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용민 신부님

[스크랩]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

김레지나 2016. 9. 24. 08:53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


송용민 신부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을 함께 기억하는 폭염의 한복판인 오늘입니다. 우리의 광복이 공교롭게도 성모승천대축일과 동일한 날이 된 것은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의미가 있는 듯 싶습니다.  나라를 잃고, 언어와 이름, 문화마저 잃어가던 슬픈 식민지배의 시대를 견뎌낼 수 있었던 역사적 자긍심이 우리 한민족에게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생존을 위해 투신했던 수많은 의인들의 결단 속에 여전히 우리가 여전히 아프게 기억하는 식민통치 시대의 흔적들에 대한 역사적 죄책고백과 그 죄과들에 대한 청산의 과제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유다인 학살의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는 독일이 여전히 그 죄책을 고백하고, 잘못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보속을 정치적으로나, 역사 교육으로 감당해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우리 역사 교육과 자기 성찰의 부재를 안타깝게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나라 잃은 슬픔을 가슴에 새겨 끝까지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많은 이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영이 이미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시길 빕니다.


성모승천대축일은 우리의 희망에 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장차 우리가 얻게 될 영광을 성모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얻으신 놀라운 신비를 교회는 오랫동안 간직해왔습니다. 믿을 교리이기 이전에, 누구나 우리의 육신과 영혼, 곧 우리의 인간성이 온전히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믿음은 육을 취하시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당신의 영 안에 품어내신 하느님의 신비를 믿는 우리들의 희망의 다른 표현일 입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언어입니다. 미래는 우리에게 열려 있는 현실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결단이 만들어내는 희망의 현재입니다.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한 비관과 자책이 나를 성장시킬 수 없듯이,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엇인지에 따라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법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희망과 믿음은 선사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 희망의 근거가 세상이 주는 어떤 것들보다 가치 있고,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에 있습니다. 성모승천은 아마도 우리가 바라는 희망, 곧, 이 세상이 하느님의 창조에 의해 시작되었듯이 완성될 것이란 믿음, 그리고 내 생명이 하느님에게서 왔고, 그래서 결국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 세상은 나만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간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참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될 궁극적인 완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임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생전에 이를 받아들이며 희망하고 사신 성모님이야말로 우리 구원의 모범이십니다. 그분을 공경하는 우리들의 신심의 깊은 곳에는 어떠한 역경에도 하늘을 잊지 말고 살 것을 바라는 교회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도 하늘을 향해 살아갈 날들을 기대하며, 오늘의 어려움들과 상처들을 극복해 내는 또 다른 하루가 되길 주님께 청해봅시다.


2016. 8. 15

성모승천대축일에.







출처 : 신학하는 즐거움
글쓴이 : 송사도요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