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할 일이 너무 많았다. 2005.12.21-2006,.1.5

김레지나 2008. 8. 28. 15:36

 

할 일이 너무 많았다.

 

2005년 12월 21일 수요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학년 말이라서 전산망이 마비되어 일처리 시간이 수십 배가 더 걸렸다. 1초를 아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폭설이 쏟아졌다. 이곳은 눈이 거의 오지 않는데다 시내 곳곳이 언덕길이기 때문에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교통이 마비된다. 눈이 심상치 않게 내리자 학생들을 일찍 집으로 보냈다. 나는 선생님들이 다 가면 전산 처리가 좀 빨라질까 싶어서 학교에 남기로 했다.

   40분쯤 지나서 창문을 열어보았다. 그새 눈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이사 와서 5년을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을 본 적이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일을 그만두고 차를 몰고 운동장을 나왔다. 학교 앞 주택가에서 내 차가 길옆으로 미끄러진 데다, 경사진 길 가운데 올라오던 차가 미끄러져 멈추어 있었기 때문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평소 같으면 차로 5분이면 족한 거리인데 3시간 반이 걸렸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길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데 집에 빨리 들어가서 애들 좀 봐 주지? 오늘 사표 쓴다고 하더니 썼어? 뭐? 버티라고 했더니 왜 썼어?”

   남편은 은행원이다. 지주회사에 합병된 은행이어서 해년마다 급수가 높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시켰다. 올해에는 50명이 목표인 모양이었다. 남편은 겨우 마흔두 살인데, 인사부로부터 명퇴 권고 전화를 받았다.

   “왜 빨리 퇴근을 못해? 내일 모레 은행 그만 둘 사람이 무슨 일을 남아서 해? 직원들 시키고 빨리 집에 들어가. 나 얼마나 길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속이 상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약간 비탈진 곳에서 앞에 가는 차들이 뒤로 굴러오는 바람에 겁이 많이 났다. 차들이 엉긴 곳을 겨우 빠져나와 경사가 덜한 곳에 차를 주차할 공간을 찾아냈다. 차를 버려두고 캄캄한 길을 한참 걸어서 집으로 왔다. 다음날 학교 휴교령이 내려서 비상 연락망으로 반 아이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했다.

   남편은 밤늦게 들어왔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남편은 은행원 생활이 적성에 안 맞는다며 힘들어 했었다. 내가 말했다.

   “나 요즘에 너무 많이 피곤해서 건강검진 결과가 걱정인데. 내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자네라도 돈을 벌어야지. 그때까지 사직서 내지 말고 기다리지 그랬어.”

   “자네가 아프면 내가 간호를 해야 하니 어차피 못 다닐 거야.”

   “말이 좋네. 이번에는 몇 명 그만 두었대?”

   “50명”

   “어이구, 목표 인원 채우느라고 인사부에서 고생했네. 그래 노조에서는 뭐하는 거야? 해년마다 직원들을 자르는데. 작년에 은행이 최대 흑자였다면서? 새로운 직원도 뽑았다며? 지금까지 고생 엄청 시켜놓고 자른다는 게 말이나 돼? 다 같이 함께하는 직장을 만들어야지. 노조는 해년마다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율리아 친구가 노동 분야 로펌에 있는데 명퇴자도 소송 걸면 부당해고로 판결 받고 승소할 수 있다고 하던데. 은행의 못된 관행을 한 번 깨봐.”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내가 침묵해서야. 내 책임도 있어.”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 나서야지. 한참 나이에 나가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어? 자네가 안 하면 내가 나서서 할 거야. 싸워야지.”

    밤에 깨서 노조원들과 은행장에게 보낼 글을 썼다. 소송을 해볼 작정이었다. 누군가는 나서서 수고를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005년 12월 31일 토요일

   남편은 어제 날짜로 은행을 그만 두었다.  남동생 가족, 여동생 내외, 엄마, 아빠와 경기도 한 호숫가 펜션에서 모였다.  얼음낚시도 하고 바베큐 파티도 하고, 북카페에서 맛있는 케익도 먹었다.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열심히 캠코더에 담았다. 가족들에게는 남편이 실직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휴가를 내고 왔다고 했다.

  

 

2006년 1월 1일 일요일

   아침밥을 맛있게 해먹고 남동생 미카엘네는 대전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가족은 여동생 율리아 집으로 갔다.

율리아가 연구교수로 있는 대학병원에서 가족들에게 50% 할인해서 건강검진을 해준다고 해서 부모님과 남편과 검진을 신청했었다. 내 표정이 늘 밝기 때문에 주위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몇 달 전에는 안면부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로 힘들었다. 가끔 가슴에 통증이 있을 때면 숨쉬기 힘들었다. 어릴 적부터 몸이 많이 약했던지라 늘 건강에 자신이 없었다. 누가 내 꿈을 물어보면 “우리 애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있는 거예요”라고 대답할 때도 있었다.

  

 

2006년 1월 3일 화요일

   집으로 내려왔다. 이번 방학에는 가족과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남편도 그간 직장생활 하느라고 고생했고 결혼 후 처음으로 갖는 휴식기간이니 여행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건강검진 결과가 이상이 없으면 가능한 빨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루카와 유지니오는 싱가포르의 동물원 광고를 보고 한참 들떠 있었다. 여행사를 고르고, 일정을 비교하느라 바빴다.

 

2006년 1월 4일 수요일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니 지출을 줄여야했다. 남편이 빚보증을 잘 못서고, 주식에 실패해서 진 빚을 이제 겨우 갚을 만한데 실직이라니, 기가 막혔다. 게다가 남편은 사회생활을 힘들어해서 웬만한 직장을 다시 구하리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남편에게는 수고했다며 1년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라고 했다.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그만 오시라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곤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버텨나갈지 막막했다. 방학이라 하루 세 끼를 차려내려니 엄청 힘들었다.

 

2006년 1월 5일 목요일

    방학 중에 할 일들을 죽 적어보았다. 대학원 수업, 루카 이 교정, 다리 교정 마무리, 학원 스케줄 조정, 보험 처리, 국민연금 유예처리, 공룡발자국이 있는 사도 여행, 남편 실업수당 신청, 신경정신과에서 아이들 틱 장애 진료 받기, 자동차 점검, 가계부 쓰고 지출 줄일 방법 찾기, 싱가포르 여행 준비 등등, 두 페이지가 넘었다. 너무 피곤했지만 쉴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