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7년

자비의 축일 전대사

김레지나 2017. 4. 17. 07:33

전대사

 

2015년에 저는 한 요양펜션에서 몇 달 지냈어요.

같이 사는 형제님 한 분과 자매님 한 분이랑 같이 삼 개월간 예비자 교리에 다녔어요.

형제님은 저보다 두 살 위이셨고, 하느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예비자 교리로 인도하신 거라고 기뻐하셨어요. 영적 독서와 성경 읽기도 열심히 하셨지요.

 

10월에 복수가 차고 통증이 심해져서 펜션을 떠나셨는데,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 정식 세례를 받으셨어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 안드레아라는 이름이 예쁘다고 하시며, 안드레아를 세례명으로 정하셨어요.

 

2016년 새해 첫 날에 “올 한 해는 매일 하루를 선물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지내렵니다.”라고 문자 인사를 하셨어요. 제가 “고통 중에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보다 거룩한 것은 없답니다.”라고 답을 드렸었지요.

 

어제, 부활절 새벽에 안드레아 형제님이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부활절 전날 간만에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으시더니, 그렇게 답을 주셨네요. 가족 중 신자가 없는 데다, 부고 문자에 세례명도 적히지 않아서, 아무래도 천주교 장례식을 못 치루나 싶었어요. 부활절 미사는 안드레아 형제님을 위해 드렸고, 빈소에 가는 대신 저녁 미사봉헌을 신청했어요.

 

오늘 새벽에 저는 가슴 통증이 심해서 잠에서 깼어요. 찜질과 마사지를 해도 차도가 없고 진통제도 효과가 없었어요. 평화방송을 틀어보니, 바티칸의 부활절 미사 중계방송이 나왔어요. 비몽사몽 잠깐씩 미사를 보았는데, 미사가 끝나고 통증이 여전했어요. 방송을 끄고 누우려는데, 미사 후 '우르비 에트 오르비'라는 교황님 축복과 강복을 받으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들렸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어요. 안드레아 형제님을 위한 전대사를 받을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어서 정말 반가웠어요. 벌떡 일어나 앉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교황님의 부활절 메시지를 듣고 강복을 받았어요. 안드레아 형제님, 이제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계시겠지요.

 

(우르비 에트 오르비(라틴어: Urbi et Orbi)는 라틴어로 ‘로마 도시와 전 세계에게’라는 뜻으로, 고대 로마에서 성명문의 서두에 썼던 문구였다. 오늘날에는 기독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로, 특히 교황이 라틴어로 행하는 공식적인 축복(강복)과 강론을 말한다.

이 축복은 1년에 2회, 부활절과 성탄절 기간에만 교황에 의하여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실시한다. 가톨릭교도에게 있어서 교황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잠벌의 면제, 즉 전대사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죄의 모든 보속을 면제받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절과 성탄절 때 있는 교황의 축복은 유럽방송연합을 통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로 전 세계에 생중계로 전달한다. 전대사는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방송을 시청 내지는 청취하는 사람한테도 주어진다. 축복에 앞서 교황은 군중과 전 세계 사람들을 향해 시기와 연관된 세계 각국의 언어로 개별적으로 인사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부활 다음 주일은 자비의 축일이에요. 자비의 축일에도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해 전대사를 받을 수 있어요. 연옥 영혼을 위해 양도할 수도 있구요. 고해성사는 축일 전후로 받으시면 되구요. 부활 판공 받으셨으면, 유효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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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축일"의 전대사 세 가지 조건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의무]

 

깊은 영적 사랑을 경험하는 신자들은 하느님의 용서의 신비를 기념하고 충심으로 기리고 싶어 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특별한 기도로써 그분의 자비를 찬미하는 것은 최고의 은혜이며 실제로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한다. 동시에 요구받은 일들을 감사하게 수행하고 필요 조건들을 충족시킴으로써 교회의 보고(寶庫)에서 흘러나오는 영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파스카의 신비는 이처럼 자비가 계시되고 효험을 내는 절정이다. 파스카의 신비는 인간을 의화시킬 능력이 있으며,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인간에게, 또 인간을 통해서 세상에 바라시던 구원 질서에 정의를 회복시킬 능력이 있다"

(요한 바오로2세 ,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7항).

 

[하느님의 자비로 얻는 신비로운 슬픔과 회개의 결심]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우리의 중죄까지도 용서해 주신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기 따라서 신자들은 자기 죄에 대하여 심리적인 슬픔만이 아닌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슬픔을 느끼게 되어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신자들이 그러한 정신 자세로 충실히 [고해성사]를 받거나, 될 수 있는 한 빨리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결심을 하고 완전한 애덕과 참회의 행위로 [자신들의 죄를 통회]할 때 틀림없이 [대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잃었던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죄인이 자신의 괴로움을 하느님께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18-19), 그는 자신의 이러한 통회의 고백이 하느님의 자비로 이루어진 일임을 깨닫는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고, 잃었다가 되찾았기 때문이다"(루카 15, 32참조).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생각하며 그에 감동을 받으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앞을 내다보는 사목적 감각을 가지고 그리스도교의 계명과 가르침을 신자들의 영혼에 깊이 심어 주시고자, 이 은총의 선물을 특별한 신심으로 기억하도록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 주일'로 제정하셨다(교황청 경신성사성,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 주일'로 제정한 교령 Misericars et Miseratar, 2000.5.5)

부활 제2주일의 복음은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 한다.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다. 그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수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 19-23)

 

[전대사]

 

교황 성하께서는 신자들이 깊은 신심으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낼 수 있도록 친히 부활 제2주일을 아래에 설명할 전대사를 얻을 수 있는 날로 정하시어 신자들이 성령의 위로의 은혜를 충만히 받게 하셨다. 그럼으로써 신자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워 가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즉시 자신들도 형제자매들을 용서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대사를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조건]

 

그리하여 교황 성하께서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을 최대한 장려함으로써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게 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고무되시어 2002년 6월 13일, 교황청 내사원의 책임자들을 알현하신 자리에서 다음의 대사들을 윤허하셨다.

전대사는 일반적인 조건(고해성사, 영성체, 교황님의 지향에 따른 기도)아래에서 다음의 신자들에게 주어진다.

곧, 부활 제2주일인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아무 성당이나 소성당에서 [소죄를 포함한 모든 죄의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기도와 신심 행위에 참여하거나,

[현시된 성체] 앞이나 [감실에 모셔진 성체] 앞에서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 그리고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께 드리는 신심 기도(예를 들어, "자비로우신 주님, 저를 주님께 의탁하나이다.")를 바치는 신자들에게 주어진다.

부분 대사는 적어도 죄를 깊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정식으로 승인된 청원기도를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께 바치는 신자들에게 주어진다.

 

[성당에 갈 수 없는 이들과 중병 환자들을 위하여]

 

또한, 드넓은 바다에서 일하는 선원들, 전쟁의 참화나 정치적 사건, 지역 분쟁이나 이와 비슷한 여러 가지 이유로 조국에서 추방된 사람들, 병자들과 그들을 간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당한 이유로 집을 떠날 수 없는 사람과 미룰 수 없는 공동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이미 언급한 대로, 모든 죄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가능한 한 빨리 일반적인 세 가지 조건을 이행하려는 마음으로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의 성상] 앞에서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바치고,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께 정성되이 청원기도를 바친다면(예를 들어, "자비로우신 주님, 저를 주님께 의탁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대사를 얻고자 규정된 행위를 통상적인 방식으로 이행하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일치되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도록 규정된 세 가지 조건을 가능한 한 빨리 이행하겠다는 결심으로 자비로우신 주님께 기도와 자신이 앓는 질병의 고통과 일상의 어려움들을 바친다면 하느님의 자비주일에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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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은 집사’ 따라 하기

(위령성월에 1)

  

위령성월 기도

 

  한국 교회는 위령성월 중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은 날마다 한 번씩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만 양도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평소에는 기도에 영 게으르다가도 이 기간만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미사참례 하려고 노력합니다. 8명의 영혼들이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교회를 통해 ‘사랑의 통공’을 섭리하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올해에는 일찍 고해성사를 받고 기도 준비를 했습니다. 지인들에게 위령성월 기도문을 보내 함께 하자고 했고, 묘지 방문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반모임을 성지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장루 주머니를 차고 힘들어하시던 K 언니,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떠난 유방암 환우 등, 기도 대상자를 기억해냈습니다.

  

약은 집사의 비유

 

  7일째 되는 날은 같은 병실을 쓰던 J 어머님의 딸을 위해 기도하기로 한 날입니다. J 어머님은 악령에 들린 듯 밤마다 돌연 포악해져서 당신을 때리고 목 조르던 딸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망가져 힘들게 살았던 딸이 죽어서도 평안치 못할까 봐 걱정하고 애달파하셨습니다.  

  미사 중 복음 말씀은 ‘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1-8)’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복음을 들으며 ‘엇!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전대사 양도 기도가 불의한 집사의 행동과 같은 거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딸의 영혼을 염려하시는 J 어머님의 처지가 너무 딱해서 본 적도 없는 딸이 하느님과 자기 스스로에게 진 빚을 탕감해주려고 미사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전대사를 받게 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느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불의한 혜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의한 집사를 우리 인간들이라고, 부자 주인을 하느님이라고 묵상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맞다. 내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건강은 내 것이 아니야.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지. 그런데 연옥 영혼들에게 내 것을 나눠 주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네. 나는 주인이 아니라 집사에 불과한데 말이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일 뿐이야. 전대사 양도가 공정치 못한 혜택인가 아닌가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야. 지금의 내가 J 어머님의 딸보다 더 큰 빚을 이미 탕감 받아 살고 있을 수도 있거든. 살아 있는 죄인에게 큰 사랑을 베풀어 회개하도록 돕는 거나 죽은 죄인에게 큰 자비를 베풀어 보은하도록 돕는 거나 다를 바 없지. 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행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일 뿐이야.’ 

  우리가 거저 받은 시간과 재능을 허투루 쓴다면 하느님께서는 약은 집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꾸지람을 알아들을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약은 집사의 겁 없는 행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사는 오랜 세월 동안 자기의 주인은 재산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개의치 않을 만큼 충분히 부유하고, 오히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염려하는 성품을 지녔음을 익히 배웠을 겁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들킬 게 뻔한데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행실로 하느님께 받은(빚진) 거룩함을 갚아드린다고 해도, 하느님의 거룩함에는 티끌만큼의 거룩함도 보태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과 사랑과 부유함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우리가 빚진 것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께 손해가 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신 이유는 집사가 주인의 자비로운 품성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서로 자비를 베풂으로써 빚진 마음 대신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기에, 집사의 ‘약은 계산’이 아닌 ‘돕는 행위’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응급실에서의 기도

 

  저는 항암 후유증으로 연속 평일 미사를 참례할 체력이 없습니다. 갑자기 열심을 냈더니, 8일째 되는 날에는 관절통, 근육통, 두통 등으로 한 발짝도 걷기 어려울 만큼 아팠습니다. 애초에 기억하기로 했던 영혼들을 다 챙겼다 싶어서 쉬려고 했는데, 퍼뜩 고등학생 자녀들 때문에 요양병원 입원을 미루기만 하다 세상을 떠난 루시아 자매가 떠올랐습니다.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 애쓰던 성품에 영영 이별하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짠한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 천국에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루시아! 내가 기도해줄게. 얼마나 힘들었어?’ 저는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겨우 움직여 기다시피 미사에 갔습니다.  

  쉬어야 할 때를 놓치고 무리를 해서인지 까무러치게 피곤하고 오른쪽 아랫배에 날카로운 통증이 생겼습니다. 다음 날 저녁부터는 통증이 심해져서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맹장인가? 신장결석인가? 아니면 난소?’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아무래도 수술할 병일 것 같아 금식을 하고 입원 준비를 해두고 다음날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진찰을 해보시더니 맹장염이라며 급히 수술해야 할 것 같으니 응급실에서 빠른 검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소변검사와 채혈을 했습니다. 저는 양쪽 팔 다 림프절 절제가 되어서 팔에서 채혈할 수 없습니다. 심한 부종으로 다리가 심하게 부어 있는 데다 워낙 혈관이 약하고 잡히지 않아서 늘 발등에서 어렵게 채혈을 합니다. 암이 재발한 후부터만 계산해도 7, 80번은 발에 주삿바늘을 찔렀지 싶습니다. 간호사님이 응급실 바닥에 앉아서 준비하길래, 일주일 전에 내분비대사내과 검사로 채혈했던 오른발 대신 왼발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간호사가 들고 있는 바늘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머, 저 혈관이 약해서 나비 바늘을 써야 하는데요.” 했더니, “링거를 맞아야 해서 굵은 바늘을 써야 해요.” 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왼쪽 발등이 붓고 손도 못 대게 아파서 절뚝거리고 다녔던 터라, 혈관들이 영영 못쓰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간호사님은 굵은 주삿바늘을 왼발 이쪽저쪽으로 찔러보더니 혈관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른발도 한참 찔러보더니 실패했습니다. 와락 슬퍼졌습니다. ‘내 몸에 바늘 찌를 곳이 어디 남았다고. 맹장 수술이라고 해도 나한테는 치명적일 수 있는데.’ 결국, 다른 간호사님이 와서야 오른발 구석에서 채혈하고 링거를 꽂았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두어 시간 응급실 복도에 앉아 씨티 촬영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곧장 입원하면 아들 혼자 집에 있겠기에 엄마에게 와계십사 부탁 전화를 했고, 아들에게 혼자 밥 챙겨 먹으라고 문자를 보냈고, 서너 지인들에게 기도 부탁도 했습니다. 단순 맹장이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었습니다. ‘날마다 잠깐씩 나들이하기에도 벅찬 체력인데, 너무 무리했구나. 내 몸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후회막급이었습니다. ‘간단한 수술이라도 정말 싫다.’  

  문득 약은 집사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옳지. 나도 약은 집사처럼 세상 것을 좀 청해 봐야겠다. 내가 기도해주어 천국에 든 영혼들에게 부탁해봐야지. 잘 견디게 해달라고 부탁할 게 아니다. 아예 수술을 피하게 해달라고 청해봐야겠다.’ 막상 잘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청을 하려니까 어색하고 멋쩍었습니다. “저기요.~ 제가 원래 이런 거 부탁하는 스따~일이 아닌데. 웬만하면 짠~! 수술 안 할 수 있도록 빌어주실래요?” 제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인지라 “안 되어도 할 수 없지만요.”하고 덧붙였습니다.

  큰 잠벌을 탕감 받은 영혼일수록 더 큰 감사로 기도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기도가 부족해서 안 할 수술을 하게 되는 일은 없겠어. 결과가 안 좋으면 내 몫의 시련이라 받아들이는 거고.’  

  검사 결과가 나와서 의사선생님한테 불려갔습니다. 장에 염증이 있는 것일 뿐이니 수술은 필요 없겠다면서 항생제만 처방해주었습니다. 통증은 별 차도가 없었지만, 의사선생님에게는 거의 안 아프다고 둘러댔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을 나오는데, 마차를 타고 행렬하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우쭐했습니다.

  그 후로도 일주일쯤 걷기 힘들 정도로 배가 아프고 한쪽 다리에 얼얼한 마비감이 와서 고생했지만, 정밀 판독 결과 신장이나 난소에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염진통제만 더 먹게 되었습니다.

  

약은 집사 따라 하기

 

  마침 오늘 자 주보에 전삼용 신부님께서 강론을 실으셨는데, “하늘나라에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놓는 일이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시급하고 필요한 일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천국에 든 영혼들은 지치지 않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준다고 하니,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도 시급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셈입니다. 이미 하느님을 뵈어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을 연옥영혼일 테니 ‘떼일 염려가 없는 확실한 거래'가 될 것이고, 그런 기도를 하는 저의 믿음은 제가 받은 은총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불의한 집사를 칭찬까지 하신 이유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기도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베푼 선한 행위는 상대는 물론 베푼 이에게도 은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생명과 재능을 우리가 수고해 얻은 재산인 양 누리고 살다가, 하느님을 맞대고 뵙는 날에 그 재산을 얼마나 잘 사용했는지 셈 바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심보대로라면 성경 속 집사처럼 세상에서 누렸던 것들마저 빼앗겨 마땅한 처지가 되어야겠지만, ‘약은 계산’으로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일을 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나마 그렇게라도 해서 봐준다.’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약은 집사’처럼 하느님께 셈해 바칠 때를 위해서 ‘살 길’을 애써 찾아, 그 길을 달리는데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이번 응급실 소동 덕에, 제가 거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가 더욱 깊어졌고, 저의 믿음과 기도로 가장 많은 덕을 본 사람은 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든든한 후원자를 또 얻었으니, 앞으로 겪게 될 고통도 조금은 더 배짱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한 처음에 인간을 만드신 분은 그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집회 16:14-17)” (2014년 11월 23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