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권능과 영광에 눈멀지 않게 함이라.”
2월 17일 금요일
어깨랑 수술부위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엄마와 남편이 계속 주물러주어도 차도가 없었다. 부분절제한 왼팔은 움직일 만했지만, 전절제한 쪽은 목에서부터 맨 아래 갈비뼈까지 몹시 아팠다. 수술 시간이 길어서 소변줄을 꽂고 있었고, 림프액을 빼내기 위해 가슴에 호스를 꼽고 림프액 통을 달고 있었다. 밥을 먹기 위해 침대를 경사지게 들어 올릴 때는 가슴이 쏟아지는 것같았다. 전절제한 쪽 팔은 조금도 못 움직여서 엄마가 밥을 떠먹여 주셔야 했다.
2월 18일 토요일
새벽에 간호사가 침대에서 일으켜 앉히고 소변통에 소변을 보게 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되지 않았다. 어깨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수술부위 통증은 여전해서 일어날 수 없었다.
침대를 약간 기울이고, 항암치료 받지 않게 해달라는 지향으로 하던 9일 기도를 하기로 했다. 이미 틀린 일이지만 항암이라도 좀 덜하면 좋겠다 싶었다. 늘 무심히 읽어서 기억하지 못했었던 기도문이 자꾸 마음에 새겨졌다. 환희의 신비 3단 기도문이었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일을 허락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분의 권능과 영광 때문에 눈이 머는 일이 없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내 권능과 영광에 눈멀지 않게 함이라.”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리는 듯했다. 내 맘에 드는 답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원망하고 따지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 분명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처럼 고통을 감수한 훌륭하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만약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의 고통을 없애주시거나, 수명을 몇 년씩 연장시켜주신다면, 모두들 교회에 가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것이다. 하지만 권능과 영광을 좇아 하느님을 찾는 일은 가치 없는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그렇게 형편없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인간은 하느님 닮은 사랑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존재이다.
‘하느님도 참, 눈이 좀 멀면 좀 어때서?'하는 섭섭함이 남아 있었지만 내 마음은 평안을 되찾았다. 그리고 무사히 수술이 끝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어서 날들이 가고 아픔이 사라지고 회복이 빠르기만을 바랄 뿐이다.
저녁에 발에 꽂았던 링겔을 뽑았다. 자리에서 가까스로 일어나서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많이 아팠고 팔을 못 움직였지만 그만하니 살 것 같았다.
“하느님, 알았어요. 이제 저 그만 삐칠래요. 항암 치료를 오래 받거나 더 아프게 되더라도 어찌어찌 견뎌볼게요. 저한테 주셨던 위로와 기쁨 잊지 않고 전할게요. 살다가 너무 많이 아프면 또 삐칠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고통이든 다 참으면서 하느님 사랑 전할게요. 대신 삐치지 않게만 도와주세요. 아픈 것보다 하느님께 삐쳐 지내는 것이 더 힘들어요. 고마워요, 하느님.”
간호사가 일어나서 팔을 조금씩 들어올리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팔을 천천히 머리로 올리고, 등뒤로 올리고, 앞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열 번씩, 하루 세 번 해야 했다. 앞으로 들어올리기는 땅과 수평이 될 정도로밖에 올릴 수 없었다. 머리 쪽으로는 손을 못 올리고 몸을 옆으로 구부려서 손으로 귀를 잡을 정도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언제나 팔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오후에 남동생 가족이 왔다. 조카들을 보니 집에 있을 루카와 유지니오가 더 보고 싶었다.
힘들 때는 하느님을 욕하세요.
정말로 정말로 힘이 들 때는
하느님을 욕하세요.
괜히 다른 사람을 욕했다가는
하늘나라에서 혼이 날걸요.
“원수도 사랑하라 했거늘 누굴 원망하다 왔느냐?“
그러니 힘들 때는
차라리 하느님을 욕하세요.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딱 마주치면
“나를 그렇게도 욕하던 놈이구나.”하시겠지요.
그럼 이렇게 대답하면 돼요.
“하느님, 벌써 잊으셨나요?
하느님 원망하다가 정이 들어버렸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같이 살자 하셨잖아요?“
2월 19일 일요일
오후에 T와 현이 불쑥 찾아왔다.
“너 힘들어 하고 있으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전화 목소리가 밝아서 와도 괜찮을 것 같아서 쳐들어왔다.”
“그래, 잘했다. 나 마음이 정말 편하다. 전에 니 왔을 때는 하느님한테 삐쳐서 많이 힘들었었는데, 이제는 괜찮아. 나 수술할 때 엄마가 환시를 보셨대. 그래도 많이 아프니까 삐졌었는데. 예수님이 ”나의 권능과 영광에 눈멀지 않게 함이라“라고 하시더라고. 이제 화해했어. 마음이 편해.”
“웃고 있어서 정말 좋다. 고생한다. 너를 위해서 미사 신청하고, 기도하고 있어”
“정말 고맙다 .야. 현아, 너도 성당 열심히 나가라. 하느님은 분명히 계시거든. 내가 진짜로 체험했다니까.”
2월 20일 월요일
회복이 빠른 편인 것 같다. 이제 병실 안에서 천천히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엄마 친구 몇 분이 오셨다. 한 분이 나한테 물었다. “너, 성당 그동안 안 나갔지?” ‘하느님은 벌주시는 분이 아니신데. 뭘 모르시나봐.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셔. 아주 많이.’라고 생각하며 명랑하게 대답했다. “예, 맞아요.” “어쩜 그렇게 밝게 견디냐. 정말 고맙다.” “제가 고맙지요.”
2월 21일 화요일
병원에서 림프 부종 예방운동과 항암치료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팔은 이제 90도쯤 들어 올릴 수 있다. 교육실에 모인 환우들 표정이 다들 편안해서 놀랐다. 하느님의 현존과 위로를 체험한 나야 당연히 편안하고 기쁘지만, 저 사람들이 다 하느님을 믿지는 않을 테고, 어떻게 다들 저렇게 표정이 밝지? 하느님께선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허락하신다는 말씀이 맞는가 보다.
2월 22일 수요일
S 병원은 병실이 늘 부족하다. 수술 부위에는 스테풀러 철침이 박혀있고, 림프액도 아직 상당히 나오는데, 의사선생님은 림프액 통을 뽑고 내일 퇴원하라고 하셨다. 내가 오래 버티면 그만큼 급한 환자의 수술을 못 하게 된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항상 모든 것을 앗아갈 듯이 보이는 불행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심각한 병이나 무거운 죄에 연관될 수 없는 존재를 뜻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존재의 모든 것에 대해 결코 한 번도 무관심으로 대하지 않는 분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다. 위대한 은둔자 안토니오가 큰 시련을 극복한 후에 주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제가 시련을 당하던 그 때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계셨습니까? 이에 주님은 ”나는 어느 때보다도 그 때 너에게 가까이 있었다.“고 대답하셨다.
루돌프 슈테르텐브린크, 크리스타 바이저 지음 - 「낫기를 원하느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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