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강요셉 신부님

성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강요셉 신부님

김레지나 2015. 4. 1. 23:50
4월 1일 성주간 수요일 
 
만약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십자가의 운명은 바뀌었을까요? 만약에 제자들이 힘을 모아 예수님을 지켜드렸다면 우리 구원의 역사는 달라졌을까요? 
 
제자들은 주님 앞에 놓인 십자가를 고통과 죽음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에 모든 힘을 기울여 그것을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원의로써 십자가를 이미 마음으로부터 받아지셨습니다. 십자가가 당신의 사랑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배반이 아니었어도, 제자들이 주님 곁을 끝까지 지켜 드렸어도 예수님은 이 길을 걸어가셨을 것입니다. 악의 한 가운데로, 죽음의 세력이 이글거리는 불길 속으로 걸어가시는 그분의 발걸음은 달라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는 십자가의 길이 고통의 길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식탁에 양을 잡아 주님과 제자들은 식사를 하십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빵을 나누고, 같은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같은 운명을 나누는 동지로서, 제자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로서 받아주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부패하고 악의로 가득찬 인물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도 주님을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에 함께 하는 동지가 되었고 주님께서도 유다에게 공동체 살림을 맡길 정도로 그를 신뢰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당신의 그릇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미 예수님의 구원방식을 포기하였습니다. 불의가 가득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유다도 주님의 길에 동참했지만 그분이 선택하신 방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힘과 능력과, 보다 세련된 사업방식이 있음에도 주님은 어리석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십니다. 더 효율적이고 더 큰 성공의 길을 버리고 죽음을 향해 가시는 그분의 방식을 이해 할 수 없었고 동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승이며, 친구이며, 동지인 예수님과의 관계 대신에 지배체제의 인물들인 수석 사제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에 내 몰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분 스스로 죽음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셨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길에서 넘어지고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리며 걸어가셨지만 주님께서 가신 길은 믿음과 확신 속에 걸어가신 사랑의 길이며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가까이 가실수록 두려웠습니다. 그분이 약속한 사랑이 보이지 않고 고통과 죽음만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막아보고자 하였고 자신이 생각한 구원의 방식으로 바꿔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떠났던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같은 내적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십자가가 다가올 수록 자신에게 요구되는 믿음과 사랑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점점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갔고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보면서 주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유다의 배반은 사랑의 확신을 구하지만 자신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겪는 절망과 회의에서 비롯된 절박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누가 이런 유다를 손가락질 할 수 있겠고 단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역시 세상의 부조리와 냉혹함 앞에 버려진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사랑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고 이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서 힘과 위로를 찾곤 합니다. 나의 안전을 보장해 줄 체제에 의지합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힘과 권위에 자신의 두려움을 맡기고 싶어 합니다. 보다 확실하고 안정적인 수단에 의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반에 담겨 있는 그의 약함을 보십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그릇을 그에게 내어 주십니다. 당신과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로 유다를 초대하십니다. 그에게 사랑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지만 유다는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주님께 내어 맡기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자존심은 고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을 묶어 버린다면 '자아'라는 감옥과 무덤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유다가 넘지 못한 장벽은 '자기애'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습니다. 자기의 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이 그분의 손을 잡는 것 대신에 수석 사제들의 손을 잡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당신 식탁에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죄에 물든 나의 손을 당신 대접에 넣어 빵을 적시도록 하십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여전히 두려움과 의심의 어둠이 몰아치는 우리들이지만 이 시간 주님과 함께 머무릅시다. 그분의 식탁에 앉은 우리를 주님은 운명 공동체로 받아주시며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그릇에 손을 넣어 사랑을 적시고 사랑을 먹으며 이 시간을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