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지금 이대로가 딱 좋은데. 2006.1.8- 2006.1.6

김레지나 2008. 8. 28. 15:39

 

지금 이대로가 딱 좋은데

2006년 1월 8일 일요일

      주일미사에 갔다.(드문드문 참례한다.^^) 가는 길에 차를 운전하면서 몇년만에 처음으로 심령기도를 했다. 기도의 해석은 못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하느님께 감사하고 살지 않았을까? 아니다. 10년 넘게 성당에 나가다 말다 했지만 언제나 순간순간 만족하며 기쁘게 살려고 애썼다. 남편의 실직도 제법 여유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사 중에 진심으로 하느님께 그간 누렸던 행복에 대해 감사드렸다. 남편이 직장을 못 구하더라도 지금 이대로 가족 모두 건강하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씀드렸다. 

 

2006년 1월 9일 월요일

   건강검진 결과를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다. 먼저 남편과 엄마의 결과를 보니 큰 이상이 없었다. 내 결과도 대체로 이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PET 검사 결과를 클릭했다. “유방의 좌우 비대칭 이상”   PET 검사는 암세포가 포도당 대사 작용을 활발히 한다는 점을 이용한 암 진단 검사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대칭? 이상이 확실히 있다는 말은 아닐 거라고 애써 생각하려 했지만 문제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흘 후 의사에게 결과를 들을 때까지는 마음 편히 지내기로 했다.

 

2006년 1월 10일 화요일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다. 교수님과 동기 선생님들은 만나니 반가웠다. 수업시간표를 결정하고, 각자 발표할 내용들을 정하고, 수업을 받고 집으로 왔다.

 

2006년 1월 11일 수요일

   중학교 교사인 대학 동창 둘이 만나자고 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애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친구들과 처음으로 찜질방에 갔다. 모두들 직장생활하면서 애들 키우느라 여유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대학시절 얘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친구들에게 건강검진 결과가 이상이 있다고 얘기했더니, 아직 확진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지?”하고 대꾸했지만 ‘이런 순간이 또 올까?’ 싶었다. 수년간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았다.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이제 경제적인 궁핍함도 어느 정도 벗어났는데....

   바다 뒤편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파우스트에 ‘순간이여 멈추어라,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라는 말이 있지? 요 몇 년간 늘 그런 마음이더라. 아이들도 제법 자라고 요맘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이 딱 멈추면 좋겠어.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더 나이 먹고 싶지도 않아. 지금이 딱 좋다.”

   친구들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 나이 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 우리 자신을 위한 시간도 가질 수 있고. 가끔 이렇게 모이자.”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분당으로 갔다. 병원에서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 PET 사진을 보았다. 오른쪽 가슴에 까맣고 동그란 부분이 있었다. 암인 것이 분명했다. 의사는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페트 검사가 뭐하는 검사인 줄은 아시지요?” 나는 “예”라고만 하고 진찰실을 나왔다.

  정밀 검사를 위해 유방 초음파를 해야 하는데, 예약이 밀려 있어서 보름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간호사에게 내 건강검진 챠트에 적힌 영어 단어의 뜻을 물었다. 간호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암 의심이라는 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제가 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해서 암의심 진단을 받았으면 서둘러서 다음 진료를 보게 해 주어야지 30일에 초음파 하고 일주일 후에 결과 보고, 또 조직검사하고 일주일 기다리고. 언제 치료를 받겠어요? 저는 집도 멀다구요. 오늘 진료 보게 해 주세요.”

   간호사가 여기 저기 전화를 했다.

  “오늘 조직검사 담당하는 선생님이 진료가 없고, 다른 선생님한테라도 진료 보실래요?”

   “네, 오늘이요.”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에게 하루 종일 애들이 제대로 못 먹었으니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이라고 몇 차례 얘기했지만  “지금 애들 밥이 문제인가?”라고만 했다.

 나는 답답해서 말했다.

  “그럼 애들 밥 먹이는 게 문제지.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자기가 나보다 더 심각하게 굴 거야?”

하지만 남편은 심난한 표정으로 대기실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간식으로 가져 온 빵 한 조각씩밖에 먹지 못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오른쪽 유방 다섯 군데에 이상이 있다면서 흡인세포침 검사를 했다. 초음파 검사 상 모양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의사는 보호자가 있느냐고 묻더니 내가 검사실을 나가기도 전에 남편과 상담을 했다.

“암이 거의 확실합니다. 일주일 뒤에 결과 보러 오십시오.”

 

1월 14일 토요일

   내 검사결과가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남동생 가족이 분당으로 왔다. 가족들은 당장에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며, 반찬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간섭했다.

  루카 다리 교정을 하면서 서울의 병원에 다녔었다. 교정기도 조절하고, 치료도 받으려고 월요일에 예약을 해두었었는데, 남편이 다리교정이 문제냐면서 결과 나올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 있자고 했다. 남편 때문에 더 속이 상했다.

 

1월 15일 일요일

   볼 일도 안 보고 내려가자는 남편을 원망하며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내 소원이 애들 대학 갈 때까지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이었는데, 내 나이가 이제 만으로 서른아홉인데, 애들은 겨우 초등학교 1학년, 4학년인데, 공부습관도 없는데. 나라도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건강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 지금 영정사진을 만들어놓을까? 지금까지 가족들 모습은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지만 정작 내 사진은 거의 없네. 루카와 유지니오를 위해서 인터넷 카페를 하나 내볼까? 가족사진도 올리고, 지나온 이야기도 쓰고, 투병 과정도 보여줘야겠다. 엄마가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어려움에 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겠다.‘

 마음이 바빠졌다.

1월 16일 월요일

  오랫동안 집을 비울 것 같아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했다. 화장대 서랍이며, 옷장 서랍이며 누가 들여다봐도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고 종일 힘들게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