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2018년 나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심판의 기준. 바라는 마음

김레지나 2018. 11. 16. 22:09

<2018년 나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독서 : 요한 2서 4-9
복음 : 루카 17,26-37

 

심판의 기준, 바라는 마음

 

어떤 사람이 세상에 매인 끈을 끊으려고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자기가 쓰려고 얼마간을 남겨서 숨겨두었습니다.
그가 스승을 찾았을 때 스승은 그의 행위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진정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마을로 내려가, 고기를 조금 사서 그대의 벗은 몸에 달아매고
다시 이곳으로 오게나.”


그는 스승의 지시대로 자기의 몸에 고기를 달고 산길을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몸에 달린 고기는 흔들거리며 냄새를 풍겼습니다.
냄새를 맡은 들개와 새들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고기를 노리고 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는 들개들과 새들에게 대항하며 도망쳤으나 그것들은 끝까지 따라붙었습니다.
들개들과 새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그는 많은 상처를 입었고 너무나 지쳐버렸습니다.
이내 그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달린 고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차 없이 그 고기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짐승들은 자신에게서 떨어졌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와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보이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버리면서도 자기의 돈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이처럼 공격을 한다네.
모든 것을 벗어버린 진정한 빈 몸이 되게나.”


오늘 복음에서 심판의 기준이 나옵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뜻에 집착하는 사람이었고,
물속에 빠진 이들은 세상 것에 집착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세상 것과 하느님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노아는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집착하는 사람은 하늘로 가고 땅에 집착하는 사람은 땅으로 갑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내용으로 롯의 아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롯의 아내는 세상으로 상징되는 소돔에 두고 온 것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유황불로 온 소돔 땅이 멸망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지 말라고 하시는 명을 어기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되자 소금기둥이 되어버려 더 이상 천사의 인도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만으로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착한 일을 많이 했느냐, 안 했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행위로는 그 사람의 본성을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심판은 ‘본성’으로 측정됩니다. 본성은 ‘욕구’입니다
.
세상을 좋아하는 욕구의 본성이면 하늘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야하는데 여전히 꽃이 아닌 나뭇잎을 먹기를 원한다면
그 애벌레는 나비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비가 사는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하늘의 것을 욕망해야합니다.
하늘의 욕망이란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하나의 욕구이기에 본성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심판은 행위와 관련이 없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침상에서 자고 있어도, 맷돌질을 하고 있어도 두 사람의 본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한 사람은 세상 것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천상 것을 좋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천상 것을 좋아하는 본성을 지닌 천국의 시민인지,
세상 것을 좋아하여 멸망할 본성을 지진 인간인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영화 ‘보헤미안 렙소디’에서 퀸의 보컬 싱어, 프레디 머큐리는 유명세를 타자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팀원들을 저버리고 혼자 솔로 엘범을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만나고 있는 이들이 그를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만나고 있는 이들을 차버리고 다시 동료들에게 돌아갑니다.

이 장면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이 잘못 가고 있었음을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썩었다. 그래서 주위에 날파리들이 많다.”
자신의 주위에 날파리들이 많은 것으로 자신의 본성이 썩고 있음을 눈치 챈 것입니다.


이렇듯 나의 본성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을 것이고,
내가 죽어있다면 날파리와 같은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세상을 좋아하면 세상을 좋아하는 이들과 어울리게 될 것이고,
천상을 좋아하면 그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 머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이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린 이스라엘의 미래를 상징하여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세상 욕구를 모두 끊고 오직 사랑만, 오직 그리스도만을 좋아하여
심판을 이기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이미 하늘나라에서 함께 살 사람들로 바뀐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