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님은 나의 빛 내 구원!^^*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해보셨나요?
그래서 형제 자매님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며
행복하게 생활하셨나요?
저는 갑자기 인사발령이 나서
1월 26일에 다시 대구 가톨릭대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강의도 하지만
사무처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해야 하기에
시간에 엄청 쫓길 것 같습니다. ㅠㅠ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형제 자매님,
오늘 전례 중의 1독서에 대한 화답송의 후렴입니다.
1독서에서 이사야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현됨을 복음서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사야가 캄캄한 땅이라고 했던 즈블룬과 납달리 지방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요한 8,12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밝히십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거대한 핵발전소를 건설하여 모든 곳을 환하게 비추는 불빛 아래 살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더욱 심해지는 인간성 상실과 소외라는
또 다른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참된 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빛이 가까이 있는데 사람들이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시골이나 산골에서 여름밤에 하늘을 쳐다보신 적이 있습니까?
은하수가 흐르고 정말 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대도시에서 은하수를 본 적이 있습니까?
못 보셨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공해라든지 여러 이유를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 빛이 많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불빛이 많아서 별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은하수의 작은 별 하나도 우리 태양만큼 밝은 별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불을 합쳐도 별 하나의 빛보다 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별은 멀리 있고 전깃불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작은 전깃불이 태양과 같은 엄청난 빛을 가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생 때 신학교의 기숙사 옥상에서 은하수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민방위 훈련 중에 야간 등화관제 훈련 때였습니다.
도시의 불이 다 가려지고 깜깜해지니까
대구의 밤하늘에도 은하수가 뚜렷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밝고 아름다운 별들이 우리 위에서 무수히 반짝이고 있지만
다른 불빛들 때문에 우리가 그 별들을 보지 못하듯이,
우리 삶에 있어서도 참된 빛이 우리 주위에 늘 있지만
다른 빛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에 그 빛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모든 빛들이 사라지는 완전한 어둠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참된 빛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완전한 어둠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우리 눈에 환하게 띄는 빛은 바로 생명,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주위에 있고 항상 나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건강이라는, 아름다움이라는, 명예라는
또 돈이나 권력이라는 빛들이 있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참된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그 사명을 주십니다.
오늘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첫 네 제자를 부르신 장면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아주 간단하게,
예수님께서 “보셨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부르시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루카 복음 5,1-11에는 이것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많은 군중이 몰려왔지만
그들을 바라보기보다 시몬(베드로)이 그물을 씻는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두 배 중에서 시몬의 배를 선택하시고,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달라고 시몬에게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배 위에서 군중을 가르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잡아라).
그러자 두 배가 가득 차서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시험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게끔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베드로가 겪는 심리적인 변화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어떻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그런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는 구절을
“너는 사람을 생명에로 이끄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생명에로 이끈다는 것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엇보다도 베드로에게
‘너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고 그 생명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게 될 것이다’
라는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모든 인간이 갈망해 왔지만 성취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미 기적을 체험하면서
예수님은 그것을 이루어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게 되었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그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그 생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길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복음적 가치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삶을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항구하게 따르기 위해서는
빛이신 그분을 잃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주위의 작은 빛들에 관심을 쏟게 되면
우리는 쉽게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잃어버립니다.
형제 자매님,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첫 마디에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회개란 그리스도를 참 빛으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빛들에 빼앗겼던 내 마음을, 내 시선을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빛을 따라서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은 사랑의 삶으로 바뀌고 결국 영원한 생명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삶에 동참하게 되고
그들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라는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생활하도록 합시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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