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코 깨진 성모님께

김레지나 2008. 8. 28. 16:45

코 깨진 성모님께

 

 

2006년 2월 28일

 

1차 항암주사를 맞고 S 병원의 협력병원에 입원했다. 눈을 뜨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온 몸이 한 달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피곤해서 침대에서 내려올 수도 없었다. 진토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오후에 남동생과 크게 싸운 후 부끄러운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하다가 갑자기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이 느껴져서 “하느님, 사랑합니다.”하고 수십 번을 말씀드렸다. 하느님께서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황홀한 사랑을 강제로 느끼게 하셔서 사랑 고백을 받아내신 것 같았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내 마음의 백만 분의 일도 표현이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2006년 3월 18일

 

항암 후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집에 돌아와 루카와 유지니오와 함께 지내니 행복했다. 매일 운동 대신 막춤을 추는데, 엉터리 시상이 반짝 떠올라 장난삼아 쓰게 되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환우카페에 올렸다.

      

 

코 깨진 성모님께

 

팔도 제법 움직이고

오랜만에 집에 오니

기분이 짱이에요.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막춤을 추었지요.

 

거실 제일 좋은 자리에

웃고 계신 성모님이 보였어요.

수술 받느라 집을 비운 사이

아빠가 찾아서 내놓으셨네요.

10년이나 골방에 넣어 두고

잊고 살았던 성모님이에요.

 

어릴 때 성모님을 쳐다보면

표정이 그날그날 달랐어요.

어느 날은 웃으시고

다른 날은 화내시고

가끔은 슬퍼 보였지요.

잘못한 일이 있으면

슬슬 눈치를 살폈지요.

 

으쌰으쌰 흔들다가

성모님 얼굴을 보았어요.

‘어쩌나, 성모님 코가 깨졌네.‘

‘이제야 알아서 죄송해요.’

 

코 깨진 성모님은

살피지 않았다고 화내지 않으셔요.

지금은 분명 웃고 계셔요.

춤추며 즐거워하는 저를 보시고

기분이 좋으신 게지요.

 

어때요? 성모님?

제가 행복하니 좋으시지요?

우리 같이 춤춰요.

쑥스러우시면 구경만 하시든지

대신 귀엽게 윙크해드릴게요.

코 깨진 성모님! ‘찡긋’

우쭐우쭐 흔들다가

마주치면 ‘찌잉긋’

 

'신앙 고백 > 투병일기-2006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환자들은  (0) 2008.08.28
환자를 위로할 때는  (0) 2008.08.28
나는 너를 나의 신부로 맞으리라.  (0) 2008.08.28
내가 너에게 '의지'를 주었다.  (0) 2008.08.28
항암을 피하는 방법???  (0) 200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