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아!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2006.1.27-1.29

김레지나 2008. 8. 28. 15:55

아!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1월 27일

   S 병원 외과 진료일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잠깐 애들이 있는 대전 동생 집에 들르기로 했다. 설 연휴가 가까워서 기차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못 본지 벌써 열흘이 되었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인솔할 때 외에는 하루도 애들과 따로 지낸 적이 없었다. 가슴 전체를 감은 붕대도 아직 풀지 않았고, 통증도 여전했지만, 애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유지니오는 사촌들에게 '엄마'라는 단어를 못 쓰게 해서 조카들이 올케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루카는 제법 의젓하게 힘든 내색하지 않고 잘 지낸다고 했다.

   동생 집에 도착해서 애들의 밝은 표정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유지니오는 그동안 곤충교실에 간 얘기, 동갑내기 사촌 따라서 영어공부 하러 갔던 얘기를 신나게 해 주었고, 루카는 외숙모랑 수학 문제집 사서 공부도 했다며 자랑했다. 애들 세 끼 챙겨 먹이기도 힘들었을 텐데, 좋은 경험 갖게 해 주려고 애쓴 올케에게 미안했다.  

  루카는 평소에 눈을 깜박이는 틱이 있었는데 턱을 딱딱 부딪치는 증상까지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동생에게 귓속말로 루카가 턱을 부딪치는 것은 틱증상이니까 행여나 지적하고 나무라지 말라고 부탁했다. 유지니오는 나랑 같이 잘 수 있게 되었다고 신이 나 있었지만 감기가 옮을까봐 큰방에서 올케와 조카들이랑 같이 자게 했다. 유지니오가 몹시 실망해서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애들이 너무 안쓰러워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려고 큰방 문을 열었다.

   루카와 유지니오는 우울하고 멍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둘은 뜻밖에 내가 얼굴을 내밀자 반가워하는 대신에 눈물을 글썽였다. 유지니오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베개 속에 얼굴을 묻어 버렸고 루카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애들의 반응에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와락 쏟아지려고 했는데, 있는 힘을 다해 참았다.

 

  작은방으로 와 자리에 누웠다. 애들이 앞으로 어찌 버틸까하는 걱정에 통곡이 터져 나왔다. 애들과 떨어져서는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았다. 지독한 감기 때문에 자고 있던 남편이 놀라 일어나서 나를 달래보려고 했지만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애들이랑 떨어져 있어야 되나, 치료가 끝난 다음에는 애들을 제대로 돌봐 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 슬프고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느님,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요. 애들이랑 더 오래 떨어져 있으면 괴로워서 못 버틸 것 같아요. 애들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겠어요. 제 맘 좀 낫게 해 주세요.  저한테는 애들이 제일 중요해요. 얼마나 애들을 열심히 키웠는지 아시잖아요. 하느님 보시기에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았나요? 항암치료 안하고 수술만 하고 낫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가족들이 자꾸 항암기간에는 애들과 떨어져서 쉬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안 돼요. 제발, 1센티 미만으로 암 덩어리가 줄어들어서 항암치료 안 받게 해 주세요. 하루도 더는 못 버티겠어요. 모레 애들과 다시 헤어질 때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애들 앞에서 울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고 치료기간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기도를 부탁하기로 했다.

  

 

1월 28일 토요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표정관리를 해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일 주소록을 열어 보니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친구들까지 많은 주소가 저장되어 있었다. 염치불구하고 거의 모든 친구들 주소를 클릭하여 내가 아프고 기도가 필요하다고 써 보냈다. 뜬금없는 소식에 친구들이 놀라겠지만 최대한 많은 기도를 받아서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1월 29일 일요일

   병원 진료일은 2월 1일이지만 설 연휴라 기차표가 없어서 미리 분당으로 가야했다. 용케 눈물을 보이지 않고 애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미카엘이 남편과 나를 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겨우 눈물을 참으며 '애들 보느라 애 쓴다, 계속 잘 부탁한다, 우리 애들이 예민해서 힘들어 하는 것같더라.'하고 인사하고 기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또 울기 시작했다. 기차 안 방송의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어떻게든 진정을 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율리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웠다. 끔찍하게 괴롭기만 할 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기도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심령기도를 하기로 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웅얼웅얼 기도를 하는데 누운 채로 몸 전체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허리가 많이 아파서 안수를 받으러 다닐 때, 한 자매님이 합장한 손을 떨면서 안수자에게 이유를 물으니, 성령이 임하시면 그런 일이 있기도 하다고 했었다. 내 몸이 떨리는 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심령기도의 은사를 받은 후에 한 번도 기도 모임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는 게 거의 없었다.

   10분쯤 지났을까. 한숨이 나면서 기도가 저절로 멈추어졌다. 동시에 “새벽마다 너를 위해 기도할게.”, “레지나야. 기도할게 힘내.”했던 친구들의 말이 떠올랐다. ‘아, 기도 덕이구나.’ 와락 눈물이 났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내 마음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환희가 차올랐다.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고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도 없는 맑디맑은 기쁨이었다. 평생에 기도하기 전처럼 괴로운 적도 없었고, 기도한 후처럼 기쁜 적도 없었다. 앞으로 겪게 될 고통도, 애들도, 남편의 실직도 걱정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구나.'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뛰쳐나가 하느님의 사랑을 외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연신 히죽거리면서 야고보서를 읽어보았다. 

   “내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1장 2절)”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 같았다.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고난을 참고 이겨낸 사람들의 본보기로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예언자들을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끈기 있게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욥이 끈기 있게 참아낸 이야기를 들었고 주님께서 지어주신 결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연민과 자비는 참으로 풍성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거저 받았던 하느님의 은총을 모른 체 하고 신앙인으로서의 도리를 미루고만 지냈다. 최근 10년간 만족스럽게,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감사하고 지냈지만 하느님께 의탁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잊고 살았었다. 내 생활에 만족하고 지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도 하느님께 감사도 의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서 시댁으로 설을 지내러 갔던 율리아 내외가 돌아왔다.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더니 놀란 모양이다. 잠이 들 때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웃기만 했다.

  오! 내 마음 왜 이처럼 기쁜가?

  오! 온 누린 왜 이렇게 노래해?

  오늘 내 맘엔 기쁨이 넘쳐

  온 세상 모두 사랑하리.

  모든 얼굴이 친구가 되어

  누구나 내게 미소 짓네.

  이제 알았네. 인생의 참 뜻

  이는 찬란한 모험의 행로

  사랑이 무언가를 알았기에

  내 모든 생활 사랑이 되니

  주께로 가는 황금빛 길

  모든 이에게 널리 외치리.

  주께서 주신 이 기쁨을

  -젠 성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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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기도의 은사

   17 년쯤 전에 나는 다섯 학급밖에 안 되는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했다. 몇 명 안 되는 선생님들 중에 심령기도를 하는 선생님이 두 분이나 계셨다. 한 분은 천주교 신자인 M 선생님이고, 한 분은 개신교 신자인 S 선생님이었다.

   M 선생님은 나랑 같은 집에서 자취를 하셨는데, 저녁마다 나를 불러 같이 기도하자고 하셨다. 나는 당시에 몸이 극도로 약해져 있어서 방과 후에는 쓰러져 자고만 싶었는데 선생님이 막무가내로 청해서 매일 저녁 한 시간씩 꾸벅꾸벅 졸면서 기도해야했다.

   M 선생님은 가끔 환시도 보셨는데, 하루는 일부러 찾아와서 내 마음 속에는 자물쇠가 꽉 채워진 큰 방이 있다고 하셨고, 자기 마음속에도 내 것보다는 작지만 자물쇠가 채워진 방이 있다고 하셨다. 앞뒤도 없이 왜 그런 말을 해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꽤나 열린 마음을 갖고 있으며 감정이입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그 환시의 뜻을 짐작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거들어주시지 않아도 혼자서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내 마음의 방을 닫아걸게 했던 것같다. 영적으로 가난하지 못해서 하느님을 향해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개신교 신자인 S 선생님은 내게 은사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방언 은사(심령기도)라고 하셨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은사는 우리가 잘했다고 주시는 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주시는 거라는데, 심령기도를 하면 믿음도 확실해지고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직장 근처 성당에서 성령세미나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기대에 차서 세미나를 등록했다. 성령 봉사자들이 여러 분 오셔서 그룹별로 몇 주간 지도를 해 주셨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공부했고 숙제도 했다.

   같은 그룹에서 중고등 학교 다닐 때 본당에서 학생회 활동을 같이 했던 헬레나 언니도 만났다. 성령 안수 미사를 하루 앞둔 날, 나는 선생님들이 권유해준대로 심령기도 은사를 청하기로 했다. 헬레나 언니는 친언니와 화해하는 은사를 구하겠다고 했다. 언니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나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성령안수 미사가 시작되었다. 봉사자님이 안수를 하다 보면 머리가 철판처럼 느껴질 만큼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완고한 사람도 있더라고 하셨다. 나는 혹시 내 머리가 철판이면 어쩌나 싶어서 '숙제랑 기도를 더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하였다. 성령안수 시간이 되어서 봉사자들이 차례차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었다. 심령기도의 은사를 주실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봉사자의 손길이 지나간 후에도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기쁨에 차서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은사를 받은 모양이었다. 안수가 다 끝나고 신부님께서 각자 받은 은사에 대해 감사기도를 하자고 하셨다. 심령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아서 '내 머리가 철판인가 보다' 싶어 걱정이 되었다. 심령기도를 연습하는 대신에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제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은사를 청할 기회가 있겠습니까? 벌써 미사가 다 끝나가잖아요? 제 머리가 철판이 아니라면 오늘 심령기도의 은사를 주십시오. 웬만~하면 제 청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준비를 충분히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사가 끝나고 해설자가 시키는 대로 소리를 내보았는데,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혀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이상한 말들이 쏟아졌다. 동시에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을 울었다.

   헬레나 언니도 화해의 은사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언니를 생각해도 더 이상 미운 마음이 들지도 않고, 마음이 괴롭지도 않다고 했다.

   미사 끝나고 우리 그룹의 봉사자에게 물어 보았다.

   “오늘 머리가 철판인 사람이 있었어요?”

   “아니요, 한 명도 없었어요.”

   ‘혹시 나였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휴~.’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심령 기도를 하며 건들건들 걸어서 집으로 갔다.

   그 후로 몇 달 동안은 틈만 나면 심령기도를 해보았다. 내 영혼이 하느님께 직접 드리는 기도라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심령노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심령노래의 멜로디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가끔은 기도 중에 마음이 너무나 아플 때가 있었는데 어떤 때는 하느님이 우리를 이렇게 가슴 아프게 사랑하시나보다 싶었다.

   가족들은 내 기도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면서 되도록이면 하지 말라고 했다. 심령기도보다 이성으로 하는 한마디의 기도가 더 낫다고 성경에도 나와 있으니 혼자 있을 때만 하기로 했다.

 

   신앙이 있는 친구들에게 정말 좋은 은사이니 기회가 되면 꼭 청해보라고 얘기했는데, 다들 시큰둥했다. 누가 어찌 생각하거나 말거나 아주 기분 좋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미사에서 신부님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비판하는 말씀을 하셨다.

   “은사를 받는 것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을 받았다면서 교회를 떠나서 신자들을 현혹하고 따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유치하게 임하시겠습니까? ...질병을 치료받지 않고 기도만 해서 나아보겠다는 생각도 위험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의사를 통해서도 전해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교회의 뜻에 맞지 않게 무리를 이끌어서 신부님이 화가 나신 것 같았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분별을 제대로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 양 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속으로 ‘은사를 제대로만 사용하면 얼마나 좋은데 신부님께서는 아직 그 기쁨과 힘을 모르시나보다’고 아쉬워했다. 심령기도의 은사는 내가 잘해서 받은 상도 아니고,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믿음이 더 깊어지거나 더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보증도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은사들을 통해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고 하느님께로부터 이웃을 이끌 힘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사람들이 알면 좋을 텐데'하고 안타까워했다.

 

  심령기도를 하게 되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완전해지리라고 기대했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은사를 받기 전에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었는데, 은사를 받은 후에 오히려 더욱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느님이 여러 신들 중에 가장 힘센 신이 아닐까? 내가 내는 기도소리는 무당이 내는 소리와 같은 종류가 아닐까? 내 안의 어떤 무의식적인 힘이 나타난 게 아닐까?’  

  가끔씩 회의적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심령기도의 은사를 받은 것이 기뻤고 가능하면 자주 기도를 하려고 애썼다. 아무도 내 은사를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더 많은 은사를 열망하도록 이끌어 준 사람도 없었고, 교회 내의 지침서도 구할 수 없었다. 그저 나 혼자만의 골방용 은사를 얻는 셈이었다. 그러다 내 부족함이 부끄러워 점점 심령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2006년 1월 29일, 너무 괴로워서 이성으로는 한 단어로도 기도할 수 없었을 때, 심령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었다. 내 이성은 그저 괴롭고 힘들다고만 생각했고, 내 혀를 기도하는 데 맡겼을 뿐이다. 기도하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기대하지도 못했으니 내가 청한 것도 아니었고, 신흥종교에서 얘기하듯이 만물 안에 신이 있고 내 안에도 신이 있어서 그 신성이 발휘하는 능력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받은 심령기도의 은사가 혹시 내 내부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닐까 하는 오래된 의심을 말끔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내 안의 신념이 작용한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힘든 명상도 마음을 다스리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하느님께 고통을 있는 그대로 호소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계신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야고보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