는데, ”브엘레 쉐모트“라고 하면 어떤 내용인지 모르니까 히브리어성서를 그리스어로 옮길 때 ‘탈출기’라고 지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했다는 뜻으로 출애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중국과 같이 출애굽기라고 써왔는데, 주교회의 새 성경에서는 그리스 원어대로 ‘탈출기’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탈출기의 주요내용은 한 개인, 한 집안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해 왔는데 하느님께서 구원하셔서 이집트로부터 구출해주시고, 계약을 맺어 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체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됩니다. 그 새로운 탄생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제가 편의상 4가지 부분으로 분류했습니다.
- 제 1부 : 1장-11장 - 모세와 이집트 탈출 소명
- 제 2부 : 12장-18장 - 이집트 탈출과 광야 유랑
- 제 3부 : 19장-24장 - 시나이 계약과 율법 수여
- 제 4부 : 25장-40장 - 결약의 궤와 거룩한 장막
4부는 후에 이스라엘인들이 제정한 율법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하기로 하고, 3,4부를 묶어서 한 시간동안 공부하기로 하고, 앞으로 세 시간 동안 출애굽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탈출기는 야곱의 자손 열 두 아들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이 현재 이집트에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백성들과 무관하지 않고, 같은 하느님이 돌보아 주셨고, 그 돌보아주심은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결과를 탈출기에서 간략하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식을 많이 낳고 늘어만 갔다. 그들은 번성하고 더욱 더 강해졌다. 그리하여 그 땅이 이스라엘 자손들로 가득 찼다.”(탈출 1,7)
처음에 야곱 일가가 이집트로 갈 때에는 숫자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야곱일가가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수가 불어났습니다. 하느님이 야곱에게 해 주신 두 가지의 약속 중 하나인 ‘자손들을 번성케 해주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손들을 하늘의 별보다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가득찰 정도로 수가 불어났습니다.
야곱 일가가 이집트에 들어가서 살게 된 때를 기원전 1700년경이라고 봅니다. 원래의 이집트는 파라오의 왕권이 강력한 국가였는데, 기원전 1700년 경 무렵은 그 왕권이 일시적으로 쇠퇴할 때였습니다. 당시는 힛소스(?)족이 왕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힛소스 족은 아시아지역에서 온 다른 이방인들입니다. 힛소스 족들이 이집트에 들어가서 이집트 왕조를 무너뜨리고 힛소스 족 왕조를 세웠습니다. (몽골족이 청나라를 세웠듯이) 요셉이 파라오에 의해 재상으로까지 발탁되었던 것은 외국인의 지배체제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외국인이 나라를 다스리니 외국인들을 폭넓게 인재를 등용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요셉이 재상노릇을 할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이었습니다.
힛소스 족의 통치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556년에 이집트인들이 힛소스족 왕조를 물리치고 다시 독자적인 정권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정치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개 고센지방에서 머물러 살면서.약 400년, 430년쯤 살았습니다. 430년을 사는 동안 이집트 정세도 바뀌었습니다. 예전의 외국인 통치시대가 끝나고 이집트 고유민족의 왕조로 교체된 것입니다. 새로운 왕이 들어선 것에 대해 성경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탈출 1,8)
요셉은 이집트가 7년 풍작, 7년 가뭄을 겪을 때 현명하게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고, 이집트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재상이 되어 이집트를 그 인근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400년 이상 지나니 이집트인들은 요셉에 대해 기억하지 않습니다. (내가 회사 다닐 때, 윗사람이 바뀌면 윗사람은 내가 어떻게 산 줄 모르기 때문에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고 인정 안할 수도 있습니다. ) 출애굽이 일어난 때는 대개 라메세스 2세가 통치하던 때라고 하는데, 라메세스 2세는 기원전1290부터 1224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렸습니다. 출애급 사건은 기원전 1250년 경에 있었던 일로 추정됩니다.
이집트인 파라오가 정권을 잡고 보니, 이집트인의 나라인지 이스라엘인의 나라인지 모를 정도로 이스라엘인들의 수가 불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라오가 이렇게 말합니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탈출 1,9-10) 이집트는 강력한 왕권을 가졌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아프리카와 중동지방을 정복할 수 있는 강력한 나라였지만 힛소스 족에게 정권을 빼앗긴 적도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그만큼 외국의 침략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 나중에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였습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외국의 군대를 잘 막아야 하고, 내부의 세력을 잘 단속해야 합니다. 내부에 외국과의 동조세력이 있으면 안됩니다. 간첩을 잡는 이유는 간첩들이 나라 내부를 속속들이 적에게 알려줌으로써 우리 안보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국인들이므로 다른 나라에서 침입해올 때 내부에서 호응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이집트 안에서 숫자가 제일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손을 잡으면 이집트를 정복하기 쉬워질 테니까요.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죽였습니다. 지진이 자연재해임에도 불고하고 그런 난리가 나면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부터 의심하게 됩니다. )파라오로서는 외국침략을 대비하고, 적과 내통할 수 있는 세력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이집트의 파라오는 거대한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신전, 왕궁,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을 짓는, 대규모 공사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파라오에게는 이스라엘인들이 간첩노릇도 못하게 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최고의 해결책이 이방인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탈출 1, 11)
우리가 어떤 사람을 데리고 함께 일을 하는데, 내 수하였거나 말을 잘 들을 때는 이쁩니다. 그래서 잘해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점점 커져서 자기와 대등하거나 자기 위로 올라서려하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상대가 별 볼일 없을 때는 동정도 하지만 점점 커가면 위협을 느끼고, 자기보다 잘되면 미워하고 증오하고 어떻게든 해치려고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개인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우파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우파정권이 들어선 이후 외국 이민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 외국인이 들어와 일을 해주니, 프랑스인들은 험한 일을 안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이 너무 많아져서 본국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동정도 했지만 이제는 싫어하고 규제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도 이민법이 새로 개정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이민사회인데도, 라틴 계통, 아시아 계통의 이민들이 많아지니 위협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3 - D 업종에 일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동남아, 중국 사람들이 일하러 왔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많아지니 우리도 벌써 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탈출 1,12)
파라오가 견디지 못하고 이스라엘인들을 더 가혹하게 대합니다.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 쓰게 만들었다.”(탈출 1,13)
이집트는 대건축물들을 세우는데 벽돌을 사용하는 민족입니다. 그 건축물이 오래 갑니다. 흙벽돌을 만드는 일은 엄청나게 고된 작업입니다. 지금도 이집트에서는 흙벽돌로 집을 짓습니다.
파라오가 아무리 혹독하게 일을 시켜도 이스라엘인의 인구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라오는 결정적인 극악한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탈출 1,17)
히브리 산파들이 히브리인들의 해산을 도와주었을 겁니다. 파라오가 히브리 산파들에게 생명을 해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라는 명령을 이미 받고 있습니다. 산파는 현실적으로 파라오의 명령을 들어야했지만, 하느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파라오의 계획 무산되었습니다. 파라오가 또 다시 명령합니다.
“히브리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 1, 22) 산파들이 말을 잘 안들으니까 아예 군대를 동원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로데 왕은 새로운 왕이 태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유아를 학살합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표징이 되고,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다’라는 이야기가 그런 맥락에서 나옵니다.
불어난 이스라엘백성이 노예생활에 빠져있는데다가, 이제는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절대절명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태어납니다. 모세의 탄생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엄마는 모세를 왕골상자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놓습니다. 우연히 파라오의 딸, 공주의 손으로 건져집니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탈출 2, 10)
공주가 모세에게 이름을 붙여주었고, 공주가 이집트인이니 이집트식으로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이집트식으로 ‘모세’라는 뜻은, ‘누구 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파라오 ‘라메세스’ 는 ‘라’와 ‘모세’를 합친 말입니다. ‘라’는 이스라엘의 최고신의 이름입니다. 파라오가 자신을 신으로 자처했기 때문에 ‘신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입니다.
후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을 쓰면서 자기들의 가장 위대한 조상이 이집트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안중근 의사가 일본식 이름을 가졌다면 좋지 않게 생각했겠듯이..)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을 쓸 때는 이집트식 이름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뜻을 찾아 썼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어로 마샤(Mashah) 라는 단어와 비슷했습니다. ‘마샤’라는 말은 ‘건져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건져내다’ 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모세’다‘ 라고 쓴 것입니다. 모세는 강에서 건져내졌지만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건져내는 사람이 됩니다.
파라오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씨를 말리려고 했는데, 정작 그 이스라엘인 아들을 왕궁에서 키우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공주가 모세를 양자로 삼았으니까 당연히 모세는 왕자 교육을 받고 자라게 됩니다. 당시 이집트는 과학, 군사학, 건축, 경제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던 나라입니다. 모세가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덕택으로 법률을 잘 알고 지도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가 될 수 있었고, 전쟁시에는 군사지도자도 되었고, 장막, 성전를 지을 때 필요한 건축 기술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모세가 파라오한테서 배우게 된 것입니다. 파라오 자신은 이스라엘인들을 말살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약속을 뭉개려고 했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그런 파라오를 통해서조차 인류구원사업을 이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해야합니다. 왜 이렇게 일이 꼬이나 하고 불평만 할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그 고통을 통해서 어떻게 하느님의 도구로 살아갈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당금질을 받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모세도 성년이 되니 자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모세가 파라오의 왕궁에서 살았지만 자기 가 노예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이집트인이 이스라엘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울컥해서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 묻어버립니다. 그 다음 날 나가니 동족끼리 싸워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리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왜 동족끼리 �리느냐고 물으니 때린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하고 대꾸하였다.“ (탈출 2,14)
모세는 실패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인들의 억압을 받는 동족을 구하기 위해서 쓴 방법은 폭력이고 살인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큰 잘못이 있습니다. 모세가 아직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가 자기 민족을 구하는 방법을 하느님께 묻기 전에 자기 힘자랑부터 한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섭리가 있어야 되는데, 하느님의 뜻을 묻기 전에 힘자랑부터 한 것은 잘못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인들을 때려죽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실패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인을 때려 죽인 일이 소문이 나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고 어떤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탈출 2장 15절)
이집트 동쪽으로 가면 시나이 반도가 있고, 오른 쪽에 사우디 아라비아가 있습니다. 미디안 지방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한 귀퉁이쯤 되는 곳입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석유로 유명하고, 석유는 사막에서 나옵니다. 미디안은 사막, 광야지역입니다. 광야는 물이 부족하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위험한 지역입니다.
광야에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살아가려면 하느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에서의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살피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나오게 하고 가나안으로 보내실 때도 그냥 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을 헤매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의 훈련법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서 생활하고, 그래서 완성된 인간이 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았다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쉽게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못 기대하여 기도발이 안선다고 생각되면 무당을 찾아갑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살았고, 거기서 장가도 들었습니다. 그 동안 모세를 핍박했던 파라오가 죽었습니다. 새 파라오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룹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집트 임금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다.”(탈출 2,23)
하느님이 참 무심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무심하신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안 도와주신 게 아닙니다. 그동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사는 동안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잘 사는 동안에는 쉽게 이집트신들을 숭배하는 유혹에 넘어가고, 하느님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서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붙들고 매달릴 것이 조상들의 하느님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억압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핍박받는 사람들 구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스스로 무엇이 억압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구원해줄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내가 생명이 소중하고, 자유가 소중하고, 하느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하느님의 도움의 손길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탈출 2,24)
하느님은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셔서 민족을 크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민족이 억압을 받고 있으니, 이스라엘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다주는 남은 한 가지의 약속을 지키실 차례가 된 것입니다. 그 약속을 들어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나가는 이야기가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막에서 40년 살던 모세는 양떼를 몰고 호렙산(=시나이산)을 갔는데, 거기서 신비체험을 합니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 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탈줄 3,2)
떨기나무는 개나리처럼 줄기와 가지가 구분이 안되는 나무입니다. 불은 성경에서 하느님 현존의 표징입니다. 하느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불, 연기로 묘사했습니다. 하느님 체험은 신비체험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고, 불같은 표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은 신비체험을 하면 먼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모세가 두려워하니.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탈출 3,10)
하느님은 참 엉뚱하십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도망 나와 사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는 파라오한테 가서 백성들을 끌고 나오라는 엄청난 명령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명을 주실 때도, 느닷없이 당신 약속 하나 믿고 친척과 고향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분부하신 것이 “믿음에의 출발”을 시키신 것이라면, 모세에게 분부하신 것은 “사명에의 출발”을 시키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믿음’에 더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라는 역할’이 추가되었습니다.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사명에의 출발”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니 모세가 기가 막혀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탈출 3,11)
하느님이 어떤 명령을 하시면 대부분 못하겠다고 물러납니다. 앞으로 예언자들이 소명 받을 때에도 그렇게 물러납니다. 그것을 ‘소명양식’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일을 시킬 때, 인간이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겸손하게 사양하는 것이 ‘소명양식’입니다. 하느님은 소명 받을 사람이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 느닷없이 명령하십니다. 실제로 미리 준비하고 있는 상태에서 명령하시지 않으십니다. 흔히 우리 사정은 개의치도 않고 소명을 주십니다.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파라오는 죽었지만 모세가 파라오에게 가는 것은 여전히 목숨이 위험한 일입니다. 모세가 핑계를 대니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탈출 3,12)
하느님이 누구에게 일을 시키실 때는 혼자서 재주껏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떤 소명을 수행하든지, 내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심부름으로 간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답답하니까 파라오나 동족들한테 내가 하느님 소명 받고 왔다고 말하면 하느님을 누구라고 해야하는지 묻습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 댁에 가서 뭣 좀 빌려와라.”라고 심부름을 시키시면, 우리는 그 댁으로 가서 “아버님이 뭐 좀 빌려달라 하시대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댁에서는 “니 아버지 이름이 뭐냐?”라고 묻고 “응, 누구 아들이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도 “ 그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누가 보냈다고 이야기 할까요? ”라고 하느님께 묻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 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탈출 3,13)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하고 대답하셨다.” (탈출 3,14)
원문을 보면 “엘로힘께서 모세에게 ”나는 야훼다“ 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엘로힘’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이고, 절대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야훼’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입니다. 보통 번역할 때, ‘엘로힘’을 ‘하느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 ‘야훼 하느님’이라고 나올 때는 원문에 ‘야훼 엘로힘께서’ 라고 쓰여진 것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야훼’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사용하던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야훼’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개신교 학자 5분과 카톨릭 학자 5분이 같이 번역했습니다. 열 분 모두 만장일치로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학자들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는데, 공동번역 성서가 나오고 나니, 일선 목사님들이 하느님 이름을 엉터리로 썼다고 공동번역을 쓰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원래 자음만 있습니다. 하느님 이름도 자음만으로 쓰여졌습니다. 히브리어를 영어식으로 설명하자면, yhwh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관이 딱 한 번 하느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것도 성전 지성소 안에서 한 번 불렀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를 잃고, 대제관도 없어졌고, 히브리어는 잊혀졌습니다.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어서 그리스어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하느님 이름을 모르니까 ‘아도나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16세기?에 한 학자가 하느님의 이름을 연구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 yhwh ’라고 되어있던 것에 ‘아도나이’에서의 모음만 따서 붙여보았습니다. a o a,를 붙여서 ‘여호아’라고 불렀고, 나중에 e o a로 변형하여 붙여서 ‘예호바’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후에 성서학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합성어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그대로, ‘나는 있는 나다’, 라는 뜻에 맞는 히브리어를 찾아보니 ‘야훼’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라고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야훼’라는 이름이 맞다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호와보다는 덜 엉터리입니다.
모세가 자기 능력을 의심하니까 하느님께서 세 가지 능력을 주십니다.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뱀이 되고, 다시 잡으면 도로 지팡이가 되는 것, 손이 나병에 걸려 하얗게 되었다가 다시 원래도 돌아오는 것, 나일 강에서 물을 퍼다가 마른 땅에 부으면 피로 변하는 것,..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면서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인 주님이 너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그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4, 5)
지팡이는 파라오의 권위의 상징입니다. 주교님들의 지팡이도 권위, 목자의 상징입니다. 뱀은 이집트에서 신성시했던 동물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은 이집트 신, 뱀을 지팡이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전에는 나병이 걸리면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서 병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병이 나았다면, 그 저주가 풀리고 축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저주와 축복을 줄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일강의 물이 피로 변했다는 말은 이집트의 자연, 모든 것의 지배를 파라오가 아니라 하느님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세는 하느님이 보내셨으니,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리시려고 모세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모세는 물러나려 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탈출 4,10)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무슨 일을 부탁하면 못한다고, 바쁘다고 사양합니다. 대개 하기 싫어서 발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나 지도자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겸손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 능력이 많고 자질이 뛰어나서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제가 지금 이자리에서 성경을 강의한다고 해도, 제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도구로 쓰시기 때문에 감히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지도 못한 말이 쏟아져 나오고, 적절한 곳에 적절한 비유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김양진, 다미아노가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대변인으로 아론을 묶어주십니다.
“너는 그에게 일러, 그가 해야 할 말을 그 입에 담아 주어라. 네가 말할 때나 그가 말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 주겠다.”(탈출 4,15)
하느님은 걱정하지 말라. 말할 사람을 붙여주마고 하십니다.
“너는 그의 입이 되고, 너는 그의 하느님이 되어 줄 것이다.”(탈출 4,16)
소명 받은 자에게는 하느님은 분명히 권능을 주십니다.
겸손한 자세로 그 일을 받아들이고, 내 재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일을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합니다. (본당 신부님이 무슨 일을 부탁하면, 못하기는 하지만, 하느님께서 저에게 힘을 주실 것을 믿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세요.)
모세가 파라오에게 가서 말을 전합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게 하여라.”(탈출 5,1)
“내 백성들이 나를 섬기게 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파라오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파라오를 섬기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라고 하니 파라오의 자존심이 상합니다.
“나는 그 주님을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이스라엘을 내보내지도 않겠다.”(탈출 5,2)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고, 하느님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합니다.
이후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세와 파라오의 싸움이 아니라, 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와, 야훼를 거부하는 파라오와의 싸움입니다.
열 가지 재앙이 내려 옴,
(제가 갖고 있는 음성파일 자료가 여기서 끝납니다. 제가 서울 병원 가느라고 강의를 듣지 못해서 노트정리한 것도 없습니다.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서 100%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 가 표시된 부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정정할 부분이 있으면 답글로 적어주세요. 뒷부분은 프린트물 다시 보시면서 마무리하시는 수밖에 없겠네요. 열공! )
====================================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맷돌 앞에 앉은 여종의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들이 모조리 죽을 것이다.” (탈출 11,5)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에서 이 모든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기 땅에서 내보내지 않았다.”(탈출 11,10)
'성경, 지혜의 샘 > 김양진 선생님의 성경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시나이 계약과 율법 수여 (0) | 2008.08.28 |
---|---|
11. 이집트 탈출과 광야 유랑 (0) | 2008.08.28 |
9. 야곱과 그 후손들의 이집트 정착 (0) | 2008.08.28 |
8.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 아브라함 (0) | 2008.08.28 |
7. 아브라함의 선택과 소명 (0) | 2008.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