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저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제가 회개하게 된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콜롬비아 안데스 산위에 있는 커피를 생산하는고장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14세에 콜롬비아의 수도로 보내져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그 곳에서 당시 60년대에 유행하던 뉴에이지로 알려진 모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저는 가톨릭 신앙을 떠났고 크리스챤을 박해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33년 동안 크리스챤들을 경멸하며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별자리점이나 풍수, 여러 점등을 보는 등, 뉴에이지로 불리우는 온갖 것들을 행하였습니다.
그 후, 20세가 되던 해, 결혼을 하면서 독일로 이주하여 배우와 작곡가가 되기 위해 함브르크 대학에 다녔으며 그 곳에서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6년후인 1976년부터는 캘리포니아의 헐리우드에서 엔터테이먼트 분야에 종사하며 TV와 영화배우로 활동하였고 뉴욕의 쏘니 음반사와 전속계약을 하면서 수 년 동안 전세계를 다니며 콘서트를 기획하고 작곡을 하였습니다.
저의 삶은 점차 돈, 권력, 명성만을 추구하는 자신만을 위한 삶이 되었고, 하느님과 상관없는 모든 이교도적인 철학과 인간적인 이상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 47세였던 1997년, 콜롬비아의 가족들을 방문하였다가 반군 게릴라들에게 납치당하는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게릴라들에 의해 6개월 동안 정글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죽음을 선고하였고 6개월 중 첫 15일동안 끔찍하고 두려운 동굴에 가두었습니다.
죽음을 선고 받은 15일째 되던 날 밤, 저는 그 동굴에서 밤 새 지속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체험은 제가 실제 죽음을 맞을 때 체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고, 죄에 대한 심판과 지옥, 연옥을 체험하였으며, 이 모든 체험을 허락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체험은 저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죽음을 선고 받은 그날 밤, 저에게는 살아날 희망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체험을 한 그 날 이후, 인질로 잡혀있던 5개월 반 동안, 저의 마음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고 제가 매일 주님께 기도한 것은 오직 고백성사를 받고 죽음을 맞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체험을 통해 교회와 성사의 모든 것, 계명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 주셨고 제가 어떻게 어린 나이에 사탄의 덫에 걸려 신앙에서 멀어졌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선 저는 고백성사를 보지 않음으로 해서 저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였고 결국 그것이 저의 모든 신앙을 잃게 하여 33년동안 가톨릭 신앙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6개월 후, 기적적으로 포로생활을 벗어났고,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자마자 프란치스코회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러갔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다시 가톨릭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곧 말할 수 없도록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그 모두가 저의 체험을 통해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주님의 집에 왔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나의 집이었으며, 가톨릭 신자가 저의 사명이었습니다.
그 후 2년동안 저의 체험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저의 아들들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저와 하느님 사이의 큰 비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체험을 통해 저를 구하시고 제 삶을 바꾸어 주심으로써,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해주신 개인적인 체험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년후 성주간에 저의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고, 성지주일 정오미사에서 다시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체험은 매우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만, 그체험을 통해 주님께서 제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모든 것을 떠나 선교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당시 49세 였던 저는 직업을 떠났습니다. 저의 아내는 저의 체험 1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저의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더이상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주님께서 제게 요청하신 일을 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떠나 “사랑의 순례” 라는 가톨릭 평신도 선교회를 세웠고 10년동안 세계 각국을 다녔습니다. 오대양의 70개국이 넘는 나라를 다녔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매일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 체험 이후 저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납치사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저의 모든 돈을 가져갔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로 부터 죽음을 선고 받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저의 영적인 모습을 알려주신, 오직 주님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누구인지, 제가 어떤 존재인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그러한 모든 것을 잊은 채, 하느님을 떠나, 무엇보다도 평생 교회를 핍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핍박하는 영화나 음악을 만들어 내는 등, 가장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주님께서는 저같은 사람을 게릴라로 부터 뿐만 아니라, 지옥의 심판으로 부터 구하셨습니다. 제가 계속 예전과 같은 삶을 살았더라면 결국 지옥에 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는 지옥이 없다고 믿었으며 평생동안 지옥을 부정하며 지옥이나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 모두 앞에서 저의 삶과 체험을 통해 지옥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무엇을 읽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를 배웠을때 저는 그것을 비웃었었습니다.
제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지옥을 증언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지옥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가 그곳에 속해 있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의 영혼은 매우 어두웠으므로 지옥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증언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동정심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제가 매일 이 사명을 행하고 있는 이유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삶이 영원한 삶의 한순간이라는 것을 잊고 잠들어 있다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이 삶은 아주 빨리 지나가고 말것입니다. 이 삶은 영원한 삶의 시작에 불과합니다.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마저도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것은 너무도 슬픈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의 삶을 살면서도 가끔씩 성당은 나옵니다. 고백성사는 안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체를 모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책임을 잊어버린 채 끔찍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밝혀진 것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체험하고, 알고 있으므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를 믿어 달라고 이곳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사람이 저였으므로 그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의 의무는 이 성서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 뿐입니다. 제 자신이 영적으로 그것들을 모두 거쳤기 때문입니다. 결정은 여러분 몫입니다. 제 말은 우리가 항상 들어온 것일 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다음 세상에 대해 전하기 위해, 소위 말하는 저세상으로부터 돌아오는 체험을 합니다. 흔한 일이 절대 아닙니다만 제가 그중 한사람입니다. 제가 이세상의 문턱을 너머 다음 세상으로 건너갔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삶은 계속 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으며 우리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순종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오직 두가지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 삶의 마지막에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에도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에 순종한다면, 너무도 놀랍고 멋진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양쪽 다 보았기에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저는 구원과 심판, 양쪽 다 보았기에 제 자신이 완전히 변화될 수 있었고,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체험이 있기 전까지, 저는 세상적인 것들을 매우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보물을 찾아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보물들도 모았습니다. 많은 돈을 벌수 있었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온갖 세상적인 것들을 즐겼습니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저에게 많은 세상의 보물들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털 끝도 건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참된 보물을 제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 만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저는 그분만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제게는 큰 평화가 있습니다. 제 마음 안에 너무도 큰 기쁨이 있습니다. 제게는 돈도 없고, 그것을 원치도 않습니다. 그러나 제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미리 마련해 주시므로, 먹고 사는 일이 문제가 된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명에로 저를 부르시어 세상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깨어나라’는 메세지를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깨어나서 하느님의 빛과 사랑안으로 향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성장하여 앞으로 맞을 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아셨고, 이름을 불러 하느님의 자녀로서 택하셨으며 우리에게는 주어진 은총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시적인 삶에서 세상적인 꿈이나 바램을 이루기 위해 이세상에 온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신비체의 일부로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이곳에 왔고,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성체를 통한 보속의 영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살지 않고,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성체를 모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고백성사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인류의 양식이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책임은 영혼 구원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영혼의 구원을 경제학과 같은 것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영혼의 경제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완벽한 계획이 있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한 숫자의 영혼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채워지면 이스라엘이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완벽한 계획입니다.
우리에게는 사탄이라는 적이 있습니다. 사탄의 군대는 추락학 천사와 심판받은 영혼으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아 마지막에 어두움에 속하게 된 사람들은 사탄과 같이 되어 사탄의 군대의 일부가 됩니다. 불순종의 군대입니다. 그들은 항상 우리는 거슬러 움직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요한묵시록 12장을 보여주시며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성 요한에게 3분의 1의 천사가 추락하였음이 밝혀진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땅으로 휩쓸려 떨어졌습니다. 동굴안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묵시록 12장에서 ‘너희 땅들과 바다는 불행하다’ 라고 하십니다. 사탄은 땅으로 휩쓸려 떨어졌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성요한에게 밝혀진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는 현재는 사탄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겠지요.
그렇다고 사탄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적을 막기 위해 무장해야합니다. 우리의 적은 우리를 질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이 떨어져나온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들보다 낮은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높은 하느님의 천사로 창조되었으나, 그들보다 낮은 존재인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서 예전의 그들과 같이 된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끔찍한 악몽인 것이죠. 사탄은 지금 우리가 영적세상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그에 대해 ‘우리의 전쟁은 단지 육과 영의 전쟁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는 영들’ 이라고 확인해 주었지요. 어두운 세력의 영들이 이곳에 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는 은총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곳의 영적인 세상을 볼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은총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귀양을 왔기 떄문이며 이집트에 온 것과 같습니다.
구약성서를 통해 하느님의 사람들인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 종살이 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람들이었지만 이집트에서 태어나 모든 이집트의 문화와 성향을 가지므로 하느님께서 모세를 앞세워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려 하셨고, 그들을 다시 히브리인으로서 가르치려하셨습니다. 믿음의 유산만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다시 모든 것을 상기시키려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순종으로 죽었습니다.
그것이 성바오로가 말씀하신 우리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탈이집트를 통해 일어난 모든 일들이 바로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이었던 그들은 이집트에서 태어나 모든 이집트의 문화와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되찾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씻어 버려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귀양살이를 온 하느님의 사람으로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이집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집트에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모세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를 이 귀양살이로 부터 데려가려 하십니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나가는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기 위해 광야를 거쳤습니다. 그 광야를 우리는 회개의 광야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순종으로 인해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하늘로 부터 내려운 모세,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회개의 광야를 건너야 하는지를 성서를 통해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의깊게 읽어보십시오. 하늘로 부터 내려 오셨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승천하시며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아래가 아니라 위에다 마련하시겠다고 하셨지요. 여기는 우리가 태어난 곳이지만, 귀양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총의 상태에 있음으로 해서 영적인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이곳에 살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즉시 죽고 말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영적세상은 추락한 영적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한다면 이곳에서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영혼들이 죽는 순간에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끝난 후 영적세상을 보면 놀라움에 빠지지만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없어 영원히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는 그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이곳을 나가야 한다, 이곳은 잠깐 머무는 곳이고, 순례중이며, 이곳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라는 것을 계속 말해주고 있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본시오 빌라도가 예수님께 왕이냐고 묻자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다, 그러나 나의 왕국은 이세상이 아니다.’ 였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여러가지 표현으로 이 세상의 삶 이후의 세상은 이 곳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곳을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귀양살이의 삶은 우리가 성서와 계명,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간다면, 귀중한 삶의 시작입니다. 너무도 놀라운 삶의 시작이며,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될 삶의 시작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로 영원히 성장할 것이며, 끊임없이 그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울 것입니다. 천사들도 다음 순간 어떤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항상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무엇을 읽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이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일시적인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인식과 개념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제가 가장 마음 아프고 괴로운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창조되어 모든 성령의 은총과 지식을 받았으므로 하느님에 대해 깨어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과 사랑에 빠져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적보물을 썩어 없어질 이세상의 보물과 바꾸고 있습니다. 이세상의 보물들은 결국 다 곧 사라질 것입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요약한다면 삶의 매일매일이 마지막 날인것처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주 좋은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축복하면서, 그날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사소한 일들을 하느님과 함께 하며 모든 일에 순종한다면, 여러분은 아주 놀라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평화와 기쁨을 가지게 될 것이며, 하느님에 뜻에 따라 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한낱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모두 사실입니다. 우리가 집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며 많은 약점으로 항상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계속 그 길을 가야합니다. 그러기에 무한한 자비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성사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고백성사를 주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실수를 하므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를 하는 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일은 매일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악과 싸워야합니다. 하느님께 순종하고 평화를 갖기 위해 싸워야합니다. 그것이 참된 가톨릭신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항상 유혹에 맞서 싸우고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나 넘어졌을때는 즉시 일어나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해 달려가야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완벽할 수 없고, 성인이 될 수 없음을 알고 하느님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신 아들,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완전함과 한계를 회복,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완벽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모든 인간적인 비참함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불완전함과, 우리의 상태를 아시므로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완성하시려 하십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스스로 불가능한 것들을 이루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몇 일전에 우리가 읽었던 복음말씀에서 젊은 부자청년이 나옵니다. 그는 모든 계명을 지켰고 예수님께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느냐고 여쭈자 예수님께서는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없었으므로 슬퍼하며 떠났지요. 그가 떠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하지요. 그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능력 안에서 우리를 완성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예수님께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어떤 작업을 할 때, 부모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만큼 스스로 해보라고 하지요. 그리고 나머지는 부모가 완성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일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여라.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네가 완성할 수 있도록, 부족한 것은 내가 채워 줄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입니다. 기억할 것은 우리는 겸손해야합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혼자 하려고 강행합니다. 완전함과 성인도 자신이 혼자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자만심이며,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의 본성으로 인해 그것이 발목을 붙들지요. 그러나 우리의 본성도 가지고 일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일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그리스도처럼 되어야합니다. 그것은 오직 겸손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자신이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분께서 오시도록 마음을 열 때, 우리의 인간적인 낮은 본성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 할 수 있는 척 한다면 많은 어려움을 맞을 것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주관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하느님께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오셔서 자신이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시도록 해야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만 가져오면 됩니다. 자신과 자신의 모든 한계와 약함과 약점을 하느님께 드리고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라고 해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드려야합니다.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상태로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단순함이고, 겸손함이며, 참된 진리가 시작되는 기본 요소인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야만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이 매우 어려운 상태를 맞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세상이 온갖 무기를 들고 교회를 공격하며 파괴하려 하기 떄문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항상 있어왔던 일입니다. 온갖 괴물들이 교회를 물어뜯습니다. 물론 교회 전체가 깨끗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는 독과 같은 인간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요.
예수님께서는 가리옷 유다를 최후의 만찬까지 있도록 두셨습니다. 그가 좋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만찬 전에 내쫒지 않으시고 끝까지 두셨습니다. 그가 썩은 사과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끝까지 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을때 가리옷 유다에게 빵를 주시며 가르치시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에 포도주를 적셔 유다 가리옷의 입에 넣어주시고는 “가서 네가 할 일을 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서는 그 때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어떻게 성체를 영할 때 사탄이 들어갈 수 있는가? 이유는 그가 대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적이 예수님과의 우정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것입니다. 먹지 말아야할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친구인 척 가장한 것입니다. 그는 대죄중에 있었으므로 그것을 먹음으로써 자신을 단죄한 것이죠. 그리고 할 일을 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먹기 위해 제대 앞으로 나가기 전에 하느님과의 우정관계를 막는 죄를 회개하고 고백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적으로써 빵과 포도주를 먹고 걸어 나가 자신이 할 일 을 한다면, 무엇이 자신의 일입니까? 자신을 단죄하러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똑바로 알지 않으면 그런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교회에 속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서리치게 하는 사람들이지요. 교회에 많은 스캔들이 있다는 것 아실 겁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끔찍한 일들을 저지릅니다. 우리는 그러한 어떤 사람들에 대해 불쌍한 사람들이 유혹에 빠져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지요. 글쎄요…그러나 어떻게 그런 죄를 합리화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용서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가리옷 유다조차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하십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인간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촛점을 맞출 곳은 그 인간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만일 제자들이 가리옷 유다에게만 촛점을 맞추었다면 모두 믿음을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가리옷 유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왜 포기하였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 많은 스캔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주님께서 당신의 집을 청소하고 계시기 떄문입니다. 그 다음 차례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이 세상을 청소하실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우선 교회를 깨끗이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완전한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때가 올 것입니다. 인류를 흔들리게 할 놀라운 어떤 일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어두운 멸망의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는 별이 충동하여 지구에 떨어지리라는 등의 마지막 때의 예언을 하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죠. 이세상에 언제라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까 그것도 놀라운 것이 아니죠. 암튼 저는 그런것은 아닙니다.
인류를 청소할 어떤 것을 우리는 맞을 것입니다. 아주 깊은 양심조명(인식의 조명), 그것이 인류에게 올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기전에 주님은 당신의 집을 꺠끗이 하실 것입니다. 모든 숨겨진 것들이 빛 안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어두움에 감춰져 있지 못할 것입니다. 옷장 깊은 곳에 숨겨진 것도 다 밖으로 나올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별일 아닙니다. 교회가 청소되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빗자루로 모두 쓸어낼 것입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주님께서 모든 쓰레기를 내다 버리실 겁니다. 주님이 청소를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속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교회 안에 있습니다. 대형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참된 교회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에 수백만명이 있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교회 안에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머무르며 참되게 성체를 모시는 사람이 될 떄, 그 참된 믿음으로 인해 단 한 사람만으로도 많은 영혼들을 심판으로 부터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썩은 사과 하나가 수백만의 영혼을 지옥에 빠뜨립니다. 나쁜 표양과 교회에 미치는 나쁜 영향으로 인한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맞고 있는 현실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입니다. 전쟁이 힘들수록 더 많은 영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어려운 시기에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테그놀로지를 아무것도 아닌냥, 장난감처럼 다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구시대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루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각 세대마다 다루어야 할 것들이 각각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이곳에 있도록, 우리가 맞고 있는 것을 맞도록,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들을 다루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완벽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우리가 맞고 있는 것들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걱정, 절망, 환멸을 느끼며 돌아다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떤 상태인지 아십니까?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이 자신에 대한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상처받고 혼란스러우며, 모든 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신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작아지고 겸손해진다면, 그러한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더 이상 우울함도, 외로움도, 두려움도, 절망도, 걱정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 누구에 대해서도 환멸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에도 무엇을 기대하지 않고 조건없이 나누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되돌려 갚기를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누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사랑하실 때, 아무것도 되갚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평화를 가져 옵니다. 여러분이 조건없이 나눌때, 그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과, 전 존재를 채워 다른것이 결코 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오늘날 참 빛, 참 사랑, 참평화, 참 기쁨으로 자신을 채우는 방법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서로 조건없이 사랑하여야 하고 그럴때 우리는 평화와 기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이 방법입니다.
어떻게 서로 조건없이 사랑할까요? 오직 방법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나눌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을 서로 나누냐구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이 도구를 깨끗이 함으로써 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질그릇이 나왔지요. 우리는 그것에 보물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이며 도구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보물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가져다 주어야합니다. 그 방법은 자선, 용서,희망, 빛, 기쁨 등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서, 비탄에 빠져있고, 비참하다고 여기며, 온갖 두려움으로 차있는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마음 안에 계신 하느님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살아있는 정열을 가져다 주지 않는 가톨릭 신자라면, 어떻게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까? 이 삶이 끝나도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희망에 차 있어야 합니다. 이 생명은 계속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살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머리를 들고 하느님의 영광 안으로 위를 향해 걸어가야합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번개와 천둥이 되어 어두움을 칠것입니다. 어두움의 영이 달아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빛을 견딜 수 없기 떄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빛과 희망을 주는 기둥이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안에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도구를 깨끗이 하여야합니다. 모든 것을 바로 하고 하느님께 순종하여야합니다.
우리는 가장 귀중한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귀중한 은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는 모든 진리가 드러나 있습니다. 모든 무기인 성사가 주어졌습니다. 전례와 성스러운 전통을 통해 힘이 있는 기도가 주어졌습니다. 순교자와 성인들의 모범의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가장 놀라운 보물입니다. 우리는 그 보물들을 사용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강하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세력에 대한 매우 큰 권위의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방어해 줄 수있을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줄 참된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용하실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제자들이 될 것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라! 필요하다면 말하여라.’ 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일부가 되고 하느님의 것이 되어, 숨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모셔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중에도 무슨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치유를 가져다 주는 사람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 주위에 평화와 기쁨을 주는 매우 선한 하느님의 사람이 있음을 느끼고, 알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옆을 지나가는데도 그 사람을 향해 미소 짓게 되고 그 사람도 미소로 답합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하느님의 빛으로 채워줍니다. 그것이 어떻게 일하는지 모르지요. 그것은 일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무언의 아름다움이지요. 우리의 내면에, 주위에, 모든 곳에 남겨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모든 사람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희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른다고 걱정합니까? 언제나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빛을 더욱 많이 가져올수록 어두움 안에 있는 그 사람들에게 빛이 될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빛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빛이 밖으로 더 빛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회개시킬까’ 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이 좀더 믿음을 갖고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을까’ 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에게 빛을 더 많이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삶 안에 더 많이 성령께서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이 더욱 커질때 우리들의 이웃과 친지들, 주변 사회의 영혼들, 온 나라의 영혼들, 우리에게 책임이 지워진 모든 영혼들을 더욱 많이 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도록, 내가 누구인지 알도록, 우리의 의식을 깨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내가 오늘 죽는다면 주님을 뵐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의 삶과 영혼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찌워져 하느님의 빛 안으로 갈 수 있는가? 이 순간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충분히 회개하였는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죽는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때가 언제일지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매우 약하고 한계를 가진 우리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는 이 기회를 이용합시다.
우리의 힘은 오직 그리스도 임을 알고, 우리의 약함 안에서 자신을 준비한다면 오직 그분만이 삶의 마지막에 우리를 들어 올릴 수 있으시므로, 우리의 육체가 아래로 떨어지려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들어 올리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러한 희망을 가지려면, 우리는 그분께 속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완전하게 그분께 속해야 합니다. 계속 미지근해서는 안됩니다. 중립을 가장한 사람들처럼 편리한대로 좋았다 나빴다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게임을 아무 소용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지근함으로 인해 영혼을 잃습니다. 주님은 미지근한 사람을 경멸하십니다. 참된 믿음이 되도록 깨어나야합니다. 완전한 회개로 가야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을 찬미합시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 각자를 위해 주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 성전의 살아있는 참된 반석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단 한사람이라도 믿음에 충실하다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안다면, 단순하고 겸손하며 순종하는 일반 신자 하나가 믿음을 가지고 참되게 성체를 모실 때, 그 행동 하나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알게 된다면, 우리 모두가 단순하고 겸손한 신자가 될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체를 모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성체를 모시고, 주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께 경배하고,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용서하는 그것을 매일 한다면 그것이 영혼 구원을 위한 가장 큰 봉헌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여러분들을 축복해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빛으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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