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펜션에서 지낼 때 환우 형제님과 요양 중인 남편을 간호하던 자매님이랑 이웃하여 지냈어요.
제가 두 분을 모시고 예비자 교리를 받으러 다녔거든요.
근데 세 달쯤 되어서 헤어졌어요. 복수가 차서 버티기가 힘든 형제님은 병원으로, 자매님은 집으로, 저도 집으로...
형제님은 병원에서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지난 달에 세례를 받으셨고,
자매님은 본당 예비자 교리반 중간에 들어가서 이번 부활 즈음에 세례를 받는대요.
자매님은 비아 라는 세례명을 택해서 곧 비아 자매님이 될 거예요.
이제 그 자매님을 비아 언니라고 할게요.
비아 언니는 작년 여름 예비자 교리 입교할 때 돌아가신 모니카 언니한테 묵주 선물을 받았어요.
예쁜 묵주 팔찌와 예쁜 주머니에 담긴 5단 묵주였어요.
모니카 언니가 선물하면서 "언니, 언니를 위해 이 묵주로 기도하고 선물하는 거예요."했대요.
비아 언니가 묵주기도 하는 방법을 어찌어찌 배워서 그 묵주로 처음 기도를 하는데,
"세상에...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든 암환자가 이렇게 위해주다니.."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을 가로지르는 전율이 일면서 눈물이 나더래요.
그후로 몇 주 지나서 형제님이 어떤 질문을 하시길래,
제가 "고통으로 우리에게 강복해주세요."라는 글을 보내드렸어요.
비아 언니가 그 글을 읽으면서 감전된 듯한 전율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지나가는 걸 느꼈대요.
제가 웃으면서 그랬어요.
"언니, 전에는 전율이 가로로 일었다더니, 이번에는 세로로 일었어요? 십자가 모양을 완성했구만요.
"그래? 나 은총 받은 거야? "하며 기뻐하셨고, 제가 아우구스티노를 세레명으로 작정했더니 아우구스티노 성인 얼굴을 마주쳤다는 제부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세례를 받으면 비오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라고 권했지요.
언니는 ''비아' 이름도 예쁘다 하고 기뻐했지요.
며칠 전에 언니가 '주님께서 나를 시험하시나봐요 세례를 줄까 말까 ㅎ 성당와서 미사드리고 사순절이라 십자가의길 했어요 했다는 용어를 쓰는게 맞나?" 이런 문자를 보내셨어요. 주님께서 시험하시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바빠서 그냥 지나쳤어요.
오늘 안드레아 형제님과 비아 언니랑 카톡 문자했는데,언니가 "나 어제 은총 받았다."하시는 거예요.
"울 딸이 고집이 세서 말을 잘 안들어서 속상했어. 아직도 딸하고 냉전 중이야. 레지나가 선물해준 차동엽 신부님의 사도행전이 보고싶어 뒤적이는데비오 성인께서 어느 엄마의 꿈에 나타나신 대목이 눈에 들어 오네. 열심히 기도하고 희망을 버리지 말아라 그리고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하시네. 어마나 몸에 전율이~모니카씨가 묵주 줬을 때 레지나씨 글에서 봤던 말씀을 읽을 때랑 같은 전율이~ 나 그래서 어제 울었다. 너무 감사해서.... 요새 세례를 받아야하나 갈등했었어.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들었다하고"
성인들께서는 하늘에서도 당신의 영적 자녀들을 새로 삼으시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깜짝 선물도 해주시느라 바쁘시겠어요.
비아 언니!!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래요.(히브 11:1)
믿음은 결단이어요. 언니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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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부의 글 중 한 부분이어요.
"........계속된 새 신자 교육에 이젠 내 세례명까지 정해야 되는 순서가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아내에게 세례명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여러 성인들을 나열하면서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도통 나와 공통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오랜 시간 공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공부와 관련된 성인을 찾아봤고, 그 분이 대학자 아우구스티노임을 발견했다. 일단 마음에 들었다. 평탄지 않았던 그 분의 삶도 그렇고, 어머님의 아들을 향한 사랑 또한 나와 많이 비슷한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 성인이 내 앞에 나타나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생생한 느낌이 되살아 나는 듯하다. 거의 막바지 새 신자 교육에 우연찮게 예비 대부님 목장에서 여러 잡일을 도와 드리고 있었다. 잡목에서 못을 빼고, 트럭에 싣고, 운전하여 창고로 운반하고, 다시 내려 정리하고 등등... 땀이 마를 새도 없이 일은 끊임없이 쌓여 있었다. 너무 힘들어 창고 한 구석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내 눈에 들어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아무 생각 없이 여러 권 중 한 권을 손에 들어 펼쳐봤다. 그런데 책의 왼쪽 귀퉁이 페이지에서 의자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림이 있어 누군가 살펴보니, 성인 아우구스티노이셨다. 전율이 일어났다. 한 권이 1000페이지가 넘는 백과사전. 어림잡아 열권이 족히 넘어보이는 그 백과사전에서 우연찮게 펼첬던 그 곳. 성인 아우구스티노가 나를 쳐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그 더운 여름에 내 등을 타고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소름이 아직도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분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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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비오 성인에 관한 제 글이구요. 레지나의 묵상글 카테고리에 있어요.
" 제목: 고통으로 우리에게 강복해주세요.
비오성인의 비서 신부님이셨던 멜링고 신부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남양성모성지에 다녀왔다. (나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서 비오성인을 각별하게 좋아한다. 그래서 남편의 세례명을 ‘비오’로 정했고, 대녀친구의 세례명도 ‘비아’로 권했다.) 3년간 성인을 곁에서 모시는 영광을 누리신 신부님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었다.
강의에 앞서 비오신부님의 모습을 담은 30분짜리 영상을 보았다. 뒷자리에 앉아있었던 데다가 화질이 좋지 않아서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비오성인께서 웃고 울고 이야기 나누시는 모습을 보았다. 신부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사 중에 강론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오상의 고통이 너무 커서 울고 계시는 모습도, 웃으시면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시는 모습도 보았다.
비오성인께서 돌아가신 후에 유리관에 모셔지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 관에 친구하는 장면도 보았다. 갑자기 한 남자가 군중을 뚫고 나와 비오성인의 관 위로 손을 뻗어 김을 굽듯이 돈을 앞뒤로 갖다 대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돈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 나라의 독특한 풍습에서 연유한 어떤 행동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성인의 관 위에 대고 돈을 구운 것처럼 보였다. 그랬다면 그 사람은 돈을 부적처럼 사용하고 싶었거나 종자돈 삼아 세속적인 성공을 하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비오성인께서 당신의 시신이 그런 용도로 쓰였다면 꽤 슬퍼하셨을 것이다. 그 장면을 비신자가 본다면 미신적 행위라고 따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영상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오성인께서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었고, 천천히 성호를 그으면서 강복을 주셨다. 성호를 따라 그으면서 그 자리에 와 계신 비오성인께 직접 강복을 받는 듯해서 눈물이 와락 날만큼 감격스러웠다.
이어서 멜링고 신부님께서 비오성인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신부님의 강의는 대부분 비오신부님에 관한 책에서 읽어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나는 멜링고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성당 입구에서 팔고 있던 기념품을 살까 말까 고민했다. 기념품들 중에는 비오성인의 수도복을 좁쌀만큼씩 잘라서 만들었다는 스카풀라도 있었다. 스카풀라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비오성인께 전구를 청하라고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곧 스카풀라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나 부적 삼으려고 돈을 굽는 행위나 똑같이 미신적인 행위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는 염려가 들어 스카풀라 대신 열쇠고리나 상본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미사가 끝나고, 비오성인께서 오상을 받으신 당신 손에 끼고 계셨다는 혈흔장갑으로 안수를 받는 시간이 되었다. 혈흔 장갑은 유리액자 속에 들어있었는데, 신부님께서는 그 액자를 신자들의 머리에 대고 안수를 해주셨다. 나는 돈을 구웠던 남자의 동작이 자꾸 떠올라서 마음이 불편했다.
줄지어 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저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안수를 받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아마 많은 경우 질병이 낫기를 바라거나 하는 일에 신통한 효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오성인께서는 효험을 얻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고통을 가엾이 여기시면서 주님께 간절히 전구해주실 것이다. 하지만 분명 성인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실 우리의 태도는 효험을 바라는 것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리라.
나는 비오성인께 무엇을 청할까 생각해보는데, 문득 한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라 반복해서 되뇌어졌다.
‘고통으로 강복을’,‘고통으로 강복을’,‘고통으로 강복을 주시는구나.’
‘아, 비오성인께서 당신의 장갑이 아니라 당신의 거룩하고 복된 고통으로 지금 우리에게 강복을 주고 계시는구나.’
조금 전 영상에서 보았던 비오성인께서 강복을 주시는 모습이 안수를 주고 계시는 신부님의 모습 위로 오버랩 되면서, 마치 비오 성인께서 직접 안수를 해주시는 것 같았다. 비오성인께서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참아 받으신 고통이 우리에게 강복을 주시는 힘이고, 우리가 나누어 받게 된 그분의 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수를 받으면서 알고 지내는 신부님들 모두가 성인이 되도록 전구해주시라고 청했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비오성인이 보여주신 기적이 아니고, 우리에게 강복을 주는 힘은 비오성인의 혈흔장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비오성인께서는 고통을 매일의 양식으로 여기셨고,‘주님과 세상을 향한 열렬한 사랑 때문에 참아 받은' 그 고통으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강복을 주시는 것이다.
비오성인께서 감내하신 고통은 우리를 위한 사랑이 그 원천이었기에,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수를 받고 나오면서 기쁜 마음으로 비오성인의 수도복 조각이 담긴 스카풀라를 샀다. 한 개는 남편 비오를 위해, 한 개는 고통 중에 계시는 어느 신부님을 위해.
남편에게 줄 스카풀라는 비오성인의 웃는 모습이 담긴 것으로 골랐다.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주보성인을 본받아 행실을 거룩하게 하려 애쓰고 비오성인께 늘 전구를 청하라고 당부하기로 했다.
신부님께 드릴 스카풀라는 비오성인의 상처 있는 손 사진이 있는 것으로 정했다. 간단한 메모와 함께 선물하기로 했다.
“신부님, 비오성인처럼 신부님의 고통을 거룩하게 짊어지시고, 신부님의 고통으로 우리에게 강복해주세요.”
나도 일상에서 이왕에 겪는 자잘한 고통에 축복하는 지향을 두기로 마음먹었다.
신부님께 드리는 메모에 이렇게 덧붙이기로 했다.
“제 보잘 것 없는 고통으로 신부님의 고통을 축복합니다. 미약한 축복으로나마 성덕을 쌓으시기를 응원합니다.”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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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이의 것입니다.
누구나 "비오 신부는 나의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유배 중인 나의 형제들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나는 나의 영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나의 영적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나를 잊을 수는 있어도 나의 영적 자녀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부르실 적에 나는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주님, 저는 천국의 문 앞에 남아 있다가 나의 마지막 자녀가 들어간 다음에 들어갈 것입니다"라고요.
나는 나의 모든 자녀들을 하느님께 이끌고 갈 수 없어서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고통 받는 자녀들과, 악마와 한 편이 된 자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애끓는 마음에 미칠 것 같습니다.“
"신부님 , 과연 고통은 무엇인지요?"
"보속입니다."
"신부님, 당신에게 고통은 무엇인지요?"
"나의 일용할 양식이고, 나의 기쁨입니다.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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