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성체를 모셔야 할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워낙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보니, 기도를 하거나 성체를 모실 때 암세포나 통증이 사라지는 효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게 되지요. 물론 너무나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기대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체는 머리 아플 때 먹는 아스피린 같은 것이 아니랍니다. 성체는 ‘나’를 지으신 하느님께서 신비로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성체를 굳이 아스피린 같은 약이라고 본다면, 오직 우리 영혼을 위한 ‘사랑의 명약’입니다. 이미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약을 먹음으로써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되고, 영원한 생명 안에서 우리의 삶을 인식할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운동을 하거나 어떤 치료를 받거나 강의를 들었더니 더 유익하더라면서 성체를 모실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섭리를 온전히 깨닫게 되는 날, 하느님보다 덜 좋은 것에 우선적으로 쏟아 부은 우리의 노력과 시간들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몇 분은 기도 모임 시간에 들어서 아실 것입니다. 아네스 언니의 동생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돌아가시기 2주 전까지 평일미사 참례를 하셨답니다. 미사참례를 위해 차를 타는 동작을 하려면 엄청난 통증이 따르는데도 매일 성체 모시기를 간절히 원하셨답니다. 그분이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대하고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싶어하셨을까요?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생분의 고통스런 노력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분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성사 안에서 우리와 결합하고자 하시는 ‘사랑의 신비’에 당신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과 감사로 응답한 것입니다. (아, 부족한 저도 그런 위대한 성체 신심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그분이 임종하실 때, 어떤 장면을 바라보는지 수차례 “아멘”하고 환하게 웃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가는 길에 직접 마중 나오셨을 거라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작은 사랑에도 큰 사랑으로 갚아주시는 분이시고, 큰 사랑에는 더 큰 사랑으로 갚아주십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사랑으로 받아 모신 성체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는지, 하느님을 마주 뵈옵는 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설령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사랑으로 한다면 영원 안에서 우리를 위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럴진대 하물며 마땅한 사랑과 감사로 성체를 모심으로써 성체 안의 예수님과 결합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의 영혼을 위한 유익과 영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전에 보내드린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신비에서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결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이 파스카의 신비에서 교회의 신비가 표현됩니다. 곧,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이루어 주는 세례성사의 행위에서 이미, 또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 성사적으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 교회는 끊임없이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건설되고 있습니다. 이 몸(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과 결합되기를 바라시며, 특별히 고통 받는 사람들과 결합되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영혼과 마음이 위로를 얻고, 그 위로의 힘으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영원 속에서 우리에게 의미 없는 일은 켤고 일어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힘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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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노 레스트레포님의 강연 중에서 부분부분 옮겼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성령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이 하느님이고 하느님은 성령이심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초자연적인 은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도유함으써 믿음의 은총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창조의 신비, 하느님의 신비, 우리의 삶의 신비 등, 그 모든 신비를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크리스챤의 신비로서 우리의 믿음은, 특히 성체를 모시는 카톨릭 신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도, 꿈꿔보지도 못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은총을 받았으나 또한 커다란 책임을 지고 있는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배워야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성체를 통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인류의 보속의 도구로서 초자연적으로 도유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성체로서 보속의 도구가 되는가? 우선 우리는 아주 강한 훈련으로 단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양심을 넘어서 매우 자신의 성화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위해 애써야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내가 거룩한 것과 같이 너희도 거룩해지라고 말씀하신다고 전합니다. (중략) 성체가 무엇입니까? 성체는 용서입니다. 화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어 우리의 생명 자체를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과 성체는 죽음의 운명을 가진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여 죽음의 운명과 영원한 삶 사이의 다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때 다리가 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한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의 운명인 우리가 그 위를 걸어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것을 할 수 있으신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중략) 우리들이 신앙 안에서 깨어나서 참으로 성체의 신비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지고 가야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부활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크리스챤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크리스챤이란 부활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얼마나 부활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있습니까? 우리는 부활한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죽을 운명의 크리스챤으로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순이지요. 세상에는 많은 죽을 운명의 크리스챤이 있습니다. 여전히 죽을 운명의 크리스챤은 크리스챤의 삶을 이용하여 오직 부와 육체적인 건강과 모든 세상적인 유익을 얻으려 합니다. 오늘날엔 그것들이 아주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하셨다. 알렐루야! 그분의 피로써 모든 것을 갚으셨으니 걱정할 것 없이 주님께 건강과 부를 청하자! 알렐루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따라갑니다. 그것이 크리스챤입니까? 아닙니다. 네, 물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적인 유익도 주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크리스챤으로서의 우리의 목표가 되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부활입니다. (중략) 그렇다면 성체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번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설명하였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부터 부활까지의 과정에서의 신비를 성체 안에서 보게 됩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없어서는 안 될 희생양으로서 당신의 길을 말씀하셨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으며 갈바리에 오르며 빵을 준비하였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와 거룩한 여인들, 그리고 성 요한이 따르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침 뱉고 가혹한 행위를 하는 가운데 산을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시어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그 생명이 빵이 부활하여 우리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크리스챤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방법은 우리가 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모든 누룩을 빼어 내어야합니다. 모든 양념을 빼내야 합니다. 우리는 맛이 없어져야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풀려져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누룩과 양념들이 있습니다. ㅋㅋㅋ 우리가 너무 맛이 있게 되어서 야수들이 우리들을 먹고 싶어합니다. 그 야수들로 부터 우리를 지키는 방법은 맛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누룩을 빼어내십시오. 매력적이려고 하고, 인기를 끌려하고, 칭찬받으려 하며 인정받으려 하고 다른 사람을 콘트롤 하려하고…그 모든 것들이 누룩입니다… 양념들…오~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양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비워내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도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 전에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중략) 우리가 생명의 빵의 신비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성체를 이해하게 됩니다. 성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성체를 영하며 성체와 자신이 하나라고 느끼셨습니까? 성체는 저기에 나는 여기에 있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성체를 영하고도 여러분의 마음은 비어 있습니다. 성체와 하나가 되는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례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 점 더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체가 더 이상 힘을 발하지 못하고 영혼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중략) 우리가 완벽하게 하느님과 화해하고 성체를 모시면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바꾸십니다. 우리의 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됩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피의 값을 치루고 영혼들을 구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성체를 모셨다고 합시다. 여기서 참된 성체의 도구로서 은총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순간 어디에선가 영혼을 잃어버릴 위험에 있는 누군가가 죽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그 순간 그리스도의 피가 된 우리로써 그 영혼을 구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면서 성체를 영하는 때마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 몸이 부패되지 않는 성인들이 있는 것을 알고 계시죠? 어떤 것은 800 년전, 1000년 혹은 그 이 이전에 죽은 성인의 몸입니다. 저는 바로 얼마 전에도 부패되지 않는 성 시메온을 보았습니다. 그는 크로아시아 자달 에 있는 성당에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바로 성체 때문입니다. 오직 성체만이 그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 누구도 결코 여러분에게 부패되지 않는 죽은 몸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직 성체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성체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체 안에 예수님이 실로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적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아주 많이 있습니다. 가능한 매일 영성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상상해보십시오. 교회를 떠난 카톨릭 신자가 죽어서 자신이 낭비한 모든 성체를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잘 조절만 했더라면 멀지 않은 곳에서 미사를 볼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해야 할 것들을 완전히 거꾸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자리가 영혼의 구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체의 도구로서 예수님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성체입니다. 그것이 방법입니다. (중략)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봅시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체를 모시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들은 죽으면 지옥에 가는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성체를 모십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체를 모십니까? 전 인류의 인구에 비해 적은 숫자 입니다. 나머지는요? 나머지는 우리를 통해 영혼의 영양을 줍니다 (중략) 성체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몇만 배 더 강하게 주셔서 사람들에게 나누며 치유를 가져 오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하고 나올 때 우리는 살아있는 감실이 되어 놀라운 빛이 나오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경이로운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성체의 도구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탄이 인류에게 끼친 가장 큰 손실은 교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총인 성체를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로부터) 빼앗아 간 것입니다. 만일 세상에 있는 모든 크리스챤이 성체를 모셨더라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악이 적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 모든 것이 인류에 대하여 사탄이 행한 일입니다. 사탄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인류를 향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이 때 성체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사제가 미사를 드리기 위해 제의를 입고 미사를 준비하는 순간 모든 지옥이 벌벌 떱니다. 미사가 드리는 순간엔 모든 사탄은 달아나고 사탄은 모든 것을 중지합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면 다시 자신의 영역을 찾으려고 돌아갑니다. 전세계 어디서인가 24 시간 성체가 들여올려지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그렇습니다. 만일 미사가 없었더라면 이 세상은 오래전에 사탄에 의해 넘어졌을 것입니다. 미사는 끊임없이 사탄의 일을 저지시킵니다. (중략) 자 이제 묵상시간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은 가장 놀라운 은총이며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영이 주어졌음을 믿는 것이며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충실할 때 우리의 삶은 이미 부활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놀라운 기쁨입니다. 저는 항상 말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신앙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여러분이 죽지 않는 사람임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바꾸고 모든 것에 급한 마음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마치 시간이 없는 것처럼 서두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빨리 결혼해야 하는데……빨리 더 큰 집을 사야하는데 …이게 늦고… 저게 늦고…. 우리가 정말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사람이라면 뭐가 급합니까? 참 크리스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매우 평화롭고 기뻐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야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누가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앗아가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아름다운 날이던 나쁜 날이던 힘든 날이던 그 누구도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 안에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기에 성체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놀라운 은총입니다. 제가 배운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성체조배…성체조배는 놀랍고 놀라운 은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체조배를 어떻게 할지 걱정을 합니다. …성체 앞에 와서는 묵주기도 좀 하고 무언가를 조금 읽고…그리고… 졸기 시작합니다…ㅎㅎㅎ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서 성체가 무엇인지 다시 새겨 보셔야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이 성체안에 계심을 믿는다면 그분 앞에 나아가 그 앞에 앉아있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적당히 기도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이 성체조배의 조건은 아닙니다.
성체조배는 우리를 만든 이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을 만난다니.. 상상이 가십니까? 그저 우리를 창조하신 분 앞에 나가십시오. 그것을 이해하면 할수록 여러분의 성체조배는 침묵이 될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기도는 관상기도 아닙니까? 여러분 자신을 침묵안에 놓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모여있을 때 어린아이들이 굳이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주변에 서로가 있음을 알고 족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 마음에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성체조배를 하고 그 곳을 걸어 나올 때 여러분이 놀라운 빛을 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사탄이 도망갑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여러분의 공동체를,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를, 여러분의 교회를, 그리고 인류를 위해 참으로 축복을 하고 싶다면 복된 성체 앞에 충분히 오래 머물러 계십시오.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을 하느님에게로 데려오고 싶다면 우리의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들의 성체를 통해 하느님이 하십니다. 그것이 은총입니다. 아멘!
고해성사에 대해 / 마리노 레스트레포
(전략) 주님께서는 저에게 사탄이 저의 나이 14세에 저에게 카톨릭 교회를 훔쳐갔다고 하셨습니다. 사탄은 저에게서 고백성사를 훔쳐갔습니다. 성체와 보속의 도구로 창조된 저는 고백성사로 살아야 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마음이 그것을 유지하고 준비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고백성사를 통해서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고백성사에 의해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드럽게 자신을 유지했어야 했었습니다.
우리는 원죄로 인하여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님의 도구로서 자신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백성사를 주셨으며 주님께서는 고백성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중재인을 주신 큰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는 자만심의 왕좌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만심의 왕좌를 물리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또다른 죄인인 사제앞에 겸손되이 무릎 꿇고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주님께서 사제를 선택하시고 도유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로 이끌어가는 사탄으로 부터의 구속을 끊을 수 있는 힘은 오직 교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대죄는 타락한 천사에 의해 보호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천사는 오직 교회에만 복종합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우리를 풀어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무릎꿇고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교회가 우리를 죄로 부터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고백성사는 카톨릭에 주어진 큰 선물이며 동시에 큰 의무입니다.
(중략)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체를 영하는 순간에 우리는 평화와 화해로 하느님의 은총안에 있게 되어 살아있는 감실이 되며, 우리자신이 그리스도가 되는 그 순간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다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그 순간,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질 위험에 있는 영혼을 성체로서 완벽하게 준비된 우리를 통해 주님께서 그 영혼을 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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