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파파 프란치스코

위안부 할머니들 손잡은 교황…끝까지 ‘소외된 이웃’과 함께

김레지나 2014. 8. 29. 20:51

위안부 할머니들 손잡은 교황…끝까지 ‘소외된 이웃’과 함께

등록 : 2014.08.18 21:23 수정 : 2014.08.18 21:53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집전을 위해 입장하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명동성당 미사 집전 현장

“낮은 자 품는 큰어른 직접 보자”
굵은 빗줄기에도 3천여명 환호

위안부 할머니 건넨 ‘나비 배지’
교황, 뜻 설명 듣고 제의에 달아

“한국국민 하나될수 있도록 기도”
박대통령에 작별 인사·묵주 선물

18일 오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우산을 들거나 비옷을 걸쳐 입은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평일인데다 굵은 빗방울까지 떨어졌지만 ‘파파 프란치스코’를 직접 보려는 인파는 계속 늘었다. 천주교 신자는 물론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까지도 고개를 들어 교황이 오는 길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교황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명동성당이 내려다보이는 근처 카페 창가에도 교황의 마지막 한국 일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사람들과의 ‘스킨십’을 스스럼없이 즐기는 교황을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낮은 자를 섬기는 교황과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마음에 태어난 지 일곱달 된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 막 돌이 지난 아이를 데려온 아빠, 몸이 불편한 장애인까지 3000여명이 교황을 기다렸다.

오전 8시55분께 교황이 탄 차량이 나타나자 ‘프란치스코 교황’을 연호하는 함성이 명동거리에 울려 퍼졌다. 언제나 그렇듯 환한 표정의 교황이 오른쪽 차창 밖으로 손을 뻗어 흔들며 사람들의 환호에 답했다. 차를 멈추고 내려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깜짝 행보는 없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큰어른’의 등장에 사람들의 환호는 그칠 줄 몰랐다.

9시50분부터는 교황이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가 열렸다. 교황은 이날 미사를 위해 수단(성직자들이 평소 입는 옷) 위에 하늘색 비둘기와 녹색 올리브 가지가 수놓아진 흰색 제의를 걸쳤다. 비둘기는 평화를, 올리브 가지는 구원을 상징한다. 교황이 한국에서 입은 모든 제의를 만든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에서 미사 취지에 맞게 제작했다고 한다. 수단에는 어김없이 노란색 세월호 리본이 달렸다. 교황은 이날 평화와 화해를 위한 ‘용서’를 강조했다.

미사에는 교황이 강조했듯 우리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이들이 함께했다. 제대 앞쪽 중앙에는 길원옥·이용수·강일출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7명이 자리를 잡았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은 따로 휠체어에 앉았다. 교황의 미사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끌어안지 못했던 이들도 모두 품을 만큼 드넓었다.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들도 마련된 자리에 참석했다. 이 특별한 미사에는 새터민과 납북자 가족, 장애인, 다문화가정 대표 등도 초대받았다. 북한 출신 사제, 수녀와 평신도, 환경미화원, 경찰, 교도관 등 1000여명이 함께 미사를 드렸다. 성당 건물 뒤편 성모동산에도 전국 16개 교구 성당 사무장과 사무원 등 700여명이 비옷을 입고 미사에 참여했다.

교황은 제대에 오르기 전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 멈춰 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김복동(89) 할머니가 교황에게 ‘나비 배지’를 건넸다. 나비 그림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훨훨 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취지를 설명하고 나비 배지를 교황의 제의에 달았다. 교황은 한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아주며 이마에 성호를 긋고 강복하기도 했다.

애초 예정에는 없었지만 이날 미사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 각료들과 함께 참석했다. 교황은 미사 도중 강론 말미에 박 대통령이 앉은 쪽을 바라보며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 그리고 교회 관계자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이 마침예식을 끝낸 뒤 퇴장 성가가 나오는 동안 자신이 앉은 자리로 찾아오자 잠시 작별인사를 나눴다. 앞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미사 참석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교황방한준비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의 공식 초청을 받아 미사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은 박 대통령에게 “한국 국민이 하나 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한 뒤, 미리 준비한 기념 메달과 묵주를 선물했다.

최우리 석진환 기자 ecowoori@hani.co.kr