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내가 너에게 '의지'를 주었다.

김레지나 2008. 8. 28. 16:40

  

절벽 가까이로 부르셔서 (로버트 슐러)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겨우 절벽에 발을 붙이고 서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너에게 ‘의지’를 주었다.”

 

2006년 2월 23일 목요일

 

의사선생님들이 환한 표정으로 들어오셨다.

“림프액 통도 뽑았으니 오늘 퇴원하세요.”

“네? 아직 철침도 안 뽑았는데요.”

“오른쪽 림프절 열두 개 들어낸 것 중에 전이된 게 한 개 있었어요. 림프절 전이가 됐으니까 2기입니다. 왼쪽은 0기구요.”

엄마는 2기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눈물까지 흘리셨다.

“선생님, 그럼 뼈에는 이상이 없을까요?”

“네. 결과가 생각보다 아주 잘 나온 거예요.”

(유방암의 경우에는 뼈조직 검사를 거의 하지 않고 시차를 두고 재검을 해서 뼈 전이 여부를 판단한다. 내 경우에는 그 후 수년 동안 이상 부위가 그대로 있기도 하고 줄어든 부분도 있고 새로 생긴 부분도 있었다. 아는 의사 말로는 4기였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엄마는 뼈검사 결과 전이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하셨다.^^)

수술이야 크게 했지만 수술결과는 림프절 전이가 안 되어서 항암을 하지 않거나 덜 하기를 기대했었는데, 실망스러웠다.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네. 고마워요. 선생님 덕에 회복도 빠르네요.”

엄마는 흥분된 목소리도 율리아한테 전화를 하셨다

“율리아도 너무 좋아서 울려고 한다. 다행이라고. 정말 기분 좋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혈액종양 내과 선생님이 병실에 들르셨다.

“아직 철침은 다 안 뽑으셨네요. 항암은 3주 간격으로 8번 받아야 됩니다.”

“예? 그렇게 많이요? 6번만 받으면 안 될까요?”

“림프절 전이가 되었으니 8번 하시는 게 낫겠습니다.”

나는 그 “낫겠습니다”라는 말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일단 항암치료를 시작한 후에 줄여달라고 졸라야겠다. 의사선생님이 초면인데다 웃지도 않으셔서 오늘은 말 못하겠다.’

 

하느님께 삐치지 않게만 도와달라고 기도했었는데, 항암을 8번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하느님께 삐쳐버렸다. 두 번만 줄여도 두 달 가까이 줄어드는데. 그렇게나 오래 아이들과 헤어져서 어떻게 살라고. 가족들은 좋아서 싱글벙글인데, 나는 심난해서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되지 않았다.

 

수술부위의 철침은 하나 건너 하나씩만 펜치로 끊어 뽑아주었다. 림프액은 외래로 와서 주사바늘로 뽑아낸다고 한다.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데 퇴원하라 한다고 투덜거리며 택시를 타고 율리아 집으로 갔다.

 

 

2006년 2월 24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견딜만한지 검사한다고 해서 채혈을 했다.

(제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좋겠다. 수리 수리 마수리.)

심장 초음파를 하기위해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팔도 움직일 수가 없고 숨을 제대로 쉬기도 힘들었다. 남편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아야 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서 내 차례가 되어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옆으로 몸을 세워보라고 했다. 다행히 부분절제 한 쪽이 아래로 가는 자세여서 참을 만했다.

“저기요. 이 초음파 결과로 심장기능이 안 좋으면 항암 못 받는 거예요?”

간호사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싸!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심장 상태가 안 좋게 나와서 항암 안 받았으면 좋겠다. 항암약이 독하다고 하니 조금만 이상해도 치료를 못 받을 거야. 제발 기능이 안 좋기를... (긴장).....하느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도와주세요. (식은 땀))

 

간호사가 숨을 쉬어라 참아라 주문하면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무슨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지? 이상이 있는가보다. 아싸!)

잠시 후에 의사선생님이 오셨다. 나는 너무 긴장되어서 눈을 꼭 감고 뜨지 못했다.

한참 동안 검사를 하더니 물어 보셨다.

“지금까지 무슨 이상이 있었나요?”

(기적은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려나보다.)

“네, 몇 년 전에 건강검진 할 때 심장에 잡음이 조금 있다고 샌다고 하던데요.”

 

의사선생님은 여기저기를 한참동안 보시더니,

“계단 올라가면 숨차고 그러세요?”

(야호, 뭔가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하다.)

“네. 숨이 차지요.”

(에고, 긴장돼서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다. 숨이 차기는, 학교 3층까지 날마다 올라다니는데ㅋㅋ. 최대한 아픈 척 해야지.)

“계단을 한 칸만 올라가도 숨이 차세요?”

(한 칸만? 흐미, 계단 한 칸 올라가도 숨이 찬 사람이 어디 있다고. 눈을 감고 있는데 뭘 보고 내가 거짓말하는 줄 아셨을까. 귀신같네. 그렇게 묻는 걸 보면 무슨 이상이 발견된 것도 같고.)

“아니요. 계단 한 칸 올라가면 숨차지는 않는데요. 여러 칸 올라가면 힘든데요.”

나는 거짓말을 해놓고 조마조마 반응을 기다렸다. 의사선생님은 여기저기 살펴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네, 다 됐습니다.”

“예? 제 심장 괜찮은가요? 이상 없어요? 항암 받아도 되겠어요?”

“네, 건강하십니다.”

(맙소사.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항암 횟수라도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나는 울상이 되어서 검사실 밖으로 나왔다. 엄마와 남편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이상 없다고 하든?”

“예. 이상 없다는데요.”

두 사람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항암주사만 잘 견디면 되겠다. 나을 수 있겠어.”

(하여간 내 맘도 모르고 좋아하시기는)

나는 속이 상했지만 미소를 지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얼굴만 더 이그러질 뿐이었다.

 

 

림프절 절제를 해서 꾸준히 팔운동을 해야 했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팔이 더 올라가면 좋으련만, 근육이 위축되었는지 통증은 더하고, 불편하지 않은 쪽으로만 힘이 들어가서 멀쩡했던 근육들까지 아팠다. 빈혈 때문인지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든데다가 수술 부위가 아파서 잠시 산책하기도 힘들었다.

‘기어이 항암치료를 여덟 번이나 받게 되었구나. 혈관이 약해서 가슴에 정맥포트를 꼽고 지내라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몸이 약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부작용이 더 심할 텐데. 우리 애들은 칠 개월을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느님은 더 지독한 고통을 겪게 하실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에게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지, 내 기도만으로는 안 되겠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이 많았지만, 아이들과 상당한 기간 동안 떨어져 지낼 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힘들어서 기도도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은 수술 전에는 괴로운 마음을 조금만 거들어주셔도 될 것을 엄청나게 기쁜 상태로 만드셔서 미친 사람처럼 헤죽거리게 만드시더니, 지금은 왜 안 도와주실까?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그때의 백분의 일만 도와주셔도 견딜 만할 텐데. 이렇게 괴로워서 여러 달을 어떻게 버티라고. 조금만 거들어주실 일이지.’

 

 

 

남편과 엄마가 장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나 혼자 실컷 울 수 있겠다 싶어서 반가웠다.

책장에서 박완서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란 책과 천상병님의 <요놈, 요놈, 요 이쁜 놈>이라는 책이 보였다. 우선 궁금해져서 대충 읽고 난 후에 울기로 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님이 아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인 것 같았다. 드문드문 펼쳐보며 엉엉 울었다. 천상병님의 ‘아주 점잖은 의사선생님이’라는 시는 너무 천진해서 소리내어 웃었다. 문득 나도 요즈음의 이야기를 천상병님처럼 솔직하게 써낼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읽고 싶었지만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책을 덮었다.

 

 

엄마와 남편이 돌아왔다. 울상을 하고 얼굴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서 혼자 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좀 덜 힘들게 해주실 거야. 제발이지 그렇게 해주시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기도가 끝나도 괴로운 마음은 여전했다.

‘수술 전에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조금만 감정을 거들어주셨어도 될 일을 미친 사람처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셨으면서, 왜 이렇게 힘들도록 내버려두실까?’

깨어서 생각하는 일 분 일 초까지 괴로웠다.

 

2월 25일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물이 나서 출근하는 동생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 아침밥을 꾸역꾸역 먹고 처방대로 팔운동을 열 번씩 했다. 잠시도 깨어있기가 싫어서 밥 먹은 후의 포만감을 이용해서 억지로 잤다.

한두 시간을 잤을까. 비틀비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변기에 막 앉았는데 내 마음으로, 아니 온 몸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에게 의지를 주었다. 그것도 내가 준 것이다”

 

 

놀랍게도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스쳤다. 병원에서 수술 후 교육을 받을 때 보았던 환우들의 차분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야 하느님 덕에 이렇게 웃고 있지만, 저 사람들 다 하느님을 믿는 건 아닐 텐데, 어쩜 저렇게 밝은 표정일 수 있을까?'하고 잠시 놀라워했던 기억이 났다.

‘아, 하느님께서 나만 특별히 사랑하시는 게 아니구나. 고통을 이겨나갈 의지를 부어서 만든 한 사람 한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는구나.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셨구나. 그런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견디라고?’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듣게 된 엄청난 충격과, 하느님께서 우리를 홀로 설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는 깨달음에 대한 감격과, 앞으로는 내 의지로 이겨내 보라는 주문에 대한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들어 울음이 터졌다.

‘내게 주신 기쁨들은 내가 찡얼대는 게 불쌍해서 주신 건가? 이렇게 괴로운데 어떻게 내 의지로 버티라고? 고통을 제대로 겪어보라고? 하느님, 너무 일러요. 조금만 더 업어주시지. 벌써 혼자 서라니요? 다시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안 주실 것 같아요. 저만 좀 특별히 챙겨주시면 안 될까요? 싫어요. 무섭다구요.’

가족들이 들을까봐 샤워기를 틀고 꺼억꺼억 울었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으니, 두려움은 희미해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똑같은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느님에 대한 고마움이 따스한 빛이 되어 내 마음을 환하게 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똑같은 빛을 주고 계신다는 당연한 사실을 섭섭해 하다니.

 

 

성당에 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저 고약한 인상의 아줌마, 저 못나 보이는 학생, 모두 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만큼의 의지를 갖고 창조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가?’ 하느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사랑하시니, 우리 모두는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성체조배를 하면서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신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말씀드렸다. 과분한 은총을 입은 것에 대한 감사만을 온전히 드려도 모자랄 텐데, 자신 없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남아있어 훌쩍이고 있는 것이 정말 죄송스러웠다.

 

성당을 나오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좀 전에 보았던 인상 고약한 사람이 그지없이 훌륭하게 보였다. 모든 게 참으로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부식가게에서 다듬어지는 고등어를 찬찬히 지켜보면서도 ‘우리를 위해 창조된 귀한 피조물이구나.’하고 흐뭇해했다.

 

집에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하느님이 기쁜 마음을 더 이상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아 힘들다고. 기도는 부탁하지 않았다. 주시는 대로 다 겪어 볼 작정이었다. 엄마가 컴퓨터 옆으로 와서 내 눈치를 보셨다.

“무슨 일 있었냐?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처럼 보인다. 어제 그제 죽을상을 짓고 있더니만”

“하느님이 이제 그만 업어 주시겠대요. 나 혼자 서래요.”

대답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으앙~”하고 울음이 터졌기 때문이다.

“언제 그러셨는데?”

“오늘 아침에요”

“너 그거 오버한 거다. 하느님은 너를 끝까지 업어주시지. 니가 잘못 이해한 거야”

물론 그러시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그만 조르라잖아요.”

 

주님께서는 부족하기만한 내게 사랑을 일러주셨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그리고 ‘믿는 자’가 되어라.“

그래서 세상에 외칠 수 있게 하셨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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