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양승국 신부님

부활에 대한 영적인 준비

김레지나 2016. 3. 27. 21:31

부활에 대한 영적인 준비

가톨릭 신앙의 정수(精髓)이자 핵심이 부활신앙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가톨릭교회는 부활 사건에 힘입어 살아가고 행동합니다.
두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의 도성이 무너지면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리라는 것을 굳게 희망합니다.
결국 가톨릭 교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또한 가톨릭 신앙의 완성이자 최종 목적지 역시 부활입니다.

이처럼 부활신앙은 가톨릭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요,
신비로운 하느님 품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기에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부활 신앙의 진리를 진심으로 수용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가 발간한
‘한국 천주교 평신도의 신앙생활실태 조사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부활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성직자나 수도자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오랜 세월 신학의 기초인 철학도 배우고, 본격적으로 신학을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 물 까지 건너가서 꼬부랑말로 방과 후 공부까지 했지만...
솔직히 저 역시 부활 신앙에 대한 확신이 많이 부족합니다.

부활 신앙에 대한 확신 부족!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너무나 기이하고 예외적인 사건이어서 그렇습니다.
한 인간이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역사상 최초의 일인 동시에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부활 사건이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하고 황당한 사건이기 때문에 또한 그렇습니다.
어쩌면 부활 신앙을 지닌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납득되지 않는 부활 사건 앞에서
그저 예! 하고 따라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합니다.

어떻게 보면 ‘뜨거운 감자’같은 부활사건 앞에 긴가민가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 부활 사건 현장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안식일 이른 새벽 향유를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여인들로부터
충격적인 ‘빈 무덤’ 사건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빈 무덤을 확인한 사도들입니다.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여자들이 그 일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이자 두 남자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복음 24장 1~3절)

보십시오.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보인 여인들의 반응은 기쁨과 반가움보다는
당황스러움과 공포심입니다. 그들의 신경은 온통 사라져버린
예수님의 시신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었습니다.
날이 밝기 전에 얼른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님의 시신을
정성껏 닦아드리고 값진 향유를 발라드리는 것,
그리고 장례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에만 온 정신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인들은 예수님의 결정적인 죽음과 그분과의 영원한 이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난 일을 속으로 놀라워하며 돌아갔다.”(루카복음 24장 11~12절)

예수님 부활 사건 앞에서 보인 제자들의 태도 역시 여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여인들의 증언을 전해 듣고 다들 헛소리로 여겼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무덤까지 달려와 자신의 눈으로 빈 무덤을 확인한
베드로 사도 역시 부활 사건 앞에 큰 충격을 느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전해 들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끔찍이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 사건 앞에서 당황해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소화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삶의 전부로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부활 사건 앞에서 제자들과 여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이유는
부활 사건 앞에 그들은 미처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특별하고 엄청난 대 사건인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신앙을 진심으로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부활에 대한 영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부활 사건을 오직 인간의 지성과 이성만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할 때 부활신앙은
절대로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육적인 눈을 감고 영적인 눈을 뜰 때
예수님의 부활은 좀 더 명료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확고한 부활 신앙을 인간 측의 노력과 열정만으로 획득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높은 곳, 외부로부터의 도움, 즉 주님 성령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우리 안의 의혹과 불신, 죄와 어둠을 몰아낼 때,
그리고 그 빈자리를 주님의 성령으로 가득 채울 때 자신도 모르게
우리 내면 깊은 곳에 부활 신앙은 든든히 자리 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