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책에서 옮긴 글

네 마음을 내게 다오. / 한비야

김레지나 2015. 5. 5. 21:05

네 마음을 내게 다오

 

  이렇게 매일기도를 하고는 있지만 가끔은 정말 깊은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 번잡한 일들로 마음이 고단하거나 지쳐 있을 때면 피정을 떠난다.

  긴 구호 활동에서 돌아왔던 얼마 전에도 일주일간 침묵 피정을 다녀왔다. 떠나기 전부터 실컷 성경 읽고 마음껏 기도해보겠다는 기대로 잔뜩 부풀어 산속에 있는 피정센터로 떠났다.

  이번 피정 프로그램은 복음 관상기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천주교와 개신교가 공히 하는 기도 방법이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를 수십 장면으로 나누어 해당 복음서를 집중적으로 읽은 후, 마치 관객이 무대 위에 올라가듯이 그 장면 안으로 들어가 주인공인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는 기도다. 피정 인도자가 권하는 복음 관상기도 시간으 한 번에 두 시간씩, 하루에 여섯 차례, 총 열두 시간이었다.

  열두 시간이라면 세끼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종일 기도만 해야 할 테네 편하게 기도할 기도처가 필요했다. 한 시간가량 피정센터를 샅샅이 살핀 후 3층에 있는 아담한 다락방을 찾았다. 피정 중 개인 면담도 원하던 분에게 매일 아침 첫 시간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비까지 와서 기도 분위기를 돕고 있었다.

  그런데 환호도 잠시, 무든 일인지 이런 완벽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첫날과 이튿날은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복음을 읽고 기도하려고만 하면 분심이 들고 잠이 마구 쏟아졌다. 복음 장면 속으로 들어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상상력은 나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이끌었다. 찬물로 샤어한 후에 기도해도, 뒷산 꼭대기에 올라가 바람을 쐬고 와서 기도해도, 졸릴까봐 점심도 거르고 진한 커피를 물처럼 마시면서 기도해도 계속 잠이 오고 자꾸만 딴 생각이 났다.

  이러느라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 안에는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벼르고 벼르던 피정인데 여기 있어야 할 내 마음은 도대체 어디를 다니고 있는 건가? 같이 온 20여 명의 교우들은 다들 이미 예수님과 만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셋째 날 새벽이었다. 그날 장면은 예수님이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가나의 혼인잔치였다. 해당 복음을 읽고 나서 성령께 제발 오늘은 장면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 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눈앞에 시끌벅적한 중동 지방의 잔칫집 광경이 펼쳐졌다. 세계 일주 중 중동을 여핼할 때 많이 보았던 바로 그 잔칫집 마당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요란한 타악기 소리가 들리고 잔치에 온 남녀들은 그 음악에 맞추어서 얄라얄라를 외치며 흥겹게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들은 종종걸음으로 부엌과 마당을 오가며 음식을 나르고 있고 부엌에서 풍기는 노릿한 양고기 삶는 냄새, 시금한 요구르트 냄새, 고소한 튀김 냄새가 잔치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 오늘 잔치의 주인공인 성장을 한 신랑 신부가 보였다.

  그때 부엌 뒷문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이 보였다. 성모님이 예수님에게 잔치가 무르익고 있는데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예수님이 "어머니, 저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지만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물동이의 물을 마당으로 나르라고 했다. 그 물동이가 내 앞을 지나가는 순간, 포도주 향기가 확 났다. 나르는 사람이 곁에 서 있던 내게도 포도주를 질그릇에 담아 건네주었다.

  한두 걸음 멀리 예수님이 계셨는데 웬지 예수님 곁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평소의 나라면 뛸 듯이 반가워하며 아는 척을 했을 텐데, 손에 들고 있는 포도주로 같이 짠, 하고 건배했을 텐데, 그 장면에서 나는 망설이고 쭈뼛거리고만 있었다.

  다음 순간, 예수님이 내게 눈길을 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눈길을 마주하지 못했다. 마주치면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실은 피정센터에 온 첫날,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기도실 십자가 밑으로 갔다.

  "주님, 저 왔어요."

  인사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한참 후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그동안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니?"

  '그동안 일과 산과 마음에 두고 있는 한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어어요."

  그랬더니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 마음을 내게 다오."

 

 아, 이제 내 마음을 달라니, 그동안 나는 내가 일을 열심히 하면 주님이 좋아하고 예뻐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산도 온종일 주님을 만나고 찬미하는 최고의 기도처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것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당신에게는 그저 자투리 시간에나 잠깐씩 집중했던 내 사랑이 충분하지 않았구나. 그동안 주님은 당신만을 뜨겁게 사랑하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셨구나. "이제 네 마음을 내게 다오."라는 간절한 사랑 고백을 하실 만큼. 그런데 어쩌나, 내 마음을 모두 드리고 싶지만 어떻게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날 이후에는 매번 성경 속의 장면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묵상은 그 정점이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왔을 때 천사가 "너는 왜 울고 있니? 뭘 찾고 있니?"라고 물으니 막달라라 마리아가 "예수님 시체가 없어졌는데 어디 있는지 아시면 알려주세요. 제가 잘 모실게요."라고 말하는 장면. (나는 그 장면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 "마리아야!"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아, 눈길만 주시던 예수님이 부끄럽고 쑥스러워하는 내 마음을 아시고 내 이름을 직접 불러주신 거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예수님의 눈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부드럽고 다정한 눈빛이었다. 내가 예수님을 보면서 웃었는지 예수님도 빙그레 웃으셨다. 나와 예수님이 드디어 만난 것이다.

 

  고백컨대 그동안 나는 삼위일체 하느님 중 창조주 하느님과 성령보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은 내 친구라며 가까이 지내는 것 같은데 내게는 예수님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어려운 분이었다.

  다행히, 너무나 다행히 이번 복음 관상기도를 통해 예수님과 긴 여행을 함께 다녀온 느낌이다. 이제 다시 복음 장면 속에서 만난다면 평소의 나처럼 뛸 듯이 반가워 얼싸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매일매일 한 걸음씩만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이제, 네 마음을 내게 다오.'라고 하신 그분께 참말이지 내 마음을 몽땅 드리고 싶다.

 

                                                     한비야님의 책 <1그램의 용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