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7년

인생의 2막?

김레지나 2017. 8. 9. 15:59

어제 새벽의 일이에요.

횡경막 신경을 알아보니, 목에서부터 갈비뼈 아래까지 이어지는 신경이더라구요.

작년 11월에 급성으로 오른쪽 목아래와 어깨에 통증이 오고 횡경막이 올라붙어서 호흡곤란이 심하게 왔었는데, 

왼쪽마저 신경이 마비되면 위험하다고 해요.

그런데 4일 진료 보기 전날부터 오른쪽 목과 어깨가 만나는 지점이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픈 거예요.

그날은 수면제 부작용인가 싶었는데,

그제 밤에는 수면제도 먹지 않았는데, 자다가 어깨가 아파서 깼어요.

이러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곧장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한 달간 집에서 지낼 때까지 버틸 수 있나? 둘째 수능날까지는 버티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도 했ㄱ요.

일어나 앉아 급히 해야할 일을 슬렁슬렁 했어요.

작년에 어떻게 아팠지? 정확히 기억해볼라고 글 <본향을 향하여>랑 <주님,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십시오.>를 다시 읽어보았어요. (가끔은 레지나에게도 레지나의 글이 필요해요.^^)

그리고 제 책이 유고집이 될 경우를 대비해서 기증할 곳 신부님드께 메일을 드려서,

교회를 위해서라면 저자의 권리를 그대로 드리겠다고 당부 말씀도 드렸지요.

 

그러다 자정이 넘었는데,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보낸 메일 읽음 확인하려고 로그인을 했는데,

블로그 알림창에 '000'님이 "주님, 저를..."을 메일로 스크랩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보였어요.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는데, 좋은 묵상글 많이 올려주시는 신부님 이름이었어요.

'신부님이 무슨 글을 스크랩하셨나?'궁금해서 메시지를 클릭하니

양승국 신부님의 묵상글이었어요.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실패 앞에 설 때 마다> 

 

    베드로 사도,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교회의 반석, 초대 교황, 위대한 사도, 천국의 관리자... 

    그러나 베드로 사도, 그가 더욱 존경스럽고, 더욱 정감이 가고,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베드로 사도, 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향한 오랜 신앙여정에서 수시로 흔들렸고, 나약했고, 갈등했고, 번민했다는 것입니다.  

    그 같은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오늘 복음에도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렵다 못해 소리까지 질러대는 제자들 앞에서 물위를 걸어 등장하십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건너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외칩니다. 

    “오너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 사도는 “네, 주님!”하고 용감히 대답은 했겠지만, 속으로 엄청 겁이 났을 것입니다.  

    망설이고 있는 베드로 사도를 향해 주님께서 “자, 봐라, 이렇게 걸어봐라.” 하면서 자상히 물위를 걷는 법을 가르쳐주셨을 것입니다.

   용기를 낸 베드로 사도는 배에서 내려 물위로 발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설마 했는데, 물 위로 한 발을 내려서니 물로 빠져들지 않고 설 수 있었습니다.

    신중에 신중을 더해 또 한 걸음을 옮겼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 사도의 내면의 상태를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우쭐한 기분도 들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겠지요.  

    ‘아싸! 이제 나도 된다. 나도 스승님처럼 물위를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제자들을 향해 그랬겠죠. 

    “야, 너희들 봤냐? 수제자의 본 모습을! 너희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될거다.” 

    그러나 팽배했던 자만심도 촌각이었습니다. 잔뜩 기고만장해 있던 베드로 사도 앞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거센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큰 파도가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불안감에 휩싸인 베드로 사도의 내면은 즉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에 베드로 사도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수제자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는 순간입니다. 의아한 눈길로 베드로 사도를 바라보던 다른 사도들 ‘잘난 척 하더니 쌤통이나. 내 그럴 줄 알았다.’ 며 속으로 엄청 웃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한계는 바로 여기까지였습니다.  

    때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과 힘, 그를 바탕으로 한 성공도 허락하시지만, 그와 반대로 철저한 실패, 무기력, 한계, 나약함, 좌절, 실망감, 막다른 골목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단적 한계 상황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부서트리시고 주님께서 하신다는 진리를 깨우쳐주시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주님께서 손내밀어주시고,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배려가 아닐까요? 

    가끔씩 맞이하는 실패, 한계 앞에 설 때 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은 바로 제대로 된 우리의 인생이 펼쳐지는 순간임을 말입니다. 그 순간은 이제야 훌륭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승리를 준비하는 활기찬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말입니다.

 

'흠, 나한테 주시는 말씀은 아니야... 내일 복음과 관련된 강론인가? 나는 체면이고 뭐고 없고,,, 내 힘으로 다 한다는 생각도 전혀 없는걸.  다 내려놓고 덤덤하게 죽음 맞을 준비하고 있는걸. 인생의 2막은 무슨...'하고 생각했어요. 

 

쓰윽 한 번 읽고는, 늘 하듯이 <관리>에 들어가서 방명록에 올라온 비밀글들과 답글들을 훑어보았어요.

그리고 신부님이 무슨 글을 더 스크랩하셨을까. 궁금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전체보기>를 눌러보았는데, 헐~ 스크랩했다는 메시지가 없어요.

신기해서, 금방 본 강론글 기억을 되살려 검색을 해서 양승국 신부님 글을 찾았어요.

날짜를 보니, 2011년 글이더라구요.

그래서 양승국 신부님 글 목록을 뒤져보니, 그 글에 스크랩한 흔적이 없어요.

띠용~~ 기록 지우는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보통 한 명이 스크랩해가면 <스크랩 1> 두 명이 스크랩해가면 <스크랩 2> 하는 식으로 글 제목 옆에 적히거든요.

 

가끔 이렇게 헛것?이 보이는 때가 있는데, 저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거덩요.

히히. 그래서 그냥 제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단적 한계 상황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끔씩 맞이하는 실패, 한계 앞에 설 때 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은 바로 제대로 된 우리의 인생이 펼쳐지는 순간임을 말입니다.

   그 순간은 이제야 훌륭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승리를 준비하는 활기찬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말입니다."

 

몇 번 더 읽어보니... 옴마.... 제 거라고 붙들고 우겨야겠더라구요.

주님! 저한테 말씀하신 거 책임지셔욧.

괜한 희망 갖게 장난하지 마시고욧!

인생의 후반전을 천국에서... 그런 해석은 반칙이에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