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책에서 옮긴 글

하느님과의 만남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2>에서

김레지나 2015. 7. 25. 21:39

    1999년.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처음 찾아간 곳은 분당의 요한 성당이었다. 그때 그 성당은 신축 중이었다. 가자고 간 것은 아니었다. 무작정 차를 몰로 그냥 하염없이 가다가 한적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게 그 성당 앞이었다. 나는 공사 중인 밖 한길에 차를 세웠다. 하필이면 공사 중인 성당 앞에 왔으니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들어가면 이 공사 중인 건물에 성당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거기 차를 세웠을까? 모르겠다. 문득 도로 집으로 가고 싶었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생전 하느님을 부르지도 않던 내가, 이렇게 아쉬워지자 그를 찾아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염치가 없었다. 지금 돌아갔다가, 잘되면, 평화로워지면, 살 만해지면, 그때 찾아오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았다. (인간은 아무튼 이상하다. 생전 하느님에게 차리지 않았던 예의를 꼭 이런 때 차리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명백히 유혹이다. 그것도 몹시 나쁜)

  도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막은 것은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언니의 단호한 목소리의 기억 때문이었다.

  “당장 가라! 당장 교회로 가!”

  집으로 가면 밤에 언니가 전화를 할 텐데 ‘성당 안으로 차마 못 들어갔어’하면 언니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았다. 나 때문에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상심하고 계신 부모님의 얼굴도 떠올랐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괴로움만 주는 존재, 아무 데도 쓸모없고 이 세상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럴 때 사람은 자신에 대해 살의를 느낀다. 나도 그랬다.

  그때 텅 빈 길 저쪽에서 누군가가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문득 외투를 입고 있던 여자의 손끝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것이 보였다. 묵주였다. 어디가 입구인지, 이 성당에 지금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만일 저 여자가 건물로 들어간다면 거기 기도할 데가 있다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기특하게도 들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걸음은 몹시 빨랐다. 서둘러 따라 들어갔는데 그녀는 없었다. 창문도 없는, 아직도 공사 중이라 바람이 몰아쳐 들어오는 넓고 황량한 성당 로비에 나는 잠시 서 있었다. 성당이 어디 있는지 문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위층으로 향하는 원형의 난간만이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난간을 따라 올라갔다. 네 번쯤 원을 돌아 올라갔을까. 그러자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듯한 문이 나타났다. 잠시 망설였지만 침을 한번 크게 삼키고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문이 삼분의 일쯤 열렸을 때 나는 불에 덴 것처럼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나는 뒷걸음쳤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얼마 후 등에 차가운 기운이 닿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고 다리는 몸을 지탱할 수 없어 후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차가운 시멘트 벽에 등을 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참아 내려고 앴던 통곡이, 그렇다,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나는 느꼈다. 분명,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어떤 무엇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눈이 마주친다는 것은 그리 평범하고 예사로운 시각적 활동은 아니다. ....(중략)..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내가 그 안에 십자가나 제대나 꽃이나 성모상이나 그 무슨 형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나는 어떤 존재와 두 눈이 마주쳐 버렸고 그것은 내 심장을 불화살처럼 찔렀다. 실제로 나는 통증을 느꼈다. 그러니 내가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뒷걸음을 쳐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통곡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울었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대성당 문 밖에서 울고 있는 내 꼴을 볼까 참담했다. 그러나 통곡을 멈출 수는 없었고 나는 겨우 울음소리를 멈추고 무릎에 얹은 두 팔에 얼굴을 묻은 채 그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누군가의 손길이 어깨에 느껴졌다. 그러더니 내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말했다.

  “자매님, 왜 여기 앉아 계세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대개는 ‘왜 그러시느냐? 어디 다쳤느냐?’ 뭐 이런 질문이 당연할 텐데 그녀는 다 알고 있다는 긋이 말했다. 그 와중에도 질문이 참 이상하다 싶었다. 당황한 내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친절하게 성당 문까지 열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18년 만에 말이다.

 

 

   넓은 성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차마 앞으로 갈 수가 없어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제대 위,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다.

    “미안해요, 예수님 정말 미안해요....”

    이 말밖에는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나는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눈물이 그치고 나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자 뜻밖에도 성당 안에 몹시 추운 게 느껴졌다. 눈물이 흘러내린 뺨이 얼 듯 시렸고 턱이 덜덜 떨려 왔다. 아까 들어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미안하다고 해놓고 눈물이 그치자마자, ‘음.... 그럼 추우니 이만 가야겠어요.’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내 자신이 한심했다. ‘어떻게 하지’하며 앉아 있는데 누군가 저 앞에서부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내 앞에 멈춰 서서 다시 내게 말했다.

  “자매님, 추운데 왜 여기 앉아 계세요? 저기 들어가서 기도하세요. 저기는 따뜻해요.”

  그러고는 망설이는 내가 일어설 때까지 내 앞에 서 있었다. 춥기도 했지만 그 말투가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일어나서 저 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나는 얼결에 일어나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갔다. “여기 말이죠?”하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녀는 이미 없었다.

  검은 커튼이 쳐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한 여자가 꿇어앉아 있었다. 거기가 성체조배실이라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이었고 나는 그녀가 하고 있는 그 자세대로 엉거주춤 무릎을 꿇었다. 그곳은 정말 따뜻했다. 꼭 고향의 아버지 집에 온 듯 따뜻한 온돌이 나의 떨림을 진정시켜 주었다.

  “하느님, 저 왔어요.”

   마음속으로 내가 그를 불렀다. 신기하게 하느님이 나를 보고 미소 짓는 것이 느껴졌다. 미소 짓는 것이 아니라 두 팔을 벌려 나에게 와서 안기라고 하는 듯 느껴졌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나는 내 자신이 미치거나 너무도 큰 환상 속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기는 그게 그거였다. 그러니 이상하게도 마음은 진정되었고 따스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해 온 아버지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곧 스스럼없어졌다.

   “아버지!”

   하고도 불러보았다.

   “저 너무 많이 우는 거 부끄러우니 저 여자분 나가게 해주세요. 당신하고 나하고 둘만 있고 싶어요.”

   내 기도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 여자분이 조금 있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비로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면 마음속으로 그분의 응답이 끊임없이 울려 나왔다. 목소리를 귀로 들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 여기 있다.”라는 말처럼 단전쯤에서 들려왔고, 마치 단전 어디쯤, 접혔다 열렸다 하는 귓바퀴가 았는 것처럼 말씀으 오기 전에 막혀 있던 그것이 열리는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기압이 약간 바뀌듯 귀가 약간 멍해졌고 뜨고 있는 두 눈의 사이는 희뿌옇게 변하며 십자가 혹은 성당 한 점만 남았다. 마치 카메라가 한 대상만 남기고 모두 줌아웃시켜 버리는 것과 비슷했다. 그게 나의 환청이든 아니든 신기했다.

  “당신은 정말 존재하십니까?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합니까?‘ 사춘기 시절 그렇게 목 놓아 부를 때는 왜 이런 응답을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지나갔다. 내가 당신과 씨름하며 얼마나 격렬한 사춘기를 지냈는지 기억 못하시느냐고 묻고도 싶었다. 내가 당신을 떠나기 전 대학 2학년 무렵에 지금처럼 나를 잡아 주셨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엷은 원망과 함께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얼핏 지나가는 생각이었고 그냥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처럼 나는 편안했다.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가 흘러나왔다.

   ‘아버지, 저를 봉헌합니다. 저를 다 가지시고, 그리고 당신 뜻대로 이루어주소서.“

   그렇게 말하고 나자 주인 무릎을 베고 누운 고양이처럼 나른해지기까지 했다

   한참의 침묵이 지나갔다.

   “당신은 사랑의 신이시라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무엇인가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전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야 그렇다 쳐도 제가 낳은 자식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저 자신까지도요. 저는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이번에 그분은 침묵하셨다. 그러자 별로 더 드릴 말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아버지, 저를 봉헌합니다. 온전히 봉헌합니다.”

   그러자 마음 속에서 그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다 봉헌했는데 뭘 또 봉헌을 한다는 말이냐? 그럼 아까 봉헌할 네 것을 조금 남겨 둔 거냐?“

   나도 모르게 풋,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18년 만에 처음 찾아온 성당, 처음 들어와 보는 성체조배실, 나는 세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 아직 폭력의 흉터가 얼굴에 남아 입술은 부어 있고 얼굴의 시퍼런 멍 자국은 두꺼운 화장 아래로 시커머죽죽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 부어터져 딱지 앉은 입술로 웃음이 나왔다. 순간 왠지 지금이 웃을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말했다.

   “저기요. 이제 백 속에 휴지가 없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울면 코를 팡팡 풀어야 하는데 이제 그만 울게 해 주세요. 만일 또 콧물이 나온다면 집에 가야할 거예요.

     그리고 침묵 중에 나는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울컥하는 감정이 다시 올라왔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콧물이, 늘 울기만 하면 눈물보다 많이 쏟아지는 콧물이 코 끝에 살짝 매달리더니 마치 보란 듯이 방울방울 하다가 쏙 들어가 버렸다. 신기했다. 그러자 울다 말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웃음은 내 입가로 더 번져 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가 웃는 것을 보고 너그러이 빙그레 웃고 계시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느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유머임을.

   하느님의 유머!

   어린 시절 나는 교리경시대회에 나가 상도 탈 만큼, 성경을 읽었고 신앙서적도 많이 읽는 소녀였다. 성당의 강연, 포콜라레 모임, 피정도 빠지지 않았다. 남들이 겨우 미사만 나오는 고3 때도 나는 주일이면, 하루 종일 가야 하는 빈민촌 봉사를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한 번도 ‘유머의 하느님’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없었다. 어떤 신부님도 그런 강론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느님의 유머를 느끼자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 환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왔다. 하느님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하시는 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분이다. 고정관념이랄까 하는 것이 깨어져 나가는 것처럼 통쾌하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느님도 웃고 계셨다. 아버지 집에 돌아와 지난날을 부끄러워하며 울고만 있는 내게 웃음으로 위로를 주시는 분, 아, 이건 멋진 일이었다. 물론 머릿속으로 가시지 않는 의문도 있었다.

   “대체 왜? 이 죄 많은 나를, 당신을 떠나는 것도 모자라 모욕하고 조롱하고 배반해 왔던 나를, 왜 이토록 따스하게 받아 주시는 겁니까?”

   그렇게 앉아 있는 내 머릿속으로 18년 동안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성경의 한 이야기가 참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신기한 일인데 18년 혹은 20여 년 전 읽었던 성경 내용은 그 후로도 계속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오래 덮어 두었던 책을 다시 펼치는 것처럼, 낡았으나 선명히)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 먹이조차 먹지 못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온 둘째 아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때 아버지는 결코 그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 다만 집 앞에서 날마다 기다리다가 그가 오자 버선발로 뛰쳐나가 그때부터는 적극적으로 그를 끌어들인다. 나는 내가 여기까지 온 그 여정이 그냥 비유가 아니라고 느꼈다. 내가 18년이 걸려 성당 문 앞까지 오자 그때부터 누군가 나타나 적극적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성당 앞에서, 성당 문 밖에서, 추운 의자에서, 그리고 이 따스한 성체조배실 안까지.

    도로 집으로 갈까 망설이던 내 눈 앞에 나타났던 묵주를 든 여자와, 쭈그리고 울고 있는 나를 성당 안으로 인도해준 여자와, 떨고 있는 나를 이 안으로 안내해 준 그녀들. 그리고 방금 내 기도를 듣기라도 한 듯이 이곳에서 조용히 나가 준 그녀까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들이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들이었다는 것을 믿는다. 그 천사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