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고통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2006.2.15

김레지나 2008. 8. 28. 16:16

고통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2월 15일 수요일

   수술을 받기 위해 S 병원에 입원했다.

   간호사가 내 챠트를 보더니 뜻밖에도 림프절 절제수술을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예? 림프절 절제요? 저 림프절 전이는 안 되었을 거라던데요?”

   한참 후에 의사선생님이 오셨다.

   “MRI 결과가 아주 안 좋아요. 초음파 상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크게 안쪽으로 혹이 있고 안 좋은 부분이 많아서 림프절 절제를 해야겠어요.”

   림프절 절제를 하면 림프부종이 생기기 때문에 수술한 쪽 팔에 혈압도 재지 못하고, 채혈도 못하고, 무거운 것도 들지 못한다는 설명을 본 적이 있다.

   “선생님, 제 직업이 교사인데요. 팔을 못 쓰게 되면 안 되는데요. 감시 림프절 생검도 안하고 아예 다 들어내신다는 말씀이세요? 림프절 절제 안하면 안 되나요?”

   “그건 욕심이에요. 좋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안 되겠어요.”

 

   예상보다 커진 수술 범위에 적잖이 실망했다. 기적적으로 낫게는 못해주실망정 더 험한 상황을 만들어주시면 안 되는 거였다. 하느님께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느님, 며칠 동안 있는 힘껏 하느님의 사랑을 얘기하고 다녔는데, 앞으로도 그 사랑을 꼭 전할 건데, 그런 제 마음은 하느님이 잘 아시잖아요. 팔을 못 쓰게 되면 어떡해요? 하느님이 제게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앞으로 많이 아프게 하실 건가 봐요. 어쩌면 저를 말기암 환자로 만드실 지도 모르겠네요. 하느님, 저 삐쳤어요. 그래서 속상하고 눈물이 나요. 그렇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잊지 않고 있어요. 병원을 나서서 하느님을 꼭 전할 거예요. 하지만 좀 덜 아프게 해주시지 않아서 섭섭해요. 삐쳤다구요. 하느님, 너무하세요.”

 

   서울에 사는 T가 왔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니들이 와서 웃어도 기분 안 좋을 거고, 울면 더 속상해질 테니 병문안 올 생각도 하지 마라”라고 했었다. 하지만 T는 멀리 살아서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터라 마지못해 오라고 했었다. T가 침대에 누워서 한가롭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내일 수술할 환자가 핸드폰으로 장난이나 하고 있고 아주 편안하다.”

   “응, 별로 힘들지는 않아. 그냥 하느님한테 좀 삐쳐있어. 마음은 편해.”

   T가 같이 온 성당봉사자와 함께 기도를 해주었다.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났다.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했다.

   “내 앞에서 기도하지 마라. 눈물 난다. 나 없는 데서 기도해주라.”

   겨우 눈물을 참으며 친구와 봉사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주치의가 나와 남편을 불렀다.

   “뼈사진 결과 머리뼈와 갈비뼈에 이상이 있네요. 하지만 어릴 때 다친 흔적이 까맣게 보일 수도 있어요. 뼈로 전이된 거라면 말기이구요. 나중에 항암치료 끝나고 뼈사진 다시 찍어서 비교해보면 암이 전이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쳐서 그런 건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엑스레이 몇 장 더 찍으세요.”

   엄마는 친구 한 분이 갈비뼈와 머리로 전이되어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놀라신 것 같았다. 나는 정작 담담했다. 하느님이 나를 쓰실 것 같아서 말기이더라도 곧 죽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죽는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느님의 사랑도 마음깊이 알겠고, 남겨질 애들도 하느님의 섭리대로 잘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헤어짐을 생각하면 여전히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많이 힘든 상태로 살게 될 것 같아 속상했다. 죽는 것보다 치료과정에서의 고통이 더 겁났다.

 

   엑스레이를 찍고 돌아왔다. 엄마는 내가 없는 틈을 타서 큰소리로 울고 계시다가 병실을 나가셨다. 엄마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남편은 찌푸린 얼굴로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기만 했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심난해져서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 순간,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하느님께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너무도 분명히 바로 앞에 계셨다. 난생 처음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다.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야속하게도 나를 보고만 계셨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엄마를 보면 더 크게 우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니 오히려 더 서러웠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하느님께서 내 고통을 보고만 계신다는 사실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좀 멀리나 계실 일이지.

 

“하느님, 어때요?

저 이러고 있으니까. 엄마는 울고 계시고.

기분 좋으세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시기 좋아요?

이런 고통을 세상에 허락하신 이유가 뭐예요?

고통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고통이 무슨 의미가 있냐구요.

원하시는 것이 이런 거예요?

제 모습이 보기 좋으세요?

그러지 마세요.

고통은 의미 없어요.“

 

   하느님의 사랑을 강렬하게 체험했던지라, 하느님께서 행여 내 곁을 떠나시면 어쩌나 겁이 와락 났다. 그래서 듣고만 계시는 야속한 하느님께 부탁드렸다. 

"하느님,

제가 좀 삐쳐있기는 하지만

절대 곁을 떠나지 마셔요.

제가 다시 하느님을 떠나 엉망으로 죄짓고 산다고 해도

하느님은 저를 떠나시면 안돼요.

0.00000001초도 떠나지 마세요.

수술은 험하게 받게 되었지만 견뎌볼게요.

대신 제 곁을 절대 떠나시면 안돼요.

낫게 해 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을게요.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0.0000001초도 제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