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5년

'약은 집사' 따라 하기

김레지나 2015. 11. 2. 15:36

 

저는 어제 위령성월 기도에 대해 루르드 성모님의 격려를 받았답니다.

쉬었다가 글로 정리해서 올릴게요. 기대하시어용.

작년에 썼던 글 다시 올립니다.

 

 

‘약은 집사’ 따라 하기

 

 

위령성월 기도

 

  한국 교회는 위령성월 중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은 날마다 한 번씩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만 양도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저는 평소에는 기도에 영 게으르다가도 이 기간만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미사참례하려고 노력합니다. 8 명의 영혼들이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교회를 통해 ‘사랑의 통공’을 섭리하신 하느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올해에는 일찍 고해성사를 받고 기도 준비를 했습니다. 지인들에게 위령성월 기도문을 보내 함께 하자고 했고, 묘지 방문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반모임을 성지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장루 주머니를 차고 힘들어하시던 K 언니,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떠난 유방암 환우 등, 기도 대상자를 기억해냈습니다.

 

 

약은 집사의 비유

 

  7 일째 되는 날은 같은 병실을 쓰던 J 어머님의 딸을 위해 기도하기로 한 날입니다. J 어머님은 악령에 들린 듯 밤마다 돌연 포악해져서 당신을 때리고 목 조르던 딸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망가져 힘들게 살았던 딸이 죽어서도 평안치 못할까봐 걱정하고 애달파하셨습니다.

 

  미사 중 복음 말씀은 ‘약은 집사의 비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 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루카 16:1-8)

 

  복음을 들으며 ‘엇!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전대사 양도 기도가 불의한 집사의 행동과 같은 거네.’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는 딸의 영혼을 염려하시는 J 어머님의 처지가 너무 딱해서 본 적도 없는 딸이 하느님과 자기 스스로에게 진 빚을 탕감해주려 미사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전대사를 받게 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느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불의한 혜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의한 집사를 우리 인간들이라고, 부자 주인을 하느님이라고 묵상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맞다. 내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건강은 내 것이 아니야.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지. 그런데 연옥 영혼들에게 내 것을 나눠 주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네. 나는 주인이 아니라 집사에 불과한데 말이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일 뿐이야. 전대사 양도가 공정치 못한 혜택인가 아닌가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야. 지금의 내가 J 어머님의 딸보다 더 큰 빚을 이미 탕감 받아 살고 있을 수도 있거든. 살아 있는 죄인에게 큰 사랑을 베풀어 회개하도록 돕는 거나 죽은 죄인에게 큰 자비를 베풀어 보은하도록 돕는 거나 다를 바 없지. 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행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일 뿐이야.’

 

  우리가 거저 받은 시간과 재능을 허투루 쓴다면 하느님께서는 약은 집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꾸지람을 알아들을 지혜가 있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약은 집사의 겁 없는 행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사는 오랜 세월 동안 자기의 주인은 재산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개의치 않을 만큼 충분히 부유하고, 오히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염려하는 성품을 지녔음을 익히 배웠을 겁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들킬 게 뻔한데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행실로 하느님께 받은(빚진) 거룩함을 갚아드려도, 하느님의 거룩함에는 티끌만큼의 거룩함도 보태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과 전능하심과 사랑과 부유함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우리가 빚진 것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께 손해가 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신 이유는 집사가 주인의 자비로운 품성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 갚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서로 자비를 베풂으로써 빚진 마음 대신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니, 집사의 ‘약은 계산’이 아닌 ‘돕는 행위’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응급실에서의 기도

 

  저는 항암 후유증으로 연속 평일 미사를 참례할 체력이 없습니다. 갑자기 열심을 냈더니, 8일째 되는 날에는 관절통, 근육통, 두통 등으로 한 발짝도 걷기 어려울 만큼 아팠습니다. 애초에 기억하기로 했던 영혼들을 다 챙겼다 싶어서 쉬려고 했는데, 퍼뜩 고등학생 자녀들 때문에 요양병원 입원을 미루기만 하다 세상을 떠난 루시아 자매가 떠올랐습니다.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 애쓰던 성품에 영영 이별하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짠한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 천국에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루시아! 내가 기도해줄게. 얼마나 힘들었어?’ 저는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 움직여 미사참례하고 기도했습니다.

 

  쉬어야 할 때를 놓치고 무리를 해서인지 이틀 후부터 까무러치게 피곤하고 오른쪽 아랫배에 날카로운 통증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부터는 통증이 심해져서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맹장인가?’ ‘신장결석인가?’ ‘아니면 난소?’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아무래도 수술할 병일 것 같아 금식을 하고 입원 준비를 해두고 다음날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맹장인 것 같다고 수술해야할 것 같으니 응급실에서 빠른 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소변검사와 채혈을 했습니다. 저는 양쪽 팔 다 림프절 절제가 되어서 팔에서 채혈할 수 없습니다. 심한 부종으로 다리가 심하게 부어 있는데다 워낙 혈관이 약하고 잡히지 않아서 늘 발등에서 채혈을 합니다. 암이 재발한 후부터만 계산해도 7, 80 번은 발에 주삿바늘을 찔렀지 싶습니다.

  간호사님이 응급실 바닥에 앉아서 준비하길래, 일주일 전에 내분비대사내과 검사로 채혈했던 오른발 대신 왼발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간호사가 들고 있는 바늘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머, 저 혈관이 약해서 나비 바늘을 써야 하는데요.”했더니, “링겔을 맞아야 해서 굵은 바늘을 써야 해요.”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왼쪽 발등이 붓고 손도 못 대게 아파서 절뚝거리고 다녔던 터라, 혈관들이 영영 못쓰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간호사님은 굵은 주사 바늘을 왼발을 이쪽저쪽으로 찔러보더니 혈관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른발도 한참 찔러보더니 실패했습니다.

  와락 슬퍼졌습니다. ‘내 몸에 바늘 찌를 곳이 어디 남았다고. 맹장 수술이라고 해도 나한테는 치명적일 수 있는데....’ 결국 다른 간호사님이 와서야 오른발 구석에서 채혈하고 링겔을 꽂았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두어 시간 응급실 복도에 앉아 씨티 촬영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곧장 입원하면 아들 혼자 집에 있겠기에 엄마에게 와계십사 부탁 전화를 했고, 아들에게 혼자 밥 챙겨 먹으라고 문자를 보냈고, 서너 지인들에게 기도 부탁도 했습니다.

  단순 맹장이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었습니다. ‘날마다 잠깐씩 나들이하기에도 벅찬 체력인데, 너무 무리했구나. 내 몸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후회막급이었습니다. ‘매일 미사 참례하는 게 힘들었던 거야. 간단한 수술이라도 정말 정말 싫다.’

 

  문득 약은 집사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옳지. 나도 약은 집사처럼 세상 것을 좀 청해 봐야겠다. 잘 견디게 해달라 부탁할 게 아니다. 아예 수술을 피하게 해달라 청해봐야겠다.’ 막상 잘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청을 하려니까 어색하고 멋쩍었습니다. ‘저기요... 제가 원래 이런 거 부탁하는 스따~일이 아닌데. 웬만하면 짠~! 수술 안할 수 있도록 빌어주실래요?’ 제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인지라 ‘안 되어도 할 수 없지만요.’하고 덧붙였습니다.

  큰 잠벌을 탕감 받은 영혼일수록 더 큰 감사로 기도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기도가 부족해서 안 할 수술을 하게 되는 일은 없겠어. 결과가 안 좋으면 내 몫의 시련이라 받아들이고 견디는 거고.’

 

  검사 결과가 나와서 의사선생님한테 불려갔습니다. 장에 염증이 있는 것일 뿐이니 수술은 필요 없겠다면서 항생제만 처방해 주었습니다. 통증은 별 차도가 없었지만, 의사선생님에게는 거의 안 아프다고 둘러댔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을 나오는데, 마차를 타고 행렬을 하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우쭐했습니다.

  그 후로도 일주일쯤 걷기 힘들 정도로 배가 아프고 한쪽 다리에 얼얼한 마비감이 와서 고생했지만, 정밀 판독 결과 신장이나 난소에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염진통제만 더 먹게 되었습니다.

 

 

약은 집사 따라 하기

 

  마침 오늘자 주보에 전삼용 신부님께서 강론을 실으셨는데, “하늘나라에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놓는 일이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시급하고 필요한 일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천국에 든 영혼들은 지치지 않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준다고 하니,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도 시급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 셈입니다. 이미 하느님을 뵈어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을 연옥영혼일 테니 ‘떼일 염려가 없는 확실한 거래'가 될 것이고, 그런 기도를 하는 저의 믿음은 제가 받은 가장 큰 은총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생명과 재능을 우리가 수고해 얻은 재산인 양 누리고 살다가 하느님을 맞대고 뵙는 날에 그 재산을 얼마나 잘 사용했는지 셈 바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심보’대로라면 성경 속 집사처럼 세상에서 누렸던 것들마저 빼앗겨 마땅한 처지가 되어야겠지만, '약은 계산‘으로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일을 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나마 그렇게라도 해서 봐준다.’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약은 집사’처럼 하느님께 셈해 바칠 때를 위해서 ‘살 길’을 애써 찾아, 그 길을 달리는데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불의한 집사를 칭찬까지 하신 이유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기도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베푼 선한 행위는 상대는 물론 베푼 이에게도 은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응급실 소동 덕에, 제가 거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가 더욱 깊어졌고, 저의 믿음과 기도로 가장 많은 덕을 본 사람은 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든든한 후원자를 또 얻었으니, 앞으로 겪게 될 고통도 조금은 더 배짱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2014년 11월 23일에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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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처음에 인간을 만드신 분은 그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집회 1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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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작업 중인 초안입니다. 군더더기나 잘못된 부분 보이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