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아픈 일, 아프는 일, /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수비루 성녀

김레지나 2015. 11. 15. 21:51

베르나데트 수비루(루르드의)(St. Bernardette Soubirous of Lourdes)
04월 16일
수녀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Maria-Bernardette Soubirous)는 1844년 1월 7일 루르드에서 가난한 방앗간 주인인 프랑수아의 여섯 아이 중 맏딸로 태어났다. 14세 때 그는 번민하는 듯한 인상에다가 민감하나 쾌활한 기질이 있었으며, 또래보다 다소 발육이 늦은 듯했다고 한다.

1858년 2월 11일과 7월 16일까지 베르나데트는 루르드의 가브Gave 강변에 있는 마사비엘르 바위에서 동정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하였다. 18 차례에 걸쳐 매우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그 부인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였고, 이 부인이 나중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호칭하게 되는 동정 마리아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베르나데트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부인’을 보지 못하고 그 말씀도 듣지 못하였으나. 무슨 혼란이나 정신적인 이상은 전혀 없었다. 

  발현이 있고난 다음부터 거짓 환시가 유행병처럼 번졌으나, 교회 당국은 베르나데트의 체험에 대하여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였다. 몇 년 후 그는 의심 많은 불신자들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았으나, 이 모든 것을 영웅적인 용기와 품위로써 물리쳤고, 1866년에 프랑스 느베르(Nevers)의 '사랑의 자매 수녀회'에 입회하여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무슨 일이오?” 이때 베르나데트는 “아픈 일”이라고 대답하였다.

   베르나데트는 35세에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1925년 6월 14일 복자품에 오른 후,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는데, 성모 발현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겸허한 단순성, 전 생애를 통해 보여 준 절대로 의심하지 않은 신뢰심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