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6년

모든 것이 은총이었어요.

김레지나 2016. 9. 24. 22:50

 

평화방송에서 어떤 수녀님 강의를 들었어요.

당신의 진솔한 체험과 함께 기도하는 방법을 들려주셨어요.

'엇! 혹시 그때 그 수녀님?'

십 년 전쯤 제가 아는 두 신부님이 다녀오셨던 피정 지도 수녀님이셨네요.

 

알고 지내는 ## 신부님께서 사랑하시는 후배 신부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 사제생활을 그만두리라 정말로 작정을 하셨더래요. 

## 신부님께 부탁드렸어요.

 "000 신부님이 제발 피정 한 번만 다녀온 후에 결정하십사 권해보셔요."라고.

저는 그 전에 ## 신부님 피정비를 냈던지라 여력이 없어서

동생 유리아에게 다짜고짜 "오십 만원 좀 보내라. 하느님께서 열 배로 갚아주신단다."라고 피정비를 내드리게 했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 특히 K샘에게 기도를 부탁드렸구요.

 

며칠 후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000 신부님이 마음을 바꾸시지 않으시면 어쩌나 넘 걱정이 되더라구요.

급한 마음에 당시 좀 불편하게 느껴졌던 한 신부님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박해를 받아도 좋다고.

그 고통을 000신부님을 위해 봉헌하겠다고 기도했어요.

 

그렇게 기도한 후 며칠이 지나서

저는 뜬금없이 그 불편한 신부님에게 사랑하는 데레사랑 함께 불려가 험한 소리를 들었어요.

 "자매님은 자매님이 쓰는 글을 이해나 하고 쓰십니까? 제 글을 보십시오. 누가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까?"하는 말로 시작하더니 제가 사랑하는 신부님을 비난하셨어요.

신부님의 의도대로 데레사는 저를 멀리하게 되었구요.

어디다 하소연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모르긴 몰라도 내가 기도를 겁없이 했기 때문이다."싶었고,

'내가 봉헌하기로 한 고통인 것 같으니  내 기도를 들어주시려나보다. 000 신부님이 마음을 돌리실 것같다.' 하는 기대도 되었지요.

'근데요. 하느님. 사랑하는 데레사까지 데려가시는 건 너무하세요.  마음이 아프니 몸까지 너무 아파요.'

'1만큼의 고통을 봉헌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10만큼의 고통을 겪게 되다니.'  

진짜 진짜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 불편한 신부님 때문에 겪는 고통은 일 년 이상 오래 갔고,

감정적으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일꾼이시기에 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했지요.

(제 졸글 '기도의 힘을 볼 수 있다면'에 나오는 대로

재발로 수술받은 후에 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애틋하게 "내 사랑하는 아들들아."하고 부르셨고.

저는 성모님 말씀에 오히려 섭섭해서 삐쳤었지요. 잠시.ㅋㅋ

'그럼 신부님들만 소중하고 이렇게 아픈 저는 소모품입니까?'하고. ㅋ)

고통을 겪거나 미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하느님의 뜻보다 나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길수록  힘들어요.ㅎ)

 

감사하게도 000 신부님은 피정 다녀오신 후에 마음을 잡으셨지요.

000 신부님이 그러셨대요.

"제가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인 줄 알고 살았었나 봅니다."

 

저는 하느님 뜻 안에서 000신부님도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영혼에 유익이 되는 고통을 겪었을 뿐이고,

하느님의 뜻이 000신부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 것은 하느님의 능력에 제 기도를 보태드린 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저와 모두를 위해 베푸신 은총 덕이었어요. 

(지독하게 힘들었던 것은 저 자신에 대한 애착이 컸던 탓이 컸구요.)

 

어제 평화방송 수녀님의 강의를 들으니,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 그 차이를 조금 알겠어요.

10년 전에는 이해를 제대로 못했었거든요.

수녀님께서 사람들은 보통 35세까지는 자신의 이상을 하느님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수녀님께서도 당신의 이상을 하느님처럼 여겼기 때문에 당신의 부족함을 견디기 힘드셨다고

거룩해지고 싶었고 성녀가 되고 싶었던 당신의 이상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잘 몰랐었다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되면 '치우지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000신부님이 말씀하신 '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의 차이'는

수녀님이 말씀하신 '이상과 하느님의 차이'와 같은 것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영문도 제대로 모르고 어려운 형편에 피정비를 냈던 동생은

신기하게도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난 건지도 모르는) '오백만 원'을 얻게 되었답니다.

저는 급해서 그냥 한 소리였는데, 하느님께서 정말로 딱 열 배로 갚아주신 거지요.

 

수녀님 강의 덕에 참 많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큰 은총 속에 살았는지 감사하게 됩니다.

나쁜 건강. 열등감 등이 늘 열정을 다해 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만 같고

덜 좋은 것을 선택하게 했던 것만 같고, 아들들이 입은 손해가 너무 큰 것만 같고

지독한 불의를 지나치게 많이 겪었다 싶고,

시시콜콜한 상처들로 힘들고 억울할 때가 많았지요.

그런데 이제 알겠어요.

유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봉헌한 오십 만원이 열 배로 갚아졌던 것처럼

제 보잘것 없는 수고도 열배, 백배로 갚아져 제가 이미 받아 누리고 있고 약속 받았다는 것을.

상처와 아픔들이 감사와 평화의 마음을 제치고 올라온다면 제가 교만한 탓이라는 것을.

 

아래 예수님 표정을 보셔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겪는 당신의 고통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어요. 

예전에는 '예수님의 미소라니. 말도 안 돼. 십자가상 고통은 진짜였는데'라고 생각했었어요. 

이제는 제 마음에도 예수님의 미소가 느껴집니다.

실제적인 고통으로 예수님의 얼굴은 일그러졌었겠지만

예수님 내면의 표정은 달랐을 겁니다.

당신께는 하느님의 뜻만이 전부이었기에

원망과 억울함은 티끌만큼도 없이 평화로우셨을 테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어요.

성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킨 삶을 사신 예수님이셨기에

하느님이 내주신 숙제를 다하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이었지요.

 

"저희의 찬미와 저희의 수고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