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외치고 싶어
1월 31일 월요일
엄마가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내 얼굴 보고 있는 게 낫겠다고 하시면서 율리아 집으로 올라오셨다. 수술 전에 최대한 건강해져야한다면서 이것저것 요리해 주셨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편안하고 기쁜 상태여서 오히려 엄마를 위로해 드렸다.
“엄마, 별 일 있겠어요. 저 치료 받으면 나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안 낫겠어요? 히히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강렬한 확신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서 종일 헤죽헤죽 웃고 지냈다.
2월 1일 수요일
S 병원 외과진료를 했다. 수술 날짜가 보름 뒤로 잡혔다. 집에 내려가서 일주일 정도는 있을 수 있겠다 싶으니 좋았다.
‘내려가서 친구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서 이렇게 기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느님 덕이라고,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했노라고. 얼마나 오래 아플지도 모르고, 남편의 실직으로 암담한데도 무작정 기쁠 수 있는 건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라고 말해줘야지.’
지금 만나서 내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알리는데 제일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2월 2일 목요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다. 마음이 더욱 편하고 기뻐졌다.
저녁 미사 후에 성시간까지 참례했다.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꼈다.
54일간 9일기도를 시작했다. 기도지향은 수술만 받고 항암치료를 안하게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2월 3일 금요일
산부인과 진찰을 받았다. 자궁에 있는 혹도 수술하는 김에 같이 떼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유방암환자들은 대부분 타목시펜이라는 호르몬 억제제를 5년간 먹게 되므로 폴립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대전에 있는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마음은 아주 편안했지만 오래 떨어져 있을 애들 생각을 하면 가끔씩 착잡해지기도 했다.
2월 5일 일요일
미사 중에 얼마나 웃었는지 광대뼈가 아팠다. 본당 신부님은 혼배미사 주례를 서주신 분이시다. 10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되어 엄청 반가웠지만 성당에 거의 나오지 않던 엉터리 신자인지라 인사를 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하면 머리가 빠진다고 해서 마트에 모자를 사러 갔다.
기분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 한 분을 만나서도 싱글벙글 웃었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2월 6일 월요일
밤에 자다가 깨었는데, 온 몸에 힘을 주어서 내 몸 안에 있는 무엇인지 모를 나쁜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행복하고 기뻤다. 살면서 이렇게 순수한 기쁨을 지속적으로 맛볼 수 있다고는 상상한 적도 없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까지도 내 행복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못했다. 남편은 내 모습에 마냥 놀라워할 뿐이었다.
“지금 내 모습을 봐. 정말 신기하고 놀랍지? 정말로 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내가 지금 이렇게 기쁘게 지내는 것이 어떻게 내 힘으로 가능하겠어?”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기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눈이 많이 와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종일 하느님 생각하고, 기도하고, 책 읽는 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완전한 기쁨과 행복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2월 7일 화요일
같은 학년 선생님들을 만나 식사했다. 선생님들은 내 표정을 보고 다행이라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격려해 주셨다.
식사 후에 세 선생님과 따로 만나서 내가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얘기했다.
“지금 기쁜 기억만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에 외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겠어. 하지만 수술하고 너무 힘들면 내가 받은 은총을 잊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기도해 줘.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내가 이렇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내 내부의 힘이 아니라는 거지.”
S엄마와 송 선생님과 만났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셨고, 스트레스를 풀 만한 취미활동이 있어야 된다고 조언해주셨다. S엄마는 유방암 3기말 환자이고, 작년에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끝내고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내게 얼마나 항암치료가 힘든지 설명해주셨다.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정말 고마웠지만 귀담아 듣고 싶지 않았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젖어있고만 싶었다.
2월 8일 수요일
남동생이 전화해서 애들을 자기 집에 맡기라고 했지만 병원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게 될지도 모르고, 애들 학원가고 학교도 가야하니 집에서 지내게 하겠다고 했다.
애들이 읽을 책들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김 선생님을 만났다.
“너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했었다. 어쩌면 수술 날받아놓고 도서관에 올 여유가 있냐?”
2월 9일 목요일
개신교 신자인 홍 선생님을 만났다.
“지금까지 내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살았지만 하느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거야. 심령기도의 은사도 받고, 허리 아픈 것도 낫게 해 주셨고, 외과 수술이 필요한 치루도 2년 동안 9일기도한 끝에 나았지. 근데 내가 그동안 하느님을 잊고 게으름을 피우고 살았단 말이야. 하느님이 부족한 나한테도 위로를 주시네.”
“그래. 작은 기적이다. 너 낫겠다..”
“아니야. 안 그럴 수도 있어. 욥도 엄청난 고통을 겪도록 하느님이 허락하셨잖아. 예상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으라고 하시면 어떡하지?”
“욥이야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잖아.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닐 걸. 빨리 나을 거야. 힘내. 내 차에서 듣던 성가테이프 줄게. 성당이랑 우리랑 하느님 찬양 노래는 같겠지? 기도 많이 해줄게.”
2월 10일 금요일
희 선생님과 황 선생님을 만났다. 희 선생님은 어제 늦게 안나푸르나 등반에서 돌아왔고, 오늘 학교수업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도 나와 주었다. 내가 하느님 얘기를 하니까 희 선생님이 대꾸했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영적인 체험들을 갖고 있대요. 엄마도 불교신자인데 나름대로 영적인 체험이 있어요.”
홍 선생님과 선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너무 지쳐서 하느님 얘기를 안 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홍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요즘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은 웬만큼 다 했고, 애들도 예쁘게 키워봤고, 갑자기 더 이상 해보고 싶은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깜짝 놀랐다. 홍 선생님은 학교 내에서 동아리 모임도 이끌고 학생들과도 의욕적으로 잘 지낸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 자극적인 것들을 추구하기 때문에 섹스와 폭력도 점점 자극적이 되어가고 거기에서도 만족을 못 느끼면 자살을 꿈꾸기도 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일상생활을 훌륭히 잘 해내는 홍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홍 선생님이 종교가 없기 때문에 허무적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얘기했고, 하느님은 분명이 계신다고 강조해 주었다.
“홍 선생님, 제가 아무리 마인드콘트롤을 한들 이렇게 환한 표정이 될 수는 없잖아요. 나중에 살다가 힘이 들 때 제 말과 지금 제 표정이 기억나실 거예요. 그땐 꼭 하느님 찾으세요. 지금 제가 느끼는 기쁨은 분명히 제 내부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에요.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지요.”
선 선생님은 가톨릭 신자인데 확실한 믿음은 아직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김 선생님한테 지금까지 특별히 많은 은총을 베풀었는데 그간 모른 척했다는 얘기지?”
“아니에요. 선생님. 저만 특별히 은총 받은 건 아니에요. 하느님은 똑같이 사랑하시고, 은총은 거저 주시는 거지요. 제가 잘했다고 상으로 주신 것도 아니고요. 은사를 받았다고 해도 제가 바르게 살게 된 것도 아니었구요. 제가 많이 조르니까 주셨던 거지요. 특별히 저만 사랑해서가 아니구요.”
집에 돌아오니 몸이 녹초가 된 듯 피곤했다.
“하느님,
저 하느님 사랑 전하느라 무리 좀 했어요.
여섯 시간을 한 곳에 앉아있었더니 아주 힘드네요.
게다가 그 레스토랑이 너무 추웠어요.
지금 목이 많이 아프고 감기 걸릴 것 같아요.
애들이랑 같이 놀아주지도 못했구요.
하느님 전하다가 그런 거 아시지요?
저 감기 걸리면 수술하고 힘들거든요.
저 잘 재워주세요.
감기도 안 걸리게 해 주시구요.
하느님이 책임지셔야 돼요.“
루카와 함께 생로병사의 비밀을 보았다. 의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암의 각 기수별로 생존율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루카는 암환자의 생존율을 보고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희망적인 내용인 줄 알았었는데, 괜한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고 후회했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2월 11일 토요일
많이 피곤하고 지쳐서 애들이랑 집에서 놀고, 쉬었다.
학급 홈피에 올라온 글에 일일이 안부 인사를 남겼다.
“내 잔소리 상대 넘버원 희 !!
방학 잘 보냈니? 니 글 보니 반갑다.
개학날부터 선생님 휴직할 거야.
그렇다고 너무 많이 좋아하지 마라잉.
(희한테 정리 못한다고 잔소리를 많이 해서 캥겨서 하는 말이야.)
너무 좋아하는 티내면 내가 스토커가 되서 따라다녀야지. 히히
나는 뒤끝 없이 시원시원하고 활달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희가 보고 싶을 거 같은데..
희는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이 변함없이 자알 지낼 것 같은 학생 넘버원이야.
맞지? 새해에는 더욱 예뻐져라. 바이 “
“늘 자신감 넘치고 활달한 은 낭자 보시오.
단어시험을 그대의 '배경지식'으로 보시겠다니 시험결과가 참으로 기대되오.
프린트도 안 갖고 여행 간 무모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오.
시험결과를 보고도 과연 'ㅋㅋ-어쩌고 저쩌고'할 수 있을지
은 낭자 걱정에 '짐'의 마음이 아프오.
내일 벼락치기로 300개쯤은 외워오길 기대하겠소.
잠 못 자고 공부하면 방학 중에 먹고 놀면서 관리한 뽀얀 그대의 피부가 상하겠지만 어찌하겠소.
친구들은 그대의 빼어난 미모 덕에 티끌만큼 푸석거리는 흠이 있어도 모르고 넘어갈 테니 걱정 말고 벼락치기 공부라도 해오시오.
'짐'의 바람이 하나 있소.
올해는 모든 과목에서 그대의 '배경지식'만을 믿고 삐대는 일이 없기를 바라오.
그대와 그대의 친구들이 정말로 보고 싶으오.“
“숙아.
방학 끝나가니까 글 한 번 남기네.
과학 숙제는 참 일찍도 물어보구.
너무 하는 거 아니여?
영어 단어 시험을 본다고 했으니까 봐야 할 텐디.
내일 학교 가면 내가 없을 것이여.
시험 안 볼지도 모른다고 '나의 부재'를 너무 기뻐하지 말아주셔.
선생님의 안부가 걱정이 되거들랑 기도 중에 기억해줘.
그게 단어시험 대신에 내주는 숙제야. 알았지?“
2월 12일 일요일
내일 수술 전 검사랑 MRI 촬영이 있다. 아빠가 애들과 함께 지내시려고 내려오셨다. 아빠와 아주머니한테 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일러드리고, 남편과 나는 6시간 넘게 걸려 분당으로 왔다.
율리아네 성당에서 미사참례 했다.
오늘도 신부님 강론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매일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꼭 기억하고 살아야합니다. 은총도 기억해야 하고 고통도 기억해야 합니다.”
2월 13일 월요일
개학날이다. 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그렇게 많이 아프시면 어떡해요?”
“선생님 빨리 나아서 돌아오세요.”
“야. 니들 내가 내준 단어 400개 다 외웠어? 예정대로라면 오늘 수행평가 봐야하는데. 3학년 성적에 올리려고 했더니. 니들 나 아파서 단어시험 안 본다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선생님, 보고 싶어요. 언제 오세요? ”
”선생님, 복이가 울어요.“
나는 아이들의 전화와 문자를 받을 때마다 엄마 몰래 눈물을 훔쳤다. 애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목놓아 울면 마음이 좀 풀릴 것 같았지만 엄마가 마음 아프실까봐 울지도 못했다. 학생들과 철없이 즐겁던 때가 너무나 그리웠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엄마 몰래 눈물을 계속 닦아야 했다.
“아, 하느님, 예전 생활이 너무 그리워요. 하느님 덕에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는 건 없어요. 하지만 학교생활이 그리워요. 그래서 슬퍼졌어요. 항암 안 받고 수술만 받고 나았으면 좋겠어요. 하느님이 많이 고맙지만 그래도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빨리 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느님, 제 몸이 눈물로 꽉찬 주머니 같아요. 누가 훅 불기만 해도 쏟아질 것 같아요. 한번 비워내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힘들어요."
오후에 병원에 가서 뼈 사진을 찍고 채혈을 했다.
저녁에 학급 홈피에 들어가 보았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서 많이 편찮으신지 미처 몰라서 죄송해요.
큰 수술을 앞두고 계시다니 걱정이 많이 되네요.
1년 동안 저희 반을 바르게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마음고생이 많으셨죠.
혹 그것 때문에 편찮으신 것의 원인이 되었는지 죄책감이 들어요.
선생님 힘내시고요 저희 반이 수학선생님과 함께 선생님께서 수술 받으실 16일 까지 기도를 하기로 했답니다. 꼭 좋은 결과 있을 것이라 믿어요.
빠른 완쾌 빌어요. 그래서 꼭 3학년 때도 선생님의 건강하신 모습 뵙고 싶어요.“
“ 훈아,
3월이면 홈피가 개편될 테니 글 올리는 것도 마지막이 되겠네.
새 학기에는 각 교사별 방도 만들어지길 기대해 봐야겠다.
우리가 매일 매일 숨쉬고, 먹고, 일하고, 공부하는 것, 모두가 다 기적이란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다 '기적'임을 망각하는 것이 '죄'래.
우리에게 일어나는 '기적'들을 기억하는 순간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거야.
세상이 정말로 기쁨으로 가득차게 되지.
하느님은 늘 우리에게 '사랑한다' '기억하라' 하신다.
'기적'들을, 또 '고통'까지도.
그리고 훈아.
니들이 속 썩여서 병이 난 건 아니야. 무신 죄책감?
니들 기도해 준다는 말에 선생님은 연신 '해죽해죽' 행복하다.
니들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를 알지?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모두 모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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