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중에 쓴 글입니다.)
00회원 여러분!
헤헤헤. 또 제 글 클릭하셨어요? 늘 너무 길어서 클릭하시기가 망설여지시지요? 제목이 재미없을 것 같으면 조회수가 확 떨어지고, 글이 길면 읽다가 그만들 두시는지 답글이 적더라구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제목을 잘 정해서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이번에도 제 작전에 걸려 드셨어용. 벌써 화면 오른쪽 바 내려 보셨지요? 이번 건 또 얼마나 긴가하구요. 헤헤...이번 건 별로 안 길어요. 끝까지 힘내서 읽어보세요. 도전! 아자!
수술 후 퇴원하는 날 ( 2월 22일 )
의사선생님들이 회진을 오셨다.
“림프액 통도 뽑았으니 오늘 퇴원하세요.”
“네? 아직 철침도 안 뽑았는데요.”
“림프절 12개 들어낸 것 중에 전이된 게 있었어요. 림프절 전이가 됐으니까 2기입니다.”
엄마가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물어 보셨다.
“선생님, 그럼 뼈에는 이상이 없을까요?”
“네”
늘 웃으시는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다.
“결과가 생각보다 아주 잘 나온 거예요.”
(예상을 얼마나 험하게 했길래 저리 웃으실까? “뼈사진이 이상이 있는데 뼈로 전이가 되었으면 말기이구요,”라고 말 할 때도 웃으시더니만.. 림프절은 12개나 들어내고..항암 끝나고 뼈사진 찍어서 비교해 봐야 최종진단이 나오겠지....)
그랬지만 마음 편하게 잘 지냈다는 인사는 해야할 것 같아서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네. 고마워요. 의사선생님 덕에 회복도 빠르네요.”
(좋지도 않은데 웃기 힘드네)
수술은 한쪽 전절제에 림프절을 다 들어내는 수술을 했지만 조직검사 결과 림프절 전이가 하나도 안 되어서 항암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수술을 크게 하는 대신 항암치료는 안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었다. 엄마는 (일단) 2기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눈물까지 흘리셨다. 남편도 싱글 벙글 기뻐하였다.
(도대체 뭐가 저리 기쁘실까? 나는 2기라는 결과도 속상하구만.. 항암치료를 피할 수 없게 되었잖은가?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하느님은 내 기도도 안 들어 주시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구나. 엄마랑 남편이 저리 좋아하니 나도 좋은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
“레지나야, 다행이다. 정말로 기쁘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엄마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흥분된 목소리도 동생한테 전화를 하셨다.
“율리아도 너무 좋아서 울려고 한다. 다행이라고..”
(치, 다들 너무하네. 항암 받을 일이 심난해 죽겠구만....내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고..)
퇴원하기 전에 혈액종양 내과 임선생님이 병실에 들르셨다.
“아직 철침은 다 안 뽑으셨네요. 항암은 앞으로 8번 받아야 됩니다.”
“예? 그렇게 많이요? 6번만 받으면 안 될까요? 전에 병원에서 6번 할 거라고 했는데...”
(치, 3기말 환자도 8번이던데, 뭐야. 나도 똑같이 8번 받아야 되나?)
“림프절 전이가 되었으니 8번 하시는 게 낫겠습니다.”
나는 그 “낫겠습니다”라는 말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6번 해도 좋지만 8번 하면 더 낫다는 말이 아닐까? 그래, 항암치료 받으면서 덜 받게 해 달라고 조르면 들어주실 것도 같다. 의사선생님이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오늘은 못 조르겠다. 초면인데다 웃지도 않으시고...)
심장초음파 하는 날 (2월 24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견딜만한지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채혈을 했다.
(제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좋겠다. 수리 수리 마수리...)
심장 초음파를 하기 위해 검사복으로 갈아입었다. 팔도 아프고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옷을 혼자서 못 갈아입으니 남편이 도와줘야 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서 내 차례가 되어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 한 분이 들어오셔서 옆으로 몸을 세워보라고 했다. 다행히 부분절제 한 쪽이 아래로 가는 자세여서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저기요. 이 초음파 결과로 심장기능이 안 좋으면 항암 못 받는 거예요? ”
간호사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싸!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심장이 지금은 좀 안 좋게 나와서 항암 안 받았으면 좋겠다. 항암약이 지독하다고 하니 조금만 이상해도 치료를 못 할 거야. 제발, 이상이 발견되기를... (긴장).....하느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도와주세요. (식은 땀))
간호사가 심장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사진을 많이 찍는 걸 보니 무슨 이상이 있어서 그런 건가? 아싸!)
잠시 후에 의사선생님이 오셨다. 나는 너무 긴장되어서 눈을 꼭 감고 뜨지 못했다.
역시나 한참 동안 사진을 다시 찍으시더니 물어 보셨다.
“지금까지 무슨 이상이 있었나요? ”
(기적은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려나 보다)
“네, 몇 년 전에 건강검진 할 때 심장이 조금 샌다고 잡음이 있다고 하던데요.”
의사선생님은 여기저기를 한참동안 보시더니 다시 물어보셨다.
“계단 올라가면 숨 차고 그러세요?”
(야호, 뭔가 이상이 있어 보이나 보다.)
나는 기대에 차서 말했다.
“네. 숨이 차지요.”
(애고, 긴장되서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다. 숨이 차기는.... 학교 3층까지 날마다 올라다녀도 숨이 차지는 않지, 다리만 좀 아플 뿐이지.ㅋㅋ 최대한 아픈 척 해야지.)
의사선생님이 또 물었다.
“계단을 한 칸만 올라가도 숨이 차세요? ”
(한칸만? 흐미, 의사선생님이 내 거짓말을 읽어버렸나 보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데 뭘 보고 내가 거짓말하는 줄 아셨을까. 귀신같네.. 정말.)
나는 그렇다고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지금 무슨 이상이 발견된 것도 같고, 내가 거짓말만 좀 더 하면 불합격판정을 받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계단 한 칸 올라가도 숨이 찬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니요. 계단 한 칸 올라가면 숨차지는 않는데요. 여러 칸 올라가면 힘든데요. ”
나는 거짓말을 해 놓고 조마조마 의사선생님의 반응을 기다렸다. 여기 저기 살펴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다.
“네, 다 됐습니다.”
“예? 제 심장 괜찮은가요? 이상 없어요? 항암 받아도 되겠어요? ”
“네, 건강하십니다.”
(맙소사. 그럴 리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럼 항암 횟수라도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나는 울상이 되어서 검사실 밖으로 나왔다. 엄마와 남편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너 이상 없다고 하든? ”
“예. 이상 없다는데요.”
내 대답에 두 사람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항암주사만 잘 견디면 되겠다. 나을 수 있겠어.”
(하여간 내 속도 모르고 좋아하시기는)
나는 속이 상했지만 미소를 지어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얼굴만 더 이그러질 뿐이었다.
( 마지막 희망?이 꺼진 그날 이후로 3일간 제가 전에 올린 ‘토마스의 고백’이란 글에 나왔듯이 무지막지하게 힘들었습니다. 어찌나 두렵고 실망스럽던지..)
결론 - 항암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잔꾀 부리지 말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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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1차 진찰할 때와 3차 진찰할 때 임선생님께 여쭤봤지요.
“저 항암 여섯 번만 하면 안 될까요? ”
그랬더니 임선생님께서
“항암주사 맞고 잘 견디신다고 해서 항암 주사 횟수가 조절되는 건 아닙니다. 오늘도 주사 맞고 가세요. ”
헤헤, 그렇게 해서 저 지금까지 4번 맞았습니다. 이제야 포기가 됩니다.
까짓 것, 여덟 번 다 맞아 버리자 라구요.
진작 받아들였으면 좀 덜 힘들었을 것도 같아요.
항암을 앞두고 있는 환우 여러분!
저처럼 잔머리 굴리려고 하지 마시고, 의사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하십시오. 준비 단계마다 기대하고 잔꾀 부려봐야 실망만 더 커집니다. 아셨지요? 고생스럽지만 시간이 가긴 가더라구요.
주위에서 보면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다 하지 않고 병원처방을 마음대로 줄여버리고 단식이다, 쑥뜸이다, 하다가 병을 키운 경우가 참 많대요. 단식해서 암세포를 굶겨 죽여야한다는 설도 있는데 단식을 3,4주씩 하고도 전이가 된 경우가 있더라구요. 체력이 약해져서 오히려 항암치료만 못 받게 되던데요. 그냥 평소처럼 잘 먹고, 운동 적당히 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치료를 거부하고 기도원 같은데 들어가는 것도 위험합니다. 기도원에 가야만 하느님이 낫게 해 주시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 섭리는 우리들 생활 속에 있어요. 의사선생님 처방대로 치료받으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요?
어제 제가 올린 ‘낫고 싶어요’라는 글에 한 분이 재밌는 답글을 적어 주셨어요.
“하느님이 정말 낫게 해 주신다면 나도 믿고 싶은데.....뭐 계약서 같은 건 없나요? 어떻게 얼마만큼 믿으면 낫게 해 주신다고,,,그러다가 더 혼난다구요? 그러면 취소할래요.”
그래서 제가 답글을 달았지요.
“....님 저보다 재미있으시네요. 호호..그러니까 그 계약서를 아직 안 주시더란 말입니다. 저도 앞으로 받으려고 애써봐야겠어요.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잘까요? 하느님은 좀 간이 작으신지 큰 표 안나게 도와주시더라구요. 살짜꿍. 좀 치사하신 것도 같고.”
그러고 나서, 저도 왜 하느님이 계약서를 안 주실까 궁금해졌지요. 생각해 보니 하느님으로서도 불가피한 일인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하느님을 엄청 믿으니까 하느님이 계약서 같은 표징을 주셨다고 가정해 보세요. 눈에 보이는 확실한 걸로 말이에요. 그럼 다른 믿는 이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다들 달라고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하느님이 공평하게 하신다고 믿는 사람들한테 계약서를 다 주신단 말이에요. 그럼 안 믿는 사람들이 가만 있겠어요?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게 아니라 계약서 받으려고 ‘하느님의 힘’만을 믿을 거 아니에요? 그럼 어쨌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모든 사람들한테 계약서를 주셔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럼 어찌 되겠어요? 생로병사의 스케줄을 잘 정해서 세상을 만드셨는데, 아플 사람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돼서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계약서를 받고 아픈 게 다 나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저승에 가 있는 영혼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불공평하게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만 그런 계약서를 주시느냐고 따질 거 아니에요? 자기네들 이승에서의 고통은 왜 있었냐고 하면서요..
아무리 힘센 하느님이지만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모두 다 들고 일어나면 어떻게 감당하시겠어요? 그러니까 계약서를 못 주시는 거지요. 한 장이라도 표나게 주셨다가는 겉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질 거예요.
어때요? 제 추측이 그럴듯하지요? 하느님은 엄청난 상황이 될까봐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실 때도 표 안나게 살짝 주시는 걸 거예요. 긴가 민가 하게요. (하지만 간이 좀 작으신 것 같기는 해요.)
제가 얼마 전에 성찬경님의 ‘은총을 내려 주시는 구나’라는 시를 올렸지요.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나게 내려 주시는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 중에
한 밤 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구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 주실 때도 있다.
무조건 무조건 애걸했더니
이 불쌍한 꼴이 눈에 띄신 모양이다.
얻어 맞아도 얻어 맞아도
그저 고맙다는 시늉만을 했더니 말이다.
시늉이건 참이건
느긋하게건 절체절명에서건
즉시 속속들이 다 아신다. 다 아신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이다.
벌거벗고 빌면 그만이다.
제가 이 시를 읽고 하느님이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울었단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고마워서 울 일이 아닌 것도 같네요. 표 안나게 주신다고 야속해서 울어야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 -야속하다 싶을만큼 묘하게? ----ㅋㅋ
00회원 여러분,
하느님은 웬만해서는 표나게 큰 기적은 안 주실 거예요. 제가 계약서 못 주시는 이유 말씀 드렸잖아요. 필시 그 때문에 ‘야속하다 싶을만큼 묘하게, 표 안나게’주시나 봐요. 확실한 약속 전달 못하는 하느님의 속내를 우리가 이해해 드려야지요.
참, 치료 거부하고 기도원에 가서 계약서 주시라고 조르지 마세요. 정해진 형식으로 표나게 주시지 않는다니까요. 그냥 병원치료 잘 받고 주어진 생활 속에서 즐겁게 지내세요. 별로 안 도와주시는 것 같이 도와주실 거예요. 치료 잘 받으면서 ‘낫고 싶어요’라고 기도하세요. 저도 그러는 중이예요. 양말 두고 잔다고 계약서 넣어 주실 것 같지는 않네요. 그죠?
그래도 혹시 계약서 받게 되시거든 제게도 꼭 알려 주세요. 혼자만 좋아하시지 말구요. ^^*
오늘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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