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아픈데 보고만 계신단 말이지.(수술받는 날, 2006.2.16)

김레지나 2008. 8. 28. 16:18

아픈데 보고만 계신단 말이지.

 

2006년 2월 16일

   오후 두 시쯤에 수술을 받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고, 작년부터는 유달리 더 힘들어했기 때문에 말기암일 거라 짐작하고 잔뜩 긴장하고 계셨다. 율리아는 친구 중에 갈비뼈를 긁어내고도 잘 사는 친구가 있다면서 위로했고, 남편은 엄마가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신다고 염려했다.

 

   보통 유방암은 수술장에서 감시림프절을 한두 개 검사해서 전이가 된 경우만 나머지 림프절들을 제거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다 들어내야 하는 모양이다.(나중에 들은 바로는 워낙 MRI 결과가 안 좋아서 보통 전절제보다도 더 심하게 근육층까지 건드리는 큰 수술이었다고 한다.) 림프절 절제 환자의 주의사항에서 읽은 ‘무거운 것 들지 말 것, 혈압 재지 말 것’ 등의 말들이 기억났다. 의사 선생님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영도 할 수 있을 거라 하시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고, 한동안 일상생활이 제한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다. 게다가 림프절을 들어낼 팔은 오른팔이었다. 칠판 글씨는 쓸 수 있을지, 살림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예상치 않은 선고에 속이 상했다. 말기가 아니기만을 바라시는 엄마는 재발방지를 위해 당연히 림프절 절제를 해야 한다면서 글씨야 왼손으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셨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수술계획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사실은 팔을 쓰는 데 별 지장이 없는데, 그때는 잘 모르고 겁을 먹었었다.)

   입원하기 전에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를 감각적으로 체험했던 터라 아주 평안하고 기쁜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지만 수술 범위가 커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하느님한테 삐쳐있어서 더욱 힘들었다. 나는 험한 상황은 아닐 거라고 괜히 기대하다가 마음이 더 괴롭게 되었다며 투덜거렸다. '에이, 기도하는 시간에 운동이나 할 걸‘

 

   어릴 적부터 참 많은 질병을 앓았다. 자주 토하고 얼굴 부었다. 자주 코피가 났고, 기관지도 좋지 않았다. 이 년 넘게 허리가 몹시 아파서 앉아있는 것도 세수하는 것도 힘들었다. 심한 알레르기 비염에 축농증, 액취증, 부끄러워서 어디다 말할 수도 없었던 치질, 치루, 화상, 4번의 수술, 등등. 병력을 회상하자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가까운 수년 동안은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정말로 감사하며 살았는데, 대체 고통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을 못살게 구실 작정으로 애초에 고통을 만드신 것이 아니냐고 하느님께 따지고 싶었다.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신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앞으로 나에게 더 험한 질병을 주실 지도 모르는 일이다.

 

   엄마가 병자성사를 주실 원목 신부님을 모시고 오셨다. 해맑은 인상의 신부님이 미소를 띠고 들어오셨다. 혹시나 구원의 계획에 합당하다면 기적적으로 낫게 해 주실 지도 모를 일이지만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성사를 받으면 심술난 마음이라도 좀 편해질까 싶어서 반가웠다.

   신부님께서 기도문을 외우시면서 성수를 뿌리셨다. 한 번, 두 번, 한 다섯 번 쯤. 나는 정말로 괴로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지만 아주 짧은 순간 딴 생각이 들었다. ‘성수를 많이도 뿌리신다. 쫓아야 될 무엇이 침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는 말인가? 한두 번 뿌리면 족할 것을’ 그런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한 후 곧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림프절 절제도 안 받고, 항암치료도 안 받게 되기를 바랐지만 이미 틀린 일이었다.

 

“하느님, 어차피 제 바람이 제 욕심이라면

  앞으로는 기도할 때 제 지향을 두지 않겠어요.

  맘대로 하세요. 하느님 뜻대로 하시라구요.

  더 이상의 고통은 정말로 싫지만 할 수 없지요.

  대신, 어떤 순간에도, 단 1초라도

  절대 제 곁을 떠나지는 마세요.

  제가 그 동안 하느님을 떠나 있었다구요?

  약한 몸을 주신 분이 누군데. 제 탓을 하셔요?

  제가 언제 당신을 떠났다고.

  순 억지쟁이 하느님, 고약한 하느님

  그 동안 만족스럽게 잘 살았다구요. 감사하며 살았다구요.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억지 그만 부리시라구요.

 

  기적을 주시라고 빌지는 않겠어요.

  딱 한 가지만 빌게요.

  설령 제가 하느님을 떠난다고 해도

  하느님은 저를 절대 떠나시면 안돼요.

  저한테 그러시면 안돼요. 억지쟁이 하느님.

  절대 떠나시면 안돼요. 1초도 떠나시면 안돼요. 

 

 

   나는 서럽게 우느라고 신부님이 병실을 나가실 때 쳐다보지도 못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누워 있으니까 정맥주사 담당 간호사가 와서 오른쪽 발목부분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가슴 양쪽을 다 수술해야 했기 때문에 발에 꽂은 것이다. 아팠다. 조금 아팠을 뿐이지만 화가 났다.

 

 

  하느님

  벌써 아프잖아요.

  얼마나 더 아파야 해요?

  아프잖아요. 아프다구욧. 

 

 

   나는 진통제가 잘 안 듣는 편이다. 큰 애를 낳으려 제왕절개 수술을 한 직후에 무통주사 용기를 팔에 꽂은 채로 깨어났는데 마취제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얼마나 아픈지 아프냐는 질문에 한마디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 수 있을 뿐이었다.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았지만 죽기 전의 육체적 고통은 정말로 무섭다. 사람들은 얼마나 아픈 후에야 죽을 수 있을까.

 

  좋아요, 하느님

  제가 이 고통 겪고 나면 부탁 하나 들어 주세요.

  다시는 수술 받고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저 죽을 때라도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저는 조용히 잠자다가 죽고 싶어요. 아프지 않게요.

  이번 고통을 겪고 나면 그것쯤은 해주셔도 좋지 않나요? 

 

 

  나는 아무래도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이번 고통의 대가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하느님

  고통도 사람의 능력 따라 주신다면서요?

  견딜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면서요?

  저를 잘못 보신 거예요.

  저는 감내할 능력이 부족해요.

  저한테 이러시지 마세요.

  저는 고통을 담을 그릇이 못 돼요.

  저는 아니라구요.

 

 

   수술실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나를 침대에 누이고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남편, 율리아가 침대 뒤를 따라오면서 수술 준비방으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술 후에 많이 아프지만 않을 거라면 수술 자체는 별로 두려운 일은 아니다. 마취 덕에 아프지는 않을 테니까. 가족들 얼굴을 쳐다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인사로 잠깐 눈을 맞추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수술 준비방을 둘러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 곧 마취과 의사가 올 거라 말해주었고, 몇 초 안되어 마취과 선생님이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수술 받은 적이 있나요.”

   “예, 4번이요. 이런 이런 수술이었어요.”

   “별 이상은 없었나요.”

   “예. 근데 저는 진통제가 잘 안 듣는데요. 호흡기로 하는 마취나 척추에 꽂는 무통주사는 잘 들었어요.”

   마취과 의사선생님은 눈썹이 짙었고, 눈에 쌍꺼풀이 있었고 잘 생겼다. 잔뜩 긴장한 가운데에서도 나는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참 진지하고 환자를 걱정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표정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어서 나는 묻지도 않은 말에 자세히 대답했다. 어쩌면 100% 순도의 고통은 없는지도 모른다. 병자성사를 받으면서는 성수를 너무 많이 뿌린다고 생각했고, 수술 직전에는 잘 생긴 의사선생님의 표정을 마음에 들어 했다. 잠시 끼어든 엉뚱한 생각만큼의 여유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의사 선생님이 일어서고 몇 초 안되어 수술방으로 옮겨졌다. 즉시 외과 선생님들과 다른 몇몇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나를 침대에 묶고 호흡기를 씌웠다.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환자를 힘든 긴장 속에 오래 두지 않으려는 배려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의식을 잃을 때까지 1초, 아니 0.0000001초도 떠나지 마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마취가 풀리자 너무 아파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힘없는 소리로 “아파요 덜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 몇 번 얘기했다.

   누군가의 꾸짖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통제를 3번이나 맞았어요. 더 이상은 안돼요. 자꾸 잠만 자잖아요.”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진통제를 더 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 

 

   침대가 움직이더니 동생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언니야. 힘내. 엄마가 수술장에 계신 예수님을 봤대.”

   환시를 보셨다는 말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을 뜨지 못한 채로 투덜거렸다.

   ‘지금 여기가 어딘데, 옆 사람들이 듣고서 미쳤다고 하면 어쩌려고 쟤가 큰소리로 저런 얘기를 하나? 진짜로 환시를 본 건지 그냥 엄마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뭐 그 말이 맞다고 치자고. 진짜 유치하기 짝이 없네. 뭐하러 수술장까지 오셔서 퍼포먼스를 하셔? 아파서 죽겠구만, 아픈 거나 좀 덜하게 해 주실 일이지. 보고만 있으면 뭐해? 보고만 있으면 뭐하냐구. 내 곁을 떠나지 마시라는 기도를 들어 주신 거라고? 별 꼴이 반쪽이야. 힘을 내기는 무슨 힘을 내. 이렇게 아픈데 보고만 계신다 이 말이지? 흥!’

   너무 아파서 심술이 잔뜩 나 있었기 때문에 환시에 대해 자세히 묻지도 않았다. 예수님께 고마운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매 순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거 누가 몰라. 아픈 거나 좀 덜하게 해주실 일이지.’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장에서 어깨를 위로 꺾은 상태로 오래 있어서 어깨뼈 안 쪽 근육이 꼬였는지 엄청나게 아팠다. 수술 부위의 통증보다 몇 배나 더 참기 힘들었다. 가족들에게 마사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꼭꼭 눌러야 조금이라도 시원한 것 같았다. 다섯 시간도 넘게 가족들에게 제대로 못한다고 투정만 했다. “거기 말고 그 아래. 안 쪽 방향으로 눌러 달라고. 가르쳐 줘도 못해?”

   간호사가 몰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주사를 준 후에야 아주 조금 나아진 느낌이 들어서 잠이 들었다.

 

   엄마가 수술장 밖에서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기만 하면 너무도 선명하게 빨간 망토를 두른 예수님께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상황을 지휘하는 듯한 몸짓을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예수님께서 일을 다 끝마치시고 바위에 앉아서 쉬셨다고 한다. (엄마는 열심한 신자는 아니시다.^^)

나는 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그런데 엄마가 예수님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우습게도 잠시 ‘예수님이 하느님 대신에 내 기도를 들어주러 오셨나?’하고 생각했다. 하느님께서는 아들을 하나 지어내서 세상에 보내어 대신 고통을 겪게 하신 게 아닌데,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사랑을 깨우쳐주신 것인데 말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요한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