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기도의 의미와 중요성에 별로 관심이 없다. 모든 사람이 사랑과 행복을 갈망하고 추구하지만 행복을 위한 열쇠는 기도에 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성녀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프랑스 디종의 가르멜 수녀회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수녀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이 행복의 비밀을 내가 네게 모조리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 비밀 중 몇 가지만이라도 전해주고 싶어. 네 영혼 안에 작은 방을 마련하여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거기에 계시다고 생각하렴. 그리고 시시로 거기 들어가렴. 슬플 때도 재빨리 그 방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너의 주인이신 그분께 속삭이렴. 만약 네가 그분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절대로 기도가 지루하게 여겨지지 않을 거야. 내게 기도는 생활이 주는 어려움과 긴장을 푸는 그 무엇이야.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께 그냥 단순하게 다가가서 아기가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듯이 그분께 안겨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돼. 그분이 너를 얼마나 잘 이해하시는지 네가 안다면! 만약 내가 그것을 알게 되면, 너는 더 이상 고통을 모르게 될거야.”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에서 볼 수 있다. 감사하게도 그는 이런 기억을 전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아버지께 특히 감사드린다. 아내를 잃은 후 아버지의 삶은 끊임없는 기도의 삶이었다. 한밤에, 아버지가 성당에서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았다. 아버지와 나는 사제 성소에 관해서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한 적은 없었지만, 아버지가 평소에 보여준 모습은 그 자체로 내게 가장 확실한 첫 번째 신학교 수업이었으며, 일종의 가정 세미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버지가 보여준 모범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에 고통스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도 기도하며 힘과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가 태어나 성장한 폴란드 바도비체의 P. 에드워드 자허 신부는 그 시기의 카롤 보이티아(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원래 이름)에 관한 인상 깊은 일화를 이렇게 전했다.
“폴란드에서는 기도할 때 얼굴과, 십자로 벌린 두 팔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눕는 게 보통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카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대로 집에서 바닥에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여러 명의 독일군들이 카롤의 집에 들이닥쳐 이리저리 수색하면서 사람이 없자 물건을 훔쳐갔는데, 카롤이 누워 기도하고 있던 방의 문을 열지는 않은 것은 카롤의 기도 덕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1978년 10월 16일 가톨릭 교회의 수장에 올라 2005년 4월 2일 선종할 때까지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모든 일과 모든 문제의 진행과 해결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가정과 일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휴식 시간이 부족하고 기도할 시간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 가르멜 수도회의 부활의 라우렌시오 수사는 아무리 바쁜 일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증명해주었다.
라우렌시오 수사는 농장 관리와 100명이 넘는 수사들의 식사를 책임진 요리사로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차츰 깨달았다. 성당의 고요함에서 물러나와 바쁜 일상에 있을 때도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과 중에도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짧은 순간이라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짧은 순간 하느님을 떠올리는 것, 사랑과 봉헌의 마음가짐으로 충분합니다. 하루를 지내면서 마음으로 자주 반복하여 주님을 경배하면 됩니다. 식사할 때, 대화할 때도 마음을 그분께로 향하십시오.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 그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수시로 그분을 떠올리고, 마음으로 조배하고, 때때로 필요한 은총을 청하고, 우리의 노력을 그분께 바치는 것이면 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선물하신 은총에 감사드리면 됩니다. 그러면서 중단 없이 그분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분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합시다. 그러면 마침내 그분이 주시는 충만한 은총을 느끼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그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 은총 없이는 죄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아르스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매일 긴 시간 동안 기도하면서 자신의 본당 공동체를 성화시켰을 뿐 아니라 수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하느님께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고,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그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작은 피조물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면,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그렇게 하시듯이,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자녀에게 귀를 기울이시려 우리에게 몸을 굽히십니다.”
- 마리아 177호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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