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복음: 마태오 18,1-5
어린이만 남는다
로빈 윌리엄스, 메릴 스트립, 맷 데이먼, 조니 뎁, 톰 행크스, 조지 클루니, 우피 골드버그 등
헐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 출동한 다큐멘터리 영화
‘라디오 맨’(2012)은 미국 전역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크레이크 카스탈도라고 하는 한 거리의 노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에 잠이 들었을 때 어머니와 둘이서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위로는
TV 서부영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화배우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집배원이 되어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어머니마저 암으로 사망하자
그는 삶의 희망을 잃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쓰레기통을 뒤지던 어느 날 그가 발견한 것은 누가 쓰다 버린 라디오였습니다.
라디오는 뜻밖에도 그에게 웃음을 찾아주었고 삶의 희망을 다시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라디오 덕분으로 술도 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라디오를 목에 걸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화 촬영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였습니다.
항상 촬영장에 가장 먼저 나타났고 바쁜 스텝들을 도와주었으며
연기가 잘 되지 않는 배우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가끔 엑스트라가 부족할 때 감독들은 그를 엑스트라로 썼는데
그렇게 100여 편의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흥행을 거두어서 감독들이 의례 그를 찾게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다큐 영화 라디오 맨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마침내 그의 꿈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노숙자 생활을 접고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여전히 영화에 출연하며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
언제 가장 큰 꿈을 꿀까요?
바로 어린이 때입니다.
어린이 때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꿈은 작아지고 작아져 결국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소박한 꿈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소화 데레사 성녀는
어린이처럼 살아서 큰 성인이 된 모범입니다.
마더 데레사도 천국을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 채우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또한 성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아 위대한 성녀가 되었습니다.
모든 데레사들은 그렇게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어린이와 같은 꿈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어떤 꿈을 갖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꿈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자신의 힘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모든 뒷받침을 다 해 줄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에게 부모님은 하느님과 같습니다.
그러니 못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어린이를 벗어나면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현실적이 되는 것입니다.
위 크레이크 카스탈도란 노숙인도 부모를 잃고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부영화의 주인공은커녕 하루하루 살아갈 힘도 잃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술에 의지하여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꿈을 다시 되찾아 준 것은 라디오였습니다.
그래서 그 라디오를 늘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라디오는 그가 어렸을 때 TV를 보며 꾸던 꿈을 다시 찾아주었습니다.
다시 어린이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가 그 라디오에서 나오는 희망의 목소리들을 믿은 까닭도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믿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는 혼자 힘으로 하려하지 않습니다.
병뚜껑이 따지지 않으면 바로 엄마에게 그것을 내밉니다.
혼자 힘으로 하려 할 때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린이와 같은 겸손은 하느님을 굳게 믿는데서 나옵니다.
소화 데레사는 선교의 주보성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를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갈멜 수도원에 15살 때 들어가 24살에 결핵으로 선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를 나가고픈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희생들을 선교를 위해 바쳤습니다.
등을 의자에 기대지 않고 기침하는 수녀님 옆에 즐겨 앉았으며
빨래할 때 물이 튀는 것을 기꺼이 맞았습니다.
그 희생들이 모여 작은 꽃이 되었고
이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전교의 수호성인이 발로 뛰셔서 구한 영혼의 숫자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 여겨 교회는 그녀를 또 다른 전교의 수호성인으로 세운 것입니다.
어린이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도 성모님께 그렇게 말했었고
성모님은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믿어 세상 구원을 잉태하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부모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믿으면 부모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어린이는 부모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압니다.
그런데 그 힘이 부모의 모든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지혜인 것입니다.
‘엄마 찾아 삼만리’란 동화는 아르헨티나가 세계 5대 강대국으로 성장했을 때
전쟁 때문에 살기 어려워진 이탈리아 한 엄마가 마르코라는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아르헨티나로 돈을 벌러 간 배경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엄마가 보내오는 돈으로 집안 형편은 좀 나아졌지만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긴 것입니다.
마르코는 혼자서 엄마를 찾아 아르헨티나로 떠납니다.
27일 동안의 항해 끝에 겨우 엄마가 일하던 집에 도착했지만
그 집 사람들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엄마를 찾아다닙니다.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몸이 아프기도 하고 갖은 어려움을 겪지만
마음씨 착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엄마는 일을 하다가 심한 병에 걸렸고 타향살이에 희망도 잃은 채로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 길을 달려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감동하여
힘을 내서 치료도 받고 병을 고쳐 마르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입니다.
엄마도 치유되었고 아이도 그 과정을 통해 엄마의 참다운 아들이 되었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다른 많은 성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완덕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자신은 아무 힘이 없어서 밑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만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은 그 눈빛이 너무도 애절하여 그녀를 집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놓습니다.
이것이 어린이의 영성입니다.
어린이는 부모님을 감동시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느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큰 꿈이 있고
그 큰 꿈은 하느님만이 이뤄주실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보기만 하면 마치 라디오 맨처럼 세상의 어리석은 아이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는 이유는
하늘 나라는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먼 나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붙잡으려 할 때 그 팔을 뿌리치시고
아버지께 가십니다.
그 이유는 이제 어린이처럼 당신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우리 꿈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꿈 자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꿈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분 곁에는 가장 겸손한 어린이와 같은 이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사제가 되어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만날 사람들을 정할 때 매우 고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그래도 자존심 다 버리고 주위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만 남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 주위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마치 신랑을 잃어버린 신부처럼 정신없이 그분만을 찾아 헤매는 중에
그 신부는 겸손해지고 정결해지고 순결한 정배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만 희망을 거는 이들을 그렇게 정화시키십니다.
일단 꿈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그분만을 의지합시다.
그러면 꿈이 성취된 자리에서 어린이가 된 자신과 함께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신 분도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주위에는 어린이만 남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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