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conomy of Tongue by Marino Restrepo
오늘 혀에 대해 묵상하고자합니다.
저의 하느님 체험을 통해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아주 어렵게 배운 것이 혀에 관한 것입니다. 지옥을 체험하면서 제가 보았던 영혼들에게 가장 큰 기형적인 변형을 초래했던 두가지 죄는 혀와 불순결한 성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외 다른 죄들이 심각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대죄는 모두 죽음의 죄입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죄로 인해 모두 각기 다른 변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완벽한 지식을 가진 상태가 된 저는 그 여러가지 변형이 혼합된 그 모습이 어떤 죄로 인한 것인지를 모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그들은 목소리를 잃음으로 인해 각기 다른 톤의 짐승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그 소리는 각 영혼의 변형과 관련되어, 죄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생각이 전혀 없이 죄의 삶을 선택하였으며, 그것을 합리화하며 그것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완전히 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미 변형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의 톤이 이미 생명을 잃고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저는 목소리에서 지옥의 톤을 알아챌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옥으로 심판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마지막에 회개하고 변화될런지 모르는 일이죠.
이 지상의 삶에서 스스로 사탄의 영역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면 모든 일에 있어서 지옥의 모습을 갖습니다. 몸짓이 지옥의 모습이 되고 눈, 감각, 본능, 이성 안에 지옥의 영이 스며들게 됩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도둑질 영의 행동을 합니다. 도둑질 영이 몸짓에 스며드는 것이죠. 성으로 인한 불순결의 죄를 짓는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좋아하며, 고의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불순결의 영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며 몸짓과 모든 것이 불순결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목소리가사라지기 시작하며 목소리가 짐승의 소리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귀로는 그것을 알수 없지만 영적인 귀로는 들을 수 있는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인이나 은사를 가진 사제들이 영혼을 읽는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말 그대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영혼은 신성한 하느님의 것이므로 누구도 영혼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 주변에 있는 악의 영을 읽을 수는 있습니다. 거룩한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볼 때 사제가 “불순결의 죄를 고백할 것은 없나요?”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의 몸짓이나 모든 것에서 불순결함을 느끼는 것이지요. 불순결의 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나와서 그 사제가 영혼을 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제가 사탄을 읽은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사탄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심방에는 하느님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 안에 사탄의 생각과영향이 들어가도록 허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사탄은 마음을 읽지는 못합니다. 사탄은 마음이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읽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을 보고 생각을 알아내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음이나 생각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아주 깊은 사람과 대화해보면, 그들에게 식별의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에 충실한 사람들은 모두 식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해도 무언가 잘못된 것을 식별합니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알지요. 아이들이 무언가 잘 못할 때, 엄마들은 압니다.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너 무슨일이 있은거야? 뭔가 잘못한게 있지?” 라고 말하지요. 좋은 엄마는 자식에 대해 식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순수하므로 알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고백하지 않는 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대략 짐작이 가는 것입니다.
영혼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을 하느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탄이 무언가를 하려 할 때, 그 사람의 허락없이는 절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연옥영혼은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구에게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영적 세상은 절대 우리의 영역으로 오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은총의 상태에 있으며 영적세상에 대해 완전히 불리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죄로 인해 영적세상에 대해 볼 수 없고, 들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너무도 완벽하시므로, 영적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 곳으로 함부로 건너오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룰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을 불러오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위입니다. 우리가 다룰수 없는 힘을 다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것에 손도 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점집이나 무당, 점성술을 보러 가는 등, 어느 곳에도 가서는 안됩니다. 영적세계는 손대지 말아야합니다. 이야기도 대답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형태든 초자연적인 산비체험을 한 사람에게 교회에 가서 상담을 하고 교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입니다. 교회가 어떤 평신도에게 그것을 담당하는 직분을 준것이 아니라면 어떤 평신도의 지시를 따라서도 안됩니다. 교회가 어떤 평신도를매우 신뢰하므로 그러한 직분을 줄 수도 있습니다만, 사제는 여러분이 다룰 수 없는 통로를 다룰수 있도록 사제직을 도유받은 것입니다. 사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도유되어 여러분이 들어갈 수 없는 초자연적인 상태 안에서 그러한 체험을 했을 때 여러분을 보호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초자연적인 은총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교회의 지도 없이초자연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열려진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두 상태가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쪽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뿔이 있고 꼬리가 있는 사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세상을 무시한 여러분에게 빛의 천사를 가장하고 나타날 것입니다. 사탄이 원하는것은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이나 사기꾼과 같지요.
혀에 대해 말씀드리죠. 우리는 혀라는 아주 섬세한 고등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말하자면 신체기관이지만 영적으로 말하면 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힘의 기관입니다. 혀는 마음이 어떤지를 표현하지요. 마음은 둥지와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표현할 때, 가슴의 중심을 가르키지요. 예수님의 성화를 보면 마음이 정중앙에 있지요. 영적으로 말하면 마음은 사랑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마음이 나쁘다고 말할때 그 마음은 사탄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좋다는 것은 마음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악한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우리의 머리로 생각하고 결정한 것들을 둥지로 가져가 그 생각이 부화하여 죄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는 목소리로 그것을 표현하지요.
우리의 목소리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성령의 목소리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우리의 목소리를 이용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에게 해를 끼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상하게 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지옥으로 가는 영혼이 첫번째로 잃는 것이 목소리이며, 즉시 짐승의 소리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중에 악령 들린 사람을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제가 악령들린 사람에 대해 기도를 하면 악령들린 사람이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지요. 많은 경우에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악의 세력, 추락한 천사의 목소리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사로잡은 영들이 복종하도록 구마를 하면 모든 영들이 말하여야 합니다. 악령들린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하여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탄화된 영혼 자체는 목소리가 없으므로 악령들린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해 다른 톤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목소리는 서로 다른 톤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마가 진행될 때, 사탄화된 영혼에게 누가 상관인지를 말하라고 합니다. 그들의 상관은 추락한 천사입니다. 그 추락한 천사를 불러내어 구마자가 어떻게 그 사람이 악령이 들리게 됬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면 추락한 천사가 복종하며 모든걸 밝힙니다. 그러면 구마자는 추락한 천사가 밝힌 상세한 모든 것에 대해 떠나가도록 명령을 하며 사슬을 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상세한 내용들이 밝혀져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혀를 통해 표현됩니다. 혀가 바로 도구가 되는 것이죠.
우리의 혀를 통해 사탄이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사탄은 우리의 혀를 통해 말하는 모든 것들을 이용해 기회를 노립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탄이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께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꼭 대죄상태에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약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서 “오 아니에요. 십자가에 못박혀서는 안되요. 그러지 마세요. 왜 그러시려고 해요.” 라고 말한것이죠.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권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머니로서, 형제로서, 친구로서 자신의 이기심으로 권고를 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이기심으로 우리 옆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떠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떠나고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유익이 되는대도 우리의 이기심으로 인해 붙잡아 두려 하지요. 이기심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불러넣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을 소유하고 조정하고 이용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조차도 중상하고 욕설을 하는지 모릅니다. 단지 질투로 인해 친구의 친구, 자녀들의 친구, 배우자의 친구를 좋아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소유하고 조정하려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지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때로는 과장하고 꾸며내기도 합니다. 누가 그렇게 하는건지 아십니까? 사람들을 소유하려하고, 조정하려하고, 질투하는 우리의 약함을 사탄이 이용하여 잘못된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말들이 우리의 영혼의 모습을 기형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해 좋지않은 말을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관을 통해 그것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조화를 벗어나게 하여 자신을 완전히 변형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과 동정으로 이야기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져다 줄 때, 듣는 사람들의 감각이 편안해지며,하느님, 사랑,동정으로 인해 지성, 감각, 본능등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일치를 이룹니다. 그 반대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할 때, 하지말아야 할 말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손상시킵니다. 그들을 잘못 인도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조화를 벗어납니다. 듣는 사람들이 무언가 잘못된 것임을 압니다. 그러한 유혹에 빠져 그것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질지라도, 자신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조화를 벗어나는 것이죠.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뒷담화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약함으로 인해 그 이야기를 듣고 다소 즐기지요. 사악한 그러한 이야기에 흥미로워하며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려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것이 마치 질병과 같이 혀를 통해 옮겨갑니다. 혀가 자신의 모든 것에 부조화를 가져옵니다. 무언가 나쁜 말을 할 때, 자신도 마음안에 그것을 느끼며, 그것은 영혼에게로 갑니다. 그러면 영혼은 기형적으로 변합니다. 그것이 제눈으로 본 것입니다. 혀의 죄로 인해 기형적으로 변형된 영혼. 끔찍하게 변형된 모습입니다. 정말 추한 괴물과 같습니다. 무서운 모습입니다. 중상을 하고 뒷담화를 많이 하며 남의말을 빨리 전하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이미 모습이 변한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의 말을 전하는 얼굴이며, 눈, 입, 말하는 모습등,.. 아주 흉합니다. 그것들이 저 아래, 지옥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성전이 될 수도 있고, 사탄이 죄의 배설물을 쌓는 뒷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사탄이 와서 여러분을 뒷간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입에서 완전히 사탄의 배설물이 나오는 것 입니다. 글자 그대로 입니다. 그런 말을 사용해서 미안하지만 그 이상의 더 나은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접보았기에 혀에 대해 본대로 이야기해야합니다.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뒷담화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요.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여러분을 용서하십니다. 너무 세게만 하지 마세요.” 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ㅎㅎㅎㅎㅎ 그것이 요즘 가장 인기있는 복음전파입니다. 네 정말 그래요. “오 우리는 그 사제를 정말 사랑해요. 정말 좋아요.( ㅎㅎㅎㅎ) 아주 관대하세요.” ㅎㅎㅎ… “ …네 그러한 관대함이라면 우리 모두를 지옥에 갑니다.ㅎㅎㅎ
우리에게는 그러한 관대함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특히 저는 그러한 것을 보고도 미지근하게 한다면요. 하느님이 막으십니다.차라리 지금 이순간 죽는 것이 낫습니다. 저는 항상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씀을 전하러 갑니다.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요. 제가 그 누군가가 두려워 말하지 못한다면 지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말하려 할 때 두려움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아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전하려 할 때, 고작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 돌을 던진다면 그렇게 하도록 두십시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말을 전하십시오. 단 결코 동정심을 잃지 말마십시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하지말고 사랑하십시오.
우리의 혀는 어떻습니까? 오~ 변형되고 있는 것을 느끼지요. 오..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우린 아직 은총의 시간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순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안녕?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 지금 너의 모습을 바라보면 나는 너를 그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았다. 내가 창조했던 모습이 아니다. 너무 많이 변형되었구나. 내가 너를 다시 새롭게 할 것이다.” 진실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거룩하지 않구나, 모든 것이 변형되었다, 나는 그것을 바로 잡아 새롭게 하기 위해 온 것이다” 라고 하시지요. 그것이 예수님의 기쁜소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오셔서 주신 기쁜 소식이 “너희들 대단하구나. 내가 너희를 천국으로 데려가려하니 오너라.” 라고 생각하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잘했다고 축하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용기를 축하하는 파티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항상 긴장하여 깨어있게끔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대담하게 물위를 걸으려던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그렇게 할 용기를 갖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물 위로걸어오시는 것을 본다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감했던것이죠. 여러분에게 물위를 걸으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베드로는 정말 용감했던겁니다. 대담했죠. 그가 믿음을 잃고 물에 빠지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야” 라고 하셨습니다. 물 위를 몇 발자욱 걸은 것을 축하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대단하다! 몇발자욱 걸었구나.!! 네가 해냈구나! 대단한 믿음이다.” 할 것을 기대헀을겁니다. 아니요. 베드로가 몇발자국이라도 해 냈는데도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배 안에 머물러 있으며..”물위를 걷는다고? 노~~”” 라고 생각했겠죠..
우리가 말하는 모든 말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예를 들어보이겠습니다. 여러분이 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행직원 중에 한 사람이 아주 느립니다. 여러분이 급한 일이 있거나 하는 이유로 참을 수 없어, 은행직원에게 언성을 높였고, 결국 은행장에게까지 가는 일이 있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의 입에서 거친말들이 함부로 나왔겠지요. 그 말이 줄에 서서 함께 불평을 했던 사람에게 영향이 가겠지요. 그리고 그말이 꼬리를 물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 사람들이 차례가 되어 은행직원에게 갈때마다 화를 내고 기분 나쁘게 할 겁니다. 그러면 은행직원도 화가나서 하루종일 손님들을 기분나쁘게 대합니다. 그리고나중엔 길에 나가서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요. 사슬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하루를 마칠 때 즈음 누군가는 매우 상처를 받습니다. 분노의 사슬이 계속 사람들에게 옮겨진 것이지요. 그 분노의 불에 대해 누가 책임이 있을 것 같습니까? 처음 불을 붙인 사람입니다. 그것이 혀의 회계입니다. 누가 그 회계의 숫자를 알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을 시작한 사탄입니다. 바로 그가 그 화가 난 그 말에 올라타 말을 달리듯 달린것입니다. 여러분이 별 생각없이 한 그 불평의 말이 사슬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날 마지막에 가서 누군가가 몹씨 상처를 받는 것이지요. 불처럼 시간이 갈수록 커진것입니다.
여러분이 불평을 할 때, 여러분안에 있는 모든 분노와 좌절이 올라옵니다. 어쩌면 은행원과 상관없는 자신의 분노, 자신의 삶의 좌절, 그 모든 것들이 표출이 됩니다. 그것이 독입니다. 사탄이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불을 붙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대전 앞에서 은행원에 대한 작은 불평이 아니라 마지막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슬의 마지막 결과입니다. 사탄은 그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순식간에 바다를 건넙니다. 누군가는 해외에 전화해 누군가를 모욕하는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은 또 어딘가에 누군가의 결과를 지지요. 그 사슬, 영향은 결코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주의해야합니다. 이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우리는 혀의 회계장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입을 통해 나오는 모든 말의 결과는 아주, 아주 큰 것입니다. 사탄은 정확히 그 말을 가지고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어떤 말을 하고서, 상대방의 반응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말한건데 그사람이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하고 말하지요. 그렇게 상처를 주려고 말한것이 아니라고 하지요. 그러나 그 말이 상처를 준겁니다. 사탄이 그 말을 골랐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는 작은 분노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사탄의 것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건 사탄입니다. 사탄은 분노를 맡아 그것에 올라탑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말(타는 말) 입니다. 분노의 말을 사탄에게 제공하면 그들이 그것에 올라타고서 모든 사람들을 치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자신이 한 그 말을 선택한것입니다. 마음 안에 작은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화가 나서 그것을 줄 누군가를 찾게 되고 머리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입을 통해 누군가에게 그것을 분출시킬 일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총을 쏘아대는 것입니다. 그 때 누가 그 말에 올라탔을 것 같습니까? 사탄이 자신의 군대와 함께 그 것에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상처입게 하지요. 누군가를 깊이 찌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혀를 통해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의 혀는 소용돌이 같습니다. 사탄이 그 소용돌이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휘저어 놓지요.
혀는 신성한 도구이므로 사악한 영이 그것을 침범하려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하느님을 모독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우리들을 괴물이 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도구입니다.
여러분이 혀로 쏘아댈 때까지 사전 준비가 있습니다. 혀로 쏘아대기전 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총알과 같습니다. 혀는 총과 같지요. 총알은 우선 뇌라는 공장에서 생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는 감정과 느낌으로 바뀌고 모든 종류의 욕망에 공급되지요. 그 욕망이 총알이 되어 혀를 통해 쏘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왜곡되도록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생각을 하지요. 우리의 정신은 공항과 같습니다. 하루종일 모든 좋은비행기와 나쁜비행기가 이륙합니다. 아주 붐빕니다.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에도 여전히 이륙, 착륙을 계속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잠자기 전에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봉헌해야합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우리의 마음이 바위처럼 굳어지기도 합니다. 잠들기 전에 주의하지 않았고 화가 난채로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제자는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라고 말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화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화가 난채로 잠자리에 들지 마십시오. 그대로 잠이 들면, 마음은 매일 밤 더욱 굳어집니다. 사탄이 잠든 사이에 마음을 더욱 굳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나 우울함과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채로 잠자리에들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무릎꿇고 그것을 깨끗이 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모든 것을 씻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귀중한 성사가 있습니다. 고백성사는 매우 매우 매우큰 은총입니다. 아주 강력한 것입니다. 우리는 씻어낼 수가 있습니다. 저의 신비체험에 근거하여 우선 여러분께 권하는 것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신의 혀를 하느님께 봉헌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저의 혀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사랑이 아니라면 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벙어리가 되도록 저의 목소리를 가져가십시오. 영원히 벙어리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 혀는 그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차라리 목소리를 잃고 벙어리가 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삶의 마지막에 영원히 후회 할 어떤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구제할 방법이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그것을 고칠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변형되었는지에 상관없이..우리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를 가지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나아가 “주님, 혀를 잘못 사용한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백성사를 보려할 때,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죄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하는지 모릅니다. 가끔 있는 일이지요. 바로얼마전, 한달 전 쯤, 녹 라는 곳에 2일 개인피정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보통 어떤 성당을 가든 어떤 상황에서든 우선 고백성사를 보는 것을 확실히 합니다. 고백성사를 보려하는데, 아이구~ 죄를 못찾겠는 겁니다. 저는 혼자, “오~ 아주 수상한데..”하고 생각했습니다. ㅎㅎㅎ 죄가 없다구???..ㅎㅎㅎ 저는 고백소에 들어가 사제에게 고백했습니다. “저의 교만에 대해 고백합니다.” 저의 죄를 찾을 수 없을만큼 길을 잃고 문제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지요. 얼마나 교만해졌는지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주의깊게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 안에 많은 것들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많은 작은 것들, 혀를 가지고 한 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혀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조정하려했고, 누군가를 잃을까봐 얼마나 거짓말을 했습니까?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의의 거짓말은 없습니다. 거짓말은 사탄의 행위입니다. 누군가를 자신에게 가까이 있도록 하기위해 무엇을 했다고 생가하십니까? 그 사람이 떠나는 것을 막은것이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그들의 삶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이 아닙니다. 사탄의 일이죠.
우리의 혀로 인한 죄만도 수백만의 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혀로 인한 죄를 잘 돌아보면 아주 긴 목록이 만들어질거라고 확신합니다. 사제에게 좋은 것보다 자신에게 좋은일을 하십시오. 그 죄의 목록을 성체앞에 가져가십시오.
제가 한 예를 들지요. 저의 회개에 대한 증언을 들은 한 여성이 저에게 왔습니다. 이 여성은 정말 우연히 저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에게 있어 우연이 아니었지만요. 다른 곳을 찾다가 우연히 저의 강연을 듣게 된것입니다. 강연이 끝난 후 그 여성은 제게 와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녀는 교회를 오래전에 떠났다고 했습니다. 한동안 교회를 떠났던 그녀가 다시 돌아와 고백성사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감실 앞에서 아주 긴 목록의 죄를 써내려 가며 통회를 했다고 합니다. 고백소에 들어가자 사제가 목록을 힐끗 보더니 “그 목록의 죄를 다 통회하셨나요?” 하고 물었고 그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사제는 “그러면 사죄경을주겠습니다.”하며 마지막 기도를 하더랍니다. 마음이 상한 그녀는 고백소에서 걸어나와, 교회에 대한 모든 것, 모든 사제들을 미워하며 아주 오랫동안, 한 15년쯤을 교회에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가 우연이었다고 말한 제 강연이 있던 날, 제가 강연 중에 예수님께서 길가에 있던 병든자들을 치유하시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시고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지요. 사제에게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정화를 위한 것이었죠.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사제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죽일 방법을 찾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사제에게 보이고 값을 치루어 자신을 정화하라고” 하신겁니다. 우리에게 그 길가는 어디입니까? 성체가 있는 곳입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여!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예리고의 장님이 우리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죄를 말씀드리는 것이죠. 이러이러한 죄, 모든 자세한 것들을말씀 드리고 나서 사제에게 가 자신을 정화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용서해 주신 것을 사제에게로 가지고 가서 “저는 첫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리고..둘째, 셋째 계명….”
성령께서 사제를 통해 물을 때가 있다면, 즉, “불순결의 죄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해 보세요.” 라고 할 때가 있을 겁니다. “몇번이나…등등” 그러면 마음을 열고 사제에게 고백을 합니다. 사제를 통해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혹, 때로는 사제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사제가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그 사제가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한것입니다.
하느님은 때로 무언가를 하시기 위해 어떤 사람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러기에 때로 사제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 듣기만 하지요. 그러나 성령께서 일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고백성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통회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제에게로 가서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죠. 살인을 했습니다. 도둑질을 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등등… 고백소에 들어가 그것들을 말할 때,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때로는 사제가 “얼마나 훔쳤어요? 누구로부터 훔쳤단 말이에요? “ 라고 한다면 정말 겸손해져야하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상하지만, 그렇게 해야하는 겁니다. 우리는 죄의 목록을 잔뜩가지고 고백성사를 보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열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고백소에서 “..그러니까…….제가… 제 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요….시속 100마일로 가고 있었거든요….” ㅎㅎㅎㅎㅎㅎㅎ 그러면 사제는 “대체… 무슨 죄라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겠죠…ㅎㅎㅎㅎ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고문이지요. ㅎㅎㅎㅎㅎ 저는 사제는 아니지만, 가끔 저에게 상담하러 오는 사람에게서 겪는 일입니다. 서두가 아주 길지요. 그러면“언제 이 말을 끊어야하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무례하고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하거든요.ㅎㅎㅎ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중간에 끊어버리겠지요. 우리 모두는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으므로 뭐든 조심스럽게 해야합니다. ㅋㅋㅋ
혀는 이 모든 것과 관련됩니다. 혀는 소통의 도구입니다. 눈이나 몸짓등으로도 사랑의 소통을 하지만 혀를 통한 소통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매우 초월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영적) 회계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야고보 성인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분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계산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제 눈으로보았습니다. 나쁜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듣기 거북한 욕설, 외설적인, 끔찍한 언어들을 씁니다. 그러한 모든 말들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어떤 하느님의 천사도 그런 언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 요한은 어떤 영이 어떤 사람을 통해 말하는지 알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귀기울여 보십시오. 그러면 누가 살고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말을 한다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안에 살고 계신겁니다. 사랑이 없는 말을 하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마음 안에 살지 않으신겁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말하고 있는 사랑의 말은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치유하시고 여러분의 혀를 깨끗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십시오. 목소리의 은총을 영광되게 하도록 여러분에게 필요한 사랑을 간청하십시오. 그것이 혀의 은총을 영광되게 하고 목소리의 은총을 영광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 눈으로 목소리를 갖지 못한 영들을 보았으므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평생동안 목소리로 말을 하고 살았는데, 말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입에서 짐승의 소리가 나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짐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서 나오는 짐승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절대 좋을리가 없지요. 하느님께서는 짐승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는데, 짐승으로 변한것입니다. 그것이 첫째로 가장 끔찍한 고통입니다. 동물이 아닌 자신이 짐승처럼 변한것을 본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죄로 인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죄는 우리의 모습을 변형시킵니다. 누구를 겁주기 위해 하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이미 마음이 많이 굳어버린 사람은 사실 이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을 겁니다. 저를 웃음거리로 만들겠지요. 그러나 하느님과 사랑에 예민한 사람, 거룩함을 찾고 노력하며 매일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함을 찾으며 거룩함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우리의 삶을 바로 하여 우리의 모든 감각을 보호하여야합니다.
내일은 제가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할텐데, 그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모두 영적인시각으로 올라갑니다. 우리의 눈과 연결되어 우리는 눈으로 많은 것을 합니다. 보는 것을 아주 조심해야합니다. 그 모든 것이 모두 영적회계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모두 숫자로 계산되어집니다. 우리가 읽고 보는 모든 것…예를 들어 보지요. 우리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이 방의 모든 것을 보고 감지합니다. 카펫, 커튼, 벽, 조명…사람들의 얼굴, 그사람의 삶 등등… 모든 것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결론을 내리지요. 그리고는 자리에 앉습니다. 강아지들이 자리에 앉는것을 보셨습니까? 그 자리를 빙빙돌다가 앉는 모습이요. 그것이 동물적인 기본 본능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좀더 세련되게 하지요. ㅎㅎ 이성이 있는 우리는 실제로 몸을 빙빙돌리지는 않지만 정신으로는 그렇게 합니다. 그 자리에 앉기 전에 머리가 빙빙 돕니다. 그리고 나서 자리를 찾아 앉지요. 우리는 방에 들어와서 벽에 기대고 여기저리 훑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를찾아냅니다. (흉내..ㅎㅎㅎㅎ)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서도 나중에 보면 생각지 않은 자리에 앉아있지요. 때로는 내가 왜 여기 않은거야?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ㅎㅎ때로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왜 내가 여기 앉았지?” ㅎㅎㅎ
그렇게 우리는 항상 보고 감지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회계와 관계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항상 잘못 감지하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아십니까? 끔찍한 일입니다. 언제나 잘못된 곳에 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안에 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대죄의 상태에 있다면 항상 잘못된 자리에 앉게 될 것이며, 잘못된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잘못된 생각을 할 것이며, 잘못된 때에 있게 될 것입니다. 대죄로 인하여 언제나 그렇게 됩니다. 대죄는 여러분을 부조화 상태로 밀어냅니다. 삶을 끔찍하게 살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의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산다면 조화를 이룹니다. 기도생활이 약할 때 그 감지하는것 역시 약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다면 대죄상태에 있는 사람보다는 분명히 훨씬 낫지만, 그러나 100프로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더욱 영적으로 될수록 멍에는 훨씬 가벼워집니다. 어디에 가든 더 빨리 잘 감지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미는 우리안에 빛의 영을 갖는 것이며 식별력을 갖게 됩니다. 영적 훈련을 하도록 하지요. 영적인 훈련은 기쁨을 주며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을 진심으로 만끽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안에 사시기 시작함으로써 삶은 변화하게 됩니다. 결코 보리라 생각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며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합니다. 결코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결코 사랑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평생 자신을 상하게 했던 사람을 몹씨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부유하게 합니다. 우리 각자는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될 때 우리의 적을 사랑하게 되지요. 그 사람이 아주 중요하게 됩니다. 우리의 적이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기때문입니다. 그 적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콜롬비아에 한 여성 리포터가 있었습니다. 아주 못된 리포터였습니다. 성당을 다녔어요. 제게 중요한 선교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저의 과거를 들추어 저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내용의 편지를 써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영국에사는 저의 친구가 선교사명을 위해 콜롬비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여성으로 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라면서 저의 온갖 과거를 들추어 내었습니다. 어쩌면 크리스챤을 박해했던 성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친지들이 그가 “자신의 남편을 죽였으니 조심하라고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그랬겠지요. 저는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과거에 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저에 대해 중상모략을 하였고 사실이 아닌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이젠 더 이상 가만히 두면 안되겠어, 무언가 해야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감실 앞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주님께서 정말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를 겸손하게 만들수 있겠느냐? 그 편지가 너를 겸손하게 만들고 있다. 사랑하여라! 사랑하여라! 오직 사랑하여라! 너는 대단한 제자가 되려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자신이 잘한다고생각하며 다니며 환대받으려 하지말고 사람들에게 천대받도록 두어라. 사람들로 하여금 중상모략하고, 너를 짓밟도록 두어라. 그것이 너에게 필요하다. 미움받고 모욕을 받아라. 어떻게 자신을 낮아지게 하겠느냐. 적으로 인해 겸손해 져야 한다. 그냥 두어라. 십자가에 못박게 두어라. 찌르고 가시관을 쓰게 하도록 두어라.”
사람들은 죄없는 예수님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죄인인 저에게 왜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적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솔직히 저의 본성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으므로 혀를 깨물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보상받았는지 상상할 수 없으실 것입니다. 수천배로 받았습니다. 그 후에 저는 진심으로 그 여성이 했던 일에 대해 기뻐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것이 제게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신이 나서서 자신을 방어하지 말아야했기 때문입니다. “잠깐만요. 그녀가 한 말은 사실이 아니에요.그것은 모함이에요.” 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전혀 영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결코 자신을 방어하지 마십시오. 필요하다면 하느님께서 방어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얼마 안 있어 저는 다시 성체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성녀 파우스티나의 일기를 발견하고 그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펼친 페이지에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신 굵은 활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방어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대로 있어라.” 제게 주신 말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잘못을 할 때 그저 하느님께 감사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비한 보물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려놓는 신비입니다. 자신을 방어하는 것보다 영적으로 되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요. 모든 것을 우리의 본성과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앞으로 나가게 하지요. 자신의 영역을 방어하고 자신에 대해 소리를 높이게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그것을 위해 오랫동안 실갱이를 하지요. “내가 이래서 저래서….” 부모 자식간에, 친구사이에, 교회내의 사람들이…모든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을 방어합니다. 그러나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된다면 더이상 자신의 영역을 방어하려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누군가 자신에 대해 끔찍한 말을 한다면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네… 나는 그보다 더 나쁜데..ㅎㅎㅎ 그건 시작일 뿐인데….ㅎㅎㅎㅎㅎㅎㅎㅎ” 아주 가벼워 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사람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야?” 하고 의아해 하겠지요. “예전같으면 죽이려고 들텐데…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ㅎㅎㅎ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좀더 높은 상태로 성장해야합니다. 올라가야 합니다. 성장에 대해 말한다면, 교회내에서 진심으로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때 때로는 사람들이 성장이 멈추어져 있습니다. 그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글쎄…조금 나아진것 같아요…좀 바뀐것 같아요” 미지근하게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조금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바꿔야합니다. 하든지 말든지, 확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기로 했다면 하느님께로 나아가야지요. 하룻밤새에 거룩해지고 완벽해지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향해야합니다.
제 경우에는요…제가 가장 어려웠던 저의 성적인 불순결을 포기하기 위해 주님앞에 무릎꿇고 나아갔었습니다. 저는 과거에 여성편력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하루종일 항상 여성과 함께 다녔고 여자 없이 살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수 년동안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불순결했습니다. 제가 회개를 하고 나서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이 선교사명을 시작하기 전 이년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감실 앞에 나아가 주님께 간청해야 했었습니다. 매일 주님께 나아가 간청했습니다. “저좀 잡아 주세요. 저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좀 잡아주세요.” 히며 간청했습니다. 제 몸 전체가 불타는 듯 했고, 모든 여성의 목소리가 속삭이는 듯 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도록 정열을 느꼈습니다. 저는 완전히 성적욕구의 노예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더욱 제 자신을 못박았고, 그것은 굉장한 싸움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합니다만,예전보다 훨씬 쉽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끔찍한 순간이 아닙니다. 때로는 쉽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에 대해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지않고, 듣지도 않습니다. 저는 9년 동안 독신을 지켰습니다.가장 큰 싸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잔잔한 바다에서 순항을 하는 듯 하지만, 그다음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일단그것을 이겨내면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은 수천배로 갚아 주십니다. 그것을 이겨낼 때, 매우 큰 평화를 주십니다. 저는 독신을 지키는것이 어떤 기쁨과 평화를 주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이겨내는 것이지요. 모든 덕이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가져던 애착을 치유해주심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열은 치유해 주지 않으셨읍니다. 이 육체가 죽을 때까지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이 육체는 그러한 모든 것의 저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해낼 수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하느님께서 오셔서 도와주십니다. 정말로 원한다면 그것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주님도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계십니다. “주님, 제가 얼마나 이 죄를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얼마나 이 불순결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불순결에 대한 중독이 되어있습니다.” 저는 주님께 무릎꿇고 간청하며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저를 치유해주시길 간청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떤 죄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옥에서 괴물로 변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치유해주십시오. 사슬을 끊어주십시오. 계속 이길을 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한것입니다. 저는 계속 그렇게 간청했고, 지금은 더 이상 그 죄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육체를 갖고 있으므로 여전히 유혹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혀를 잘 다루지 않으면 아주 어렵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 매우 악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이 말한 것처럼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는 것은 더디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훈련이 될것입니다.
그렇다고 진리를 말해야 할 때 침묵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수줍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한다고 하지요. 오~그런 수줍음은 일종이 허세입니다. 수줍음은 허세를 아름답게 포장한 것입니다. 수줍은 이유는 사람들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가 두렵다는 것이지요. 겸손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실수 하세요. 수줍은 사람은 천당도 못가요. 수줍어서 어떻게 들어가요. 천당문 앞에 있는 베드로 사도가 무섭고 수줍어서 어떻게 그 문을 통과해요…ㅎㅎㅎㅎㅎㅎ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치유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치유되길 원해야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모든 것을 버리기 원해야합니다.나쁜 혀를 가지고 있나요? 버리세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혀를 치유하실 겁니다. 나쁜 말, 나쁜 생각, 독이 든 마음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가장 놀라운 평화를 갖게 될 겁니다.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사람들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나쁜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하느님 이 사람을 용서해 주십시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사람을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 wisdom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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