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黎明)과 태양
젊은 사제 시절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걷다가 너무 지친 나머지
길 위에서 노숙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으니 처음에는 분위기도 있고 참 좋았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점점 깊어갈수록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견딜 만 했었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서너 시 쯤 되니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그렇게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데...어찌 그리 시간이 더디 가던지.
머릿속으로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 내몸이 당신을 더 기다리나이다.’라는
시편 구절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멀리 동쪽으로부터 캄캄했던 어둠이 아주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더니
옅은 여명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 여명이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여명은 밤을 꼬박 지새운 파수꾼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 같은 존재입니다.
이윽고 구름바다가 보이고 구름 너머로 그토록 기다리던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데...
그 때 당시의 그 찬란하고 장엄한 일출 광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의 구세사 전면에 등장하신 예수님이 찬란한 광채를 지닌 태양이라면
세례자 요한은 태양이 떠오름을 예고하는 여명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가 선구자로서 위대한 이유는 평생토록 자신이 태양이 아니라
여명으로서의 운명을 지녔음을 항상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결코 주인이 아니라 종이라는 신원의식이 명확했습니다.
자신이 빛나야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뒤에 오실 그분께서 빛나야 된다는
겸손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자리 하나 차지하면 갑자기 돌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완장 하나 차면 세상이 다 자기 것인 줄 압니다. 안하무인도 그런 안하무인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과 찬미를 자신이 다 받으려고 발버둥을 치니
세상에 그런 꼴불견이 다시 또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의 탄생, 그리고 그의 삶과 죽음은 참으로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마지막 대예언자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송했지만
그는 항상 자신을 극도로 낮추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오늘 내게, 우리 가정에, 우리 공동체에 가장 필요한 덕을 하나 꼽으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겸손의 덕’입니다. 끝끝내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를 뒤로 하고 무대 뒤로 사라져간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 세례자 요한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기다렸던 예수님 역시
제자들 앞에 허리를 굽혀 발을 씻겨주신 분입니다.
공동체 지도자들이 다른 구성원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그 지도자는 하느님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공동체 지도자들이 가난하다면
그것은 너무도 좋은 표시입니다. 지속적인 겸손을 유지하기 위해 가난처럼 좋은 수단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인간들 앞에 무릎을 꿇으신 예수님의 이미지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강렬합니다.
잘못한 인간들에게 벌을 주는 강력한 심판자로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들 앞에 엎드려 아무 말 없이 인간의 발을 씻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에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을 갖게 되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에로 초대하십니다.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겉옷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나 자신의 참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가면을 벗어버리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에서 겸손하게 가난한 이웃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섬기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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